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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24년 9월에 이조에서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24년(경종 4년) 9월 26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봉직랑 행예조좌랑(奉直郞 行禮曺佐郞) 김간(金侃)을 봉직랑 행예조정랑(奉直郞 行禮曺正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봉직랑은 조선시대 육조(六曹)의 정5품 벼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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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26년 8월에 이조에서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26년(영조 2년) 8월 23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前) 정랑(正郞) 김간(金侃)을 봉직랑 행의금부도사(奉直郞 行義禁府都事)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봉직랑은 조선시대 육조(六曹)의 정5품 벼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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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26년 11월에 이조에서 김유원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26년(영조 2년) 11월 1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통선랑(通善郞) 김유원(金有源)을 통덕랑(通德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통덕랑은 조선시대의 정5품 문관의 품계로 통선랑(通善郞)의 위이며 조산대부(朝散大夫)이다. 조봉대부(朝奉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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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27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727년(영조 3년) 3월 1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봉정대부 행병조좌랑(奉正大夫 行兵曺佐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봉정대부는 조선시대 정4품 상(上)의 문관 품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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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27년 3월에 발급자미상이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727년(영조 3년) 3월 27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봉정대부 행성균관사예(奉正大夫 行成均館司藝)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사예(司藝)는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정4품의 벼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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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31년 4월에 발급자미상이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731년(영조 7년) 4월 17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통훈대부 행사헌부장령(通訓大夫 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조선시대 문관의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다. 장령은 사헌부(司憲府)의 정4품의 한 벼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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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32년 1월에 발급자미상이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732년(영조 8년) 정월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부호군은 오위에 딸린 종4품의 벼슬로 보직을 받지 않은 문무관(文武官) 및 음관(蔭官) 중에서 뽑았다.출처 : 유교넷 -
245758
풍산김씨 죽봉종택 1732년 1월에 발급자미상이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7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서는 1732년(영조 8년) 정월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절충장군 행용양위사과(折衝將軍 行龍驤衛司果)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절충장군은 서반(西班) 정3품 당상관의 위계이다. 용양위는 조선시대 오위(五衛) 중의 좌위(左衛)에 해당하고 문종 원년에 설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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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32년에 이조에서 김서운에게 내린 교지(敎旨)[10480]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32년(영조 8년) 4월 25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통선랑(通善郞) 김서운(金瑞雲)을 통덕랑(通德郞)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김서운[1675(숙종 1)~1743(영조 19)]은 본관이 풍산(豐山)이며, 자는 우징(虞徵), 호는 희구재(喜懼齋)이며, 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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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32년에 이조에서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陞品敎旨)[10481]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32년(영조 8년) 정월 12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통정대부는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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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1733년 10월에 이조에서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8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33년(영조 9년) 10월 22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김간(金侃)을 통정대부 예원판결사(通政大夫 隷院判决事)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예원은 장례원(掌隷院)으로 노예의 부적(簿籍)과 그의 소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부서이다. 판결사(判決事)는 장례원의출처 : 유교넷 -
245762
풍산김씨 죽봉종택 1733년 12월에 이조에서 김간처 이씨에게 내린 교지(敎旨)(贈職敎旨)[1048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33년(영조 9년) 12월 1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숙인(淑人) 이씨(李氏)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숙인(淑人)은 조선 때 당하관 정3품·종3품인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봉작이다. 숙부인은 조선 때 당상관 정3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출처 : 유교넷 -
245763
