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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도가 문소김영공을 위해 194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명도이명도(李明燾 : 1893 ~ 1966, 본관 羽溪, 자 舜必)가 계미(癸未)년 3월에 문소김령공(聞韶金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이명도는 상주의 몸이기 때문에 직접 달려가 조문을 하지 못한 채 제문을 보내어 슬픔을 전한다고 했다. 망자의 타고난 인품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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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손 김이 모계영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정환친척 손자인 김(金玎煥 : 본관 義城, 자 丁玉)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영공(某溪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사오 십년 동안 모신 것을 추억하면서 망자의 타고난 학문적 자질과 어진 심성을 추모했다. 망자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늘 자손들을 어질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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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상이 문소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송봉상송봉상(宋鳳祥 : 본관 楊川, 자 洛卿)이 을유(乙酉)년 3월에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퇴계의 학문 전통과 학봉 김성일의 가문의 유업을 이어받아 훌륭한 인물로 성장했다고 술회했다. 망자가 생전에 조용히 사색하며 책을 읽던 모습과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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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한조가 모계선생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채한조채한조(蔡漢祚)가 갑신(甲申)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산이 위엄을 지키고 구슬이 밝음을 지니고 있듯이 망자가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학문적 업적을 지녔다고 했다. 망자가 평소 책을 읽으며 후학을 알뜰하게 가르쳐 많은 문하생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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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3월에 김기동이 모계선생의 영전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기동사돈 사인 김기동(金驥東 : 본관 安東, 자 士國, 호 玄圃)이 갑신(甲申)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퇴계의 학문 전통을 잇고 영남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진 선비로 성장했음을 강조했다. 망자가 출중한 재주로 급제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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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극락이 종형 모계선생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극락사촌 아우 극락(極洛)이 갑신(甲申)년 3월에 사촌형인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망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고 했다. 망자의 생전 여러 가지 추억을 더듬으며 슬퍼했다. 극락은 망자로부터 유교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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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순 등 2인이 모계 김영공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기순·기돈이기순(李基淳)·이기돈(李基敦)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김령공(某溪金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퇴계와 학봉의 학문을 계승했던 점과 영남 유림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던 점을 회상했다. 자신은 다행하게도 망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며 망자의 우수한 학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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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용이 모계선생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후생 안국용안국용(安國鎔 : 1880 ~ 1954, 본관 順興, 자 允兆, 호 美山)이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돌아가신 부친의 친구였던 점을 강조하며 평소 자신은 망자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랐다고 했다. 망자의 우수한 학문과 벼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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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호가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균호이균호(李均鎬 : 본관 眞城, 자 天可, 호 曙山)가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가문의 우수성과 망자의 타고난 인품과 학문 정신을 회상하며 추모했다. 망자의 유림 활동과 후학 양성 등에 대해 언급하며 그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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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채가 모계선생을 위해 임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안상채안상채(安相采 : 본관 順興, 자 世有, 호 南間)가 임오(壬午)년 4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가문 배경과 영남 유림에서의 역할 수행을 강조했다. 망자는 큰 뜻을 펼치지 못했던 것은 유림의 불행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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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희가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서병희대대로 알고 지내던 서병희(徐丙禧)가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전통성을 이어 어질고 고결한 선비로 성장했던 배경을 강조했다. 벼슬길에 나갔지만 어려운 시국 때문에 결국 큰 뜻을 펴지 못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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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도가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창도대대로 알고 지내던 이창도(李昌燾)가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망자의 가문 배경과 퇴계, 학봉의 학문 전통을 계승한 점을 주목하여 술회했다. 