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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소지(所志)(題音)[1092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경계가 분명하다면 대동민(大同民)이 속여 호소하는 일은 천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제사(題辭)이다. 소지(所志)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없는 상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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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미년 4월에 화민 남경림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5]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경림 등 59인남경림(南景霖)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집안에서 조천(祧遷)하려고 하는데 따로 묘우(廟宇)를 세움에 관하여 청하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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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미년 5월에 화민 남적만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6]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적만남적만(南迪萬)만 들이 올린 소지(所志)로 저번 원동(元洞)의 박상인(朴喪人)이 웅창산(熊倉山)의 산송(山訟)에 관하여 소지를 올려 제음(題音)을 받아 급히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었는데 이는 관(官)을 속여서 그리한 것이라고 청원하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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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미년 5월에 화민 남혜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7]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혜만 등 57인남혜만(南惠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에 관하여 수령은 제사(題辭)에서 별묘(別廟)와 산정(山亭)이 나란히 있는 것은 의아한 단서가 된다. 산정(山亭)을 둔다면 별묘(別廟)를 헐어야 할 것이고 별묘(別廟)를 둔다면 산정(山亭)을 헐어야 할 것이니 한가지를 행한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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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미년 4월에 화민 남처양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28]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처양 등남처양(南處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마을에 온 사람을 자신이 처지가 딱하여 자신이 돈을 주고 샀는데 이 사람이 봉수군적(烽燧軍籍)에 편입이 되었으니 바로잡아 달라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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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해년 10월에 죄민 남기환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原情)[10929]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남기환남기환(南基煥)이 옥에 있으면서 청원(請願)한 글로 자신의 아버지의 무덤아래 다른 사람의 무덤이 세워지자 이를 파헤쳐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자신의 처지를 간청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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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신미년 6월에 화민 남혜만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30]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혜만 등남혜만(南惠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선조의 묘아래 별묘(別廟)를 짓는 것은 사대부들의 관례이니 허락해 달라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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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미년 5월에 화민 남태양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31]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태양‧몽양‧유해남태양(南泰陽)과 몽양(夢陽), 유해(有海)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박상순(朴相純)과 약수동(藥水洞)의 산사(山事)로 다시 시비를 하고 있으니 이는 차마 볼 수가 없는 일이라고 올린 소지(所志)인데 수령은 한쪽 말만으로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서로 화해할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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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유산동장 및 지사에게 올린 소지(所志)[1093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산동(柳山洞)의 동장(洞長)과 지사(知事)에게 전한 글로 몰래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폐단에 관해서 알리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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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유년 12월에 화민 남국시가 부관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33]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국시강희(康熙) 44년 12월 18일에 유학(幼學) 남국시(南國蓍)의 명문(明文)으로 어쩔 수 없이 노비를 방매(放賣)할 수 밖에 없다는 사정과 함께 노비의 이름을 적어 파는 노비매매문기(奴婢賣買文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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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에 화민 남국시가 올린 소지(所志) [10934]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국시강희(康熙) 33년에 남국시(南國蓍)가 적은 명문(明文)으로 박서일(朴西日)에게 소송으로 얻은 남면(南面)의 화전(花田)을 판다는 내용을 적은 매매문기(賣買文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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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남국시(南國蓍)가 적은 명문(明文)[10935]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국시남국시(南國蓍)가 적은 명문(明文)으로 자신 소유의 노비를 판다는 매매문기(賣買文記) 등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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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입안(立案) [1093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앞부분은 