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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8001

    권상규(權相圭 : 1874 ~ 1966 , 본관 安東, 자 致三, 호 蔡山 ·忍庵, 저서「忍庵集」이 있다)가 금성락(琴聖洛)이 쓴 글씨를 모은 첩의 뒤에 써 준 글인 「서금석호성락액서첩후(書琴石湖聖洛額書帖後)」이다. 금성락과 우정을 함께 했던 시절을 언급하고 금성락의
    출처 : 유교넷
  • 248002

    이원국(李源國, 본관 眞城)이 금상기(琴相基)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나서 지은 시에 대해 쓴 서문으로 「금주사상기금강산유람가서(琴主事相基金剛山遊覽歌序)」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모습을 시로 표현한 금상기의 문학적 필치를 칭찬하며 그가 학문과 사상이 유연하고 품위가
    출처 : 유교넷
  • 248003

    이채호가 고숙 봉성금공을 위해 을축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질 이채호
    이채호(李埰鎬, 본관 眞城)가 을축(乙丑)년 10월에 고모부 봉성금공(鳳城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효성심이 강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했다. 망자가 가족들의 평안과 조상을 추모하는 일에 앞장서서 일했던 점을
    출처 : 유교넷
  • 248004

    이휘대가 봉성금공을 위해 임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휘대
    사위인 이휘대(李彙岱, 본관 眞城)가 임오(壬午)년 5월에 처사 봉성금공(鳳城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집안의 대들보였다 하고 가족들이 의지할 바를 잃었다며 슬퍼했다. 망자가 타고난 성품이 조용하고 어질었다고 했다. 아울러 망자는 독서와 사색을 겸
    출처 : 유교넷
  • 248005

    이노연이 봉화금공을 위해 임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소자 이노연
    이노연(李魯淵, 본관 永川)이 임오(壬午)년 5월 處士 奉化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겸손했음을 강조했다. 망자가 자신이 살던 동네로 이사해 와서 10여 년 동안 함께 지냈던 일을 회상했다. 망자가 망년에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출처 : 유교넷
  • 248006

    금연옥(琴廷玉 : 1816 ~ 1884, 본관 奉化, 자 玉汝, 漢學者, 忌 2月 1日, 墓 下沙 文峴 未向)이 임오(壬午)년 5월에 사촌형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심이 뛰어나고 유학 공부에 전념하여 유림 사회에서
    출처 : 유교넷
  • 248007

    아우뻘인 금정술(琴廷述 : 1814 ~ 1882, 본관 奉化, 자 鑽汝)이 신사(辛巳)년에 처사(處士) 연안(延安) 김공(金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재주와 덕행, 인품을 골고루 갖추고 호방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햇다. 평소 자신과 교유하던 일들
    출처 : 유교넷
  • 248008

    이승재가 처사 봉성금공을 위해 병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승재
    대대로 알고 지낸 이승재(李承載, 본관 完山)가 병인(丙寅)년 10월에 처사(處士) 봉성금공(鳳城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선비로 태어나 크게 쓰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망자가 어질고 효성이 강했던 인물이었지만 크게 쓰이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8009

    이서 이경필이 진성이씨를 위해 기해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서 이경필
    친척인 이경필(李璟弼, 본관 完山)이 기해(己亥)년 11월에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애석하다고 하고 16세에 시집 온 이래 어질고 정숙했던 면모를 회고하며 슬퍼했다. 망자가 실천했던 효성
    출처 : 유교넷
  • 248010

    친척인 금정규(琴鼎圭 : 1888 ~ 1957, 본관 奉化, 자 益三) 가 을유(乙酉)년 2월에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의젓하고 정숙했던 모습을 추억하면서 시댁 여러 가족과 친척들에게 베풀었던 덕행을 추모했다. 망자가 내조를 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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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1

    친가종자 동춘이 고모를 위해 병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종자 동춘
    친척인 동춘(橦春)이 병술(丙戌)년 2월에 고모(姑母)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인 고모가 봉화 금씨 가문으로 시집간 이래 많은 부덕을 실천했던 점을 칭송하며, 시집가기 전에 친정 여러 가족에게 베풀었던 은덕도 회상했다. 고모는 평소 어진 어머니로서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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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2

    전하준(全河駿, 본관 沃川)이 을유(乙酉)년 2월에 유인(孺人) 우계이씨(羽溪李氏 : 琴相基의 妻)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전하준은 우계 이씨 가문으로 장가를 온 이래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부인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었던 덕행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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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3

