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7751
일원재기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일원재기(一源齋記)」라는 제목의 기문(記文)이다. 송암(松庵) 남공(南公)의 덕망과 학식을 추모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만든 일원재에 써 준 기문(記文)이다. 남공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하고 착한 심성을 지녀 효자라는 명성이 자자했음을 강조했다. 공의 후손 형구출처 : 유교넷 -
247752
이능학이 1920년에 지은 대암기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김능학 - 이능학이능학(李能學, 본관 驪州, 자 明可) 지은 「대암기(大巖記)」라는 제목의 기문(記文)이다. 대암(大巖)을 중심으로 하여 아름답고 웅장하게 펼쳐진 자연경관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47753
대석정산수기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대석정산수기(大石亭山水記)」라는 제목의 기문(記文)이다. 대석정 주위에 펼쳐진 자연경관을 자세하게 묘사한 글이다. 계곡과 냇물, 산이 아름답게 조화된 모습은 일품이라고 칭송했다.출처 : 유교넷 -
247754
송준필이 지은 육의당일고라는 제목의 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송준필송준필(宋浚弼 : 1869 ~ 1943, 본관 冶城, 자 舜佐, 호 恭山, 독립유공) 이 작성한 「육의당일고(六宜堂逸集序)」이다. 권국자(權國子)의 아들 육의당이 남긴 문집 머리에 써 준 글인데 육의당의 행적과 인품과 사상에 대해 서술했다. 육의당은 어려서부터 단아한출처 : 유교넷 -
247755
이석선이 무술년에 김우경의 업적을 칭송하며 지은 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석선이석선(李錫先, 본관 鶴城, 자 進叔)이 무술(戊戌)년 11월 하순에 김우경(金羽卿)이 영남 유림의 전통을 이은 업적을 칭송하고 이를 기리고자 써준 서문(序文)이다. 김우경이 퇴계와 학봉의 유교적 학문 전통을 이어 출중한 선비로 성장하고 후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남길출처 : 유교넷 -
247756
김홍락이 지은 학운김공영갈설첩소서라는 제목의 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지은 「학운김공영갈설첩소서(鶴雲金公營碣稧帖小序)」이다. 학운 김공의 묘비를 세우면서 후손들이 계를 모아 이 일을 성사시킨 내용을 기록한 문건의 서문이다. 김공의 학문과 덕행은 후손이나 많은출처 : 유교넷 -
247757
김홍락이 지은 일원재기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지은 「일원재기(一源齋記)」라는 제목의 기문(記文)이다. 송암(松庵) 남공(南公)의 덕망과 학식을 추모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만든 일원재에 써 준 기문(記文)이다. 남공은 재주가 빼어나고출처 : 유교넷 -
247758
오대조 옥계공의 내력을 기록한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오대조(五代祖) 옥계(玉溪) 공의 사상과 문학적 면모가 담긴 문집 간행과 공의 묘비를 수립하게 된 것은 후손으로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했다. 공의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미담과 평소 덕행을 칭송했다. 그리고 공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와 문중 자손들의 역출처 : 유교넷 -
247759
선고수진감술이라는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슬픈 감회를 표현한 「선고수진감술(先考晬辰感述)」이다. 부친에 대한 감회와 돌아가신 이후의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평소 자신은 불효자로서 아버지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평소 부친은 자상하고 어진 분으로 가출처 : 유교넷 -
247760
정미년에 주상이 사절절차를 시행한 일과를 기록한 일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미(丁未)년 4월 8일에 기록한 일기(日記)로 등사초(謄史抄)이다. 조정에서 주상이 황태자와 함께 사절 절차에 따라 예를 시행한 일과를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247761
정미년에 주상이 신료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일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미(丁未)년 5월 12일에 기록한 일기(日記)로 등사초(謄史抄)이다. 주상이 중명전(重明展)에 납시었을 때 모신 신료들과의 문답을 기록했다. 주로 주상의 건강 상태, 종묘 제례 시행 및 세부적 절차와 역대 주상들의 능에 대한 예우 문제를 다루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47762
정미년에 주상이 신료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일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미(丁未)년 5월 6일에 기록한 일기(日記)로 등사초(謄史抄)이다. 주상이 중명전(重明展)에 납시었을 때 모신 신료들과의 문답을 기록했다. 주로 역대 주상들의 능에 대한 예우 및 종묘 제례와 연관된 질의와 응답 내용을 기록했다. 이어 작은 정각의 비문에 대한 일부출처 : 유교넷 -
247763
정미년에 기록한 등사초라는 일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미(丁未)년 5월 1일에 기록한 일기(日記)로 등사초(謄史抄)이다. 주상이 돈덕전(惇德展) 중추원(中樞院)에 납시었을 때 모신 신료들과의 문답을 기록했다. 주로 능에 대한 예우, 종묘 제례 관련 질의 및 응답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247764
