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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인이 사형 처사 개성고공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권석인사돈 사이며 아우인 권석인(權錫寅)이 사형(査兄)인 처사(處士)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하늘이 망자를 빼앗아간 것이 매우 슬픈 일이라며 유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망자의 인품과 학문에 대해 언급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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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제 대원이 예천권씨를 위해 신해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매제 대원매제(妹弟)인 대원(大源)이 예천(醴泉) 권씨(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대원은 죽은 누이의 영전에서 오 남매가 다정하게 살아왔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누이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표현하였다. 사돈댁에서 전해 준 누이의 부음을 듣고 놀라움과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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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환이 종주 해파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창환육촌 아우인 고창환(高昌煥 : 1908 ~ 1995, 본관 開城, 자 周卿, 仁繼의 12代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인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함께 지낸 세월이 육십 년이 되었고 받은 바가 너무 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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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림이 종주 해파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복림육촌 숙부인 고복림(高福林 : 1899 ~ 1979, 본관 開城, 자 箕五, 仁繼의 11代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 祭 高在元)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평소 행적이 어질고 단아했음을 회상하고, 망자의 어린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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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환이 처사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일환팔촌 아우인 일환(一煥)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인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평소 가족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했던 점을 회고하면서 그와의 사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망자의 유교적 인격과 빼어난 학문정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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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이 개성고공을 위해 기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김병석인하생(姻下生) 김병석(金炳錫 : 安東)이 기유(己酉)년 4월에 처사(處士)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김병석은 감히 망자의 제문을 쓸 자격이 없다면서 망자가 영남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교양을 익히고 충효 정신에 투철한 선비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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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림이 종주 해파 처사를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숙 고달림팔촌 숙부인 고달림(高達林 : 1895 ~ 1979, 仁繼의 11代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 해파(海坡) 처사(處士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가문에서 전해지는 교육을 충실히 이어받아 빼어난 학문과 덕행을 갖춘 선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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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이 종주 해파 처사를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보현종손(從孫) 보현(普鉉)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 해파(海坡) 처사(處士)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를 잃은 슬픔을 극렬하게 표현하며 망자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하였다. 망자가 평소 자신을 친손자처럼 대해 주었다고 술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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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가 개성고공을 위해 기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권태하권태하(權泰夏 高在元의 女壻 退齋 敏手 后)가 기유(己酉)년 4월에 사장(査丈) 개성고공(開城高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어려서부터 단아한 선비의 형상을 갖추었으며 문학과 인격적인 측면에서 출중하였다고 강조하였다. 망자가 산수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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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환이 개성고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경환팔촌 아우 고경환(高慶煥 : 1915 ~ 1975, 자 화보, 본관 開城, 和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인 개성고공(開城高公 祭 高在元)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경환은 어려서 할아버지를 여의고 망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술회하였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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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가 개성고공을 위해 기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제최인 이원희아우인 이원희(李元熙)가 상중에 있던 기유(己酉)년 4월에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와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고 망자가 베풀었던 사랑에 비해 자신의 보답은 극히 미미했다고 술회하였다. 망자의 우수한 가문을 언급하며 망자가 유교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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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철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생 신주철사돈 사이인 신주철(申周澈)이 무신(戊申)년 4월에 사장(査丈)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살고 죽고 화를 당하거나 복을 받는 것은 하늘의 정해진 이치라고 했다. 