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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헌락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기사년 2월 2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화창한 봄 날 가족 안부를 묻고 지난번의 염려가 풀려 식구가 분가를 한다니 걱정이라고 했다. 자신출처 : 유교넷 -
245102
김헌락이 형의 건강을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7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병자년 8월 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의 최근 건강을 묻고 벼슬살이가 고통스러우나 강해(江海)의 호연지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치하했다. 자신출처 : 유교넷 -
245103
김헌락이 돌림병에 대해 언급하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헌락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기사년 2월 1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전염병이 크게 번지고 있는데 현재 소산(蘇山)으로 피신했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자신은 열흘 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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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6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병인(丙寅)년 8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봄에 내왕한 소식 이후로 늘 그리워 가을을 맞아 서찰을 보낸다고 했다.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상대방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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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무덤이장 사업에 대해 궁금하다며 1864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갑자(甲子)년 1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새해를 맞은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새해를 맞았지만 슬픈 마음에 눈물이 절로 흐른다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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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186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병인년 1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을 당했지만 멀리 사람을 보내 서찰을 보내 주어 고맙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동안 상대방의 건강과 가족이 무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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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락이 팔촌형의 초상으로 슬프다며 186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 金剛遊錄의 저자)이 상중에 있던 경신(庚申)년 9월 2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며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자제분의 학업에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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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뭄에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하며 187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병자년 5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뭄이 심한 때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가 된다고 했다. 객지 생활 형편을 묻고 자신은 여러 날 여기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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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1871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신미년 7월 3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을 맞아 여러 가족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가 된다고 했다. 상대방 자제의 병은 더 이상 악화되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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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최근 일어난 화재에 대해 언급 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추위에 가족이 평안하다고 해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자신은 세모에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나 괴롭다고 하며 가족들은 무사하여 다행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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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헌락아우뻘인 헌락(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12월 2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질병으로 고생하던 따님의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심신이 피곤하여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지출처 : 유교넷 -
245112
김헌락이 가족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언급하며 187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임신년 11월 1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심한 추위 가운데 지내는 가족 안부와 상대방 자제 내외의 무사함도 묻고 있다. 자신에게 특별히 좋은 일이 없출처 : 유교넷 -
245113
김헌락이 병환중인 자신을 근황을 언급 하며 187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임신년 10월 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제의 질병 차도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번에 돌아올 때 너무 추워 쉬면서 왔지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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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자식의 성혼과 고모님의 상에 대해 언급 하며 187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생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계유년 12월 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과 어버이의 질병 차도 소식이 궁금하다고 했다. 고모님의 상은 비통함을 말 할 수 없으며 한 자식도 성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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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안부가 궁금하며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7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임신년 12월 1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추운 계절을 맞아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며 자제의 질병 차도도 궁금하다고 했다. 조카가 돌아와서 병은 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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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1874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갑술년 7월 3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들의 근황과 안부와 상대방 자식의 병세 회복에 대해 묻고 있다. 자신은 늘 피곤하고 용렬해서 드릴 말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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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강군에게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공복인 김헌락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상중에 있던 기사 8월 2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5,6일 전부터 심한 설사와 구토 증세가 발생하여 몇 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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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계군이 남포로 갈 예정이라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기사년 9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서리가 내리는 시절에 가족들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자신은 쇠약하고 나태하여 이후로는 마음을 진정시켜 문을 닫고출처 : 유교넷 -
245119