송수근이 스승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송수근송수근(宋壽根, 본관 冶城, 자 康叔, 호 隱圃)이 스승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제자로서 스승을 잃은 슬픔을 푸른 산과 흰 구름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스승을 잃고 의지할 바가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7765
권석호가 스승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석호권석호(權錫鎬)가 스승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망자 높은 학문과 출중한 인격을 지녔다며 그의 평소 덕망을 태산에 비유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니 허전하고 슬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자신은 의지할 대상을 잃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7766
성모가 모계김선생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성모조카인 성모(成模, 본관 義城, 자 賢伯)가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평소에 여러 가족에게 자상한 면모로 덕행을 실천했던 점을 회고했다.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과 고매한 인격은 청산에 길이 빛날 것출처 : 유교넷 -
247767
류영희가 모계김선생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류영희류영희(柳泳熙)가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망자 가문의 훌륭한 영향을 입고 자라나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했다. 글재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고 했다. 말미에는 망자와 사별하는 아픔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247768
이한걸이 모계김선생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한걸이한걸(李漢杰)이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만사(輓詞)이다.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학문적 가르침이 그립고 아쉬운 정을 잊어버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망자가 평소 자신에게 베풀었던 사랑과 관심을 그리워한다고 하며 많은 유림도 그의 죽음을출처 : 유교넷 -
247769
시하생 김동민이 모계선생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동민김동민(金東敏)이 갑신(甲申)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영남 고을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교적 인품과 단정한 선비의 면모를 두루 갖추었다고 했다. 만년에 자신과 사제의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스승의 큰 은혜를 갚을 길이출처 : 유교넷 -
247770
시생 지두석이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지두석지두석(池斗碩)이 계미(癸未)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덕택에 어질고 단아한 선비의 면모를 지녔다고 술회했다. 망자가 후학들을 많이 양성하였으며 유림 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회상했다. 많은 유출처 : 유교넷 -
247771
박기환이 모계 의성 김공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박기환박기환(朴基煥, 본관 密陽, 자 聖化)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자질과 학식을 겸비하여 많은 유림들의 귀감이 되었다고 했다. 그를 잃은 유림들의 슬픔을 헤아릴 길이 없다고 했다. 평소 자신에게출처 : 유교넷 -
247772
이호규가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호규이호규(李昊圭)가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퇴계와 학봉의 영향을 받은 어진 선비로서 난초 향기 같은 분이었다고 술회했다.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우수한 학문과 고결한 인품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마음을출처 : 유교넷 -
247773
변석흠이 모계선생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변석흠변석흠(邊錫欽, 본관 原州, 자 致亨, 호 晴崗)이 갑신(甲申)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고고한 인품과 출중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 유림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주었다고 했다. 특히 후학에게 베풀었던 은혜는출처 : 유교넷 -
247774
황치명이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황치명황치명(黃致明, 본관 平海)이 계미(癸未 )년 4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학문적 재주도 매우 훌륭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망자가 어려서 학봉 김성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유림 사회에서의 역출처 : 유교넷 -
247775
권용국이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용국권용국(權龍國, 본관 安東)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멀리 학가산이 우뚝 솟았다고 했다. 망자가 유교 경전 공부를 가장 급선무로 다루었으며 문장 공부는 그 다음으로 여겼던 점을 강조했다. 유교적 인품과 학문은출처 : 유교넷 -
