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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사년 팔월에 장대흔(張大欣)이 남생원에게 써준 수표(手標)[10874] / 기록자료>고문서 / 장대흔수표(手標)이다. 신사(辛巳)년 팔월 초구일에 장대흔(張大欣)이 남생원에게 써준 것으로 송가(松價) 사십 냥을 기한일에 갚기로 했으나 점촌에 역(疫)이 들어서 다음 달 십오일 전까지 갚기로 다짐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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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진년 3월에 원하 남노 욱이가 소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75] / 기록자료>고문서 / 원하 남노 욱이청원소지이다. 원고 남씨의 노(奴) 욱(郁)의 이름으로 경진(庚辰)년 삼월에 올린 소지로 철점을 하는 장가가 선산을 범작한 송가(松價)를 제대로 갚지 않으므로 엄히 다스려서 송가를 갚게 해 달라고 청원한 데 대하여 장가란 놈을 잡아 오라고 초삼일에 제음을 내려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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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사년 3월에 화민 남효원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76]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원청원소지이다. 신사(辛巳)년 삼월에 화민(化民) 남효원(南孝源)이 올린 소지로 장가, 이가가 선산을 작벌하고 또 장가는 투장(偸葬)까지 하였으므로 엄징하여 달라는 소지에 대하여 초구일 제음에 따르면 관리를 이미 조사하라고 보냈으니 보고를 기다려서 관에 소를 올려 처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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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사년 6월에 화민 남효원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77]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원청원소지이다. 신사(辛巳)년 유월에 화민(化民) 남효원(南孝源)이 올린 소지로 장가, 이가가 선산을 작벌한 데 대하여는 송가(松價)를 지불하기로 하고 표기까지 받았으며 또한 장가는 투장까지 하여 약속한 기일까지 이굴하기로 하였음에도 하지 않으므로 엄명히 제음을 내려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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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3월에 화민 남효원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78]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원청원소지이다. 기묘(己卯)년 삼월에 화민(化民) 남효원(南孝源)이 올린 소지로 선산을 범작한 장가가 정장을 횡탈하여서 잡아오지 못하였으므로 엄치하여 달라는 청원에 대하여 조사 처결차로 청원자가 장한을 잡아 대령하라고 이십구일 제음을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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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3월 장야장(張冶匠)이 원구(元邱)의 남생원댁에 써 준 표기(標記)[10879] / 기록자료>고문서 / 장야장기묘년 3월 22일 장야장(張冶匠)이 원구(元邱)의 남생원댁에 써 준 표기(標記)로 자신은 대장간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남생원의 산에서 무단으로 벌목한 죄를 인정하고 죄의 대가로 도끼와 칼 등 농기구를 제작하여 다음달 20일까지 납품하며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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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술년 10월에 화민 남택환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80]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택환상서(上書)이다. 무술(戊戌)년 십일월에 화민(化民) 남택환(南宅煥)이 올린 것으로 위토답을 훔쳐 팔아먹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벌을 주고 문기를 찾아주기를 청원한 데 대하여 조사한 후에 찾아 줄 터이니 우선 기다리라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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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유년 6월에 화민 남식양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81]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식양 등 22인소지이다. 정유(丁酉)년 유월에 화민(化民) 남식양(南寔陽) 등이 연명하여 올린 것으로 위토답을 훔쳐 사고 판 사람들을 엄징하여 달라고 청원한 데 대하여 훔쳐판 족인 이봉환(李鳳煥)의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고 엄치차로 화매인 삼인을 잡아 오라고 제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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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술년 8월에 화민 남택환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10882]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택환소지(所志)이다. 무술(戊戌)년 팔월에 화민(化民) 남택환(南宅煥)이 올린 소지로 위토답을 송명삼 등 삼인이 헐값으로 도매한 것을 다시 그 값으로 사게하여 달라고 청원하였는 바 도매지률에 따라 먼저 남형환처에 소지문기를 출급하라고 이십육일자로 제음을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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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술년 11월에 남택환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10883]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택환청원소지이다. 