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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5701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가미공진원(加味拱辰円)을 조제하기 위한 약종(藥種) 물목단자로 산수유(山茱萸), 당귀(當歸), 두충(杜冲), 녹용(鹿茸) 등의 약재가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245702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정해(丁亥)년 시월 송림원(松林院)에서 제수용품으로 준비하는 어물과 과일의 품목 수량이 적혀있다.
    출처 : 유교넷
  • 245703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갑사(甲紗), 침(針), 유지(油紙), 설탕(雪糖) 등의 표현으로 보아 주로 내당(內堂)에서 아녀자들이 사용하는 물종과 그 수량을 현록(懸錄)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45704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을유(乙酉)년에 송림원(松林院)에서 제수용품(祭需用品)으로 마련하는 조율시이(棗栗枾梨)와 포(脯), 어물(魚物) 등의 물종이 수량과 함께 당시 가격이 명시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245705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미동(美洞) 상가(喪家)에 부의(賻儀)로 들이는 종이와 향, 명주저고리, 치마, 향촉 등의 물목이다.
    출처 : 유교넷
  • 245706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여러 종의 시(詩)와 서(序)를 취합한 일종의 비망기이다.
    출처 : 유교넷
  • 245707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경주(慶州) ○동(○洞)에서 안동(安東) 오미동(五美洞) 김씨(金氏) 상가(喪家)에 들인 부의단자(賻儀單子)이다.
    출처 : 유교넷
  • 245708

    김병욱(金炳昱)이 작성한 상소문의 초안이다. 서두에서 자신은 미천한 시골의 칠십세 선비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대사에 대해 식견이 없지만, 충의 정신에 입각하여 비분 강개한 심정으로 이 상소문을 올린다고 했다. 상소문의 내용은 조정에서 일본과 명나라와의 대외 교섭에 있
    출처 : 유교넷
  • 245709

    전정언(前正言) 정면수(鄭勉洙)가 올린 상소문이다. 성상의 자질과 인품이 빼어난 점을 칭송하였다. 그리고 신하의 도리를 강조하며, 군신 상하간의 윤리강상을 역설하였다. 수신과 치국의 도리를 강조하고 백성된 자의 도리도 역설하였다. 이어지는 문건이 낙질되었다.
    출처 : 유교넷
  • 245710

    류도수(柳道洙) 등이 올린 상소문이다. 윤리강상을 강조하며 군신 상하의 도리와 유교정치 이념을 강조했다. 주상의 성덕을 칭송하며 도덕 정치를 실현하여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구현해 달라고 강조했다. 의리정신을 강조하며 명분에 합당한 정치 구현도 강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5711

    전정언(前正言) 정면수(鄭勉洙)가 올린 상소문이다. 수정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초안으로 보인다. 군신의 올바른 도리를 강조하면서 도덕 정치 실현을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민주 정치 실현과 여론 정치의 중요성도 강조하며, 유교 정치 이념을 역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5712

    부호군(副護軍) 이승택(李承澤)이 올린 상소문이다. 상소문과 몇 건의 문건이 단일 문서로 처리되었다. 상소문에서는 유교 성리학에 입각한 도덕 정치 실현을 강조하고 사림의 정신지향을 숭상해 달라고 했다. 관련된 나머지 글에서는 유교 성리학의 이론적 바탕 하에 도덕 정치
    출처 : 유교넷
  • 245713

    선부군 석주공(石洲公)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보낸 간찰이다.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집약하여 표현하였다. 망자의 우국 정신을 추모하고 백성들이 의지할 바를 잃었다고 하면서 슬픔을 하소연하였다. 후반부에 이르러 제문처럼 슬픈 어조로 표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5714

    총 4면의 문건이다. 상소문으로 일부 낙질되어 있다. 시국 정세에 대해 부분적으로 언급하며, 성리학에 근거한 도덕 정치를 희망하였다. 군신 상하의 올바른 도리도 강조하며, 여론 정치 기능의 중요성도 언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5715

