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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5201

    사돈 사이인 이재교(李在敎 : 1884 ~ 1962, 본관 眞城, 자 應文, 호 槿圃, 有文集, 老松亭 李繼陽 後孫)가 임술년 9월 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이 돌아오는 시점에서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모친은 편안하지만 며느리가 머리 종기로 고생을 한
    출처 : 유교넷
  • 245202

    류동운(柳東運 : 慵窩 柳升鉉 後孫)이 계사(癸巳)년 8월 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상처(喪妻)한 지 반 년이 다 되었고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부부 사이의 의리는 매우 소중하다고 하며 어린 자식들의 모습을 생각하
    출처 : 유교넷
  • 245203

    이승걸이 가족의 근황을 알리며 경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승걸
    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이승걸(李承杰)이 경신년 10월 1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를 묻고 자제의 출타 이후 근황이 궁금하다고 했다. 출타했던 부친이 무사히 돌아오시어 다행이라고 했다. 사위는 머리에 종기가 나서 얼굴이 수척하고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출처 : 유교넷
  • 245204

    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이재교(李在敎 : 1884 ~ 1962, 본관 眞城, 자 應文, 호 槿圃, 有文集, 老松亭 李繼陽 後孫)가 계해년 4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장 어른을 비롯한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가족이 별고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이
    출처 : 유교넷
  • 245205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무진년 2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봄추위 가운데 모친의 건강 상태 및 가족 안부를 묻고 있다. 새해 초에 기쁜 소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
    출처 : 유교넷
  • 245206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기사년 10월 1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가운데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근래 조상 문집 간행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
    출처 : 유교넷
  • 245207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병인년 3월 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새 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가족 안부가 궁금했는데 상대방의 건강 소식을 듣고 기쁘다고 했다. 자신은 봄비와 이슬
    출처 : 유교넷
  • 245208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계해년 8월 14일에 병중에 있으면서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 안부와 상대방의 객지 생활 가운데 어려움 여부를 묻고 있다. 연로한 분들의 건강을 염려하며
    출처 : 유교넷
  • 245209

    김헌락이 안부와 초상을 언급하며 1865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김헌락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을축년 5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근래의 직함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상(喪)이 끝났지만 비통함은 견딜 수 없다고
    출처 : 유교넷
  • 245210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경오년 8월 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주인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고 자제분의 병 차도 소식도 궁금하다고 했다. 연곡(淵谷)의 소식도 궁금하며 자신과
    출처 : 유교넷
  • 245211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경오년 9월 20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점에서 상주로 슬프게 지내는 상대방을 위로했다. 습종(濕腫)으로 고생을 하는 자제의 회복을
    출처 : 유교넷
  • 245212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계유년 2월 1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봄추위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하며 가족 안부를 묻고 있다. 상대방 자제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자신은 감기에
    출처 : 유교넷
  • 245213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무진년 1월 2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새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가족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했다. 말씀하신 뜻은 알아들었으며 자기의 생각과 크
    출처 : 유교넷
  • 245214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상중에 있던 기사년 6월 2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랜 장마 가운데 지내는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며 전염병도 깨끗이 소멸되었다고 했다. 아들은
    출처 : 유교넷
  • 245215

    외삼촌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임신년 9월 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돌아오는 길에 내방할 것을 기대했지만 오지 않아 서운했다고 알렸다. 가을이 깊어간다고 하며 가족 안부를
    출처 : 유교넷
  • 245216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著者)이 임신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며칠 동안 상대방 부친과 강과 정자에서 자연의 풍류를 즐기고 돌아왔다고 하며 이는 근래 보기 드문 모임이었다고 했다. 서찰
    출처 : 유교넷
  • 245217

    아우뻘인 김헌락(金獻洛 : 1826 ~ 1877, 본관 義城, 자 仲賢, 호 慵庵, 金溪誌와 金剛遊錄의 저자)이 경오년 1월 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래 그리워하다가 서찰을 받았다고 하며 가족 안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여름과 가을에 갈증과 학질로 고생했지만
    출처 : 유교넷
  • 245218

    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 : 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退溪 李滉의 後孫, 金潤模의 丈人)이 을축년 2월 2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서찰을 받고 어려움 없이 지낸다니 위로가 된다고 했다. 자신은 한 달 전에 우연히 해수병을
    출처 : 유교넷
  • 245219

    용암기라는 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시문(詩文) 형식의 글인 「용암기(慵菴記)」이다. 대대로 금계(金溪)의 용암(龍巖)에 사는 김중현(金仲賢)이 암자를 짓고 용암(慵菴)이라고 편액한 것에 대해 친구인 이덕휴(李德休)가 그 이유를 묻자, 자신은 용렬하고 우둔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그 이유를 겸손히 해명했다
    출처 : 유교넷
  • 245220

