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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48251

    친척 하재천(河在天 : 1856 ~ 1880, 본관 晉州)이 정축(丁丑)년 7월 25일에 송파 하재홍댁(松坡 河在弘 宅)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최근의 건강과 가족의 평안 여부를 묻고 자신은 늙고 병들어 한탄할 뿐이라고 했다. 유고(遺稿)의 등사가 끝났으면 구본은
    출처 : 유교넷
  • 248252

    대묘 중건 봉안식을 언급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안부와 현안을 언급한 간찰(簡札)이다. 대묘(大廟)를 중건하여 4월에 상량을 했지만 재정이 어렵고 목역(木役)이 지체되어, 이제 준공이 끝나 10월 17일에 봉안하기로 정했다. 봉안식 전날쯤 방문해 달라며 봉안식에 상대방이 안 참석핮 않으면 낭패라고 했다. 정문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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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53

    변시연(邊時淵, 본관 原州)이 무신(戊申)년 7월 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서찰과 함께 단계 하위지 선생 문집 초안을 받아 들고 감격했다. 회헌 선생이 지은 묘갈명을 문집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5,000원을 송부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8254

    변시연(邊時淵, 본관 原州)이 무신(戊申)년 11월 20일에 하종우(河鍾禹)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두 번이나 서찰을 보냈는데 답신이 없어 궁금하고, 추위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문원(文苑)」  50책을 간행하여 마무리되었으니 부담금을 조속히
    출처 : 유교넷
  • 248255

    변시연(邊時淵, 본관 原州)이 을사(乙巳) 7월 1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문원(文苑)의 일은 갈수록 확대되어 한편에서는 돈을 걷고 한편에서는 간행하여 분질(分帙)하는  중이라고 했다. 상대방 조상의 글과 「육신비명(六臣碑銘)」 과 「육신전(六臣傳)」이 보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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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56

    이태호(李泰浩)가 7월 2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장마로 붉은 물결이 용솟음이 치는 가운데 여러 가족 안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객지에서 고초를 당하고 있으며 하는 일이 한산하여 월초에 이미 사정을 언급하였으며, 화문사(花門事)가 조만간 시작되는지 궁금하다고 했
    출처 : 유교넷
  • 248257

    이회국(李會國)이 하종우(河鍾禹 : 忠烈公派 25世)에게 임자(壬子) 3월 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화창한 봄날에 여러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며 자신은 지난달에 서울에 갔다가 감기를 앓아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에 계원들을 외가(外家)로 불러 하루
    출처 : 유교넷
  • 248258

    권도혁(權道赫, 본관 安東)이 계묘(癸卯)년 7월 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신은 멀고 가까이 있는 어진 분들의 협조로 상례(喪禮)와 우졸(虞卒)을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상대방이 백 리 길을 달려 와 위로해 주고 다시 비를 맞고 돌아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고
    출처 : 유교넷
  • 248259

    김우동(金佑東)이 계해(癸亥)년 1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단종에게 절개를 지키다가 순절한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벼슬이 다시 내려지고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을 축하했다. 자신들은 소식을 늦게 들어 추모 행사에 참석할 수 없어 매우 죄송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48260

    이회식(李會植 : 1892 ~ 1988, 본관 禮安, 자 景武, 호翠山, 仁慈·重厚한 性品)이 하생원(河生員)에게 기사(己巳)년 2월 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뜻밖에 상대방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부고를 받고 슬프다고 했다. 자신은 장례식에 참석하여 위문을 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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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1

    인척(姻戚)인 안승갑(安承甲 : 1881 ~ 1931, 본관 順興, 자 元五, 호 晩山)이 하생원(河生員)에게 경오(庚午)년 12월 1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을 당한 상대방을 위로하면서 자신은 겨울에 접어들면서 신음하다가 이제 조금 회복이 되었지만 눈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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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2

    류순영(柳純榮)이 기사(己巳)년 1월 23일에 하석사(河碩士)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부친상을 당해 슬퍼하는 것을 위로하고 장례 절차와 준비 사안에 대해 협의하였다. 유족의 슬픔을 함께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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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3

    김상병이 정유년에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죄인 김상병
    김상병(金尙秉)이 정유(丁酉)년 2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부친의 대상(大喪)을 맞아 슬퍼하는 상대방을  위로하였다. 자신은 부친의 병환이 더욱 심하며 근력이 극도로 쇠약해서 매우 고민스럽다고 했다. 아들을 보내지만 늦게 출발하여 제사 때에 맞추어 당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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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4

    권재훈(權載勳)이 정유(丁酉)년 2월 1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중상(中祥)이 하룻밤 밖에 남지 않은 상대방을 위로하면서, 자신은 기어서라도 가봐야 하지만 거상 중이라서 아들을 대신 보내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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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5

