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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彙洛)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휘락에게 바친 제문이다. 김휘락의 문하에서 30년 동안 출입하면서 받아 온 은혜를 적고 난 후,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 온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운데 애절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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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泰圭)文(1943)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태규에게 바치는 제문이다. 자식의 직분을 잘 지키고 품성도 뛰어난 인물인데도 시절을 잘못 만나 재주를 감추고 살았던 점에 대한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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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中頊)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이중욱에게 바친 제문으로, 그의 집안 내력을 간단히 적고 난 후 이중욱의 心志와 儀度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였음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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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時尹(衡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이형국에게 바친 제문으로, 시대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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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公文翼(昌秀)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박창수에게 바친 제문으로, 옛 의관과 법도를 준수하여 세상의 모법이 되었던 박창수의 운명을 애도하고서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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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應瑞)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응서에게 올린 제문이다. 조상인 桑老의 大義는 오백년 동안 찬란한데, 김응서 역시 그러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칭송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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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炳七(斗顯)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두현에게 올린 제문으로, 불의는 저지르지 않고 선조를 추모하는 일에 열성이었다고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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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仲三(容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용규에게 올린 제문으로, 문맹자들이 글을 알게 되고 굶주리고 농사를 짓는 이들이 편히 사는 것은 공의 공적이라며 칭송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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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祉燮文(1945)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지섭에게 올린 제문이다. 의열단 단원으로 일황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 궁성입구에 있는 二重橋에 폭탄을 투척한 김지섭의 의거를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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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永植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김영식에게 올린 제문으로, 때를 만나 재질을 갖추고서 세상에 유용한 재목이 되기를 기대했던 김영식이 죽은 것을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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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十五代祖考交河縣監府君墓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5代祖인 交河縣監의 묘소에 올린 제문으로, 부군이 돌아가신지 400여년인데 후손이 와서 성묘하고 있노라면서 자신의 집안 내력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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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祖雲樵公(應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三從祖인 宋應鉉에게 올린 제문으로, 자신의 집안 내력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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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都事公(淳學)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再從叔인 宋淳學에게 올린 제문으로, 자신의 집안 내력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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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兄(永植)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三從兄인 송영식에게 올린 제문이다. 단정한 자질과 뛰어난 문장 재주를 지니고서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였지만 불운하여 향촌에서 은거의 생활을 지낸 점에 대하여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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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姑孺人安東金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外姑인 孺人 安東金氏에게 올린 제문이다. 김씨의 덕성을 이미 誌文에 대략 기술하였으므로 감히 더 보탤 것이 없기는 하지만 자신의 사사로운 정은 다 표현하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김씨의 婦德을 칭송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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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妹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妹에게 올린 제문으로, 가난과 궁핍 속에서 살았던 삶에 대하여 동정의 마음을 표하는 가운데 애모의 정을 극진히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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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力部尉崔公神壇碑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展力部尉 崔世貞(1455~?)의 神壇碑銘이다. 최세정은 본관이 江陵이고, 부친은 崔進賢이며, 모친은 江陵咸氏로서 順의 딸이다. 부인은 羽溪李氏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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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八人紀念碑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낙동강의 근원 중에 棗遷이라는 곳은 嶺海의 골목에 해당되는 곳으로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계해년 봄에 비로소 길을 열어 公益이 매우 컸는데, 2월 2일 일을 하던 인부 18명이 강물이 불어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애도하는 마음을 기록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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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烈婦眞城李氏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효부인 진성 이씨의 묘지명이다. 