망자가 생전에 자기 자신을 반듯하게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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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환이 처사공을 위해 기유년 4월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장환육촌 동생인 고장환(高章煥 : 1915 ~ ?, 본관 開城, 자 克明, 仁繼의 12代孫)이 기유(己酉)년 4월에 처사공(處士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평소 친척과 이웃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덕행과 미담을 회상하면서 영원한 사별의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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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환이 종주 해파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죄인 문환육촌 동생인 고문환(高文煥 : 1894 ~ 1979, 본관 開城, 자 尼宣, 仁繼의 12代孫)이 상중에 있던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 해파(海坡) 처사공( 處士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가문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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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학이 선조주창손 해파 처사를 위해 196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만생 고영학친척이며 동생뻘인 고영학(高永學 : 1904 ~ 1971, 본관 開城, 자 道卿, 호 葦堂, 仁繼의 10代孫)이 기유(己酉)년 4월에 선조(先祖) 해파(海坡) 처사(處士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어진 인품과 우수한 학문 정신을 술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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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림이 개성고공을 위해 196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고철림조카인 고철림(高哲林 : 1902 ~ 1984, 본관 開城, 자 舜熙, 仁繼의 11代孫)이 기유(己酉)년 4월에 종손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고철림은 망자가 최근 십 년 사이에 집안의 기둥 같은 어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이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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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박영근박영근(朴榮根, 본관 咸陽)이 무신(戊申)년 4월에 처사(處士)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아름다운 가풍을 잇고 유교적인 교양을 터득하여 우수한 선비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했다. 망자가 가정에서 효성스럽고 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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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이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고정환아우 고정환(高正煥 : 1900 ~ 1987), 고두환(高斗煥 : 1888 ~ 1967, 자 文一, 호海坡. 仁繼의 12代胄孫, 개성인)이 무신(戊申)년 4월에 맏형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생전에 자신을 사랑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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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겸, 고수겸이 권영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손 고상겸·고수겸친척 손자인 고상겸(高象謙)·고수겸(高受謙 : 1790 ~ 1813, 본관 開城, 자 景僞, 仁繼의 8代胄孫, 象謙은 受謙의 弟)이 만성(晩醒) 권영(權榮)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친척 손자인 고수겸은 십여 세 무렵부터 망자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아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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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환이 장모를 위해 195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주환사위인 고주환(高周煥 : 1904 ~1970, 본관 開城, 자 周宣, 仁繼의 12代孫)이 을미(乙未)년 1월에 장모 개성고씨(開城高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하늘의 정해진 이치라면서 장모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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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혁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권오혁대대로 알고 지낸 권오혁(權五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사장(査丈)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집안의 전통성을 이어받은 종손으로서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교양과 좋은 가문의 영향을 입었다고 했다. 망자는 어진 인격과 문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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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연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김귀연친척인 김귀연(金貴淵 : 본관 順川)이 무신(戊申)년 4월에 처사(處士)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착한 심성을 지녀 많은 이들에게 덕행을 실천했다며 망자를 일찍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럽지만 운명 탓으로 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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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상이 청주정씨를 위해 임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생질 박민상사촌 생질인 박민상(朴玟祥)이 임인(壬寅)년 1월에 청주(淸州) 정씨(鄭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세상을 떠난 지 삼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망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망자가 남긴 어진 덕행과 인품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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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가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 이규하조카사위인 이규하(李圭河)가 무신(戊申)년 4월에 처숙부인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가문의 영향을 입어 단아한 선비의 면모를 갖추었다며 망자가 평소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던 추억을 더듬으면서 회고의 정서를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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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하가 개성고공을 위해 정해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권영하처남인 권경하(權景河, 본관 襄陽)가 정해(丁亥)년 11월에 수사(秀士)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죽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망자가 지녔던 학문과 인품에 대해 서술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인생에서 살고 죽는 일은 하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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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이 사형이공을 위해 병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인성사돈 사이며 아우인 정인성(鄭寅星)이 병술(丙戌)년 11월에 사형(査兄) 이공(李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지난 시절 함께 교유했을 때를 생각하며 슬픔을 달랬다. 