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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嘉善大夫戶曹參判徐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徐錫說(1781~1855)의 묘갈명이다. 서석설은 자가 士賚이고, 본관은 達城이다. 부친은 命道이고, 어머니는 貞夫人 寧越嚴氏로서 道基의 딸이다. 經史를 두루 섭렵하고 星曆에 두루 통하였으며 덕행이 뛰어났다출처 : 유교넷 -
244502
通政大夫崔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崔貴集(1857~1936)의 묘갈명이다. 최귀집은 자가 成三이고, 본관은 江陵이다. 부친은 永吉이요, 어머니는 靑松沈氏로서 歲德의 딸이다. 어려움을 이기고 집안을 일으켜 鐵石腸이라 칭송받았다. 만년에는 甫峴으로 이사 와 살면서 林泉에 은거하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출처 : 유교넷 -
244503
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溪隱權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權相詮(1830~1899)의 묘갈명이다. 권상전은 자가 周用이고, 호는 溪隱이다. 부친은 忠佐이고, 어머니는 原州元氏로서 基範의 딸이다. 1830년(純祖 30) 11월 11일 伊溪里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성실하였으며, 장성하여 西谿 金在燦의 문하에서 수학할 때 기대출처 : 유교넷 -
244504
宣略將軍忠武尉副司果宋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宋在隆(1835~1892)의 묘갈명이다. 송재륭은 자가 五奎이고, 본관은 鎭川이다. 부친은 德章이고, 어머니는 穎陽千氏이다. 璿源閣의 참봉과 錄事·忠武尉副司果가 되었지만 세상과 뜻이 합치되지 않아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만년에는 梨泉으로 옮겼다출처 : 유교넷 -
244505
月巖辛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辛鍾黙(1821~1872)의 행장이다. 신종묵은 자가 汝洪이고, 호는 月巖이며, 본관은 寧越이다. 부친은 宇集이요, 어머니는 興海裵氏로서 顯德의 딸이다. 성품이 영특하고 骨相이 훤칠하였으며, 말을 배울 때 이미 「孝經」에 통하였고, 7세에는 시를 지을 줄 알았다. 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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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玄黙齋池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池以宗(1654~1746)의 행장이다. 지이종은 자가 朝海이고, 호는 玄黙齋이며, 본관은 忠州이다. 부친은 喆生이고, 어머니는 淑夫人 安東權氏로서 得精의 딸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經史에 능통하고 어진 벗들을 가까이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44507
曉谷南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南晉彙(1866~?)의 행장이다. 남진휘는 자가 兩明이고, 호는 曉谷이며, 본관은 英陽이다. 부친은 奭濟이고, 어머니는 安東權氏로서 命植의 딸이다. 左菴 金龍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부친을 모시고 太白山에 들어가 은거의 삶을 영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44508
野塘處士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雲秀(1820~1894)의 행장이다. 김운수는 자가 鵬翼이고, 호는 野塘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福賢이고, 어머니는 淑夫人 平山申氏이니 澤國의 딸이다. 골상이 특이하고 기량이 매우 준수하여 부친의 기대를 받았다. 「孟子」의 浩然章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출처 : 유교넷 -
244509
小巖處士朴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濟勳(1854~1935)의 행장이다. 박제훈은 자가 允明이고, 본관은 密陽이다. 부친은 延準이고, 어머니는 淑夫人 礪山宋氏로서 基鼎의 딸이다. 자질이 특이하였는데, 丹山 金致命이 만나보고서 상당한 기대를 하였다. 梅山 權受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244510
處士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周性(1878~1938)의 행장이다. 김주성은 자가 子聲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宗鶴이고, 어머니는 慶州金氏로서 濟百의 딸이다. 공은 천성이 자애롭고 몸가짐이 근검하였다. 변란을 만났지만 능히 집안의 유업을 제대로 지켰으며, 선조를 받드는 데에 있어 성의를출처 : 유교넷 -
244511
