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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10월 하회 유도사(柳都事)가 작성한 수표(手標) / 기록자료>고문서 / 류도사10월 28일에 하회 류도사(柳都事)가 작성한 수표(手標)이다. 소작하던 논 16마지기와 밭 20마지기를 1400량에 팔았음을 증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7452
정묘년 3월 이학수(李學秀)가 작성한 수기(手記) / 기록자료>고문서 / 자필기주 이학수정묘년 3월 17일 이학수(李學秀)가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돈 100량을 빌리면서 4월 그믐까지 갚기로 약속하고 1량당 3푼의 이자를 계산하고 갚기로 약속하고 있다. 증인은 김흥성(金興聲)과 김택림(金宅林)이다.출처 : 유교넷 -
247453
병인년 2월 상전(上典) 신(申) 정언(正言)댁에서 종 억득(憶得)에게 준 수기(手記) / 기록자료>고문서 / 상전 신정언댁병인년 2월 17일 상전(上典) 신정언(申正言) 댁에서 종 억득(憶得)에게 준 수기(手記)이다. 자신의 땅을 부친 대가로 250량을 갚아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7454
경진년 6월 10일 현풍에 사는 김득복(金得福)이 배 한척에 대해 추심(推尋)을 요청하였기에 본원에서 작성한 사실기(査實記)이다. 선주(船主) 신기인(辛起仁)은 가경 16년(17년의 오류) 임인년(1812) 12월 19일 강오작(姜五作)에게 배를 팔았고, 선주(船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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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3월 하회 유진사댁에서 엄치대(嚴治大)에게 써 준 명문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진사댁무신년 3월 12일 하회 류진사댁에서 엄치대(嚴治大)에게 써 준 명문이다. 밭을 50량에 사면서 만석(萬石)과 다툰것을 언급하면서 그 일에 대해서는 수표가 남아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과 차후에서는 이 명문으로 증거자료로 삼을 것임을 명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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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2월 김순복(金順卜)이 작성한 수표 / 기록자료>고문서 / 표주 김순복임오년 2월 24일 김순복(金順卜)이 작성한 수표이다. 하회 유참판댁 산아래에 있는 땅을 무식한 마을 주민이 몰래 팔았다. 이 사실을 유참판을 알게 되어 결국 50량을 판 사람에게 돌려주고 산은 유참판댁으로 돌려주었으며, 이 후로는 잡담이 없을 것임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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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6년(1931) 음력 5월 하회유씨 문중에서 작성한 서약서 / 기록자료>고문서 / 문중대표인 류동락 등 6인소화 6년(1931) 음력 5월 16일에 하회류씨 문중에서 작성한 서약서이다. 작년 4월 6일에 작성한 460평에 대한 표기(標記)는 추후 찾아서 두기로 하고, 차후에 일이 생기면 문중 전부가 책임을 부담하기로 서약한 것이다. 당시 서약자로는 문중을 대표한 류동락(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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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장례 때 사용된 물품의 목록을 기록한 문기(文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술년 장례 때 사용된 물품의 목록을 기록한 문기(文記)이다. 장구(葬具)로는 병풍 등 32종류가 사용되었고, 면례구(緬禮具)는 판자(板子)ㆍ백지(白紙) 등 9종류이고, 제주구(題主具)는 필연묵(筆硯墨) 등 7종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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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3월 김해(金海) 예방(禮房) 향소(鄕所) 노벽문(盧璧文)이 작성한 부조기(扶助記) / 기록자료>고문서 / 노벽문무술년 3월 김해(金海) 예방(禮房) 향소(鄕所) 노벽문(盧璧文)이 작성한 부조기(扶助記)이다. 당시 유리(由吏)는 배동오(裵東五), 이방(吏房)은 배동즙(裵東楫), 호장(戶長)은 배한조(裵漢祚)였다. 부의받은 물품은 정목(正木) 2필(疋), 장지(壯紙) 1속(束),출처 : 유교넷 -
247460
신축년 4월 2일 유(柳) 아무개가 작성한 물목단자(物目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신축년 4월 2일 류(柳) 아무개가 작성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물목으로는 현(玄) 1단(段)과 훈(纁) 1단(段)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247461
제수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수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물목으로는 청주(淸酒)ㆍ소주(燒酒)ㆍ약주(藥酒) 각 1호(壺), 녹각(鹿角) 1부(部), 생저(生楮) 1수(首), 문어(文魚)ㆍ대구(大口) 각 1미(尾), 북어(北魚)ㆍ청어(靑魚) 각 1급(級), 해물출처 : 유교넷 -
247462
제수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수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물목으로는 약주(藥酒)ㆍ청주(淸酒)소주(燒酒) 각 1호(壺), 익강(溺江) 1좌(坐), 운혜(雲鞋) 1건, 색대(色帶) 1부(部), 우(牛) 반 척(隻) 등 모두 48종류의 물목이 기록되어 있다. 해산출처 : 유교넷 -
247463