무술(戊戌)년 십일월에 화민(化民) 남택환(南宅煥)이 올린 소지로 도매한 위토답에서 얻은 이익이 네 배나 되므로 이를 엄명 제하해주도록 청원한데 대하여 매매에 의한 이득은 그 사람의 운수이므로 관에서의 판결은 매매 여하에 따라 하여야 한다고 제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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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도광 17년에 답주 남노 봉득과 김석이 사이의 토지매매문기[10884]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남노 봉득토지문기이다. 1837년 사월 초육일에 남씨댁 노 봉득(奉得)이가 갈마물후평원(葛麻勿後坪員)에 있는 40답 4부1속을 전문 7량 5전에 김석이(金石伊)에게 방매하는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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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도광 17년에 남선업의 노 망이와 송택중 사이의 토지매매문기[10885] / 기록자료>고문서 / 남선업 노 망이토지문기이다. 1837년 이월 이십칠일에 남선업의 노(奴) 망이가 송택중에게 도로변에 있는 답(畓) 벼 다섯마지기를 전문25량에 방매한다는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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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도광 17년에 남봉환과 이태석 사이의 토지매매문기[10886]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남봉환토지문기이다. 1837년 삼월 십이일에 남봉환(南鳳煥)이 이태석에게 벼 다섯 마지기 겉보리한 마지기를 전문 이십오냥에 방매한다는 문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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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묘년 11월에 화민 남효극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87] / 기록자료>고문서 / 원하 화민 남효극‧남정진청원소지이다. 신묘(辛卯)년 십일월에 화민(化民) 남효극(南孝極), 남정진(南廷鎭) 등이 올린 소지로 임진왜란 시 공신의 후손이므로 연역과 호포를 견감시켜 달라고 청원한 데 대하여 이후로는 면역하여 주겠다고 제사(題辭)를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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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술년 4월에 김상오가 겸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88] / 기록자료>고문서 / 서광천거 김상오청원소지이다. 경진(庚辰)년 사월에 서광천 거주 김상오(金尙五)가 선조 분산에 처묘를 썼는데도 남씨들이 자기들 묘에 투장하였다고 하므로 명백히 가려줄 것을 청원한 데 대하여 양 당사자를 대변한 후에 처결하겠다고 제사(題辭)를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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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축년 10월에 영해 유학 남도양 등이 안동부에 올린 소지(所志) [10889]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거 유학 남도양‧남유괄원정소지이다. 을축(乙丑)년 시월에 영해 거주 유학 남도양(南道陽), 남유괄(南有适) 등이 올린 소지로 목수 이용업 등이 재사를 짓고도 공가를 다 지불하지 않았다고 의송을 올린 데 대하여 남도양 등이 관에서 이를 변정하여 달라고 함에 상한들과 서로 성표까지 하였으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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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축년 10월에 화민 남세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0]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세만‧남경림원정소지이다. 을축(乙丑)년 시월에 화민(化民) 남세만(南世萬), 남경림(南景霖) 등이 올린 소지로 목수 이경업 등이 공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고 의송을 올린 바 장자가에서는 관에서 명백히 밝혀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에 제음을 내리기를 공전이 이백여 량으로 충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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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묘년 2월에 화민 남대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1]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대만 등 37인등장(等狀)이다. 을묘(乙卯)년 2월에 화민(化民) 남대만(南大萬) 등이 연명으로 올린 등장으로 거짓을 꾸민 박진악을 법에 의하여 엄히 처결하여 달라고 청원함에 우선 추이를 보아서 신원하라고 제음을 내려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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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묘년 11월에 영해거 유생 남기양이 순사도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2]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거 유생 남기양상서(上書)이다. 을묘(乙卯)년 십일월에 영해에 거주하는 유생 남기양(南基陽)이 형 섭양이 죄가 없음을 밝히어 달라고 청원함에 제음하기를 금문의 처분에 따르고 번거롭게 소송하지 말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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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2월에 화민 남대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3]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대만 등 3인청원소지이다. 갑인(甲寅)년 십이월에 화민(化民) 남대만(南大萬), 기만(基萬), 경룡(景龍), 경택(景宅) 등이 올린 소지로 죄없는 사람을 모함한 박진악을 법에 따라 엄처하여 줄 것을 소청한 데 대하여 남씨들이 박진악의 집을 수색한 것은 법에 저촉되어 자기는 청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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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2월에 화민 남대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94]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대만 등 3인청원소지이다. 