    장조현(張祚鉉 : 玉山)이 신묘(辛卯)년 9월에 쓴 「근대유거시첩서(槿臺幽居詩帖序)」이다. 학봉 김성일의 후손인 김여하(金汝夏)가 무궁화를 심고 누대 이름을 근대(槿臺)라고 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임을 밝혔다. 이는 그가 그 누대에서 책을 읽어 강독하며 함께 교유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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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1

    이기윤이 신묘년에 쓴 근대유거기라는 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기윤
    이기윤(李基允, 본관 星州)이 신묘(辛卯)년 9월 하순에 쓴 근대유거기(槿臺幽居記)」이다. 일반 선비들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심고 풍류를 즐기기 위해 누대를 세운 것과 달리 학봉 김성일의 후손인 김여하(金汝夏)는 무궁화를 심고 누대 이름을 근대(槿臺)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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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2

    강린원이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강인원
    동생 강린원(姜麟元 : 晋州)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가문이 명문가였던 점을 회고하였다. 망자는 우수한 가문에서 고결한 인품을 배우고 학문을 익혔던 점을 강조하고 평소 자신과 함께 지냈던 추억을 돌아보며 사별의 슬픔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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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3

    강봉원이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강봉원
    정제(情弟) 강봉원(姜鳳元, 본관 晋州, 蔭秘書院丞, 金獻洛의 外孫)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청빈한 가문의 전통을 잇고 어질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선비였음을 회고했다. 양쪽 집안에서 삼대 째 서로 알고 지내며 돈독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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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4

    이중구가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이중구
    이중구(李中久, 본관 驪江)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질고 단아한 선비로 성장하여 많은 이들에게 모범을 보였던 점을 추모했다. 말미에는 망자를 잃은 유족의 슬픔도 함께 표현하면서 망자가 베풀었던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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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5

    권연하가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동향구계 권연하
    같은 마을에서 함께 공부하며 지냈던 권연하(權璉夏 : 1813 ~ 1896, 본관 安東, 자 可器, 호 頤齋, 薦敦寧府都正)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어렸을 때 함께 지냈던 고향 산천 정경을 떠올리며 망자의 어질고 단아했던 면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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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6

    이헌수가 망자를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이헌수
    친척 아우인 이헌수(李憲壽)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떠난 고향 산천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고결한 인품을 추모했다. 망자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으며 후손들에게 어진 덕행을 남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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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7

    외손자인 이동규(李東奎, 金潤模의 外孫, 李升羽의 長子, 退溪 이황의 後孫)가 신유(辛酉)년 12월에 외조모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이동규는 태어나자마자 이미 팔십 노인이 된 외조모를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늘 외조모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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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8

    사촌 동생인 김영모(金瀅模 : 1856 ~ 1930, 본관 義城, 자 範初, 호 柯山, 生員 雲圃 金景洛의 長子, 西山門人, 有 文集)가 신유(辛酉)년 12월에 종형수(從兄嫂)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병으로 몸져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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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29

    사위인 류동운(柳東運 : 完山 金潤模의 婿, 慵窩 柳升鉉 後孫)이 신유(辛酉)년 1월에 장모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이 세상에서 장모의 사랑을 자기만큼 많이 받았던 이는 없었다면서 장모의 어진 덕성을 칭송했다. 4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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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0

    조카사위인 김영중(金榮中, 본관 光山, 金學模의 婿)이 계해(癸亥)년 2월에 처숙모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처숙모는 광산 김씨의 우수한 가문 교육과 조상의 음덕에 큰 영향을 입어 고결한 성품을 지녔다고 했다. 그래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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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1

    권상태가 유인 진성이씨를 위해 임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손생 권상태
    외손인 권상태(權相泰 : 安東)가 임술(壬戌)년 12월에 유인(孺人)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평소 부인을 직접 만나   오래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부인이 음식을 나누어주고 은덕을 베풀어 주었던 점을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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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2

    생질(甥姪)인 채원식(蔡元植, 蔡鴻觀의 長子) 신유(辛酉)년 12월에 외숙모(外叔母)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부인은 퇴계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여성이 갖출 덕목과 교양을 익혔다고 했다. 부인은 정숙하고 고결한 덕행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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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3

    김수환이 백당숙부를 위해 189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수환
    종질(從姪) 김수환(金守煥 : 1875 ~ 1954, 본관 義城, 자 和叔, 金瀅模의 次子)이 무술(戊戌)년 6월에 백당숙부(伯堂叔父)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좀 더 오래 살면서 자신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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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4

    사위인 채홍관(蔡鴻觀, 본관 仁川)이 정축(丁丑)년 10월에 외구(外舅)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무덤이 있는 주변 산천을 언급하면서 망자의 학문과 덕행을 유림들도 칭송한다고 했다. 망자가 자신에게 많은 학문을 가르쳐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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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5

    6촌 동생 김술락(金述洛 : 1841 ~ ?, 본관 義城, 자 孝善, 金鎭慤의 長子)이 기묘(己卯)년 6월에 6촌 형 용암김공(慵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인생살이에 분주하고 어려워 형의 초상에는 조문도 못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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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6