    친척 손자인 회연(會淵 : 1886 ~ 1966, 본관 奉化, 자 元一, 호 農隱)이 을유(乙酉)년 2월에 종가 할머니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생전 일생을 회상하면서 망자의 덕망과 어진 여인의 면모를 추모했다. 망자 집안 대대로 이
    출처 : 유교넷
  • 248014

    육촌 조카인 석조(錫祚)가 을유(乙酉)년 2월에 공인(恭人)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석조는 그동안 멀리서 생활했던 탓에 부인의 어진 모습을 자주 접하지 못했지만 부인의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친척들을 통해 익히 들어왔다고 했다. 부인이 시댁
    출처 : 유교넷
  • 248015

    사촌 조카인 금용달(琴鏞達 : 1893 ~1971, 본관 奉化, 자 學三)이 을유(乙酉)년 2월에 종숙모(從叔母)인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집안 여러 식구들이 분주하게 옮겨 살았지만 우애가 있었고 다정했던 점을 회고했다. 부인의 어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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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6

    친척 손자인 금주연(琴珠淵 : 본관 奉化, 자 光一)이 병오(丙戌)년 2월에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부인의 효행과 공경심을 높이 칭송하면서 생전에 시댁 여러 식구에게 베풀었던 인정을 회고했다. 부인의 선한 행적은 어진 여인들을 모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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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7

    친척인 금인석(琴麟錫 : 본관 奉化, 琴東烈의 孫)이 을유(乙酉)년 2월에 종숙모(從叔母)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부인의 육십 년 일생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했다. 부인의 평생 행적을 돌아보면서 고생스러운 삶에서 어려움을 참고 내조하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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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8

    금용락이 공인 우계이씨를 위해 194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용락
    재종질(再從姪) 금용락(琴鏞洛 : 1896 ~ 1978, 본관 奉化, 字 致龍)이 을유(乙酉)년 2월에 공인(恭人)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평소 두 집안끼리 다정하고 화목하게 지냈던 점을 회고했다. 부인은 집안에서 가족들의 어려움을 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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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19

    친척 조카인 용하(鏞夏)가 정묘(丁卯)년 10월에 친척 할아버지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집안에서 전해지는 유풍을 이어 단아한 선비의 품위를 지녔다며 효성심과 공경심, 우애가 돈독했던 점도 강조했다. 특히 자손들을 알뜰하게 지도하고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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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0

    금익황(琴翼璜 : 奉化)이 병술(丙戌)년 2월에 전염병을 몰고 다니는 역두신(痘疫神)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전염병 신의 위대성을 칭송하며 은덕을 베풀어 아이들을 해치지 말고 병 피해를 가져 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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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1

    족종질 석하가 족숙부를 위해 경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질 석하
    종질(從姪)인 석하(錫河)가 경술(庚戌)년 2월에 친척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집안을 대표하는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며 여러 가문을 자상하게 돌봐준 은덕을 칭송했다. 평소 자신에게 학문이나 덕망으로 깨우침을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하며 애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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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2

    김준상이 처사 봉성금공을 위해 임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준상
    김준상(金儁相)이 임오(壬午)년 5월에 봉성금공(鳳城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대대로 이어오는 봉화 금씨 가문의 유풍을 계승한 인물이었다며 효성과 우애 정신을 기렸다. 망자가 만년에 질병으로 고생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별의 아픔과 안타까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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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3

    금경술이 족제 처사군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형 경술
    친척 형인 금경술(琴經述 : 1813 ~ 1897, 본관 奉化, 자 聖仲) 친척 아우인 처사군(處士君)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경술은 질병으로 몸져 누워있어서 자식을 대신 보내 아우의 죽음을 슬퍼한다며 직접 찾아가 조문하지 못하는 슬픔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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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4

    이종 사촌인 금복규(琴復圭 : 1841 ~1878, 본관 奉化, 자 景三)가 경자(庚子)년 11월에 이종 사촌 누이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누이가 타고난 자질이 곱고 성품이 어질었다며 20세 무렵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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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5

    사촌인 교하(敎厦)가 경자(庚子)년 11월에 사촌 누이인 봉성금실(鳳城琴室)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해준 이치라며 누이와 사별하는 아픔을 표현했다. 누이가 여섯 살 무렵에 어머니를 잃고 고독하게 자랐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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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6