李氏는 松安君 子修의 후예요, 和信의 딸이며, 黃翼鎭의 부인이다. 황익진은 錦溪 黃俊良의 후손이다. 34세에 남편을 여의고 무덤 옆에 여막을 지어놓고서 새벽과 저녁으로 곡을 하고 바람과 눈이 와도 굽히지 않았다. 향년은 71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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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妹義城金孺人鎭川宋氏壙誌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막내 누이인 義城金孺人鎭川宋氏(1886~1947)의 무덤에 넣은 壙誌이다. 막내 누이는 이름이 華玉이다. 부친은 宋淳昊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 聲奎의 딸이다. 1886년(丙戌) 3월 23일 松川里에서 태어났다. 엄격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생장하였고, 이치에 맞지 않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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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田處士崔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崔道命의 묘갈명이다. 최도명은 字가 濟江이요, 본관은 江陵이다. 부친은 崔宗立인데 일찍 운명하였고, 어머니는 易東 禹倬의 후예인 丹陽禹氏이다.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고 후손들을 잘 계도하는 일에 전념하였고 만년에 시골집이 대략 지어지자 後人들이 그가 거처하던 곳을 흠모출처 : 유교넷 -
244472
莊陵參奉崔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崔斗集(1861~1917)의 묘갈명이다. 최두집은 자가 殷弼이고, 본관은 江陵이다. 부친은 崔永忠으로서 대대로 은거하여 덕을 양성하는 삶을 실천하였고, 어머니는 밀양박씨로서 致利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244473
通政大夫崔公墓碣銘(竝序)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崔瓚集의 묘갈명이다. 최찬집은 자가 敬和이고, 본관은 江陵이다. 1858년(哲宗 9)에 태어나 1938년(戊寅)에 죽었으며, 井谷에 묻혔다. 부인은 杞溪兪氏로서 仁坤의 딸이다. 朴孟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244474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金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桂漢의 묘갈명이다. 김계한은 자가 和淑이고, 본관은 金海이다. 부친은 金殷錫이요,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1628년(仁祖 6) 3월 19일에 松川里에서 태어났다. 孝悌·忠信의 덕이 있었고 문장도 뛰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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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仕郞中樞院議官崔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崔魯集(1855~1935)의 묘갈명이다. 최노집은 자가 君玉이고, 본관은 江陵이다. 부친의 휘는 永忠이요, 어머니는 밀양박씨로서 致利의 딸이다. 朴孟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만년에는 후학들을 가르쳐서 성취한 바가 많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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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趙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趙信琬의 묘갈명이다. 조신완은 본관이 漢陽이다. 부친은 趙琮이요, 모친은 平海黃氏로서 震孫의 딸이다. 조신완의 14세손인 趙悳基가 엮은 遺事를 가지고 와 부탁하길래 비문을 짓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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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茂榮(1761~1827)의 묘갈명이다. 박무영은 자가 悅夫이고, 淸齋先生 忠貞公 審問의 후손이다. 부친은 朴範用이요, 모친은 完山李氏로서 貴榮의 딸이다. 부인은 貞夫人 김해김씨이며 業龍의 딸이다. 예전에 세운 묘갈이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후출처 : 유교넷 -
244478
通德郞餘隱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暢林(1847~1903)의 묘갈명이다. 박창림은 초명이 仁燮이고, 자는 性和이며, 본관은 密陽이다. 부친은 朴基鎭이요, 어머니는 金寧金氏로서 白村 文起의 후예요 光鐸의 딸이다. 金誠潤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아 孝悌의 도리를 듣고 분발하였으며, 을미년(1895)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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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隱處士池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池致漢(1854~1918)의 묘갈명이다. 지치한은 자가 雲五이고, 호는 松隱이며, 본관은 忠州이다. 부친은 池昌旭이요, 어머니는 平海黃氏로서 復淳의 딸이다. 楊湖 池運會의 문하에서 배웠다. 경술년(1910) 이후로는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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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涯處士金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濟漢(1847~1922)의 묘갈명이다. 김제한은 자가 光祐요, 호는 洛涯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부친은 金象鉉이요, 모친은 安東權氏로서 華孫의 딸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갑오년(1894) 동학운동 때 관군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핍박하자 軍門에 들어가 장수를 타일러 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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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黃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黃敬中(1836~1904)의 묘갈명이다. 황경중은 자가 仲禮이니 본관은 平海이다. 부친은 黃取祥이요 어머니는 영천이씨이니 象奎의 딸이다. 갑오운동 때 관군이 굶주림으로 인하여 기동을 못하자 그 일을 구원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종족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계묘년에출처 : 유교넷 -
244482
將仕郞黃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黃漢亨(1862~1906)의 묘갈명이다. 黃漢亨은 자는 德汝이고, 본관은 平海이다. 부친은 敬中이요, 모친은 興海裵氏로서 興億의 딸이다. 벼슬길에 올랐지만 時事가 날로 잘못되는 것을 보고 귀향하여 농사를 지내면서 삶을 영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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議官權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權丙弼(1871~1947)의 묘갈명이다. 권병필은 자가 天弼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權致益이요, 모친은 月城李氏이다. 공은 세상에 필요한 재주가 있었고 선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근검절약하여 집안을 일으켰으며, 은혜와 위엄으로 집안을 다스려 집안에서 이간하는 말이출처 : 유교넷 -
244484