김헌락이 가족의 평안 여부를 물으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김헌락외삼촌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11월에 성구(聖九)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연로한 분들의 근황과 출타한 이들의 형편에 대해 염려했다. 자신은 별로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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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헌락사돈 사이이며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기사년 10월 3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저번 밤에 모시고 대화를 나눈 일이 십 년 독서보다 훨씬 유익했다고 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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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강군에게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187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복인 김헌락외삼촌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상중에 있던 경오(庚午)년 5월 15일에 강군(姜君)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래 만나지 못했고 여러 가지 일로 골몰하여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5122
김헌락이 강서방에게 장례예법에 대해 당부 하며 187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김헌락외삼촌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경오(庚午)년 1월 25일에 강서방(姜書房)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할머니 초상을 당해 슬퍼하는 것을 위로하며 평소 돌아가신 분의 어진 덕행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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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최근 독서 근황을 궁금해 하며 1871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신미(辛未)년 10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소식이 오래 전해지지 않아 그리운 마음이 많다고 했다. 자신은 최근에 많은 책을 읽고 글을 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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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이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90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 김세환김세환(金世煥 : 1867 ~ 1924, 본관 義城, 자 公翼, 金獻洛의 孫)이 계묘년 10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첫 겨울을 맞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가족들은 큰 질병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눈병과 손가락 사이에 독종이 생겨 신음했고 농사 작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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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가족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열식의 질병 차도를 언급 하며 1874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헌락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상중에 있던 갑술년 6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늦은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시절이라며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산소 일을 끝내고 갈증으로 기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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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락이 돌림병에 대해 언급하며 1869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김헌락외삼촌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가사년 2월 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서찰을 받아보니 무사히 돌아가 부모님 모시고 잘 지낸다니 위로가 된다고 했다. 전염병이 정도가 여기보다 심하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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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덕이 형 주전에게 안부를 묻고 향규의 소식이 궁금하다며 186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주덕아우뻘인 김주덕(金周悳 : 1899 ~ 1969, 본관 義城, 자 聖鞏, 호 鍊舟室, 柯山 金瀅模의 四子)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봄날이 화창한 즈음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아직 별다른 병은 없으나 벗을 따라 멀리 와서 남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현재 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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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187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계유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면서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아직 별 일은 없지만 몸이 쇠약해 고민이며 아들의 시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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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일의 기미를 봐서 내려와 달라며 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계해년 10월 1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객지 생활 형편이 궁금하다고 했고, 지난 번 아픈 곳이 회복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서울에 갔던 사돈의 귀가 여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아픈 곳은 없지만 아내의 증세는 이제 회복되었으며 단정과 향정도 무사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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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경○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린인(麟)이 8월 2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점에서 여러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쇠약하고 병든 몸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고 고통은 막론하고 남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이는 모두 운수 때문이라고 했다. 7월 초에 급한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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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이 자신의 망동으로 부모가 질책을 받아 면목이 없다며 186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이인영아우뻘인 이인영(李麟永 : 1867 ~ 1940, 본관 延安, 자 公振, 호 竹下, 金亨奎의 丈人)이 임술년 1월 21일에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봄날이 무척 춥다면서 여러 가족 안부와 건강 그리고 자제의 학업 등이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뜻밖의 망동(妄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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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걸이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임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승걸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이승걸(李承杰)이 임술년 윤달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돈어른이 왕림해 주어 기쁨을 말할 수 없다고 하며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의 기력이 이전과 같아 다행이지만 순아(純兒)의 병이 회복되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어출처 : 유교넷 -
245133
이승걸이 가족의 근황과 혼사에 대해 언급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승걸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이승걸(李承杰)이 임술년 윤달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근황에 대해 묻고 있는데 사부인의 건강 차도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선성(宣城)을 출입할 일이 있어 십여 일 동안 다녀왔는데 많은 풍교(風敎)를 보고 듣고 왔다고 했다. 이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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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이 가족의 근황을 언급 하며 192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세환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김세환(金世煥 : 1867 ~ 1924, 본관 義城, 자 公翼, 金獻洛의 孫)이 경신년 6월 2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전에 없던 장마와 더위 가운데 여러 가족 안부가 어떠한지 묻고 있다. 여러 가족이 무사하며 며느리도 큰 고통 없이 지낸다출처 : 유교넷 -
245135