247776
홍규가 모계 의성김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홍규친척 손자인 김홍규(金洪奎, 본관 義城, 자 應天)가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유교적 인품을 갖추고 학문에 탁월한 성취를 보였던 점을 술회했다. 그리고 심성이 착하고 순수했으며 효도하고 공경하는 일에 앞출처 : 유교넷 -
247777
김기동이 사장 모계 김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기동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김기동(金驥東, 본관 安東, 자 士國, 호 玄圃)이 계미(癸未)년 4월에 사장(査丈)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이들에게 교육적인 감화를 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로 말미암아 어진 후손들이 많출처 : 유교넷 -
247778
김재천이 문소 김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재천김재천(金載天)이 계미(癸未)년 8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성품이 매우 어질고 오래 살면서 많은 덕을 끼쳤다고 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훌륭한 덕성을 길렀으며 고결한 인품과 학문적 업적은 후인들의 추앙을 받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7779
김세기 등 2인이 모계선생 김영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세기·김두상김세기(金世基)·김두상(金斗商)이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의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나 어진 덕행과 고결한 학문을 형성했던 점을 추모했다. 그리고 망자가 많은 후학에게 존경을 받았고 학문과 인격을 갖춘 분이었다고 회상했다.출처 : 유교넷 -
247780
배하식이 모계선생 김공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배하식배하식(裵河植 : 1863 ~ 1961, 본관 興海, 자 義瑞, 호 翠軒)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실천했던 유학자로서의 면모를 회상하며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망자가 베풀었던 정을 생각하면 슬픔이 밀출처 : 유교넷 -
247781
이천복이 모계영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이천복대대로 알고 지내던 이천복(李天馥)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곁에서 부르는 것처럼 부르면서 그립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망자가 만년에 이르도록 유림과 교유하며 유학 진흥과 유림들의 활성화를 위해 노출처 : 유교넷 -
247782
권기백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기백권기백(權奇百 : 1902 ~, 본관 安東, 자 仁博)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글재주로 일찍부터 명성이 자자했으며 어진 덕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했다. 망자 학봉 김성일 가문의 후손으로출처 : 유교넷 -
247783
이수학이 문소 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수학이수학(李洙學)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신에게 어버이 못지않게 자상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었다고 회고했다.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타고난 성품과 고결한 인격을 추모하며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고출처 : 유교넷 -
247784
이만춘이 모계 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시생 이만춘대대로 알고 지내던 이만춘(李萬春)이 을유(乙酉)년 5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 지방 명문가의 후손으로 퇴계 학맥의 연원을 계승하여 우수한 유학자였던 점을 추모했다. 성리학에 근거한 학문적 업적도 칭송하며 그리운 마출처 : 유교넷 -
247785
장이섭이 오헌선생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장이섭장이섭(張理燮 : 1897 ~ 1987, 본관 安東, 자 漢必, 호 可隱)이 을유(乙酉)년 5월에 오헌선생(悟軒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자질과 많은 재주로 말미암아 어려서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서 덕출처 : 유교넷 -
247786
은규표가 모계 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은규표은규표(殷奎杓 : 1895 ~ ?, 본관 辛州)가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교유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망자가 자기의 돌아가신 아버지 묘갈명을 작성해 준출처 : 유교넷 -
247787
이종희 등 2인이 오헌선생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종희·종렬대대로 알고 지내던 이종희(李鍾熙 : 1903 ~ 1949, 본관 碧珍, 자 伯崇, 호 養槿堂)·이종렬(李鍾烈 : 1907 ~ 1998, 본관 碧珍, 자 建夫, 호 毅齊)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정결출처 : 유교넷 -
247788