處士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承會(1878~1932)의 행장이다. 김승회는 자가 殷瑞이고, 호는 洛樵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在秀이고, 어머니는 慶州孫氏로서 重根의 딸이다. 古澗 金達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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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溪徐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徐丙黙(1846~1924)의 행장이다. 서병묵은 자가 舜予이고, 본관은 達城이다. 부친은 震東이고, 모친은 晉州姜氏로서 萬祐의 딸이다. 密窩 權錫九에게 수학하였다. 저술에 치력하여 「碧山論」, 「薇山記」등의 글을 남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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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白隱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金炳卨(1841~1913)의 행장이다. 김병설은 자가 虞叔이고, 安東 사람이다. 高麗 太師 金宣平의 후예로 英祖 戊申倡義 때 물망으로 中軍別將에 추천된 護軍 金兌寬이 그의 5세조이다. 부친은 季根이고, 모친은 平山申氏로서 錫亨의 딸이다. 성품이 자상하고 용모가 단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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淑夫人晉州姜氏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淑夫人 姜氏(?~1879)의 행장이다. 숙부인 강씨는 通停先生 姜淮伯의 후손인 姜謂奎의 딸이다. 白沙 李恒福의 후예인 李鍾億에게 시집갔다. 남편 이종억과 함께 당시 가난한 가세를 일으켰다. 이종억이 耆老社에 들어가 通政大夫가 되자 숙부인이 되었다. 1878년 12월출처 : 유교넷 -
244515
從高祖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府君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宋德休(1798~1881)의 행장이다. 송덕휴는 자가 稚明이다. 송기식의 종고조이다. 부친은 진휼의 공이 있어 嘉善大夫 漢城左尹에 올랐던 瑞麟이고, 모친은 光山金氏 國昌의 딸이다. 골격이 컸고 힘이 장사여서 부친 송서린이 농사지어 집안을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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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高祖通政大夫行龍驤衛副護軍府君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宋德河(1803~1882)의 행장이다. 송덕하는 자가 景千이고, 호는 雲菴이다. 송기식의 종고조로서 宋德休의 넷째 동생이다. 석주 이상룡을 스승으로 모셨다. 중형 송덕휴와 함께 80세를 넘겨 고종의 恩典을 받아 통정대부가 되었다. 부인은 密陽朴氏로서 忠貞公 淸齊先生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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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從祖成均生員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宋鳳鉉(1864~1907)의 행장이다. 송봉현은 자가 聖五이다. 조부는 嘉善大夫 同中樞府使 德章이고, 부친은 監役 在輝이며, 모친은 大邱徐氏로서 龜溪先生 沈의 후손인 선비 秉直의 딸이다. 어릴 때는 시원한 기상이 있었고 자라서는 열심히 공부했다. 44세의 나이로 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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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祖通政大夫忠勳府都事府君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宋文鉉(1827~1907)의 행장이다. 송문현은 자가 炳如이고, 호는 沙隱이다. 부친은 通禮院 引儀 宋哉衡이고, 모친은 淑人 達城徐氏로서 龜溪 沈의 후손인 錫九의 딸이다. 金炳學의 주선으로 忠勳府 도사가 되었다. 낙향한 뒤 마을 선비들과 교류했지만 뜻이 맞지 않아서출처 : 유교넷 -
244519
溪隱徐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徐廷德(1843~1917)의 유사이다. 서정덕은 자가 致一이고, 본관은 達城이다. 高麗 版圖判書 達城郡 徐晋이 그의 시조이다. 부친은 丙吉이고, 모친은 安東權氏 奎度의 딸로서 思復齋 權定의 후손이다. 密窩 權錫元에게 배워 孝悌와 忠信을 근간으로 삼아 長者의 기풍이 있출처 : 유교넷 -
244520
通德郞餘隱朴公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朴暢林(1847~1903)의 유사이다. 박창림은 초명이 仁燮이고, 자는 性和이며, 본관은 密陽이다. 忠貞公 淸齊先生 朴審問의 16세 손이고, 洛巖 朴基鎭의 둘째 아들이다. 모친은 白村 金文起의 후손으로 金光鐸의 딸인 金寧金氏이다. 金誠潤에게 수학하여 배운 것은 반드시출처 : 유교넷 -
244521