가경 2년(1797) 9월 황동소(黃洞所)가 하회(河回) 유서방댁(柳書房宅)으로 보내는 단자(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동가경 2년(1797) 9월 미동(美洞)에서 하회(河回) 류서방댁(柳書房宅)으로 보내는 단자(單子)이다. 자모(紫帽)와 흑모(黑帽) 각 1립(立), 진시(眞柿) 3개, 청매당(靑梅糖) 1봉지를 보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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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祭需) 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수(祭需) 물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모두 8종류에 그 밑에 세부품목을 기록하고 있다. 물품을 사기전에 물목을 작성해서 직접구입하는 사람에게 주고, 물목단자를 받은 사람은 이것을 토대로 물품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구입하였으며, 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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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2월 군자감(軍資監)에서 유(柳) 아무개 댁으로 보내는 단자(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무술년 2월 군자감(軍資監)에서 류(柳) 아무개 댁으로 보내는 단자(單子)이다. 장사지낸 뒤에 보낸 부조로 쌀 9두(가격은 3량 5전), 중거(中炬) 1동(同)과 대전(代錢) 3전, 4량되는 촉 1쌍 대신에 2량되는 시 2쌍과 대전 2전 4푼이다. 공석(空石) 10랍출처 : 유교넷 -
247466
정유년 12월 안동부사가 작성한 제수 몰목단자(物目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유년 12월 27일 안동부사 이(李) 아무개가 작성한 제수 몰목단자이다. 물목은 장지(壯紙) 1속(束), 백지(白紙) 3속(束), 황촉(黃燭) 2쌍(雙), 포(脯) 1첩(貼)이다.출처 : 유교넷 -
247467
1811년(가경 15) 11월 유이좌(柳台佐)가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로 있을때 올린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류이좌1811년(가경 15) 11월에 류이좌(柳台佐 : 1763∼1837)가 홍문관(弘文館) 부교리(副校理)로 있을때 올린 상소문이다. 거듭되는 황은에 몸둘 바를 모르겠으며, 몸이 아파서 제수하신 직분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체직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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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중(姜泰重)에게 죄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작성하기 위한 초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강태중(姜泰重)에게 죄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작성하기 위한 초문이다. 계사년 3월 향례를 지낼 때 한밤중에 무례배들이 갑자기 몽둥이를 들고 재중(齋中)으로 들어와 유생들을 구타하고 의관을 빼앗고, 사당에 들어와서는 제물(祭物)과 제기(祭器)를 흩어버리고 창고에 들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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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좌(柳台佐)가 시강원(侍講院) 보덕(輔德)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 / 기록자료>고문서 / 류이좌류이좌(柳台佐 : 1763∼1837)가 시강원(侍講院) 보덕(輔德)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이다. 세자를 보도하는 직무는 학식이 넓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적임자인데, 자신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직분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사람임을 언급하면서 직을 사직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7470
기묘년(1819) 10월 사성(司成) 유이좌(柳台佐)가 이조에 올린 상소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성 류이좌기묘년(1819) 10월에 사성(司成) 류이좌(柳台佐 : 1763∼1837)가 이조에 올린 상소문이다. 천식에 감기까지 더해져 건강이 좋지 않음을 언급하면서 만약 이달까지 왠쾌하지 못하면 자신의 직책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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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경 23년(1818) 6월 유이좌(柳台佐)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직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 / 기록자료>고문서 / 통훈대부사헌부집의 류이좌가경 23년(1818) 6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직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이다. 전하의 은혜로 7년을 강제(講製)로 2년을 기주관(記注官)으로 있게 되었는데, 황공하게 다시 집의를 내려주심에 몸둘 바를 모름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7472
유이좌(柳台佐)가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류이좌(柳台佐 : 1763∼1837)가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을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이다. 지금까지 보살펴주신 은혜도 과분한데 다시 수찬직을 제수하심에 몸둘바를 모른다는 내용과 도성과 영남과의 거리는 500리도 더 되며, 70된 노모가 병들어 백약이 무효인지라, 수찬출처 : 유교넷 -
247473