홍하윤이 모계김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홍하윤홍하윤(洪河潤)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평소 덕행과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던 학문적 은덕을 추모했다. 그리고 평소 그가 유림에게 미친 영향력을 언급하며 추모했다.출처 : 유교넷 -
247789
배무주 등 2인이 모계선생 의성김공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배무주·선욱배무주(裵武周 : 1876 ~ 1963, 자 繼文, 본관 興海)·배선욱(裵善旭 : 1884 ~ 1964, 본관 興海, 자 順逸, 호 可山)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베풀었던 어질고 다정한 면출처 : 유교넷 -
247790
박규찬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박규찬박규찬(朴圭瓚)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 가문의 우수한 전통을 잇고 퇴계의 영향도 받았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뛰어난 재주와 고결한 학문으로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스승을 저 세상으출처 : 유교넷 -
247791
유생 조병철이 모계선생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유생 조병철유생(儒生) 조병철(曺秉哲)이 갑신(甲申)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의 대표적인 가문에서 태어나 조상의 우수한 정신과 학문을 이었다고 했다. 평소 가정에서 효성스럽고 어진 덕성을 발휘하여 많은 가족에게 감화를 주출처 : 유교넷 -
247792
김두국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두국김두국(金斗國)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생전에 유림의 큰 정신적인 지주였다며 망자를 잃은 유림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했다. 망자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보고 벼슬을 그만두고출처 : 유교넷 -
247793
권규락이 의성 김공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권규락권규락(權規洛 : 본관 安東, 자 文叔, 호 松峯)이 갑신(甲申)년 3월에 의성김공(義城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초상 때에는 자신이 질병으로 직접 조문하지 못했다며 대상(大祥)을 당해 슬픈 마음으로 제문을 올린다고 했다. 망자의 충효 정신과 벼슬출처 : 유교넷 -
247794
권영일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권영일권영일(權寧一)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유교적 인품을 지녔으며 많은 유림 활동을 통해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망자의 충효 정신과 학문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출처 : 유교넷 -
247795
송기식이 모계선생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송기식송기식(宋基植 : 1878 ~ 1949, 본관 鎭川, 자 鞏弼, 호 海窓)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탈상을 맞아 송기식은 질병으로 조문을 하지 못했지만 제문을 올리며 추모한다고 했다. 망자가 영남 지방출처 : 유교넷 -
247796
이교인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시생 이교인가르침을 받았던 이교인(李敎仁)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사별해야 하는 아픔을 서두에서부터 간절하게 묘사했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영향을 받아 어질고 단아한 선비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던 점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247797
박병인이 오헌선생을 위해 1884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 박병인대대로 알고 지내는 사이인 박병인(朴柄寅 : 1882 ~1941, 본관 高靈, 자 四初, 호 倉農)이 갑신(甲申)년 3월에 오헌선생(悟軒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타고난 재주가 빼어나고 충효 정신이 투철했던 점을 회고하면서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망출처 : 유교넷 -
247798
이태복이 문소 김공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태복사위인 이태복(李泰馥 : 본관 韓山, 자 大叔)이 갑신(甲申)년 3월에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에게 학문도 전해 받고 인격적 감화도 받았다고 했다. 망자의 우수한 가문 전통과 학문적 업적에 대해 강조했다. 망자의 유교적인 인품과 많은출처 : 유교넷 -
247799
김형식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형식김형식(金馨植)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고 난 이후에 높은 산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며 슬픔을 억누른다고 했다. 망자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유교적 인품과 어진 선비의 자질을 갖추었던 점을 강조했출처 : 유교넷 -
247800
김병문이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자 병문친척인 김병문(金秉文 : 본관 義城, 자 聖三, 호 鶴天)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남긴 아름다운 행적을 추모하며 만년에 독서와 사색, 후학 양성에 주력했던 점을 회상했다. 망자가 가문을 빛내고 자손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