완의(完議)로 훼손이 되어 구체적으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며, 뒷부분에는 영양남씨 송정공(松亭公) 수(須)의 셋째 아들 전(荃)의 5대손 난고(蘭皐) 남경훈(南慶薰 ; 1572∼1612)의 셋째 아들 숙(俶)의 파보가 기록되어 있어 집안계보를 이해하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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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묘년 1월에 무곡호노 장동이 관사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37] / 기록자료>고문서 / 무곡호노 장동묘곡호노(畝谷戶奴) 장동(長同)이 자신의 집앞 큰 길가에 버섯을 키우는 논을 만들었는데 반노(班奴)인 안복수(安卜守)가 또 개간을 하여 갈아먹었는데 서로간의 경계에 관해 바로잡아 줄 것을 청원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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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해년 7월에 원고 남노 암전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38] / 기록자료>고문서 / 원고 남노 암전원고남(元皐南)의 노(奴) 암전(巖田)의 이름으로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상전(上典) 집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노비가 있었는데 모두 도망가고 지금은 세 놈 밖에 없는데 이 마저 군정(軍丁)에 소속에 되었으니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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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자년 10월에 화민 남두양이 올린 소지(所志) [10939]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두양남두양(南斗陽)이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부리고 있던 종인 팔금(八今)의 모자(母子)를 속노(贖奴)하였는데 호장(戶長)이 마음대로 일을 꾸며 부당한 일을 당하였다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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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진년 9월에 겸민 남태만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0] / 기록자료>고문서 / 겸민 남태만남태만(南泰萬)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 집안의 조카인 경복(景復)이 속노(贖奴)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여 여러 번 소지(所志)올렸으나 자신의 바람대로 되지 않아 다시 올린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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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진년 8월에 화민 남유로가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1]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유로남유로(南有魯)가 올린 소지로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부리고 있던 종들 가운데 군적(軍籍)에 편입이 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바로잡아 달라는 소지로 제사(題辭)에서 마땅히 조사할 것이라고 답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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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오년 7월에 원고 남노 암전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2] / 기록자료>고문서 / 원고 남노 암전원고남(元皐南)의 노(奴) 암전(巖田)의 이름으로 올린 소지(所志)로 자신의 상전(上典)의 집안에서 오랫동안 부리고 있던 종들은 모두 도망가고 남아 있는 종들도 군정(軍丁)에 편입이 되었으니 이는 잘못이라고 아뢰는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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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유년 2월에 경주 이헌석 등이 대종백 태자(예조판서)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3]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 이헌석 등 31인경주에 사는 생원(生員) 이헌석(李憲錫)과 진사 이정익(李鼎益), 성주(星州)의 진사(進士) 도우황(都禹璜) 등이 올린 글로 진사(進士) 남길(南佶)은 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사람의 후손으로 이는 곽재우의 문집에도 있는 사실이라고 하면서 그의 행적이 묻혔으니 바로잡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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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진년 2월에 영해 유생 권도정 등이 순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4]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생 권도정 등영해(寧海)의 유생(幼生) 권도정(權度貞), 박운영(朴運永), 백하운(白河運)등의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진사(進士) 남길(南佶)에 관한 내용의 글을 이전에 올려 제사(題辭)에 비석을 세우는 것은 휼륭한 일이라고 하면서 물러나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일이 제대로 되지출처 : 유교넷 -
246222
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12월에 영해 유학 이상유 등이 겸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5]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학 이상유 등영해(寧海)의 유생(幼生) 이상유(李相儒) 등이 올린 글로 남길(南佶)의 훌륭한 행적이 묻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니 드러나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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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12월에 영해 화민 남진양 등이 겸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6]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화민 남진양 등영해(寧海)의 남진양(南震陽), 남공수(南公壽) 등이 올린 글로 선조(先祖)인 안분당(安分堂) 선생의 뛰어난 행적이 묻힌 것을 안타까이 여겨 여러 번 올린 글로 내용은 이전의 글과 유사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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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1월에 이재소 등이 순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7] / 기록자료>고문서 / 이재소 등경주(慶州)의 진사(進士) 이재소(李在韶), 선산(先山)의 진사(進士) 최운석(崔雲錫) 등이 연명(聯名)하여 순찰사에게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의 