갑인(甲寅)년 십이월에 화민(化民) 남대만(南大萬), 남기만(南基萬), 남경룡(南景龍) 등이 올린 소지로 선조를 백지구무한 박진악을 하루속히 법에 따라 처벌해주기를 청원한 데 대하여 그만두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니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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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해년 11월에 원하 화민 남화진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5] / 기록자료>고문서 / 원하 화민 남화진산송(山訟) 소지이다. 기해(己亥)년 십일월에 화민(化民) 남화진(南華鎭)이 올린소지로 대대로 내려오는 분산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는 관령이 내려졌음에도 동민들이 지키지 않으니 동두민을 엄징하여 달라고 청원함에 관에서는 대곡동에 전령을 보내어 후폐가 없도록 하라고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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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해년 2월에 지사두민 김익준 등이 관사주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6] / 기록자료>고문서 / 지사두민 김익준‧오명흥 등 3인수본(手本)이다. 1899년 이월에 남면 대곡동 두민(頭民) 김익준(金益俊), 오명흥(吳命興) 소임 김영진 등이 군에 올린 보고문서로 초막동 일대 산이 남씨 분산이라고 우기므로 관에서 잘 살펴본 후에 완문을 성책하여 후폐가 없도록 하여주기를 청원한 데 대하여 대질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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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해년 1월에 화민 남화진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897]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화진‧남교응‧남희조산송(山訟) 소지이다. 1899년 일월에 화민(化民) 남화진(南華鎭), 남교응(南敎膺), 진사 남희조(南熙朝) 등이 누세선산의 송목을 대곡동민들이 범작하므로 그동 두민과 동장을 엄징하고 송가를 지불하게하여 달라고 함에 사문엄치차로 해동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는 제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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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해년 6월에 지사두민 김익준 등이 관사주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8] / 기록자료>고문서 / 지사두민 김익준‧신태용 등 3인수본(手本)이다. 1899년 유월에 남면 대곡동에 거주하는 지사두민(知事頭民), 김익준(金益俊), 신태룡(申泰龍), 소임 김영진 등이 동민 이기동 오명응이 동내 금송지지를 범작한 일이 없으므로 잘 헤아려주라고 호소한 데 대하여 남민들은 고집할 단서가 없으므로 범작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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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축년 10월에 영해 유학 남도양 등이 안동부에게 올린 소지(所志)[10899]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학 남도양‧남유괄상서(上書)이다. 을축년 시월에 영해유학 남도양(南道陽), 남유괄(南有适) 등이 올린 소지로 집을 지은 후 목수에게 공가를 지불한 후 표기를 받았는 바 목수 표기에는 답인을 소장에는 입지하여 줄 것을 청한 바 답인하여 주라고 제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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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축년 10월에 이용업이 남생원에게 보낸 표기(標記)[10900]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업표기(標記)이다. 을축(乙丑)년 시월 이십이일에 안동목수 이용업(李龍業), 승(僧) 인세(印世)가 영해 남생원 댁에게 표기한 것으로 별묘 강당 문간 성조한 공가 일백 육십 칠량 외에 팔십량 전을 받고 표기한 것으로 만약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고 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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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진년 4월에 화민 남효원이 겸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1]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원원정소지이다. 경진(庚辰)년 사월에 화민(化民) 남효원(南孝源), 남효근(南孝根) 등이 올린 소지로 이들의 친산 주룡압뇌처 삼사십보 내에 광천 주점에 거주하는 김가가 투장하고 친산에 방화하였으므로 법에 따라 엄히 다스려주라고 소청함에 본관을 기다려 처결하라고 제음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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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신년 2월에 경주 화민 남유수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2]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 화민 남유수 등 9인산송(山訟)에 관한 등장(等狀)이다. 임신(壬申)년 이월에 경주 화민(化民) 남유수(南有洙) 남유황(南有晃) 등이 올린 연명 소지로 경주부 남대곡 초막동 선영의 위토답을 영덕 주등에 거주하는 김화춘이란 자가 경식하고 있으니 그 위토답을 추급하게 해주시고 식화수를 추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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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술년 7월에 화민 남효근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3]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근‧남교준입지이다. 