    권재훈(權載勳)이 무술(戊戌)년 2월 1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장(査丈)의 종상(終祥)이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상대방의 슬픔이 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군(郡)에 부임한 이후로 모든 의식에 참석할 수 없어 민망할 뿐이라고 했다. 이에 아들을 대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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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6

    류도협(柳道協)이 정유(丁酉)년 1월 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뜻하지 않게 상대방의 부친이 별세하여 매우 놀랍고 슬프다고 했다. 자신은 세의(世誼)를 봐서라도 즉시 달려가 위로를 드려야 하지만, 늙으신 부모의 병이 위독하여 문을 닫고 칩복하고 있기 때문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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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7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친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명예 회복과 복권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주장한 통문(通文)이다.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행동은 정통 유가적 입장에서 실천한 의리 정신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기상과 정신을 고귀하게 여겨 환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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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8

    경성부(京城府) 안국동(安國洞) 숙모전전정비수립사무취급소(肅慕展展庭碑竪立事務取扱所)에서 경오(庚午)년 10월에 안동군 서후면 교동 하재홍(河在弘)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숙모전을 보수하고 그 앞에 전정비(展庭碑)를 세운다고 알렸다. 그 비석에 관직이 복직된 신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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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69

    숙모전무중건소(肅慕展廡重建所)에서 경오(庚午)년 2월 12일에 안동군 서후면 교동 하재홍(河在弘)의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숙모전 동서무(東西廡)가 좁아, 각 해당 문중별로 조상의 위패를 임시로 모시고 위토(位土)와 비석을 정리하려고 하니, 협의 하여 결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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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0

    질병을 치료할 약재를 기록한 치부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질병을 치료할 약재를 기록한 치부기(置簿記)이다. 약재 품목은 대황, 용각, 인삼, 백봉령, 황단 등이다. 약재와 함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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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1

    무자(戊子)년 10월 10일에 기록한 치부기(置簿記)로서  하위지(河緯地) 선생에게 제사를 올린 제수품 내역을 기록한 선산제수기(善山祭需記)이다. 제수 품목은 석어, 황육, 열합, 밤, 홍시, 닭고기 등으로 금약은 5,16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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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2

    병진년에 제수품을 기록한 치부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병진(丙辰)년 10월 10일에 기록한 치부기(置簿記)로서 묘소에서 제사를 올릴 때 지출된 제수품을 기록했다. 제수 품목은 북어, 문어, 열합, 홍시, 배, 조청, 황육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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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3

    갑오년에 제수품을 기록한 치부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갑오(甲午)년 10월에 기록한 치부기(置簿記)로서 시장에서 구입한 제수품 내역을 기록했다. 제수 품목은 북어, 석어, 문어, 대구포, 닭고기, 밤, 대추, 창호지 등으로 총 경비 내역은 6,54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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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4

    장례와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10월 7일에 기록한 치부기(置簿記)로서 장례와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이다. 유족인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 손부의 생년 간지가 기록되어 있으며, 하관 등 장례 일정에 따른 기록과 금기해야 할 사항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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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5

    임오년에 제수품을 기록한 물목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임오(壬午)년 10월 17일에 제수 물품 내역을 기록한 물목(物目)이다. 제수 물품은 북어, 청어, 가오리, 쇠고기, 닭고기, 밤, 대추, 배, 홍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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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6

    「단계선생유권(丹溪先生遺券)」이라는 문건으로 기물과 가재도구 등의 명목과 수량을 기록했다. 물품은 솥, 화로, 말, 소, 호미, 도끼, 낫, 작두, 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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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7

    하중환(河中煥 : 1875 ~ 1952, 본관 晉州, 자 羲文, 호 砥峯, 忠烈公派 23世)이 제출한 과거 시험 답안인 시권(試券)으로 부(賦)이다. 시의 제목은 아침에 일어나 밭에 나가 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옛 사람들이 남긴 책을 읽는다는 뜻의 「조출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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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8

    서경보가 지은 창렬서원이건상량문 이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예천군수 서경보
    예천군수(醴泉郡守) 서경보(徐耕輔)가 갑신(甲申)년 7월에 창렬서원을 옮겨 지은 뒤에 상량을 기념하며 지은 「창렬서원이건상량문(彰烈書院移建上樑文)」이다.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을 추모하며 그 정신을 기리는 것은 유림들의 정신적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며 충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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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79

    이만각(李晩慤)이 무진(戊辰)년 5월 5일에 단계 하위지 선생이 남긴 글을 모아 3권의 유고를 만든 뒤에 써 준 발문 형식의 글인 「단계선생유고발(丹溪先生遺稿跋)」 이다. 사육신의 의로운 행적을 부각시키고 단계 하위지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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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0

    단계선생정시연서 라는 제목의 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오천정
    경인(庚寅)년 10월에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시호(諡號)가 다시 내려진 것을 축하하는 글을 모은 책의 서문인 「단계선생정시연서(丹溪先生廷諡宴序)」 이다. 단계(丹溪)하위지(河緯地)의 충절이 다시 빛나게 되어 기쁘다며 이러한 조정의 처사는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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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1