嘉善大夫苟足堂金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是道(1717~1796)의 묘갈명이다. 김시도는 자가 用夫이고, 호는 苟足堂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信傑이요, 어머니는 淑夫人 丹陽禹氏이다. 김시도는 독서에 있어 自得을 중시하였고 진솔한 벗만 사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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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峯處士權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權龍震(1860~1910)의 묘갈명이다. 권용진은 자가 震五이고, 호는 老峯處士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道衡이요, 어머니는 貞夫人 月城李氏로서 尙熙의 딸이다. 孝悌·忠信의 덕이 있었다. 교유관계가 넓었지만 올바른 사람을 가려서 사귀었다. 丙申年 의병운동 때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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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窩處士林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林霄漢(1856~1935)의 묘갈명이다. 임소한은 자가 汝雲이고, 호는 溪窩이며, 본관은 醴泉이다. 부친은 應聲이요, 어머니는 穎陽千氏이다. 선친의 문집을 간행하고 선친이 엮은 「溪書禮輯」을 간행하였으며, 이어 선친이 거처하던 枕流臺를 수리하고 西山 金興洛, 拓菴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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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適軒先生黃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黃漢成(1543~1604)의 묘갈명이다. 황한성은 자는 致濁이고, 호는 取適軒이며, 본관은 平海이다. 부친은 熙孫이요, 모친은 義城金氏로서 應天의 딸이다. 돈후하고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이 대단하였으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시문에 능하며 경학에 조예가 깊었다. 자연 속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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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成均生員李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李承吉(1664~1755)의 묘갈명이다. 이승길은 본관이 전주이다. 부친은 李尙懿이고, 어머니는 驪興閔氏이다. 1664년(顯宗 5: 甲辰) 4월 21일 楊州의 峨嵯里에서 출생하였다. 1698년(肅宗 24)에 생원이 되었지만 林泉에 은거하여 생활하였다. 만년에는 松窩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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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嘉善大夫徐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徐思愼(1672~1719)의 묘갈명이다. 서사신은 자가 士嚴이고, 본관은 達城이다. 부친은 徐翊相이요, 어머니는 貞夫人 密陽朴氏로서 晉의 딸이다. 선조를 받들고 후손들을 계도하는 데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祭田을 마련하여 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였고 書史를 마련하여출처 : 유교넷 -
244490
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白川金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禎三(1740~1800)의 묘갈명이다. 김정삼은 자가 應先이고, 호는 白川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是建이요, 어머니는 淸州鄭氏로서 宗先의 딸이다. 김정삼은 사람됨이 걸출하고 기량이 대단하였다. 글의 뜻을 들으면 “글은 별다른 일이 아니라 모두 내가 뜻을 세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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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同知中樞府事金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承立(1632~?)의 묘갈명이다. 김승립은 자가 允五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武景이요, 어머니는 安東權氏로서 成達의 딸이다. 1632년(仁祖 10) 6월 4일에 雲安洞에서 출생하였다. 효성이 대단하였고 종족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근검절약하였고 집안을 법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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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池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池萬重(1713~1788)의 묘갈명이다. 지만중은 자가 子厚이고, 본관은 忠州이다. 부친은 以宗이요, 어머니는 淸州朱氏와 安東權氏이다. 공은 성실한 자세로 집안의 학문을 계승하고 선조를 잘 봉양하였으며, 어려운 종족을 돕고 經史에 치력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향촌에서 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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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趙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趙德立(1642~1728)의 묘갈명이다. 조덕립은 자가 明天이다. 부친은 師龍이요, 어머니는 安東張氏로서 命龍의 딸이다. 부친이 90세의 장수를 누리자 칠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함께 재롱을 떨어 부친을 즐겁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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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折衝將軍龍驤尉副護軍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義鎭(1787~1876)의 묘갈명이다. 박의진은 자가 雲招이다. 부친은 基浩요, 어머니는 仁同張氏이다. 선조의 유업을 계승하고 후손들을 계도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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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趙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趙鎭國(1781~1825)의 묘갈명이다. 조진국은 자가 士賢이고, 본관은 漢陽이다. 부친은 點道이며, 어머니는 安東權氏로서 孟順의 딸이다. 천성이 너그럽고 후덕하여 어릴 때부터 이미 어른의 의표가 있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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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略將軍甫山兵馬萬戶李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朔州의 通峴山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의 묘가 있는데 바로 宣略將軍甫山兵馬萬戶 李公의 묘소이다. 13세손이 觀楫이 그의 아들인 裕岦를 보냈기에 묘갈명을 짓는다고 밝히면서 간단하게 李公의 생애를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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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趙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趙邦宗(1680~1747)의 묘갈명이다. 조방종은 자가 寧叔이고, 본관은 漢陽이다. 부친은 德立이요, 어머니는 安東權氏로서 次龍의 딸이다. 자질이 謹厚하고 풍채가 준수하였으며, 孝友를 실행하는 데 돈독하였고 노숙하다는 칭송을 받은 바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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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隱處士鄭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鄭逸和(1812~1905)의 묘갈명이다. 정일화는 자가 泰初이고, 본관은 延日이다. 부친은 後永이요, 어머니는 義城金氏로서 夏銖의 딸이다. 晩悟公에게서 수학하였고 향리에서는 효성스럽다는 칭송을 받았다. 만년에는 초가 정자를 짓고서 松隱이라는 편액을 걸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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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陵參奉趙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趙秉吉(1851~1905)의 묘갈명이다. 조병길은 자가 善弼이고, 호는 晩翠이며, 본관은 漢陽이다. 40세의 늦은 나이에 비로소 재종제인 秉泰에게서 글을 배웠지만 그 후에 학문에 상당한 진취가 있었으며, 종족들과 雙溪書塾을 지어 후진을 양성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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佳隱處士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碩世(1654~1715)의 묘갈명이다. 박석세는 자가 有大이고, 호는 佳隱이며, 본관은 密陽이다. 부친은 士龍이요, 어머니는 淑夫人 英陽南氏이다. 공은 15세의 나이에 이미 성인의 규모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몸가짐을 신중하고 엄정하게 하였고 남을 대할 때에는 인정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