무술년(1838) 윤4월 안동 하회에 사는 유기목(柳祈睦) 등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류기목 등 2인무술년(1838) 윤4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기목(柳祈睦 : 1802∼1861)ㆍ류교목(柳敎睦) 등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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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815) 11월 하회 유이좌(柳台佐) 등이 투장(偸葬)에 대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류이좌 등 2인을해년(1815) 11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ㆍ류철조(柳喆祚 : 1771∼1842) 등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부친의 무덤이 예천군 다인면 대곡사 부근에 장례를 치렀는데, 얼마전에 용궁 원학리에 사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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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11월 최유복(崔有福)이 어머니 소상일의 사면을 청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최유복정해년 11월 12일에 최유복(崔有福)이 올린 소지(所志)이다. 어머니 소상이 3월 27일이지만 죄인의 처지라, 소상일이라도 갈 수 없기 때문에 잠시 사면해서 소상일을 치르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소지는 고려ㆍ조선시대에 사서(士庶)ㆍ하리(下吏)ㆍ천민(賤民) 등이 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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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학(姜明學)이 안변부사도주(安邊府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덕원현거 강명학덕원현(德源縣)에 사는 강명학(姜命學)이 안변부사도주(安邊府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서울에서 과거공부를 하고 있는 자식에게 돈을 부치려고 서울에 사는 박이춘(朴以春)에게 부탁하여 39엔 4전 5푼의 돈을 보냈으나 아직도 전해주지 않고 도리어 화를 내고 있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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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11월 풍남면 하회 유미동댁(柳美洞宅) 종 석철(石哲)이 사수(社首) 직을 사양하며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류생원 미동댁노 석철무진년 11월에 풍남면 하회에 사는 생원(生員) 류미동댁(柳美洞宅)의 종 석철(石哲)이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자신이 외람되게 사수(社首)에 천거된 것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사수(社首)는 창고를 감독하는 직분인데 자신은 그 일을 감당할만한 성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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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10월 양산 형방이 김해 형방에게 보내는 의송(議送) / 기록자료>고문서 / 양산형방 김(압)경진년 10월 17일 양산형방(梁山刑房)이 김해형방(金海刑房)에게 보내는 의송(議送)이다. 이정인(李精寅)의 아버지 거보(渠父)가 염전을 방매(放賣)한 720량중에 520량을 추구본(秋具本)에게 먼저 갚았는데 불행하게도 죽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사실을 증명하려고출처 : 유교넷 -
247479
병신년 정월 하회 유치춘(柳致春) 등이 못을 수리하는 허가령을 내려달라며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류치권 등병신년 정월에 하회의 화민(化民) 류치춘(柳致春) 등이 성주(城主)에게 보내는 소지이다. 본면의 명동리(命洞里)에 있는 폐지(廢池)를 못을 수리하는 허가령을 내려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47480
갑진년 12월 병산서원 유생 유학(幼學) 이병흠(李秉欽)과 전도사(前都事) 유도헌(柳道獻)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병산서원 유생 이병흠 등 2인갑진년 12월 병산서원 유생 유학(幼學) 이병흠(李秉欽)과 전도사(前都事) 류도헌(柳道獻) 등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병산서원 묘직(廟直)을 광착(撗捉)한 일에 대해서 아직 제음이 내려지지 않았으니, 빨리 제음을 내려 일을 매듭지어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47481
정해년(1827) 11월 하회 유이좌(柳台佐) 등이 투장(偸葬)에 대해 순상(巡相)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도내 안동도민 류이좌 등정해년(1827) 11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ㆍ류철조(柳喆祚 : 1771∼1842) 등이 순상(巡相)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부친의 무덤을 예천군 다인면 대곡사 부근에 장례를 치렀는데, 얼마전에 용궁 원학리(猿鶴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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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10월 하회 유문의(柳文義)댁 종 제영(齊英)이 금양(禁養)과 관련하여 예천 관사주(官司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문의댁 노 제영10월에 하회 류문의(柳文義) 댁 종 제영(齊英)이 예천 관사주(官司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의성군 다인면 대곡암(大谷菴)에 있는 산을 상전(上典)이 금양(禁養 : 나무나 풀 따위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하여 가꿈)하기에 대곡암 승도들이 300량에 샀다. 그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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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1831) 8월 하회 유이좌(柳台佐) 등이 대곡사(大谷寺) 지경의 부모 무덤 문제로 예천 성주(城主)에게 올리는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민 류이좌 등신묘년(1831) 8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ㆍ류철조(柳喆祚 : 1771∼1842) 등이 예천 성주(城主)에게 올리는 소지(所志)이다. 