    삼종제 김형락이 용암공을 위해 18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형락
    6촌 동생 김형락(金迥洛 : 1856 ~ 1903, 본관 義城, 자 希文, 金鎭㦂 長子)이 무인(戊寅)년 6월에 용암공(慵菴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애도한다고 했다. 망자의 우수한 학식과 고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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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7

    김수환이 종숙모 진성이씨를 위해 192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질심제인 김수환
    부종질(夫從姪)인 김수환(金守煥 : 1890~1954, 본관 義城, 자 和叔, 金瀅模의 次子 聞韶)이 상중에 있던 임술(壬戌)년 12월에 종숙모(從叔母)인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자신의 가문이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지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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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8

    친척 아우인 김규익(金奎翼 : 1906 ~ 1982, 본관 光山, 자 應入, 호 蒼耘, 金啓煥의 係子 義城)이 기유(己酉)년 6월에 친척 형인 근대(槿臺)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부터 형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슬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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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39

    팔촌 조카인 김헌모(金獻模 : 1846 ~ 1907, 본관 義城, 자 伯賢)가 기묘(己卯)년 6월에 팔촌 숙부 용암(慵菴)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빼어난 학문과 강직한 성품을 회고했다. 망자는 일찍이 급제를 했지만 벼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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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0

    팔촌 조카인 김응환(金應煥 : 1842 ~ 1900, 본관 義城, 자 道凝, 호 靑左, 金魯秉의 係子)이 기해(己亥)년 6월에 팔촌 숙부인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가문의 유업을 계승하여 학문을 익히며 가족 사이에 화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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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1

    친척 조카인 김영환(金永煥 : 1846 ~ 1930, 본관 義城, 자 孝則, 호 是庵, 金敬模의 長子)이 정축(丁丑)년 6월에 통덕랑(通德郞) 용암김공(慵菴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돌아가신지 이미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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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2

    박기화가 시형 참의 김공을 위 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제 박기화
    박기화(朴耆華, 본관 密陽)가 이종 사촌 형인 자형(姉兄) 참의김공(參議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평소 여러 형제와 우애가 돈독하여 모범이 되었으며 영남 유학의 전통성을 이었다고 했다. 망자는 퇴계의 학문 전통을 계승하여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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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3

    김희락(金曦洛 : 1832 ~ 1903, 본관 義城, 자 季應, 金鎭喬의 次子)이 정축(丁丑)년 10월에 팔촌형인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용암(慵庵)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집안의 기둥 같은 역할을 했는데 망자를 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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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4

    채곤진(蔡坤鎭)이 임술(壬戌)년 2월에 외가쪽 삼촌이며 첨추(僉樞) 벼슬을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탈상에 즈음하여  사별을 아쉬워했다. 망자 집안의 연이은 초상과 불행에 대해 언급하며 슬퍼했다. 망자의 가르침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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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5

    김익모가 종형수 진성이유인을 위해 192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김익모
    김익모(金翊模 : 1858 ~ 1935, 본관 義城, 자 汝涵, 호 鷹庵, 生員 雲圃 金景洛의 次子 義城)가 계해(癸亥)년 2월에 사촌 형수 진성이유인(眞城李孺人)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외사촌 동생으로,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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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6

    김학모가 백수씨 진성이씨를 위해 192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소제 김학모
    김학모(金學模 : 1862 ~ 1941, 본관 義城, 자 士洞, 金獻洛의 次子 聞韶)가 임술(壬戌)년 12월에 맏형수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탈상을 맞아 영원한 이별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망자는 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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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7

    김세환이 처사장공을 위해 189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김세환
    김세환(金世煥 : 1867 ~ 1924, 본관 義城, 자 公翼, 金獻洛의 孫)이 기해(己亥)년 6월에 처사(處士) 장공(張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양쪽 집안 어른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며 각종 제사와 길흉사에 솔선수범했던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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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8

    김하상이 통정대부 김공을 위해 신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생서 김하상
    생질의 사위인 김하상(金廈相, 본관 光山)이 신유(辛酉)년 2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집안의 전통을 이어 유림의 존경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망자가 평소 가족과 친척들에게 화목했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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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249

    외손인 류철훈(柳轍薰, 본관 完山, 金潤模의 外孫, 柳東運의 長子, 慵窩 柳升鉉 後孫)이 신유(辛酉)년 12월에 외조모 진성이씨(眞城李氏)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외조모가 베풀어준 사랑의 추억을 회고했다. 망자는 진성 이씨 퇴계의 후손으로
    출처 : 유교넷
  • 245250

    동생인 김태수(金鮐壽 : 1812 ~ 1874, 자 文叟, 金棕燦의 次子, 金驥壽의 弟)가 신유(辛酉)년 2월에 형 첨추공(僉樞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형제의 우애를 소중하게 여겼다고 하며  형과 함께 다정하게 지냈던 추억을 회고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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