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5251
이승걸이 처사김공을 위해 을축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이승걸이승걸(李承杰, 본관 眞城)이 을축(乙丑)년 6월에 동생뻘인 처사(處士)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함께 지냈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면서 망자가 베푼 덕행을 추모했다. 어린 시절에 함께 공부하며 의기투합했던 일이나 망자가 우수출처 : 유교넷 -
245252
박의찬이 외종형 고부시령김공을 위해 계해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중종소제 박의찬박의찬(朴義贊, 본관 咸陽)이 계해(癸亥)년 3월에 외사촌 형인 부시령(副侍令)을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 유림의 전통적인 유학의 정수를 이어받아 유학자로서의 품위가 단아했던 점을 추모했다. 망자가 자신과 여러출처 : 유교넷 -
245253
김도화가 용암처사를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도화친척 조카인 김도화(金道和 : 1825 ~ 1912, 본관 義城, 자 達民, 호 拓庵, 金若水의 子, 定齋의 門人)가 용암(慵庵) 처사(處士) 김중현(金仲賢, 본관 聞韶)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 형식의 글인 뇌문(誄文)이다. 망자는 학봉 김성일을출처 : 유교넷 -
245254
김성윤이 용암 김공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객정계우 김성윤김성윤(金誠潤, 본관 光山)이 정으로 사귄 벗인 용암(慵庵) 김중현(金仲賢, 본관 聞韶)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 형식의 글인 뇌문(誄文)이다. 망자는 문소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이어받고 유교적 교양과 인격을 형성하여 단아한 선비의 면모를 갖추었다출처 : 유교넷 -
245255
질자 김양모가 백고 용암부군을 위해 187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양모김양모(金瀁模 : 1858 ~ 1935, 본관 義城, 자 汝涵, 호 鷹庵, 金翊模의 初名, 生員, 雲圃 金景洛의 次子)가 정축(丁丑)년 10월에 큰아버지 용암(慵庵) 부군(府君)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평소출처 : 유교넷 -
245256
박제학이 내종형을 위해 임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박제학외사촌 아우 박제학(朴齊學)이 임술(壬戌)년 3월에 외사촌 형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가문의 영향을 입어 유교적 인품과 학식을 갖추고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다고 회고했다. 망자가 자신과 후학들에게 감화와 가르침을 베출처 : 유교넷 -
245257
박제규가 김공을 위해 계해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박제규외사촌 아우 박제규(朴齊圭, 본관 潘南)가 계해(癸亥)년 3월에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명문대가에서 유교적 교양과 학문을 익혀 단아한 선비의 면모를 갖추었던 점을 회고했다. 그가 높은 벼슬살이를 하며 칠십 세까출처 : 유교넷 -
245258
사종질 필모가 내종숙부 용암공을 위해 기묘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필모팔촌 조카인 김필모(金泌模)가 기묘(己卯)년 6월에 팔촌 숙부인 용암공(慵庵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재주가 우둔하여 덕망이 높고 학문이 고상했던 망자를 애도하는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망자의 학문과 덕행을 영남 고을의 많은 선출처 : 유교넷 -
245259
계제 장세규가 세형첨추 김공을 위해 186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장세규아우뻘인 장세규(張世奎 : 1783 ~ 1868, 본관 安東, 자 穉五, 호 七戒齋, 敬堂 張興孝 後孫, 張東爀의 長子)가 경신(庚申)년 윤 3월에 첨추(僉樞) 벼슬을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영남 지방의 많은 인물출처 : 유교넷 -
245260
족손 김명락이 족대부 첨추공을 위해 196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명락친척 손자인 김명락(金明洛 : 1815 ~ 1863, 본관 義城, 자 景道, 金鎭夏의 長子)이 임술(壬戌)년 2월에 친척 할아버지 첨추공(僉樞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가문 전통을 잇고 훌륭한 인격과 덕성을 갖추고 오래 살았출처 : 유교넷 -
245261
인사행 이보수가 김공을 우해 임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이보수이보수(李普秀, 본관 固城)가 임술(壬戌)년 2월에 사돈 사이인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이보수는 이 세상에서 망자와 오십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로부터 많은 학문과 인격적인 감화를 받아왔다고 술회하면서 망자의 언행에 대해 회고출처 : 유교넷 -
245262
이종기가 처사 용암김공을 위해 187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자 이종기이종기(李鍾夔 : 1856~1937, 본관 固城, 자 舜聲, 호 瀛坡, 淸翁 李後榮의 後孫, 西山門人)가 기묘(己卯)년 8월에 양쪽 집안 대대로 알고지낸 처사(處士) 용암(慵菴)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출처 : 유교넷 -
245263
녀서 이승우가 외구 용암김공을 위 해 정축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이승우사위인 이승우(李承佑)가 정축(丁丑)년 10월에 외구(外舅) 용암(慵菴)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죽음을 산이 무너지는 것에 비유하여 많은 유림과 일반인들이 슬퍼한다고 했다. 망자가 평소 자신과 여러 가족에게 다정다감하며출처 : 유교넷 -