풍산김씨 죽봉종택 1749년 3월에 이조에서 김서운에게 내린 교지(敎旨)(贈職敎旨)[1048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 문서는 1749년(영조 25년) 3월 3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통덕랑(通德郞) 김서운(金瑞雲)을 조봉대부 사헌부지평(朝奉大夫 司憲府持平)으로 증직(贈職)한다는 교지이다. 김서운[1675(숙종 1)~1743(영조 19)]은 본관이 풍산(豐山)이며, 자는 우징(虞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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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모년에 김병시의 호구단자(戶口單子)[10485]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병시 63세이 문서는 임오년에 작성한 것으로 안동부 풍북면 오미동 제14번지 제1통 제4호에 사는 풍산김씨 김병시(金秉蓍)의 호적이다. 그의 나이는 25세이다. 이때는 호적을 집안에 두고 관할국에서 사람이 나와서 호적을 기록하여 확인도장을 찍었다. 아버지는 낙려(洛驪), 조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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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모년에 김병시의 호구단자(戶口單子)[10486] / 기록자료>고문서 / 김병시이문서는 신묘년에 작성한 것으로 안동부 풍북면 오미동 제14번지 제1통 제4호에 사는 풍산김씨 김병시(金秉蓍)의 호적이다. 김병시는 이름을 병렬(秉烈)로 고쳤고 그의 나이는 34세이다. 아버지는 낙려(洛驪), 조부는 명흠(明欽), 증조부는 중정(重鼎)이며, 외조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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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죽봉종택 모년에 김병시의 호구단자(戶口單子)[10487]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김병시 25세이 문서의 작성연대는 훼손되어 잘 알 수는 없지만 다른 호적을 참조해서 살펴볼때 안동부 풍북면 오미동 제14번지 제1통 제4호에 사는 풍산김씨 김병시(金秉蓍)의 호적이다. 나머지 상황은 알 수 없고 노비의 상황만 약간 기록되어 있지만 훼손되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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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유년 윤월에 남석명 등이 지지수정소(地誌修正所)에 보낸 간찰(簡札) [10488] / 기록자료>고문서 / 원고동중 남석명ㆍ남국한 등백흔(白昕) 박숙(朴肅), 남석명(南錫明) 등 원고동(元皐洞)의 유생 열 명이 지지(地誌)의 수정소(修正所)에 보낸 편지이다, 먼저 무더운 여름 장마철에 지지(地誌)의 간행을 맡아 수고하는 유생들의 안부를 묻고, 원고의 수정은 언제쯤 마무리될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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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3월에 김규진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89]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ㆍ양진기묘년 3월 6일에 김규진(金圭鎭)과 김태진(金泰鎭) 등이 사돈의 숙부 부고를 받고 보낸 위문편지이다. 부고를 받고 놀라움과 비통함에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세월이 빨라 문득 장사일이 이르러서는 슬픔이 더욱 간절하나, 찾아뵙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편출처 : 유교넷 -
245769
영양남씨 난고종택 기축년 1월에 김양진이 원파(元坡)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김양진을축년 1월 11일 김양진(金養鎭)의 편지로 신년인사와 상대방과 선(善)손자와 암(巖)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노쇠한 뒤로는 하루도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한 적이 없으며 문을 닫고 침석에서 지내며 상대방이 정와문집(訂窩文集)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에 부러움을 전하고 자신도출처 : 유교넷 -
245770
영양남씨 난고종택 임○년 6월에 한진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1]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한진임년 6월 22일 한진(翰鎭)이 족친에게 보낸 편지로 서로의 거리가 멀어 만나지 못하고 편지로밖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시하고 본인은 양자를 가서 멀리 있지만 항상 본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고 증왕고(曾王考)의 유집을 발간한데 대한 고마움과 후손된 기출처 : 유교넷 -
245771
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신년 12월에 기진이 삼종동생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2]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기진경신년 12월 5일에 삼종(三從) 동생에게 보낸 기진(猉鎭)의 편지이다. 정자에서 몇 개월씩을 거처하며 한가한 시간에 시경을 공부하니 의리가 무궁하고 반복해서 깊이 궁구하다보면 어느새 밝은 달이 창가를 비출 때면 문득 동생 생각이 간절하여 진다고 술회하고, 동생과 자출처 : 유교넷 -
245772
영양남씨 난고종택 계해년 10월에 권영일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禮狀紙)[10493] / 기록자료>고문서 / 권영일계해년 10월 18일에 권영일(權永鎰)이 보낸 혼서이다. 먼저 보내준 편지는 잘 받았으며 수취인의 체후가 편안함을 살피고는 위안됨이 그지없다고 말하고, 혼사가 이미 성사되어 연길(涓吉)을 받았으니 의복을 만들어야 하니 복식(服飾)을 기록하여 보내주시면 가르침에 따라출처 : 유교넷 -
245773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5월에 승철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4] / 기록자료>고문서 / 승철갑인년 1월 4일에 승철(升喆)이란 사람이 쓴 편지로, 같은 집안사람으로부터 전답과 선영주변의 목재에 관한 편지를 받은데 대한 답변의 편지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집안 여러 종족들의 근황이 어떠한지를 묻고 자신은 예전과 다름없이 한결같이 여러 종족들의 후의에 힘입어 잘출처 : 유교넷 -
245774
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축년 12월에 직(直)이 건숙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5]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직신축년 12월 13일에 직(直)이 여행을 떠난 건숙에게 쓴 편지이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여행하는 안부를 묻고, 도원(陶院:도산서원으로 추증됨)의 상덕사(尙德祠)에 임금의 성지가 내려 제사를 지내고자하니 올수 있겠느냐고 묻고 광원(光院)에서 10량을 부조한 것과 광산출처 : 유교넷 -
245775
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10월에 김양진이 원파(元坡)의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6]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김양진을묘년 10월 16일에 김양진(金養鎭)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한달여전에 다른 관청으로 옮겨가면서 사돈의 병이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알게 되었음을 말하고 자신도 상중에 같은 병을 앓아 매우 염려되며 질녀모자(姪女母子)의 안부와 종씨(從氏)도 상중에 건출처 : 유교넷 -
245776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오년 8월에 남효술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禮狀紙)[10497] / 기록자료>고문서 / 남효술갑오년 8월 12일 영양남씨 남효술(南孝述)이 상대방의 예장과 사성을 받고 보낸 연길(涓吉)서신으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결혼날짜를 정하여 보내니 어떠한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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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 4월에 호량이 족숙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호량경성에 올라온 조카 호량(浩良)이 달성에 있는 일가 족숙께 올리는 일상의 안부 서신이다.출처 : 유교넷 -
245778