자신의 부모의 무덤이 다인면 대곡사(大谷寺) 외부 지경에 있는데 갑술년(1814) 입장(入葬)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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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3월 안동 하회 유 승지(承旨)댁 노(奴) 돌이(乭伊)가 잣나무를 벌목한 일로 예천관아에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승지댁노 돌이병술년 3월 안동 하회 류 승지(承旨)댁 노(奴) 돌이(乭伊)가 예천관아에 올린 소지(所志)이다. 상전의 부친 무덤이 예천군 다인면 봉평리 뒷산인 비봉산 대곡암 잣나무숲이 우거진 곳에 묻혀 있었다. 대곡암 스님들이 잣나무 숲과 상전의 무덤을 잘 보호하고 있었는데, 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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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815) 11월 하회 유이좌(柳台佐) 등이 부친 무덤 옆에 투장(偸葬)한 일로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류이좌 등을해년(1815) 11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ㆍ류철조(柳喆祚 :1771∼1842) 등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부친의 무덤을 예천군 다인면 대곡사 부근에 장례를 치렀는데, 얼마전에 용궁 원학리(猿鶴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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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815) 11월 대곡암(大谷菴) 승도들이 법당 부근에 몰래 무덤을 쓴 일로 예천 관사주(官司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대곡암 승도을해년(1815) 11월 대곡암(大谷菴) 승도들이 예천 관사주(官司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며칠전 밤에 어떤 사람이 몰래 와서 법당 부근에 무덤을 쓰고 도망갔으니 진상을 조사해서 죄인을 잡아 엄벌을 내려달라는 내용이다. 소지는 고려ㆍ조선시대에 사서(士庶)ㆍ하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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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4월 풍남면 하회 유(柳) 김해(金海)댁 노(奴) 돌이(乭伊)가 잣나무를 벌목한 일로 진영(鎭營)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김해댁노 돌이임오년 4월 풍남면 하회 류(柳) 김해(金海)댁 노(奴) 돌이(乭伊)가 진영(鎭營)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자신의 상전이 부친의 무덤을 예천 대곡사 부근 잣나무숲에 묻어놓고, 대곡사 스님들에게 잣나무를 벌목하지 못하도록 당부했었는데, 얼마전 권성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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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 11월 주촌면 풍산리에 사는 과씨(果氏) 성을 가진 사람이 시집간 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난 일로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주촌면 과성신사년 11월 주촌면 풍산리에 사는 과씨(果氏) 성을 가진 사람이 사도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자신의 딸이 우부면 거인리에 사는 박씨에게 시집을 가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났으니 사건의 전말을 조사해서 딸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내용이다. 소지는 고려ㆍ조선시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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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 2월 주촌면(酒村面) 양씨(梁氏) 과부가 자신에게 분급된 재산 일부가 침해당한 것을 호소하며 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주촌면 양과녀신사년 2월에 주촌면(酒村面)에 사는 양씨(梁氏) 과부가 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여 과부 신세가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분급된 재산 일부가 침해당한 것을 호소하며 되찾게 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7490
갑진년(1904) 11월 유남식(柳南植)이 이장 명령을 이행해줄 것을 요구하며 예천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남식갑진년(1904) 11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남식(柳南植 : 1876∼1941)이 예천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가란 사람이 몰래 자신의 부친의 무덤을 침범해서 산소를 썼기 때문에 관찰부에 알려 15일안으로 이장할 것을 명하였지만, 아직도출처 : 유교넷 -
247491
갑진년(1844) 10월 하회에 사는 유도성(柳道性)이 증조부 무덤 옆에 몰래 쓴 무덤의 이장을 요구하며 예천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도성갑진년(1844) 10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도성(柳道性 : 1823∼1906)이 예천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참판에 증직된 자신의 증조부의 무덤이 현 남쪽 봉평촌(鳳坪村) 뒤에 있었는데, 낙동에 사는 김가란 사람이 몰래 무덤을 썼다. 그래서 관찰부에 알려출처 : 유교넷 -
247492