烈婦鎭川宋氏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烈婦 宋氏의 유사이다. 송씨는 본관이 鎭川이다. 부친은 斗鉉이고, 모친은 江陵劉氏이다. 17세에 집이 가난해서 의업에 종사하던 林曾秀에게 시집을 갔다. 1902년(壬寅) 6월 30일 남편 임증수가 폭우로 불어난 물에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자 장사를 다 마친 뒤 7월출처 : 유교넷 -
244522
五代祖考贈嘉善大夫漢城府左尹兼五衛都總府副總管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5대조인 宋瑞麟(1767~1830)의 유사이다. 송서린은 자가 聖瑞이다. 부친은 工曹參議로 추증된 星徵이고, 모친은 慵齋 李宗準의 후손으로 李逢三의 딸인 慶州李氏이다. 집안을 법도있고 화목하게 잘 다스렸다. 순조 갑술년에 큰 가뭄이 들자 곡식을 풀어 많은 사출처 : 유교넷 -
244523
祖考處士松雲齋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조부인 宋九鉉(1839~1919)의 유사이다. 송구현은 자가 士重이다. 부친은 在璣이고, 모친은 誠齋 李仁挺의 후손으로 處士 李洪龍의 딸인 慶州李氏이다. 栗圃 李庭贊에게 배웠다. 安東金氏 金炳寓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았다. 歸齋 裵維命의 문하에서 과거 공부를출처 : 유교넷 -
244524
先考槐堂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부친인 宋淳昊(1860~1947)의 유사이다. 송순호는 자가 聖元이고, 초명은 淳亨이다. 부친은 宋九鉉이고, 모친은 安東金氏로서 啓根의 딸이다. 1860년(哲宗 11) 12월 18일에 태어났다. 棗塢 金重洛에게 배웠고, 內叔인 金炳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출처 : 유교넷 -
244525
季父農窩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작은 아버지인 宋淳夏(1867~1943)의 유사이다. 송순하는 자가 禹卿이고, 호는 農窩이다. 부친은 宋九鉉이고, 모친은 安東金氏 啓根의 딸로서 金炳禹의 여동생이다. 봉양의숙을 설립할 때 토목을 감독했다. 부인은 安東金氏 太師 宣平의 후손인 錫圭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244526
先妣孺人金海金氏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모친인 金海金氏(1858~1906)에 대한 유사이다. 김씨의 부친은 聲奎이고, 모친은 徐錫說의 딸인 達城徐氏이다. 1876년(高宗 13)에 송순호에게 시집을 갔다. 觀水軒 宋在璣이 「小學」을 한글로 번역해서 읽어주어서 남김없이 몸에 익혔다. 1903년(癸卯)출처 : 유교넷 -
244527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다(게재순). 李翰鎬, 柳致和, 李玉+發, 柳中鎬, 權重明, 權在櫓, 裵顯弼, 金孝鎭, 黃斗根, 柳東翼, 金冕圭, 崔世普, 柳東煥, 金榮漢, 朴英秀, 李學基, 朴昶魯, 李昶求, 金正模, 權相用, 金和植, 柳淵建, 金文출처 : 유교넷 -
244528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송기식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다(게재순) 柳致和(庚寅), 禹在澈, 黃斗根, 柳中鎬, 金命相, 南宗燮, 金時寅, 金斗國, 朴圭淑, 朴載魯, 朴武元, 權相忠, 黃智根, 池龍鎭, 李承罐, 柳東啓, 金燮洛, 柳旭鎬, 權純傑, 崔東奎, 權龍燻, 李裕岦, 田碩俊,출처 : 유교넷 -
244529
墓誌銘(竝序)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957년에 柳東煥이 지은 묘지명이다. 송기식의 묘지가 永嘉 동쪽 麟山 북쪽 左坤의 언덕에 있다고 밝혔다. 1957년(丁酉)에 송기식의 동생 송연식이 墓誌를 짓고 銘을 부탁했다고 한다. 내용은 行狀에서 소개된 내용을 다루었고, 銘은 송기식이 폭넓게 사람을 사귀고 동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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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竝序)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957년 3월에 柳萬植이 지은 묘갈명이다. 내용은 뒤에 실린 行狀과 유사하다. 송기식의 학문에 대해서는 구학과 신학을 모두 흡수하였는데, 구학 가운데서도 새로운 해석으로 창견을 보인 것이 많았으며, 시대적 아픔을 느끼면서 구습을 벗고 혁신하려는 뜻도 강했다고 적고출처 : 유교넷 -
244531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956년 金正模가 송기식의 동생 송연식이 지은 遺事의 내용에 토대를 두고 지은 행장이다. 송기식은 자가 鞏弼이고 호는 海窓이며 本貫은 鎭川이다. 부친은 淳昊이고, 모친은 金海金氏이다. 호인 ‘海窓’은 바다를 창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高麗 平章事 鎭川伯 宋仁이 조상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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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957년 柳東蓍가 지은 글이다. 행장에서 소략하게 다루어졌던 송기식의 학문에 대해 보충해서 소개하고, 안동 지역에서 3·1운동이 강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이유가 송기식의 교육의 효과라고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244533