245264
장구봉이 용암처사 김중현을 위해 18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장구봉장구봉(張九鳳 : 1819 ~ 1897, 본관 安東, 자 德韶, 호 春皐, 敬堂 張興孝 後孫, 七戒齋 長世奎의 長子)이 무인(戊寅)년 6월에 용암(慵庵) 처사(處士) 김중현(金仲賢)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은 후 유림은 의지할 곳이출처 : 유교넷 -
245265
박제규가 통덕랑 김공을 위해 무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 박제규외사촌인 박제규(朴齊規)가 무인(戊寅)년 6월에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기개가 크고 호방했던 점을 들어 망자는 대장부의 기상을 지녔다고 했다. 망자의 문장은 성리학의 진수를 표현했다며 칭송했다.출처 : 유교넷 -
245266
이종협이 이숙주 처사김공을 위 해 정축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 이종협이질(姨姪) 이종협(李鍾協, 본관 固城)이 정축(丁丑)년 10월에 이모부 처사(處士)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출중한 가문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유교적 교양과 학문을 쌓아 단아한 선비가 되었다고 했다. 망자의 도덕과 학문은출처 : 유교넷 -
245267
종제 하수가 당형 첨추부군을 위해 186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하수사촌 동생인 김하수(金夏壽 : 1800 ~ 1867, 본관 義城, 자 景年, 金瑛燦의 次子)가 임술(壬戌)년 2월에 사촌형인 첨추부군(僉樞府君)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와의 사별 아픔을 처절하게 묘사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로 이내출처 : 유교넷 -
245268
은수가 백종형 첨추부군을 위해 186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은수사촌 동생인 김은수(金殷壽 : 1804 ~ 1870, 본관 義城, 자 德年, 金瑛燦의 三子)가 신유(辛酉)년 2월에 사촌 큰 형인 첨추부군(僉樞府君)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살기를 즐기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심이라며 망자가 오출처 : 유교넷 -
245269
표질 채곤진이 첨추령 김공을 위해 경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질 채곤진외손인 채곤진(蔡坤鎭, 본관 仁川)이 경신(庚申)년 윤 3월에 첨추령(僉樞令) 김공(金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신을 다정하고 알뜰하게 가르쳐 주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슬퍼했다. 그러한 가르침에 대해 보답도 하지 못한 채 망자와 사출처 : 유교넷 -
245270
김하수가 종질 승선령공을 위해 186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조숙 하수종조숙(從祖叔) 김하수(金夏壽 : 1800 ~ 1867, 본관 義城, 자 景年, 金瑛燦의 次子)가 신유(辛酉)년 10월에 종질(從姪) 승선령공(承宣令公)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망자 집안의 연이은 초상을 언급하며 슬퍼했다. 망자가 질병으로출처 : 유교넷 -
245271
김진우가 받은 1834년의 문과 병과 홍패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과거 시험 합격증인 홍패(紅牌)로서 교지(敎旨)에 해당한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증표로 내리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도광(道光) 14년(1834년) 5월에 내린 것으로 유학(幼學출처 : 유교넷 -
245272
김진우가 통정대부 승정원 우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으로 임명한 1857년의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러한 증표로 내려주는 교지(敎旨)이다. 고려 때는 왕명,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 혹은 관교(官敎)라고 했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命)이라고 했다. 함풍(출처 : 유교넷 -
245273
김진우를 권지승문 원부정자 통사랑으로 임명한 1836년의 첩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관청에서 해당 인물에게 알리는 임명장 및 명령서 역할을 하는 첩(帖 : 임명장은 중앙 관아와 지방 감영에서 7품 이하의 관원을 임명하거나, 수령이 향리 등을 임명하거나 고을의 유림이 제관으로 임명할 때 발급함)이다. 이조(吏曺)에서 도광(道光) 16년(1836년) 3출처 : 유교넷 -
245274
김진우를 권지승문 원부정자로 임명한 1834년의 첩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관청에서 해당 인물에게 알리는 임명장 및 명령서 역할을 하는 첩(帖 : 임명장은 중앙 관아와 지방 감영에서 7품 이하의 관원을 임명하거나, 수령이 향리 등을 임명하거나 고을의 유림이 제관으로 임명할 때 발급함)이다. 이조(吏曺)에서 도광(道光) 14년(1834년) 1출처 : 유교넷 -
245275
김진우의 성명과 부임일자 등이 이상 없음을 증명한 1846년의 해유 / 기록자료>고문서 / 호조관찰사(觀察使)가 도광(道光) 26년(1846년) 5월에 전(前) 현풍현감(玄豊縣監) 김진우(金鎭右)의 성명과 부임 일자 등이 이상 없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245276
김윤모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명세인 1891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 부(安東 府)에서 도광(道光) 26년(1891년) 5월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윤모(金潤模)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 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윤모가 45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그의 부친(김헌락), 조부(김진우), 증조부(김기수출처 : 유교넷 -