    상소문이다. 작성자는 시골 선비로서 조정의 정치 득실과 현안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개진한 문건으로, 서두에서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임을 강조하면서 예의와 염치 및 윤리 강상이 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어 조정의 대외 교섭 자세가 못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의 침
    출처 : 유교넷
  • 245716

    이목연(李穆淵)이 올린 상소문이다. 비교적 짧은 문건의 상소문이다. 시국 정세에 대한 우려와 불한당이 날뛰는 정국의 형편을 염려하며, 애국 의분을 표현한 상소문이다. 정의와 윤리 기강이 바로 서는 조정을 염원하며, 불의가 기승을 부리는 점에 대해 심각한 각성과 이에
    출처 : 유교넷
  • 245717

    장령(掌令) 최익현(崔益鉉)이 주상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궁궐을 수리하고 조정의 기강과 법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교적인 정치 이념이 담겨 있다.
    출처 : 유교넷
  • 245718

    총 4면의 문건에 여러 종류의 글이 단일 문건으로 처리되었다. 상소문에서는 덕치를 희망한 신하의 마음이 담겨 있으며, 군신의 올바른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리고 주상의 수신과 정치 철학이 도덕 정치의 기반임을 강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45719

    류치명(柳致明)의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주상 전하의 위업과 성덕을 칭송했다. 이어 윤리와 강상의 떳떳함을 강조하면서, 대의와 명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군신 상하의 윤리 의식을 강조하면서, 유교 정치 철학을 피력했다. 역대 성조의 위업을 강조하면서, 역사상 제대로 조
    출처 : 유교넷
  • 245720

    정집교(丁集敎)의 상소문이다. 개화기에 올린 상소문으로 위정척사 정신에 입각한 의견을 개진한 글이다. 특히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부당함을 역설하면서 이에 대한 자제를 호소했다. 서원의 철폐는 선비정신을 소멸시키는 행위이며, 서구 열강들에게 호기를 제공하는 판국이 될
    출처 : 유교넷
  • 245721

    시국 정세에 대해 부분적으로 언급하며, 인륜과 도덕이 실추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정치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주적인 정치 실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가 하면 여론 정치의 기능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245722

    상소문이다. 백성들을 위한 위민 정치의 효과에 대해 언급하면서 올바른 정치 실현을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도덕 정치 기반을 확보하여 군신의 올바른 정치 수행에 대해 역설하였다. 유교 정치 이념의 실현에 비중을 둔 문건이다.
    출처 : 유교넷
  • 245723

    학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이 올린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유교 정치 이념의 건실한 수립과 이에 따른 바람직한 정치의 실현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바람직한 유교 정치 철학이 구현되는 이상 세계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어 군신 관계의 개선과 도덕 정치 실현을 통해 민생 안정
    출처 : 유교넷
  • 245724

    상소문이다. 공명정대한 정치 이념의 실현을 통한 민생의 안정적인 기반 위에 건실한 유교의 이상 사회가 구축될 수 있음을 강조한 문건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군주의 도덕성 각성을 통한 정치 이념의 실천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왕도 정치 이념의 실천을 촉구한 유교
    출처 : 유교넷
  • 245725

    손자인 병황(秉璜)이 작성한 김종복(金宗復)의 묘갈명이다. 일반 묘갈명의 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묘갈명이다. 생장 배경과 가계 등에 대해 서두에서 언급했다.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그의 생장 과정과 후덕한 면모를 부각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생평 가운데 미담과
    출처 : 유교넷
  • 245726

    묘갈명이다. 서두의 특정 인물의 생평 및 행적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집약하여 표현한 묘갈명만 남아 있는 문건이다. 영남의 산수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그의 어진 덕성을 추모하면서, 지방 목민관으로서의 행적을 천양했다.
    출처 : 유교넷
  • 245727