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신년 12월에 호의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499]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호의경신년 섣달 5일에 호의(浩義)가 스승으로 섬길 정도의 집안 어른에게 쓴 편지이다. 평소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죄스러웠는데 문득 편지를 받고는 더욱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일깨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아직 젊음을 믿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스승과 벗들의 기대에 부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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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신년 8월에 이운소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0]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운소경신년 8월 23일에 이운소(李雲韶)가 받은 편지의 답장으로, 그리워하던 차에 편지를 받아 기쁘고 부모님 모시고 잘 계신다고 하니 위로되는 마음 그지없으며, 자신은 지난 가을 이후로 마음이 해이해져서 과거공부에 힘쓰지 않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어 집안의 어른들과 스승과출처 : 유교넷 -
245780
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오년 3월에 김규진이 사형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임자년 3월 18일에 김진규(金圭鎭)가 귀양살이 하는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호간에 서로 왕래나 편지도 없어서 서운한 마음을 전하고 암(巖)이 천연두를 앓았으나 무사하여 편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 손자가 16일이면 100일이 되는데 큰 재목이 될 것 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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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유년 1월에 김규진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을유년 정월 16일에 복인(服人) 김규진(金圭鎭)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서로 왕래한지가 1년이지나 그리워하던 중에 편지를 받아 위로되는 마음이 끝이 없음을 밝히고, 자신은 나이를 더할수록 병도 많아져 족히 드릴말씀이 없다고 하고, 지금 이곳은 전염병이 돌아출처 : 유교넷 -
245782
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7월에 조병시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慰狀)[10503]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조병시기묘년 7월 4일에 조병시(趙秉蓍)가 수신자의 숙부(叔主)의 부고를 받고 상주에게 올린 위문편지이다. 갑자기 부고를 받고 놀라움과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데 또 아내의 상을 당하여 그 슬픔과 참담함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위로하고, 본인도 상중이라 문상하지 못하는 죄스러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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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3월에 승철 등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말 승철 등 1인갑인년 3월 14일에 조돈(朝暾)과 승철(升喆) 두 사람이 집안사람들에게 올린편지로 전에 살던 집이 무너져 새로 집을 구입하였으나 워낙 낡아서 다시 수리를 하여야하나 목재를 구할 수가 없어 집안의 전답과 선영의 산소 부근에 있는 나무를 사서 수리하려고 하니 적당한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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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신년 6월에 김규진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5]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임신년 6월 25일에 김규진(金圭鎭)이 사돈에게 답장한 편지로, 무더운 여름에 체직되어 부임지로 가다가 편지를 받게 되어 시원한 바람을 만난 것 같이 기분이 상쾌하며, 수신자의 가정도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것을 알고는 위로되는 마음이 그지없다고 밝히고, 자신은 목주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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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신년 12월에 김규진이 원파(元坡)에 보낸 간찰(簡札) [10506]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갑신년 12월 16일 복인(服人) 김규진(金圭鎭)의 편지로 선(善)손자와 상대방과 계씨(계씨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노쇠한 병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으며 시력도 감퇴되었으며 귀도 밝지를 못하며 치아가 좋지 않아 음식을 먹는 것도 불편함을 밝히고 청동(淸洞)의 노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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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자년 1월에 이능석이 숙부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7]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이능석무자년 정월 그믐에 내종질(內從姪) 이능석(李能奭)이 숙부(叔主)에게 보낸 편지로 계씨숙주(季氏叔主)가 초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다 치르도록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을 밝히고 학계(學契)의 회합이 5월 10일과 11월 10일로 1년에 두 차례 모이기로 결정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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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술년 9월에 이재기가 계씨형주(季氏兄)의 부고를 받고 보낸 간찰(簡札) [10508]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이재기병술년 9월 9일에 내종제(內從弟) 이재기(李在祺)가 계씨형주(季氏兄主)의 부고를 받고 쓴 위문편지로 처음에는 계씨형주(季氏兄主)의 상사(喪事)소식을 듣고 믿지 않았으나 3월에 편지를 받고 비로소 믿게 되었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자신도 올 4월에 회갑을 맞았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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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진년 5월에 김규진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09]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병진년 5월 19일에 김규진(金圭鎭)이 사돈에게 올린 문안편지이다. 상호간의 안부를 전하고 새로 장가든 사위가 행동거지가 예의에 맞지 않음이 많았으나 차츰 잘못됨을 고치고 있으며 지난번에 임천(臨川)에서 봉안(奉安)한 후에 소식을 전하려 하였으나 풍랑이 심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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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오년 9월에 이성소가 동문수학하는 동학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0]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성소무오년 9월 22일에 이성소(李晟韶)가 동문수학하는 동학에게 보낸 편지로 지난번에 방문하였을 때에는 마침 선계(仙溪)에 가 있어서 만나보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고 자신은 무릎에 상처가 있어 괴로우며 이로 인하여 정신이 나태하여져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으며 집안 어른들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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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유년 5월에 김규진이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을유년 5월 22일에 복인(服人) 김규진(金圭鎭)이 사돈 동생의 부고를 받고 올린 위문편지이다. 