갑진년(1844) 10월 하회에 사는 유도성(柳道性) 등이 증조부 무덤 옆에 몰래 쓴 무덤의 이장을 요구하며 관찰 합하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도성 등갑진년(1844) 10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도성(柳道性 : 1823∼1906) 등이 관찰 합하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참판에 증직된 자신의 증조부의 무덤이 예천군 남면 봉평촌(鳳坪村) 뒤에 있었는데, 낙동에 사는 김가란 사람이 그 옆에 몰래 무덤을 썼다. 이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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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동면 비봉산(飛鳳山) 동쪽 자락에 있는 류남식(柳南植 : 1876∼1941)의 부친의 무덤과 김가란 사람이 새롭게 쓴 무덤의 경계구역을 자세하게 표시해두고 있다. 판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두 무덤간의 거리를 상세하게 표시해서 증거자료로 남기고 있는 주도면밀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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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1867) 11월 하회에 사는 유광목(柳光睦)이 황귀성(黃貴成)이 쓴 보습록(補拾錄)의 위작 여부에 대해 진영(鎭營)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재최인 류광목 등정묘년(1867) 11월 15일 풍남면 하회리에 사는 자최인(齋衰人) 류광목(柳光睦)이 진영(鎭營)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평해황씨 중에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황귀성(黃貴成)이란 분이 임진왜란때의 일을 기록한 보습록(補拾錄)을 을사년에 소산에 사는 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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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1814) 6월 하회에 사는 유이좌(柳台佐) 등이 부친 무덤 옆의 산소 이장을 청하며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류이좌 등갑술년(1814) 6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이좌(柳台佐 : 1763∼1837)ㆍ류철조(柳喆祚 : 1771∼1842) 등이 예천(醴泉)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시섭(李時燮) 등이 부친의 장례에 와서 행패를 부림에 다시는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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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6월 하회에 유(柳) 교리(校理)댁 노(奴) 돌이(乭伊)가 상전의 모친상에 색리장교(色吏將校)를 내어 호상(護喪)을 해달라며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하회 류교리댁노 돌이을해년 6월 풍남면 하회에 류(柳) 교리(校理)댁의 노(奴) 돌이(乭伊)가 사도주(使道主)에게 올리는 소지(所志)이다. 자신의 상전이 모친상을 당해 집에서 40리 떨어진 다인면 봉평리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장마기간이라서 강물이 많이 불어났지만 부득이 배로 운반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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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1840) 정월 하회에 사는 유기목(柳祈睦) 형제가 예천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류기목 등경자년(1840) 정월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기목(柳祈睦 : 1802∼1861)ㆍ류교목(柳敎睦) 형제가 예천성주에게 올리는 소지(所志)이다. 친산을 수호정계의 일로 진상을 올려 장치국(張致國)ㆍ최재무지(崔才茂之)ㆍ황복동(黃卜同) 등이 먼저 와서 무망(誣罔)한 죄를 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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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인이 혼례일자를 언급 하며 무인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시생 이교인이교인(李敎仁)이 무인(戊寅)년 1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건강에 대해 염려했다. 가르침을 감사하다 하며 혼인 당사자들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참고하여 혼례 일자를 정해 알려 달라고 했다. 평안을 기원하고 마무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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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호 등 2인이 자신의 근황을 언급하며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공복인 엄주호·기복인 엄복영엄주호(嚴柱鎬)·엄복영(嚴福永)이 상중에 있던 갑술(甲戌)년 2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들은 상주로서 슬픔에 처했다고 했다. 최근에 거행된 추모 행사는 유림의 정신을 숭상하고 얼을 받드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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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린이 보내준 시문이 좋다며 경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규린아우인 이규린(李奎麟)이 경오(庚午)년 5월 2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상하게 이끌어 주어 고맙다고 하며 보내준 서찰을 반갑게 받았다고 했다. 자신은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학문의 진보도 없어 염려스럽다고 했다. 보낸 시문은 내용도 좋고 필체도 우아하다고 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