245277
김세환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명세인 1901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부(安東府)에서 신축(辛丑)년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세환(金世煥)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세환이 35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그의 부친(김윤모), 조부(김헌락), 증조부(김진우), 외조부(이만각), 어머니출처 : 유교넷 -
245278
김세환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명세인 1899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 부(安東 府)에서 을해(乙亥)년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세환(金世煥)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세환이 33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김윤모), 조부(김헌락), 증조부(김진우), 외조부(이만각), 어머니(출처 : 유교넷 -
245279
김윤모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명세인 1897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 부(安東 府)에서 정유(丁酉)년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윤모(金潤模)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윤모가 51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그의 부친(김헌락), 조부(김진우), 증조부(김기수), 외조부(이수응), 아출처 : 유교넷 -
245280
김세환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1898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 부(安東 府)에서 을해(乙亥)년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세환(金世煥)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세환이 33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김윤모), 조부(김헌락), 증조부(김진우), 외조부(이만각), 어머니(출처 : 유교넷 -
245281
김헌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1875년의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안동 부(安東 府)에서 도광(道光) 원년(1875년)에 발급한 유학(幼學) 김헌락(金獻洛)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이 문건은 김헌락이 51세 되던 해에 기록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그의 부친(김진우), 조부(김기수), 증조부(김종찬), 외조출처 : 유교넷 -
245282
김승지댁에 원매가 딸아이를 판다는 사실을 증명한 1854년의 자식 매매 문서인 명문 / 기록자료>고문서 / 원매원매(袁每)가 1854년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 길이 없어 16세인 딸아이를 전문(錢文 : 동전의 일종인 화폐) 200냥을 받고 김승지 댁(金承旨 宅)에 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식 매매 문서이다. 말미에 아비인 원매와 보증인 운손의 자필 서명이 있다.출처 : 유교넷 -
245283
모친인 안동 권씨가 자녀에게 준 1759년의 분재기 / 기록자료>고문서 / 재주 모 안동권씨1759년에 발급한 분재기(分財記)로 성격상 분급문기(分衿文記)에 속한다. 재주(財主)는 모친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출처 : 유교넷 -
245284
모친 홍시가 아들 연찬에게 재산을 나눠준 1802년의 분재기 / 기록자료>고문서 / 재주 모 홍씨1802년에 발급한 분재기(分財記)로 성격상 분급문기(分衿文記)에 속한다. 재주(財主)는 모친 홍씨(洪氏)인데 가운데 아들 영찬(瑛燦 : 1781 ~ 1844, 자 英玉, 金柱碩의 次子)과 막내아들 연찬(璉燦 : 1786 ~ 1867, 자 連玉, 金柱碩의 三子)에게출처 : 유교넷 -
245285
부친이 자녀5명에게 재산을 나눠준 1818년의 분재기 / 기록자료>고문서 / 부1818년에 발급한 분재기(分財記)로 성격상 분급문기(分衿文記)에 속한다. 재주(財主)는 부친인데 맏아들 기수(驥壽) 등 5명의 자녀에게 재산을 나눠주며 발급한 문건이다.출처 : 유교넷 -
245286
권상규가 1943년에 용암 김공의 행적을 서술한 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규권상규(權相圭 : 1874 ~ 1961, 본관 安東, 자 致三, 호 菜山)가 계미(癸未)년 5월에 용암(慵菴) 김공(金公)의 행적을 서술한 묘갈명(墓碣銘)이다. 망자의 일대기를 회고하면서 그의 학문과 덕행, 미담을 중심 내용으로 서술했다. 망자는 의성 김씨 가문의 후출처 : 유교넷 -
245287
김홍락이 받은 1894년의 문과 병과 홍패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과거 시험 합격증인 홍패(紅牌)로서 교지(敎旨)에 해당한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 문건은 광서(光緖) 20년 5월에 내린 것으로 유학(幼學) 김홍락(출처 : 유교넷 -
245288
김홍락의 벼슬 내력을 확인하고자 1889년에 발급한 관안 / 기록자료>고문서 / 관청김홍락(金鴻洛)이 45세 때 작성된 문건으로 벼슬 내력을 확인하고자 관청에서 발급한 관안(官案)이다. 김홍락은 갑오년에 4월에 문과에 급제하고 5월에는 전시 병과에 급제했다. 이어 광무 11년에는 비서랑을 역임했다.출처 : 유교넷 -
245289