망자가 유교적 교양과 어진 인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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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이 모계 김영공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심제 김동진김동진(金東鎭 : 본관 宣城, 자 國卿, 호 貞山)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김령공(某溪金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빼어난 재주를 지니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지만 시국의 어려움 때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와서 후학을 양성했던 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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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필이 모계김공을 위해 194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동문제 송준필아우뻘인 송준필(宋浚弼 : 1869 ~1943, 본관 冶城, 자 舜佐, 호 恭山, 독립유공자)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김공(某溪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만년에 질병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난 것을 애석하게 여긴다며 망자의 출중한 재주와 인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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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상이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우 장윤상벗인 장윤상(張允相)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某溪) 김공(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효성과 우애 정신을 높이 기리며 죽음을 애석해 하였다. 망자의 고결하고 강직한 성품과 학문 정신에 대해 칭송하며 사별의 아픔을 그려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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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이정기가 오헌선생 김공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동문 이정기동문인 이정기(李貞基 : 1872 ~ 1945, 본관 碧珍, 자 見可, 호 濟西)가 갑신(甲申)년 3월에 월오헌선생(月悟軒先生) 김공(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학문 연원은 퇴계, 학봉에서 비롯되었다며 불행한 만년의 생활이 애석하다고 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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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호가 모계영공을 위해 194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계 이덕호대대로 알고 지낸 이덕호(李悳鎬 : 1904 ~ 1987, 본관 載寧, 자 聖直)가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령공(某溪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만년에 질병으로 고생했던 점을 회상하며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망자가 만년에 은거하며 지낸 시절과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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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황상욱 등이 모계김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생 황상욱 등황상욱(黃相旭) 등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선생(金先生)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영남 지방 명문가 후손으로 퇴계, 학봉의 학문 전통을 계승했던 점을 강조했다. 망자가 타고난 재주와 어진 성품을 바탕으로 많은 감화를 주었으며 유림 사회에서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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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하생 허육이 모계 김영공을 위해 188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허육허육(許堉 : 1865 ~ 1938, 본관 敬夫 자 敬夫, 호 山+者西)이 계미(癸未)년 4월에 모계김령공(某溪金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명문가 후손으로 퇴계와 학봉의 학문을 계승하여 출중한 인물로 성장했던 점을 추모했다. 망자의 충효 정신과 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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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환이 모계선생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하중환하중환(河中煥 : 1875 ~ 1952, 본관 晉州, 자 羲文, 호 砥峯)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군자다운 기상과 의리 정신을 칭송하며 퇴계와 학봉의 학문 전통을 계승했던 점에 대해 언급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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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묵이 문소 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김원묵김원묵(金元默)이 을유(乙酉)년 5월에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고결한 학문 정신과 의리 정신을 회상하며 추모했다. 망자가 유림에게 미친 영향과 그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망자가 평소 실천했던 충효 정신과 아름다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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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가 모계선생을 위해 계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김성도친척이인 김성도(金聲燾)가 계미(癸未)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퇴계가 남긴 학문을 전해 받아 출중한 선비로 성장했던 점을 강조했다. 유교적인 인품과 성실한 학문 탐구력에 대해 언급하며 벼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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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낙구가 모계선생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송낙구송낙구(宋洛九 : 1880 ~ 1957, 본관 延安, 자 中極, 호 晩儂)가 을유(乙酉)년 5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학봉 김성일 이후 학봉의 학문 적통을 이어 왔으며 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며 슬퍼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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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가 승지 문소김공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김헌수김헌수(金憲洙, 본관 廣州, 자 殷祚)가 을유(乙酉)년 3월에 승지(承旨) 문소김공(聞韶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명문가 후손으로 어진 덕성과 출중한 학문을 이룬 선비였다 하고 효성과 우애가 독실했던 점을 추모했다. 