사돈의 동생과는 평소의 우애가 특별하였는데 갑작스러운 변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음을 밝히고 여름 장마에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자신도 봄에 대평에 사는 누이를 잃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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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자년 8월에 김규진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무자년 8월 3일에 김규진(金圭鎭)이 사돈에게 올린 편지로 먼저 계절인사와 안부를 묻고 보내준 편지를 세 번이나 읽었으며 모두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음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보내주신 감자는 잘 받았으며, 자신도 봄과 여름 사이에 한번 방문하려고 나섰다가 병으로 다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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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해년 7월에 김규진이 원파(元坡)의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3]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규진정해년 7월 19일에 김규진(金圭鎭)이 사돈에게 올린 편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신체의 오른쪽부위가 마비되는 증세가 있어 의성에 훌륭한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보내어 약을 지어왔으나 별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아 뜬소문이라는 것과, 다음달 9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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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1월에 이의관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4] / 기록자료>고문서 / 사계 이의관정사년 정월 13일에 이의관(李毅寬)이 사돈에게 받은 편지에 대한 회신으로 사돈형제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고 자신의 아들의 일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염려되는 마음과 사돈에게 미안한 감정들을 전하고, 해가 바뀌어도 예물을 올리지 못한 죄송한 심정과 새해에는 더욱 건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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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자년 12월에 조헌기가 원고(元皐)의 이종사촌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5]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 조헌기경자년 섣달 25일에 이종(姨從) 조헌기(趙憲基)가 쓴 편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도 전하며 위양(渭陽)의 집도 편안하며 청동(淸洞)의 집도 편안하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밝히고 어머니가 치통이 있어 근심하는 내용과 노림(魯林)의 일은 유림의 큰 대사이나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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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자년 10월에 조헌기가 건숙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6]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 조헌기경자는 10월 2일에 이종(姨從) 조헌기(趙憲基)가 건숙(建叔)에게 쓴 답장으로 외출하여 돌아오니 편지가 책상위에 있어 읽어보고는 마주 대하여 토론하는 것 같아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자신은 한달전에 풍정(楓井)과 두곡(杜谷) 춘협(春峽)등으로 두루 돌아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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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축년 3월에 유정호가 원파(元坡)의 동문수학하는 사람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7]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류정호을축년 3월 그믐에 류정호(柳廷鎬)가 동문수학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자의 안부와 어린학동들은 공부가 얼마나 진전이 있는지를 묻고, 한번 방문한다는 것이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이미 머리가 희어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자신은 최근 2년간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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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오년 2월에 준교가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준교무오년 2월 12일에 기복인(朞服人) 준교(準敎)가 친척에게 올린 편지이다. 한달여 전에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었으나 집안사정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자신은 물위의 부평초같이 떠도는 신세가 되어 지내다가 이제 겨우 우거하게 되어 가끔 책을 꺼내어 읽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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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에 이원심이 매형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19]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원심섣달 20일에 처남 이원심(李源深)이 매형에게 쓴 편지이다.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섭섭함과 누이와 매형형제와 사장어른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자신의 형제는 각각 다른 집에 살지만 예전과 같이 잘 지내고 있다는 문안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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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해년 6월에 김양진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20]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김양진을해년 6월 27일 기복인(朞服人) 김양진(金養鎭)이 쓴 편지로 수신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장조카의 죽음을 당하여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에 제사를 받들어야 할 조카의 죽음을 슬퍼하는 심정을 전하고 문집(溪集)간행과 관련하여 지신의 견해를 밝히고 부쳐온 인쇄용지 7축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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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오년 12월에 남효원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10521]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남효원경오년 섣달 8일에 남효원(南孝源)이 귀양가는 사람에게 쓴 편지이다. 우리의 도가 땅에 떨어지고 임금의 마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이러한 변고를 당하였다고 위로하고. 혹한의 추운날씨에 천리 먼 길을 떠나는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밝히고, 오직 편안한 마음으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