김홍락이 강론에 참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1889년의 차첩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광서(光緖) 15년 3월 14일에 발급한 문건으로 김홍락(金鴻洛)을 이 45세 때에 작성된 문건이다. 동년 3월 13일에 근정전에서 유생들을 모아 강론했는데 김홍락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차첩(差帖)이다.출처 : 유교넷 -
245290
최승규가 류치명의 석방을 촉구하며 올린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최규승선략장군 용양위부사과 벼슬을 하는 최규승(崔圭升)이 올린 상소문이다. 억울한 누명을 받고 평안도로 유배를 간 류치명(柳致命)의 석방과 명예 회복을 촉구하며 올린 상소문으로 평소 그의 업적과 덕행을 강조했다. 그의 처신에 비해 유배를 가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고 그를출처 : 유교넷 -
245291
김홍락이 춘당대의 전시에 합격함을 증명한 1894년의 관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광서(光緖) 20년 5월 15일에 발급한 관문(關文)으로 당일 시행된 춘당대(春塘臺)의 전시(殿試)에서 김홍락(金鴻洛)이 합격했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45292
이종환 등 10인이 여선생의 수장역할에 대해 언급 하며 임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종환 등 10인이종환(李宗煥) 등 10명이 임오(壬午)년 4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많다고 하며 스승의 건강을 기원했다. 도암(道巖) 여선생(呂先生)은 유림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학식과 견문이 넓은 분이므로 유림 모임에서 수장 역할을 감당할 수출처 : 유교넷 -
245293
김두하 등 3인이 조상의 묘갈명 작성을 허락해 준 것에 감사해 하며 임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두하·김종일·김종운김두하(金斗河)·김종일(金鍾一)·김종운(金鍾雲)이 임오(壬午)년 11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스승에게 짧은 시를 올리면서 비평을 요청했다. 조상 묘갈명 작성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하고 일상적인 안부를 전했다.출처 : 유교넷 -
245294
이광지 등 3인이 조상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하며 병자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광지·이광현·이영석이광윤(李光芝)·이광현(李光玹)·이영석(李永錫)이 병자(丙子)년 6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 인사를 올리며 조상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하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5295
송봉상이 조상의 묘도문 작성을 허락해주어 감사하다며 병자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송봉상송봉상(宋鳳祥 : 戊子 ~ ?, 본관 楊川, 자 洛卿)이 병자(丙子)년 3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 인사를 올리며 조상을 추모하기 위한 묘도문 작성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5296
임화섭이 문중 정자의 기문을 작성해주어 감사하다며 정축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임화섭임화섭(林和燮)이 정축(丁丑)년 7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질병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즉시 위문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자신은 학질로 몇 달 동안 고생을 해서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가을에 찾아뵈올 생각이지만 여의치 못할까 염려스럽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5297
김태동이 유림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며 계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태동아우인 김태동(金台東)이 계유(癸酉)년 10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유림의 활동에 대해 상호 내왕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5298
김종복이 부친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하며 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종복김종복(金鍾復)이 을해(乙亥)년 6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돌아가신 부친의 평소 행적을 언급하며 상대방에게 부친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245299
황상욱이 묘갈명을 작성해주어 감사하다며 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생 황상욱제자인 황상욱(黃相旭)이 을해(乙亥)년 5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및 친척의 건강 상태와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과 가족의 일상생활 형편을 알리고 조상 문집 간행에 따른 묘갈명 작성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5300
박해철이 문집 간행에 서문을 부탁하며 경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박해철아우인 박해철(朴海徹, 본관 密陽, 자 公堯, 호 蒼樊)이 경신(庚申)년 5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조상의 문집 간행에 따른 서문을 써 주길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