부친이 형아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갑자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갑자년 4월 1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객지 생활의 어려움 여부 및 주인댁의 안부를 묻고 있다. 사돈이 남쪽으로 가서 언제 돌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손자의 병이 회복되었는지를 묻고 자신의 여러 가족이 무고하여 다행이라고 했다. 농사철을 당해 우마(牛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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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영이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186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황재영아우뻘인 황재영(黃在英 : 1835 ~ 1898, 본관 昌原, 자 應頀, 호 大溪, 薦監役, 承旨 黃仁夏의 子, 右副承旨 金鎭右의 婿)이 계해년 5월 11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를 묻고 자신의 어버이는 평안하지만 응접(應接)하는 일에 착오가 많아 성취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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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형아에게 안부를 묻고 석화형의 질병 차도가 궁금하다며 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계해년 8월 2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서찰을 받고 객지 생활에 무사함을 알았다고 했다. 석화형의 질병 차도가 궁금하다고 하며 자신은 별고 없지만 봄에 초상을 마친 이후 더욱 슬프다고 했다. 주덕이 무사히 돌아왔다면서 이는 집안의 경사라고 했다. 휘덕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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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그립다고 하고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873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만각외삼촌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계유(癸酉)년 10월 3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래 만나지 못해 그립고 겨울 절기에 가족의 건강 등이 염려스럽다고 했다. 상대방의 독서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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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이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92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옹 공진이인영(李麟永 : 1867 ~ 1940, 본관 延安, 자 公振, 호 竹下)이 경신년 2월 22일에 사위인 김형규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늙고 병들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서찰도 볼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요즈음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의 안부가 궁금하다출처 : 유교넷 -
245140
아버지가 형규에게 상규의 병이 악화되었다며 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계해년 4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아들의 객지 생활 어려움에 대해 묻고 지난 번 병의 완쾌 여부를 궁금해 하였다. 주인댁의 안부와 사돈의 서울 행차 이후 귀가 근황이 궁금하다고 했다. 용순과 휘덕의 안부도 묻고 있다. 자신은 지난 달 서산 수계사(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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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이 가족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92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이인영아우뻘인 이인영(李隣永 : 1867 ~ 1940, 본관 延安, 자 公振, 호 竹下, 金亨奎의 丈人)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안부 등을 묻고 자신은 새해 벽두에 손님과 함께 남쪽에 갔다가 병을 얻어 한 달이 넘어 겨우 돌아왔다고 했다. 조카들의 요청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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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이 가족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192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인영아우뻘인 이인영(李隣永 : 1867 ~ 1940, 본관 延安, 자 公振, 호 竹下下, 金亨奎의 丈人)이 경신년 9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산부(産婦)와 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묻고 있다. 자신은 오랜 병이 회복되지 않았으며 바쁜 일로 쉴 틈이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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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린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이야기 하며 정묘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구 린장인인 린(麟)이 정묘년 1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해가 바뀌어 봄이 오는 시점에서 가족의 안부와 건강 상태 등을 묻고 있다. 단정 춘파도 편히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본래 냉설(冷泄) 병으로 날마다 치료를 받고 있는데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다출처 : 유교넷 -
245144
이석화가 상대부친의 상일에 대해 언급 하며 1925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이석화처남인 이석화(李鉐和 : 李麟永의 三子)가 을축년 6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돌아가신 부친 상일(祥日)이 되었지만 멀리서 인사를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동쪽에서 돌아온 이후 별 다른 사고는 없다고 했다. 춘영 형도 최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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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이 가족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을○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옹 린영이인영(李麟永 : 1867 ~ 1940, 본관 延安, 자 公振, 호 竹下, 金亨奎의 丈人)이 4월 21일에 사위인 김형규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며 증조할머니의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했다. 자신은 중풍 증세로 몇 달 동안이나 고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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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언급 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이만각외삼촌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10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들 가운데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염려하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자신은 늘 몸에 지닌 병 때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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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종택의 이장행사에 참석해달라며 186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임술년 5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귀가 이후 소식이 없어 궁금하다고 하며 산소 소송건의 귀추가 궁금하다고 했다. 감영에서 외사(外事)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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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상소올린 일에 대해 언급 하며 1871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신미년 6월 2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랜 장마와 더위 가운데 지내는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며 따님의 질병 차도 여부도 궁금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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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조카의 재취 문제를 언급 하며 187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만각외삼촌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이황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임신(壬申)년 1월 5일에 김윤모(자 敬能)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새해를 맞은 여러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고 질병으로 고생하던 따님의 쾌차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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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가 가족의 안부를 묻고 돌림병으로 주의 하라며 기사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죄인 강기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강기(姜金+耆)가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 탈이 없이 지내고 있지만 전염병이 만연하여 노약자들은 대피했지만 안전한 곳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이 우환이 소멸되기 전에는 절대로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