    김건(金健)이 작성한 「중대육로회기(中臺六老會記)」이다. 을해(乙亥)년에 송오정공(松塢鄭公), 대절이공(大節李公), 고산이공(孤山李公), 기산김공(箕山金公) 등의 여러 노인들이 중대사에서 열흘 정도 머물면서 산수유람을 즐기며 시와 술로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에 그 유
    출처 : 유교넷
  • 245728

    이상호(李祥鎬)가 작성한 김정섭(金鼎燮)의 행장이다. 일반적인 행장처럼 서두에서 그의 가계와 선대의 행적 등을 서술했다. 그리고 그의 평생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면서, 어진 덕성과 근실한 면모를 부각했다. 빼어난 재주와 효성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감화
    출처 : 유교넷
  • 245729

    김굉(金㙆)이 작성한 김종석(金宗錫)의 묘지명이다. 서두에서 그의 가계와 선대 조상의 위업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의 유년기 아름다운 덕행과 총명한 일화 등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평소 효성스럽고 아름다운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점을 회고하면서, 그의 인간미를
    출처 : 유교넷
  • 245730

    김종탁(金宗鐸)이 작성한 성균생원(成均生員) 김공의 행장이다. 서두에서 풍산 김씨의 선대 가계와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선대의 행적 및 관력을 기록하면서, 가문의 자긍심을 표현하였다. 이어 그의 행적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평소 어질고 효행스러웠던 점을 회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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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1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역임한 죽봉(竹峯) 김간(金侃 ; 1653∼1735)의 행장이다. 김간의 본관은 풍산(豊山)인데, 그의 생평과 업적을 기록한 문건으로 권상일(權相一)이 작성한 것이다. 김간은 네 살에 부친을 여의고 열여섯 살에 모친을 여읜 후에 백부에게 양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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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2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역임하고 이산현감(尼山縣監)을 지낸 김경조(金慶祖)의 행장으로 이광정(李光庭)이 작성한 것이다. 서두에서 풍산김씨의 가계를 상세히 정리하고 김경조의 생평을 정리하였으며, 문예가 빼어나고 효행이 독실했음을 부각했다. 특히 이산현감 재직시에 민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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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3

    류치목(金致睦)의 묘갈명을 작성하면서 기록한 문건이다. 류치목(柳致睦)은 1771년(영조 47, 신묘)년에 나서 1836년(헌종 2, 병신)년에 타게했다.본관은 豐山이고 자는 定吾이며 호는 厓雲로서 柳憲祚의 아들이다. 1814년 문과에 급제해 병조좌랑•司書•獻納•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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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4

    김일진(金馹鎭)이 작성한 선친의 묘표이다. 서두에서 풍산 김씨의 가문 내력과 가계에 대해 상세히 정리했으며, 부군의 유년 시절 일화 및 미담도 정리했다. 특히, 재주가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단아하여 모범적인 성장기를 보낸 이후의 활동에 대해 정리했다. 효성과 우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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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5

    김굉(金㙆)이 작성한 김성규(金聖圭)의 묘지명이다. 망자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점을 애석하게 여기며, 그의 생애를 종합 정리한 문건의 묘지명이다. 일반 묘지명의 성격과 큰 차이가 없는 문건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들의 업적과 화려한 관력을 서술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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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6

    권상규(權相圭)가 작성한 김정섭(金鼎燮)의 묘갈명이다. 처사 김공의 행적과 어진 면모를 충실하게 표현한 묘갈명이다. 서두에서 풍산김씨의 선대 가계에 대해 상세히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장기와 평생 이룬 업적을 강조하면서, 이웃과 가족에게 베풀엇던 어진 면모를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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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7

    김정섭(金鼎燮)의 행장이다. 서두에 풍산 김씨의 가문 내력과 가계를 상세히 정리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보는 즉시 서책을 암송하였다고 했다. 품성이 어질고 효행이 독실하여, 칭송을 받았던 점을 강조했으며,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어진 덕행을 솔선했던
    출처 : 유교넷
  • 245738