망자와 달밤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던 기억을 되살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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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묵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기복인 권승묵아우이며 현재 상주인 권승묵(權承默, 본관 安東)이 무신(戊申)년 4월에 사형(査兄)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개성 고씨 종손으로 많은 역할을 했고 유학과 문학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며 술회하였다. 망자가 팔십년의 생애를 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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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환이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죄인 주환육촌 아우이며 상주인 고주환(高周煥 : 1904 ~ 1970, 본관 開城, 자 周宣, 仁繼의 12代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인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가문의 영향으로 유교 경전과 시경,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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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환이 처사공을 위해 196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진환육촌 아우인 고진환(高震煥 : 1911 ~ 1994, 본관 開城, 자 彦卿, 仁繼의 12代孫)이 무신(戊申)년 4월에 종손인 해파(海坡) 처사공(處士公 祭 高斗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세상을 떠나 매우 슬픈데 자신은 글재주가 없어 마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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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택이 고모인 청주정씨를 위해 임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 승택조카인 정승택(鄭承澤 鄭珪永의 子)이 임인(壬寅)년 1월에 고모인 청주정씨(淸州 鄭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돌아간 고모를 직접 부르는 것처럼 표현하면서 슬퍼했다. 고모는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여 다정하게 대해주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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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환이 처사공을 위해 정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숙 영환팔촌 숙부인 영환(榮煥)이 정유(丁酉)년 4월에 종손인 처사공(處士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전통성을 이은 종손으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 하고 평소 망자가 지녔던 학식과 인품에 대해 언급하며 슬픈 정회를 표현했다. 그리고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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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이 개성고공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인현사위인 김인현(金仁鉉 : 본관 豊山, 金亨在의 子, 鶴湖 奉祖后)이 무오(戊戌)년 4월에 장인인 개성고공(開城高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김인현은 장인과는 부모 자식 사이처럼 친밀했다고 술회하였다. 망자가 생전에 자신을 자상하게 가르쳐 준 은덕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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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권이 망자를 추모 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인소제 김도권처남인 김도권(金道權)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팔십 평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담았다. 망자는 단정한 품위와 어진 인품을 갖추었으며 자연 속에서 심성을 수양하고 후덕한 인품과 박학한 학문을 후학에게 전해 주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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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하가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권대하정으로 사귄 아우 권대하(權大河)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넉넉한 인품과 고결한 학문 정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망자와의 영원한 사별의 아픔을 표현하였다. 망자가 더 오래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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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진이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세시생 김일진김일진(金馹鎭 : 1916 ~ 1969, 본관 安東, 자 仁直, 호 華南, 宝白堂 係行后, 金龍圭 子)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일찍이 가문의 영향을 입어 단아한 선비의 자질을 갖춘 분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망자의 어진 인품을 강조하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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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득이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전상득전상득(全相得)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우수한 학문 자질을 강조하며 후학으로 망자를 잃게 되어 의지할 바가 없다고 했다. 망자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하며 망자의 탁월한 학문 정신과 어진 인품에 대해서도 추모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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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가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정준모정준모(鄭晙模)가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유교적인 교양을 충실히 익히고 조상 대대로 이어오는 가문의 얼을 계승하여 빼어난 학문과 덕을 갖추었다고 회고했다. 