    홍계희(洪啓禧)가 기묘(己卯)년 11월 25일에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시문을 모아 문집을 만든 맨 뒤에 붙이는 글인 「서단계선생유권후(書丹溪先生遺券後)」이다.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충절을 기리며 그의 정신과 기상은 충신의 전형이라고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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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2

    이광정(李光庭 : 본관 韓山)이 단계 하위지 선생의 글을 모은 문집의 맨 뒷 부분에 기록한 「서단계선생유권후(書丹溪先生遺券後)」이다. 단계 선생의 가계와 생장 배경 과 의리 정신을 강조하였다. 단계 하위지 선생의 충절은 후세에 길이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충신을 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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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3

    하위지가 기록한 단계선생유묵 / 기록자료>고문서 / 하위지
    하위지(河緯地 : 1412 ~ 1456, 본관 晉州, 자 天章·仲章, 호 丹溪) 선생의 서찰인 「단계선생유묵(丹溪先生遺墨)」 이다. 인편을 통해 보낸 서찰을 반갑게 받았다며 집을 떠나 온 자신은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백지 10권을 보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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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4

    무술(戊戌)년에 신체인(申體仁)이 지은 시(詩)이다. 내용은 하위지(河緯地) 선생의 충절과 총명함을 강조하며 그의 정신과 얼을 후손과 후대 유림들이 지속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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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5

    안광직이 기록한 하충렬공가적등본발 / 기록자료>고문서 / 안광직
    안광직(安光直)이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가계와 호적을 기록한 호적등본의 발문인 하충렬공가적등본발(河忠烈公家籍謄本跋)이다.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친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진 배경을 언급하고 그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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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6

    권대응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하생 권대응
    권대응(權大應)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타고난 인품이 고결하고 우수한 가문의 전통을 이어온 선비였다고 했다. 망자의 기상이 출중하고 어진 인격을 회고하며 후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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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7

    권용하가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질 권용화
    권용화(權用和)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영남 고을 우수한 가문 전통을 이어 의기가 출중했던 인물임을 강조했다. 망자의 기상과 정신은 후인들에게 모범을 제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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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8

    권용직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권용직
    권용직(權用稷)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평생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망자가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점을 애석하게 여긴다며 후손들에게 남긴 업적이 매우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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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89

    하상구가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구
    친척인 하상구(河相九, 본관 晉州, 자 致鼎)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사랑을 베풀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집안 일 이나 개인적인 어려움도 자상하게 지도해 주었던 점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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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0

    김문식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문식
    김문식(金文植)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70 평생 동안 여러 가족과  친척들에게 베풀었던 은덕을 회고하고, 망자가 남긴 학문과 덕행은 후손이나 유림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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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1

    김양운이 북한처사를 위해 무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양운
    김양운(金養運)이 무오(戊戌 )년 4월에 북헌처사(北軒處士)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학문 정신을 익히 알고 친절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영남의 유림들이 그의 인품과 학문을 사모하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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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2

    권우원이 하문환을 위해 임진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권우원
    권우원(權禹源)이 임진(壬辰)년 9월에 처사(處士)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타고난 학문과 인품을 통해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덕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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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3

    권도혁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 권도혁
    권도혁(權道赫)이 신묘(辛卯)년 9월에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70 평생을 회고하건대 많은 감화와 학문적 영향을 남긴 점을 추모했다. 망자의 독실한 학문과 고결한 선비의 모습을 추모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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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4

    조영원이 안동권씨를 위해 1915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조영원
    생질(甥姪)인 조영원(趙永遠)이 을묘(乙卯)년 11월에 외숙모(外叔母)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40 평생을 회고하면서 받았던 감화와 인품을 추모했다. 망자가 어려서 어버이를 잃었으나 자상하고 현숙한 여성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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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5

    이재소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이재소
    이재소(李在韶)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평소 가정에서 우애롭게 지내며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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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6

    홍달원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홍달원
    홍달원(洪達源)이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진주 하씨 충렬공의 후손으로 절개와 지조를 지녔던 인물이라고 했다.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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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7

    하상만이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생 상만
    친척인 하상만(河相萬)이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훌륭한 진주 하씨 가문의 교육을 받았고  후손들에게 어질고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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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8

    하시종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손 시종
    하시종(河時鍾)이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가문의 정신을 이어 어질고 단아한 선비의 모습을 지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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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299

    하재화가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재화
    하재화(在華 : 1853 ~ 1873, 본관 晉州, 자 聖宇)가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어려서부터 망자를 통해 아름다운 덕성과 지조를 익혔으며 망자의 인품은 자신의 인격 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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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8300

    김민병이 하문환을 위해 1931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민병
    가르침을 받은 김민병(金民秉)이 신미(辛未)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우수한 학문과 인품은 고인들의 덕행이나 학문에 비해 결코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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