    친가장형 경달이 망매 금실을 위해 경자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장형 경달
    경달(景達)이 경자(庚子)년 11월에 누이 금실(琴室)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오라버니로 누이를 미리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을 표현했다. 누이가 24세의 일기로 질병을 앓다가 죽음을 맞은 것을 두고 매우 슬퍼했다. 누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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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7

    교준(敎焌)이 기해(己亥)년 11월에 누이동생 공인(恭人)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누이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랐던 점과 어릴 때부터 자질이 곱고 순수했던 모습을 회상했다. 시집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질병을 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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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8

    교원(敎源)이 기해(己亥)년 11월에 막내 누이 동생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누이를 앞에서 부르는 것처럼 애절한 표현으로 누이의 슬픈 일생을 돌아보며 슬퍼했다. 누이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슬프게 자란 점이나 어린 시절 함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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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29

    오라버니 교인(敎寅)이 경자(庚子)년 11월에 막내 누이 동생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누이를 앞에서 부르는 것처럼 애절한 표현으로 누이의 슬픈 일생을 돌아보며 애통해 하였다. 누이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슬프게 자란 점이나 어린
    출처 : 유교넷
  • 248030

    조카인 이종갑(李鍾甲)이 기해(己亥)년 11월에 고모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고모의 성품과 여성스러운 자질은 집안 고유의 전통을 잇고 유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고모가 어린 자신을 알뜰하게 돌봐준 은덕을 생각하면 그
    출처 : 유교넷
  • 248031

    육촌 손자인 금철수(琴澈洙 : 1912 ~ 1991, 본관 奉化, 자 弘卿, 호 古山)가 을유(乙酉)년 2월에 재종대모(再從大母)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친정 대대로 이어오는 가문의 전통을 이어 어질고 단정한 여성의 미덕을 지녔다고
    출처 : 유교넷
  • 248032

    갑오(甲午)년 10월 13일 거행된 초상 때의 상례와 관련 사항을 기록한 좌목(座目)이다. 초상시집사(初喪時執事)로서 초상을 거행하면서 분야별로 역할 분담을 기록한 명단이다.
    출처 : 유교넷
  • 248033

    융희(隆熙) 기유(己酉)년에 기록한 성책문서(成冊文書)로, 문집 간행시 여러 가지 수입과 지출 내역 등을 기록한 「문집간역시하기(文集刊役時下記)」이다. 기유년 2월부터 8월까지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했다. 문집 간행에 따른 물자와 재정적인 수입 등에 대한 내역을
    출처 : 유교넷
  • 248034

    병인(丙寅)년 11월에 수입과 지출 내역을 기록한 「금곡별편문부(金谷別便文簿)」이다. 주로 전지에서 거둔 곡물 수입 현황을 기록했다.
    출처 : 유교넷
  • 248035

    한광회(韓光會)가 경인(庚寅)년 4월 21일에 청원한 계(啓)이다.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친 사육신들은 무인(戊寅)년에 조정으로부터 시호(諡號)를 받았지만 하위지(河緯地)는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季弟 紹地 子源을 하위지(河緯地)의 양자로 입적(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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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36

    신미년에 작성한 육신복관치제사액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신미(辛未)년 9월에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치다가 죽은 사육신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올리게 해 달라고 한 육신복관치제사액의(六臣復官致祭賜額議)이다. 사례로 중국 주(周)나라 때의 한통(韓通), 명(明)나라 때의 경청(景淸) 및 우리나라 고려 때의
    출처 : 유교넷
  • 248037

    이용직(李容稙)이 1903년에 올린 상소문(上疏文)으로 세종 25년에 발급된 문과방목(文科榜目)을 참고하여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친 하위지(河緯地)의 본관이 단계(丹溪)인 것을 밝히고, 후손들이 화가 닥칠 것을 염려하여 성씨를 일시적으로 지씨(池氏)로 바꿨던 점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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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38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충절을 추모하고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마련한 토지의 내역을 기록한 문건으로 갑술(甲戌)년 2월에 작성된 충렬공단계하선생위토문부 「忠烈公丹溪河先生位土文簿」이다. 위토의 종류에 따른 경작지 면적을 기록하며, 같은 해에 작성된 문건에는 하위지(河緯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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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39