망자가 팔십 생애를 살면서 후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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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봉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오봉권오봉(權五鳳 : 본관 安東, 자 文卿)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도덕과 학문이 우수했던 점을 칭송하며 평소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덕을 추모했다. 망자 생전에 성리학 연구를 최우선 과제로 하였으며 문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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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 철모가 족숙 모계영공을 위해 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철모친척 조카인 김철모(金哲模 : 본관 義城, 자 胤明, 호 獨醒齊)가 갑신(甲申)년 3월에 친척 숙부인 모계령공(某溪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성을 이어 출중한 재주와 학문으로 가문을 빛낸 인물이었다고 했다. 망자의 효성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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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손 김기섭 등 3인이 모계선생을 위해 을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기섭·족종제 대락·도락친척 손자인 김기섭(金基燮 : 본관 義城, 자 中彦, 호 白下, 독립유공자) 사촌 동생인 대락(大洛)과 도락(導洛)이 을유(乙酉)년 3월에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남자로 태어나 불행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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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김유락이 종백형 모계영공을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유락사촌 동생인 김유락(金瑬洛 : 1874 ~ 1952, 본관 義城, 자 流玉)이 을유(乙酉)년 3월에 큰 사촌형인 모계영공(某溪令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동고동락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영원한 사별의 아픔을 표현했다. 특히 형이 생전에 자신과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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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규가 김홍락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규권상규(權相圭 : 본관 安東, 자 致三, 호 采山)가 무진(戊辰)년 10월에 김홍락(金鴻洛)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壯)이다. 김홍락은 학봉 김성일의 후예로서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12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 형인 서산과 척암 김도화에게 학문을 전수받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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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이 부친 치선의 행적을 기록한 선조도정부군유사 / 기록자료>고문서 / 상현상현(象玄)이 무진(戊辰)년 10월에 돌아가신 부친 치선(致宣)의 평생 행적을 기록환「선조도정부군유사(先考都正府君遺事)」이다. 치선의 일생 행적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는데 성장 과정에서의 어질고 고결한 미담과 일화를 기록했다. 치선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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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안찬중의 행적을 기록한 율리안공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某溪) 안찬중(安燦重)의 행적을 기록한 「율리안공행장(栗圃安公行狀)」이다. 서두에서 순흥 안씨 선대 가계를 정리하고 집안 대대로 문학과 도덕으로 명성을 이어왔음을 강조했다. 안찬중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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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이석기의 행적을 기록한 처사학성이공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某溪) 안찬중(安燦重)이 이석기(李錫機 : 鶴城)의 행적을 기록한 「처사학성이공묘갈명(處士鶴城李公墓碣銘)」이다. 서두에서 학성 이씨 선대 가계를 정리하고 집안 대대로 효성과 절의로 명성을 이어왔음을 강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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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의 행적을 기록한 초은선유유사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초은선조유유사(樵隱先祖有遺事)」라는 글로 초은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기록했다. 초은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을 지녀 일찍이 사마시에도 합격했지만 사화의 발생 조짐을 보고는 귀향하여 여생을 마친 인물이다. 한강 정구의 추천을 받았으며 주변 인물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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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직이 노응석의 행적일 기록한 나포노공묘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상직친척 조카인 상직(相稷)이 노응석(盧應奭 : 光州)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 「나포노공묘지명(蘿圃盧公墓誌銘)」이다. 노응석 집안 대대로 이어온 가문 전통을 언급하고 선대 가계를 기술했다. 노응석의 성장 배경과 학문 활동과 유림 활동, 교유 상황, 후손의 현황에 대해 서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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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임태상의 행적을 기록한 종사랑 행 홍릉참봉 예천 임군 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임태상(林泰相)의 행적을 기록한 「종사랑 행 홍릉참봉 예천 임군 묘갈명(從仕郞 行 洪陵參奉 醴泉 林君 墓碣銘)」이다. 서두에서 예천 임씨 선대 가계를 정리하고 대대로 문학과 도덕으로 명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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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기록한 증조봉대부동몽교관이양재고공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 이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추증되고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역임한 이양재(二養齋) 고술겸(高述謙 : 開城)의 행적을 기록한 「증조봉대부동몽교관이양재고공묘갈명(贈朝奉大夫童蒙敎官二養齋高公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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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수가 부친 황기로의 행적을 기록한 선고통정대부행중추원의관부군가장 / 기록자료>고문서 / 의수아들 의수(義洙)가 임신(壬申)년 3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한 부친 황기로(黃基潞 : 平海)의 행적을 기록한 「선고통정대부행중추원의관부군가장(先考通政大夫行中樞院議官府君家狀)」이다. 