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1981년 송기식의 동생 송연식이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김정모가 이 遺事를 읽은 뒤 지었다는 行狀이 1956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辛酉’는 오자인 듯하다. 행장의 저본이 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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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송기식두 개로 되어 있다. 하나는 1957년 여름 송기식의 친구인 박창로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 송기식의 동생 송연식이 지은 것이다. 박창로의 발문에서는 송기식이 독립운동을 한 사실과 학문과 교육열정을 칭송하고 있다. 송연식의 발문은 「해창집」간행의 연혁을 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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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집 / 기록자료>고도서 / 배선원수간집(守磵集) 守磵 裵善源의 문집. 6권 3책. 10行 20字의 목판본으로 裵善源의 증질손인 裵德煥이 주간하여 간행하였다. 序文은 없고 曾孫인 裵東煥이 跋文을 썼다. 비교적 書가 많은 편이고 그 내용은 주로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의 고단한 삶과 과거에 급제하지출처 : 유교넷 -
244536
일포집 / 기록자료>고도서 / 박시원일포집(逸圃集) 逸圃 朴時源의 文集. 8권 4책. 朴時源의 長子인 宗喬가 부친의 遺稿를 수집, 編次하여 10行18字 元 亨 利 貞 4冊의 活字本으로 간행하였다. 이 逸圃集에는 序文이 없고, 東萊府使를 지낸 李彙寧의 跋文만이 있어서 간단하게 문집 간행의 과정을 알출처 : 유교넷 -
244537
회은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류도발회은유고(晦隱遺稿) 晦隱 柳道發의 문집. 8권 4책. 예서필사본. 柳道發의 曾孫인 柳時雄과 柳一夏의 跋文을 보면 柳道發의 曾孫인 柳時洛이 遺稿와 散佚된 遺稿를 坊坊曲曲 찾아다니면서 蒐輯하여 1991년에 간행하였는데, 한문과 국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는 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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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태순초초암집(草草庵集) 초초암 李泰淳의 문집. 3권 3책(본집 2권, 부록 1권). 석인본. 序文은 없으며, 1980년에 저자의 7대손 相燮이 쓴 「後識」에 간행 경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자질이 총명하고 영특하여, 어려서는 가정의 가르침을 따라 독실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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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문학천집(鶴天集) 鶴天 金秉文의 문집. 3권 3책. 序文은 李會春과 金喆熙가 지은 두 편이 있으며 漢詩, 書簡, 序文, 跋文, 記文, 贊文, 祝辭, 上樑文, 祝文, 告由文, 祭文, 墓碣銘, 墓誌銘, 碑銘, 碑陰記, 壙誌, 行狀 등이 차례대로 수록되었다. 附錄 부분에출처 : 유교넷 -
244540
우고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도행雨皋 金道行의 문집. 8권 4책. 序跋이 없으므로 자세한 간행경위는 알기 어려우나, 10行 19字, 元‧亨‧利‧貞 4책으로 간행된 목판본이다. 저자는 비록 관직에는 진출하지 않았지만, 뛰어난 學行으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 사림의 존경을 받았고 그만큼 교유범위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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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탁霽山 金聖鐸의 문집. 16권 9책. 아들 金樂行이 문집을 수습하여 淨寫하려 했으나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마치자, 1780년(정조 4)에 조카 金道行이 저자와 친분이 있었던 南人 학자들과 함께 편집하였다. 연보에 의하면, 1780년 김도행은 오랫동안 중지되어 있던 문출처 : 유교넷 -
244542
전원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헌田園 柳道軒의 문집. 8권 4책. 석인본. 序文은 없으나 후손 永佑와 承佑가 지은 발문이 있다. 발문에서 간기가 보이지 않아 몇 년에 간행되었는지 알 수 없다. 사후에 그의 유문을 정리함과 동시에 각 가문에 흩어진 글들을 조사 수집한 다음, 그 내용을 교정하고 수출처 : 유교넷 -
244543