갑술년 칠월에 화민(化民) 남효근(南孝根), 남교준(南敎濬) 등이 올린 산송(山訟)으로 선조묘위답을 김화춘이라는 자가 강옥상에게서 매득하였다고 우기므로 척량한 결과 남씨묘위답이므로 입지 성급하여 줄 것을 청원한 바 영구히 예방할 방도를 찾으라고 판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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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신년 2월에 화민 남유수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4]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유수‧남유황산송(山訟)에 관한 입지이다. 임신(壬申)년 이월에 화민(化民) 유학 남유수(南有洙), 남유황(南有惶) 등이 올린 소지로 김화춘이 환납한 위토답을 입지 성급하여 줄 것을 청원함에 따라 후일의 자료로 삼기 위하여 화춘과 같이 입정하여 단안하라고 입지하여 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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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미년 3월에 화민 남효근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5]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효근산송(山訟) 소지이다. 계미(癸未)년 삼월에 화민(化民) 남효근(南孝根)이 올린 소지로 그의 종칠대조 분산위토답을 산직이가 도매하여 김화춘이란 자가 갈아먹으므로 이를 찾고 수표를 받았으므로 앞으로는 엄명한 제음을 내려주기를 청함에 조사 처리하기 위하여 김화춘이를 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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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묘년 9월에 경주 남진사노 명남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6]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 남진사노 명남산송(山訟) 소지이다. 신묘(辛卯)년 구월에 경주 남진사의 노(奴) 명남(命男)이 올린 소지로 경주부 남대곡 초막동에 있는 선영위토답을 산직이 안천득이가 그 반을 횡집하였으므로 위토답을 추심하여 줄 것을 청함에 척량하여 오라고 입지하고 추가로 제음을 내리기를 원고 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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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미년 5월에 영해 유학 남경기 등이 순사도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7]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학 남경기 등 86인신미년 5월에 남경기(南景炁) 등이 영해부 순무사에게 올리는 소지(所志)이다. 자신들의 선조 난고정의 무덤아래에 있는 별묘를 훼철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래서 문중의 뜻을 모아 별묘를 둔 연유에 대해서 곡진하게 설명하고, 별묘의 필요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진정(陳情)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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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8월에 화민 남대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8]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대만 등 62인등장(等狀)이다. 갑인(甲寅)년 팔월에 화민 생원 남대만(南大萬) 등이 연명하여 올린 소지로 그의 고조 진사공 길중(佶中)이 혼조(昏朝) 시 조수유상한 몸가짐을 기려 광세포양지전으로 삼아 성주가 감영에 보고하여 주기를 청원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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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미년 5월에 화민 남태양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09]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태양 등 4인청원소지이다. 기미(己未)년 오월에 화민 남태양(南泰陽), 남몽양(南夢陽), 남부양(南富陽) 등이 도동 산송으로 연만한 아버지가 상인 박상순으로 부터 구타를 당하여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법에 따라 엄히 처벌해 달라고 청원함에 남씨일문이 힘을 믿고 약자를 능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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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인년 12월에 도호부에서 광산서원에게 보낸 첩(帖)(相考)[10910] / 기록자료>고문서 / 도호부체문이다. 병인(丙寅)년 십이월 십육일에 안동도호부에서 광산서원 등 교원에게 내린 체문으로 사술을 배척하고 정학을 밝히기 위하여서는 향교는 매달 십오일 각원에 칠서 중 한 책을 강회하고 강회에 불참하는 사림은 유림에서 탈퇴하라는 훈령이다 . 1866년 병인양요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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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진년 3월에 경주 남진사호노 명남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1]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 남진사호노 명남산송 입지이다. 임진(壬辰)년 삼월에 경주에 거주하는 남진사 호노(戶奴) 명남(命男)이 올린 소지로 부내 대곡초막동 묘하 위토답을 산직이에게 맡기되 타인이 범경하는 폐단이 생길 소지가 있으므로 입지하여 달라는 데 대하여 입지하여 주라고 제를 내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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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해년 12월에 광산사에서 부관에게 보낸 첩정(牒呈) [10912] / 기록자료>고문서 / 광산사첩정(牒呈)이다. 기해(己亥)년 십이월에 광산사장 남모가 부관에 올린 첩정으로 광산사를 창건시 궤에 넣어둔 문기가 없어졌기에 전답문권을 입지하여 주기를 청원한 데 대하여 전답대장을 자세히 조사한 후 근거가 있으면 입지하여 주라고 판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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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사년 11월에 경주 유학 남유린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3]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 유학 남유린‧남유균산송 소지이다. 