황기로의 총명한 유년 시절 일화와 어진 미담을 소개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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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원의 행적을 기록한 처사고공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처사 고대원(高大元)의 행적을 기록한 「처사고공행장(處士高公行狀 )」이다. 고대원의 효성과 우애 정신과 충효 사상을 강조하며 그의 일대기와 선조, 후손들의 계보를 정리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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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의 행적을 기록한 해창선생김공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김병훈(金秉勳 : 善山)의 행적을 기록한 「해창선생김공행장(海蒼先生金公行狀)」이다. 김병훈의 효행담과 총명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를 서술하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불행하게도 급제를 하지 못했던 점, 향리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유학을 실천했던 면모를 중심으로 하여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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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김용현의 행적을 기록한 좌암처사광산김공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김용현(金龍鉉 : 光山)의 행적을 기록한 「좌암처사광산김공묘갈명(左庵處士光山金公墓碣銘)」이다. 김용현의 효성과 우애 정신을 기리며 유림 활동 모습과 책을 읽으며 사색하던 면모를 서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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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수가 부친 오중선의 행적을 기록한 통훈부군유사 / 기록자료>고문서 / 성수아들 오성수(吳聖洙 : 海州)가 정축(丁丑)년 1월에 통훈 벼슬을 역임한 부친 오중선(吳仲善)의 행적을 기록한 「통훈부군유사(通訓府君遺事)」이다. 오중선의 유학자적인 면모와 효성스런 가정 생활 등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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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척암김도화의 행적을 기록한 척암 김선생 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문인족질 홍락친척 조카인 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척암(拓巖) 김도화(金道和 : 義城)의 행적을 기록한 「척암김선생묘갈명(拓菴金先生墓碣銘)」이다. 김도화 가문의 유래와 선대 조상의 벼슬 행적, 가계 등에 대해 언급했다. 김동화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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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수초 류공의 행적을 기록한 수초류공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수초(遂初) 류공(柳公 : 文化)의 행적을 기술한「수초류공묘갈명(遂初柳公墓碣銘)」이다. 류공의 유년기 성장 과정의 미담, 효행담과 유교적 인품을 갖춘 내력에 대해 강조했다. 류공이 가정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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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이 김공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김홍락김홍락(金鴻洛 : 1863 ~ 1943, 본관 義城, 자 羽卿, 호 某溪)이 통훈대부(通訓大夫) 및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한 김공(金公)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 김공의 선대 가계와 선조의 업적을 강조했다. 김공의 총명했던 유년기 일화와 대대로 이어오는 유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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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화가 부친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 / 기록자료>고문서 / 종호안종호(安宗鎬)가 부친의 행적을 기술한 「가장(家狀)」이다. 부친 안공(安公)의 선대 가계와 벼슬 내력을 기록하고 안공의 어질고 단아한 성장 과정의 일화와 미담을 기술했다. 안공의 유림 사회 활동과 가문을 위해 활동했던 면모를 중심으로 기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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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내역을 기록한 성책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을유(乙酉)년 3월 17일 대상(大祥) 때의 부조(扶助) 내역을 기록한 성책(成冊)문서이다. 부조한 인사들의 명단과 부조한 금액이나 부의물인 담배 등의 내역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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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룡의 행적을 기술한 이양재행실기 라는 성책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택용친척 조카인 고택용(高宅龍, 본관 開城)이 고술겸(高述謙)의 행적을 기술한 「이양재행실기(二養齋行實紀)」이다. 고술겸의 선대 가계와 벼슬 행적과 개성 고씨 가문의 내력과 번성 과정 등에 대해 서술했다. 고술겸의 행적 가운데 미담과 일화를 소개했다. 그가 유림 사회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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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즙의 행적을 기록한 화와은공유사 라는 성책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은성즙(殷成楫, 본관 幸州)의 행적을 기록한 「화와은공유사(華窩殷公遺事)」이다. 은성즙의 행적과 미담, 일화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행주 은씨의 선대 가계와 내력을 강조했다. 은성집의 효행담과 어진 행적을 토대로 하여 그의 생애를 정리한 글이다. 만년에 성리학을 연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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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우가 박응상의 행적을 기록한 낙옹유사라는 성책 / 기록자료>고문서 / 천우박천우(朴天祐)가 통훈대부와 대정현감을 역임한 박응상(朴應祥, 본관 月城)의 행적을 기록한 「낙옹유사(樂翁遺事)」이다. 월성 박씨 가문의 배경과 선조의 행적에 대해 언급했다. 박응상의 유년기 일화와 미담, 벼슬살이 행적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가족과 친척들에게 실천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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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내역을 기록한 지출기라는 성책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지출 내역을 기록한 「지출기(支出記)」이다. 부식비와 일반 지출 경비를 항목과 금액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부분적으로 합산하여 정리한 때도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