호곡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범휴壺谷 柳範休의 문집. 附錄 포함 14권 7책. 목판본. 1900년 간행되었고, 序文과 跋文은 없다. 권 1은 詩와 書가 수록 되어 있는데, 시는 11首에 불과하다. 이는 그가 평소 經傳의 깊은 사유를 통한 身心의 고양에 주로 매진하고 文章을 소홀하게 취급한 경향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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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진조선중기의 문신인 修巖 柳袗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修巖集』은 현재 3종류의 異本이 전하고 있다. 1734년 후손 緯河와 聖和가 편집·간행한 2권 2책의 목판본 및 1833년에 간행된 원집 4권 2책과 연보 2권 1책을 합쳐 총 6권 3책의 목판본이 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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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탁藥圃 鄭琢의 문집. 11권 6책. 이 문집은 1760년(영조 36) 간행된 원집과 1818년(순조 18) 간행된 속집의 합본이다. 원집은 저자의 5대손 鄭玉이 왕명에 의해 유문을 수집, 편차하고 權正宅 등과 교정하여 1760년에 海州에서 목판으로 7권 4책을 간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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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덕린玉川 趙德隣의 시문집. 18권 9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연대와 경위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문집에는 방대한 양의 詩와 편지, 그리고 상소문과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저자가 유람하면서 본 경치와 저자의 심회를 읊은 것들도 있지만, 輓詩가 주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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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인荷塘 權斗寅의 문집. 10권 5책(원집 8권, 속집 2권). 목판본. 김한동은 그의 서문에서 『荷堂集』은 모두 10권으로 그 원집 여덟 권은 訥隱先生이 편찬한 것으로 서문이 있으며 續集 두 권은 南野先生이 교정한 것인데 중간에 喪禍로 인하여 간행할 겨를이 없어 쌓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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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 등 9인이 문중의 문집 간행 사안에 대해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 석제 등 9인친척 사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석제(奭濟) 등 9명이 갑술(甲戌) 년 9월에 보낸 간찰이다. 문중 사업 추진을 위해 협력할 사안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추진하던 문중 조상 추모 사업과 문집 간행 사안에 대한 그동안의 경과 설명과 협조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시조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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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증현이 지속적인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을축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김증현김증현(金曾鉉)이 을축(乙丑)년 9월에 보낸 간찰이다. 며칠전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찰을 잘 받았으며, 사돈의 질병 차도를 묻고 있다. 당시 유림 사회에서 명망이 있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축하를 하고, 지속적인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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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후조가 외국세력의 강화도 침공에 대해 186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 후조친척 아우인 류후조(柳厚祚 : 1798 ~ 1876, 본관 豊山, 자 載可, 호 梅山·洛坡, 都正 柳尋春의 子, 좌의정·조봉하·문헌공)가 병인(丙寅)년 9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 절기 인사를 하고 나라의 부름을 받고 외국을 다녀온 이후 피곤함에 지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