    하수해, 하용천이 성주에게 재방 공사연기를 부탁하며 1755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유학 하수해∙하용천
    주민인 유하(幼學) 하수해(河壽海 : 1697 ~1779, 본관 晉州, 자 耆彦)·하용천(河龍天 : 1710 ~1799, 본관 晉州, 자 子雲)이 을해(乙亥)년 7월에 성주(城主)에게 보낸 소지(所志)이다. 수해로 지시한 제방 공사를 기일 내에 마치기 어려워 24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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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0

    유학, 유생 등 27명이 상위 합하에게 위토에 대한 조세 감면을 위해 1827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유생 성일원∙권정희∙김항수 등 27인
    유학(幼學) 유생(儒生) 성일원(成一源)·권정희(權正凞)·김항수(金恒秀) 등 27명이 정해(丁亥)년 4월에 경상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단계 하위지 선생의 묘소 아래에 있는 위토(位土)에 대한 조세를 영구히 감면 되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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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1

    권정희 등 32명이 순상 합하에게 연역을 영구히 감면할 수 있도록 1827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생 성일원∙권정희∙김항수 등 32인
    권정희(權正熙) 등 32명이 정해(丁亥)년 윤 4월에 관청에서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경북 선산군에 있는 하위지(河緯地) 무덤의 묘소 봉분을 높이고 보전하도록 허락한 점을 강조하며, 하씨 문중 후손과 인근 유림들의 연역(煙役)이 다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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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2

    권정희 등 34명이 선산 합하에게 연역을 영구히 감면할 수 있도록 1827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생 성일원∙권정희∙김항수 등 35인
    권정희(權正熙) 등 34명이 정해(丁亥)년 5월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경북 선산군에 있는 하위지(河緯地)의 무덤 아래에 사는 주민들은 환역(還役)과 잡역(雜役) 및 봄, 가을로 보수하는 역(役)을 면제 받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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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3

    하대철(河大澈 : 1866 ~ 1909, 본관 晉州, 자 道明, 호 藥西)·하재형(河在衡 : 1873 ~ 1947, 본관 晉州, 자 舜齊)·하재우(河在禹 : 1875 ~ 1949, 본관 晉州, 자 功彦)가 임인(壬寅)년 10월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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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4

    신당포면 신곡거민이 임인(壬寅)년 6월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경북 선산군에 있는 하위지(河緯地)의 무덤 아래에 사는 주민들에게 잡역(雜役) 및 봄, 가을로 보수하는 역(役)이 면제되었다. 최근에 감면 조치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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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5

    하상호 등 4인이 성주에게 투장에 대해 1899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하상호∙하문환∙하재후
    화민 하상호(河相毫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衡彦)·하문환(河文煥 :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하재후(河在厚 : 본관 晉州, 자 亨甫) 등이 기해(己亥)년 11월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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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6

    하문환이 성주에게 토지소유권에 대해 1890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유학 하문환
    주민인 유학(幼學)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이 경인(庚寅)년 6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30냥을 주고 토지를 매입했지만 토지를 매도한 자들이 토지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아 증빙 서류와 함께 증인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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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7

    유학(幼學) 김항수(金恒壽), 하석중(河錫中 : 1758 ~ 1837, 본관 晉州, 자 規汝, 호 北軒) 등 63명이 을축(乙丑)년 9월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사육신을 추모하는 사당을 세워준 조정의 처리를  칭송하며 성주가 제물을 보내어 사육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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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8

    서후 평촌(坪村)에 사는 하상흡(河相翕 : 1816 ~ 1896, 본관 晉州, 자 啓彦, 仁慈한 性品)이 갑신(甲申)년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논의 경작을 허용하고 소작료 납부 약속을 준수하지 않는 금하리(金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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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49

    하석강 등 20인이 성주에게 투장에 대해 1898년에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유학 하석강 등 20인
    서후 평촌(坪村)에 사는 하석강(河錫岡 : 1840 ~ 1916, 본관 晉州, 자 陵叔, 호 鳳軒) 등 20명이 무오(戊午)년 5월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서후 창평산에 하경로의 조상 묘소를 쓴 지 300년이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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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050

    서내면고방곡(西內面古方谷)에 사는 주민들이 정미년에 억울한 사정을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하위지(河緯地)의 무덤 아래에 사는 주민들에게 잡역(雜役) 및 봄, 가을로 보수하는 역(役)이 면제 된지 오래되었는데, 최근에 역이 부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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