행적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올린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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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2월에 김우수 등이 순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8] / 기록자료>고문서 / 김우수 등안동(安東)의 진사(進士) 김우수(金遇洙), 경주(慶州) 진사(進士) 이호상(李琥祥)이 연명(聯名)하여 순찰사(巡察使)에게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조사를 하여 그의 훌륭함을 드러나게 해 달라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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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7월에 화민 남경언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49]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남경언 등남경언(南景彦), 남유석(南有奭), 남태환(南泰煥) 등이 올릴 글로 자신들의 선조(先祖)인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에 관한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밝혀 줄 것을 건의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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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술년 3월에 화민 백형옥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0]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백형옥 등백형옥(白衡玉)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에 관한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밝혀 줄 것을 건의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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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을묘년 1월에 이재각 등이 순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1] / 기록자료>고문서 / 이재각 등경주(慶州)의 생원(生員) 이재각(李在珏)과 안동(安東)의 생원(生員) 권대규(權大奎)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행적에 바른 우뚝한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29
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12월에 박운영 등이 수의사도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2] / 기록자료>고문서 / 박운영 등영해(寧海)의 유학(幼學) 박운영(朴運永)과 이상적(李相勣) 등이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0
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오년 1월에 이만유 등이 수의사도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3]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유 등예안(禮安)의 진사(進士) 이만유(李晩裕)와 경주(慶州)의 생원(生員) 이호상(李琥祥)등의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1
영양남씨 난고종택 정사년 12월에 남고 등이 수의사도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4] / 기록자료>고문서 / 남고 등영해(寧海)의 생원(生員) 남고(南皐)와 경주(慶州)의 진사(進士) 남기항(南基恒)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2
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오년 9월에 영해 유생 남경택 등이 올린 소지(所志) [10955]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유생 남경택 등영해(寧海)의 유생(儒生) 남경택(南景宅)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3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0월에 경상도 유생 이만승 등이 예조당상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6] / 기록자료>고문서 / 경상도 유생 이만승 등경상도(慶尙道)의 진사(進士) 이만승(李晩昇)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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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인년 11월에 영해 박영호 등이 수의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7]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 박영호 등영해(寧海) 진사(進士) 박영호(朴永昊)와 유학(幼學) 이상적(李相勣) 등이 연명(聯名)하여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우뚝한 행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제대된 행적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5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인년 10월에 화민 권도연 등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10958]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권도연 등권도연(權度然)과 이상건(李相健) 등이 연명(聯名)하여 수령에게 올린 글로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의 밝혀지지 않은 행적을 말하고 그기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6236
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인년(1722년) 남이만(南履萬)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5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임인년(1722년)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묘곡리(畝谷里)에 사는 남이만(南履萬)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29세이다. 아버지는 국시(國蓍), 조부는 병조좌랑 겸 춘춘관기사관을 역임한 노명(老明 ; 1642∼1721)이고, 증조부는 종사랑 상주(尙周)이다. 외가와출처 : 유교넷 -
246237
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오년 1월에 부윤이 남두극에게 보낸 준호구(準戶口)[10960] / 기록자료>고문서 / 경주부 부윤무오년 1월 경주부(慶州府)에서 발행한 준호구(準戶口)로 경주부(慶州府) 내동면 망덕리 2통 4호 에 사는 유학 남두극(南斗極)의 이름을 유화(有華)로 고친 것을 증명한 내용으로 나이와 본관 증조부 조부 부모 외조 처 외조부의 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46238
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자년 4월에 남경복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1] / 기록자료>고문서 / 생원 남경복(34세)병자년(1756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고리(元臯里)에 사는 남경복(南景復)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34세이다. 아버지는 이만(履萬), 조부는 국시(國蓍), 증조부는 병조좌랑 겸 춘춘관기사관을 역임한 노명(老明 ; 1642∼1721)이다. 외가와 처가출처 : 유교넷 -
246239