계사(癸巳)년 십일월에 경주유학 남유린(南有麟), 남유구(南有龜) 등이 올린 소지로 부내 남대곡 초막리에 있는 선영 9작전토를 산직이에게 위임한 바 자주 바뀌게 되어 산하민 윤재문이 밭을 답으로 하여 경작하므로 이를 명백히 가려주라고 청원함에 십사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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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사년 11월에 원하 남노 욱이가 올린 소지(所志) [10914] / 기록자료>고문서 / 원하 남노 욱이원하남(元下南)의 노(奴) 욱이(郁伊)의 이름으로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상전(上典)의 친산(親山)이 있는 동네 입구에 장대흔(張大欣)과 김가(金哥) 두 놈이 철점(鐵店)을 하고 강(姜), 김(金), 권(權)의 세 놈이 동조하여 철점(鐵店) 뒤에 있는 산(山)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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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진년 8월에 영해 유학 남태만 등이 순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5]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학 남태만 등 18인영해(寧海)에 사는 유학(幼學) 남태만(南泰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집안에서 데리고 있던 종들을 속환(贖還)하면서 받은 땅을 당시의 호장(戶長)인 김(金) 가(哥)가 음흉한 마음을 품고 가운데서 농간을 부려 바로 잡아 달리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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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진년 8월에 겸민 생원 남경복 등이 겸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6] / 기록자료>고문서 / 겸민 생원 남경복‧경택생원(生員) 남경복(南景復)과 진사(進士) 경택(京宅)이 속노(贖奴)하는 과정에서 침탈(侵奪)당한 일이 있어 이를 알려 바로 잡아 달라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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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사년 1월에 화민 남태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7]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태만 등 22인남태만(南泰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종가(宗家)의 노(奴)에 관해서 속노(贖奴)하는 과정에서 한 두 간리(奸吏)에 의해서 속아 토지를 잃어 이에 원통하여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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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영해 남태만 등이 올린 소지(所志) [10918]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남태만 등 27인영해(寧海)에 사는 유학(幼學) 남태만(南泰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속노(贖奴)하는 과정에서 논을 잃어버린 것에 관한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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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미년 5월에 화민 남유해가 결(缺)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19]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유해남유해(南有海)가 자신의 아버지는 남계양(南啓陽)과는 20촌이 되는데 자신과는 원수(怨讐)처럼 지내는 사람으로 약수동(藥水洞)의 산사(山事)로 다시 시비를 하고 있으니 이는 차마 볼 수가 없는 일이라고 올린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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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미년 5월에 화민 남국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0]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국소 등 53인남국소(南國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내용은 선조(先祖)의 묘아래에 제사드리는 날 많은 자손들이 모여 약간의 방당(房堂)을 세우려고 한다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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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자년 8월에 광산재중이 부관에게 보낸 첩정(牒呈) [10921] / 기록자료>고문서 / 광산재중자신의 묘지기가 군적(軍籍)에 들어 있어 그 군적(軍籍)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청원하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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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미년 5월에 화민 남태양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2]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태양‧몽양‧유해남태양(南泰陽)과 몽양(夢陽), 유해(有海) 등이 여러번 자신들의 청원(請願)에 불만족하여 올린 소지(所志)로 산송(山訟)에 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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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자년 8월에 남면 조항산 동민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3] / 기록자료>고문서 / 남면 조항산 동민남면(南面) 조항산(鳥項山) 동민(洞民)들이 올린 소지(少志)로 자신들의 동네는 유산(柳山)과는 불과 수삼리(數三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이곳에 초가를 짓고 화전(火田)을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