    김병황(金秉璜)의 행장이다. 서두에서 풍산 김씨의 가문 내력과 가계에 대해 언급했다. 선대 가계를 언급하면서, 선대의 관력 및 행적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의 생장기 일화 및 덕담을 중심으로, 총명하고 어진 품성을 부각했으며, 효성과 우애를 바탕으로 하여 가족과 친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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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39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한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의 행장으로 이병관(李炳觀)이 작성한 것이다. 서두에서 풍산김씨의 가계를 상세하게 정리했다. 그는 재주가 빼어나 어려서부터 가학을 통해 유교적 소양을 체득했다. 열 살에 외삼촌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효성과 우애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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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0

    김철근(金徹根)의 묘갈명병서이다. 그가 죽은 지 육년 만에 그의 맏이가 자기를 찾아와 선친의 묘갈명을 부탁해서 작성해 준 것이다. 그는 안동 풍산의 만운리(晩雲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한 기질을 바탕으로 하여,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했다. 효성과 우애
    출처 : 유교넷
  • 245741

    김의정(金義貞)의 묘갈명병서이다. 을사사화(乙巳士禍) 이후, 선비들의 신원 회복을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업적이 민멸된 점을 애석하게 여겼으며, 그의 생평을 통해 이룬 관력을 정리하고 이룬 업적과 미덕을 서술했다. 효행과 덕행 및 관직의 편력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출처 : 유교넷
  • 245742

    김의정(金義貞)의 묘갈명병서로, 류심춘(柳尋春)이 작성한 문건이다. 서두에서 풍산김씨의 가문 내력과 가계를 상세히 정리했으며, 그가 남긴 관력과 미덕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효행과 덕행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의 문예미를 언급하면서 청렴한 자세 등을 강조하고 가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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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3

    김의정(金義貞)의 묘갈명병서이다. 서두에서 풍산 김씨의 가문 내력과 가계를 정리했다. 이어 그의 유년기 미담과 일화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그의 문예적 조숙성과 효행을 강조했다. 그가 남긴 업적과 미덕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관료로서의 면모와 그의 빼어난 문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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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4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년) 8월 20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이조(吏曺)에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김간(金侃)을 선무랑수성균관전적(宣務郞守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선무랑은 동반(東班) 종6품의 위호(位號)이다.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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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5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년) 11월 17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선무랑 수성균관전적(宣務郞 守成均館典籍) 김간(金侃)을 선무랑 황산도찰방(宣務郞 黃山道察訪)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선무랑은 동반(東班) 종6품의 위호(位號)이다. 황산도는 조
    출처 : 유교넷
  • 245746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년) 12월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선무랑 황산도찰방(宣務郞 黃山道察訪) 김간(金侃)을 선교랑 황산도찰방(宣敎郞 黃山道察訪)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선교랑은 조선 때 문관의 종6품의 품계이다. 종친(宗親) 또는 의빈(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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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7

    이 문서는 1713년(숙종 39년) 윤 5월 29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승의랑 행황산도찰방(承議郞 行黃山道察訪) 김간(金侃)을 봉훈랑 행황산도찰방(奉訓郞 行黃山道察訪)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승의랑은 조선 때 정6품 상(上)의 문관 품계이다.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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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8

    이 문서는 1724년(경종 4년) 7월 18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前) 찰방(察訪) 김간(金侃)을 선무랑 사재감주부(宣務郞 司宰監主簿)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사재감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이는 생선·고기·소금·연료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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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49

    이 문서는 1724년(경종 4년) 8월 2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이조(吏曺)에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선무랑 사재감주부(宣務郞 司宰監主簿) 김간(金侃)을 봉훈랑 행예조좌랑(奉訓郞 行禮曺佐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봉훈랑은 조선(朝鮮) 때 종5품(從五品) 하(下)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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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750

    이 문서는 1724년(경종 4년) 9월 22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봉훈랑 행예조좌랑(奉訓郞 行禮曺佐郞) 김간(金侃)을 봉직랑 행예조좌랑(奉直郞 行禮曺佐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봉직랑은 조선시대 종5품 상(上)의 문관 품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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