영양남씨 난고종택 무술년 1월에 남성모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2]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성모(19세)무술년(1898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에 사는 남성모(南聖模)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19세이다. 아버지는 양선(養善), 조부는 준행(駿行), 증조부는 효원(孝源)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노비의 나이와출처 : 유교넷 -
246240
영양남씨 난고종택 임오년 1월에 남효근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3]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효근(62세)임오년(1882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 제1통 1호에 사는 남효근(南孝根)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62세이다. 아버지는 기환(基煥), 조부는 유로(有魯), 증조부는 두양(斗陽)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출처 : 유교넷 -
246241
영양남씨 난고종택 신유년 1월에 남효근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4]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효근(41세)신유년(1861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 제2통 5호에 사는 남효근(南孝根)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41세이다. 아버지는 기환(基煥), 조부는 유로(有魯), 증조부는 두양(斗陽)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출처 : 유교넷 -
246242
영양남씨 난고종택 경오년 1월에 남교연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5]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교연(50세)경오년(1870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 제3통 3호에 사는 남교연(南敎淵)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50세이다. 아버지는 기환(基煥), 조부는 유로(有魯), 증조부는 두양(斗陽)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출처 : 유교넷 -
246243
영양남씨 난고종택 기유년 5월에 남이만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6]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이만(36세)기유년(1729년) 5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묘곡리(畝谷里)에 사는 남이만(南履萬)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36세이다. 아버지 국시(國蓍)가 죽었기 때문에 호주를 승계한 것이다. 조부는 병조좌랑 겸 춘춘관기사관을 역임한 노명(老明 ; 1642∼1721)이고,출처 : 유교넷 -
246244
영양남씨 난고종택 병오년에 남제양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7]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제양(32세)병오식년(1786년)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고리(元臯里)에 사는 남제양(南濟陽)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32세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경복(景復), 조부는 이만(履萬), 증조부는 국시(國蓍)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의 전체출처 : 유교넷 -
246245
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1월에 남효근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효근(59세)기묘년(1879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 제2통 1호에 사는 남효근(南孝根)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59세이다. 아버지는 기환(基煥), 조부는 유로(有魯), 증조부는 두양(斗陽)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출처 : 유교넷 -
246246
영양남씨 난고종택 주인공미상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6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호주에 관한 부분이 훼손이 되어서 호주는 누군지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나이는 55세였다. 많은 숫자의 노비를 거느렸던 것으로 보아 당시 부유한 집안이였던 것 같다. 그중에 몇 명은 도망갔다고 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46247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자년 1월에 남두양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70]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두양(58세)갑자년(1804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고리(元臯里)에 사는 남두양(南斗陽)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58세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경복(景復), 조부는 이만(履萬), 증조부는 국시(國蓍)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의출처 : 유교넷 -
246248
영양남씨 난고종택 갑자년 4월에 남이만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71]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이만(51세)갑자년(1744년) 4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묘곡리(畝谷里)에 사는 남이만(南履萬)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51세이다. 아버지 국시(國蓍), 조부는 병조좌랑 겸 춘춘관기사관을 역임한 노명(老明 ; 1642∼1721)이고, 증조부는 종사랑 상주(尙周)이다. 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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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계유년 1월에 남경복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72]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경복(31세)계유년(1753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묘곡리(畝谷里)에 사는 남경복(南景復)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31세이다. 아버지 이만(履萬)이 죽었기 때문에 호주를 승계한 것이다. 조부는 국시(國蓍), 증조부는 병조좌랑 겸 춘춘관기사관을 역임한 노명(老明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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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난고종택 기묘년 1월에 남효원의 호구단자(戶口單子) [10973]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효원(61세)기묘년(1879년) 정월에 작성한 것으로 남면(南面) 원구리(元邱里) 제1통 5호에 사는 남효원(南孝源)의 호구단자이다. 나이는 61세이다. 아버지는 기환(基煥), 조부는 유로(有魯), 증조부는 두양(斗陽)이다. 외가와 처가의 인적사항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집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