글재주가 빼어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충효 정신이 강해 모범적인 일생을 살았던 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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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윤이 1831년에 지은 청대동세덕사랑상량문이라는 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강세윤강세윤(姜世綸)이 신묘(辛卯 : 1831)년 5월에 지은「청대동세덕사상량문(靑岱洞世德祠上樑文)」이다. 개성 고씨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훌륭한 가문의 전통과 우수한 인물이 연이어 가문을 빛낸 점을 칭송하며 조상의 어진 덕을 후손들이 어어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개성 고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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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주목이 갑자년에 지은 퇴동재사중건기라는 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류주목류주목(柳疇睦)이 갑자(甲子)년 12월에 지은「퇴동재사중건기(退洞齋舍重建記)」이다. 조선 초에 예문관제학을 역임했던 퇴산(退山) 분암(墳庵) 고공(高公)의 학문과 덕을 기리고자 세운 재사를 다시 지으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분암 고공이 벼슬을 마치고 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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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교구방이라는 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흉년을 당하거나 국가적 재난을 당해 백성의 생활이 궁핍해졌을 때 국가에서 백성을 구제하고자 빈민 구제 방안의 설치 경위와 폐단, 개선 방안을 언급한「삼정교구방(三政矯捄方)」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애당초 이러한 제도는 빈민이나 기근에 처한 백성을 구제하고자 정부의 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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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규가 고택룡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규권상규(權相圭)가 두남(斗南) 고택룡(高宅龍)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行狀)이다. 서두에서는 개성 고씨 조상의 내력과 가문이 번성한 내력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였다. 이어 고택룡의 가계와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와 미담 등을 소개하면서 고택룡이 남다른 총명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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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기가 고택룡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언기육촌 동생인 고언기(高彦夔 : 1853 ~ 1944, 본관 開城, 자 舜一, 호 石汀, 仁繼의 9代孫, 高聖謙의 子. 有文集 7冊) 가 두남(斗南) 고택룡(高宅龍 : 1807 ~ 1875, 仁繼의 9代胄孫, 受謙의 子)의 일생을 기록한 유사(遺事)이다. 서두에서는 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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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횡이 고택룡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횡육촌 조카인 고횡(高澋 : 1862 ~ 1947, 본관 開城, 자 聖洙, 仁繼의 10代孫)이 경오(庚午)년 2월에 두남(斗南) 고택룡(高宅龍 : 1807~1875, 仁繼의 9代胄孫, 受謙의 子)의 일생을 기록한 행적(行蹟)이다. 서두에서는 개성 고씨 조상의 내력과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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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계를 통정대부 행 예안현감으로 임명한 1626년의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증표로 내려주는 교지(敎旨)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命)이라고 했다. 천계(天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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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익주가 고치영을 양자로 맞아들이기위해 합의한 입안 / 기록자료>고문서 / 예조예조(禮曺)에서 건륭(乾隆) 58년(1793년) 12월에 작성한 관청 공식 문서인 입안(立案)이다. 유학(幼學) 고익주(高翼疇)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친척인 고치영(高致榮)을 양자로 맞아들이는 내용이 양쪽 집안의 합의하에 이루어졌음을 증명한다는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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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품에 사용될 물품을 기록한 물목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기미(己未)년 9월에 물품의 명목과 수량을 기록한「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혼수품에 사용될 옷감을 기록해 두었다. 말미에는 혁대, 신발 등의 품목과 수량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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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등 33인이 김선생의 포상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한 통문 / 기록자료>고문서 / 구강서원회중 이진구 등 33인구강서원(龜岡書院) 회중(會中) 이진구(李進久) 등 33인이 임인(壬寅)년 1월에 노암(魯巖) 김선생(金先生)의 행적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점을 들어, 조정으로부터 김선생이 포상을 받도록 하자는 견해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 통문(通文)이다. 이는 백성의 풍속을 교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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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용 등 12인이 김공의 위토를 허락해 달라고 호소한 통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고추담선생유계소회중 이태용 등 12인고추담 선생 유계소(高秋潭先生儒稧所) 회중(會中) 이태용(李泰容) 등 12명이 을축(乙丑)년 12월에 영교자(潁僑子) 김공(金公)의 위패를 제사하며 추모할 수 있는 위토(位土)를 허락해 달라고 호소한 통문(通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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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산의 목재를 팔아 재정에 보탠 것을 증명하기 위해 1840년 완의 / 기록자료>고문서 / 죽동문중 고몽익 등 16인죽동문중(竹洞門中) 고몽익(高夢翊 : 1740 ~ 1851, 본관 開城, 자 匡叟, 仁繼의 7代孫, 보補의 子, 顔巷派 : 卽竹洞 門中) 등 16명이 경자(庚子)년 12월에 문중의 의견을 모아 결의한 완의(完議)이다. 완의는 합의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로 종인(宗人)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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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 박씨가 사위 고인계에게 준 분재기 / 기록자료>고문서 / 빙모고충의위채유부처 박씨충위(義衛) 채유부(蔡有孚 : 1550 ~ 1593, 仁川君壽의 증존, 贈判決事順天朴氏는 司果孝昌女)의 아내인 박씨(朴氏)는 고인계(高仁繼 : 1564~1647, 자 承善, 호 月峯. 贈都承旨 興雲 의 子. 1605 사마, 1606 文科. 官至司藝, 仁祖改玉에 不起.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