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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이재호이재호(李在祜)가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고 나서 산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낀다고 하며 이후 자신은 의지할 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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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가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재하이재하(李在河)가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지녔던 학문과 인품은 고인들에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다며, 평소 진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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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로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상로김상로(金尙魯)가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덕행과 인품을 제문에 일일이 표현할 수 없다고 하며 망자가 실천했던 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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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사하생 이재희이재희(李在禧)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세상의 인심이 사납고 어지러웠지만 망자가 굳건한 선비의 자세로 평소 자신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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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김상규김상규(金象奎)가 기사(己巳)년 12월에 사형(査兄)인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은 안사돈의 슬픔을 언급하며 망자가 지녔던 착실하고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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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병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민병김민병(金民秉)이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80 평생을 회고하면서 망자가 진주 하씨의 충절과 의리 정신을 간직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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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녕수가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서 권녕수인척인 권녕수(權寧守)가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우수한 진주 하씨 가문의 전통을 잇고 타고난 본성이 강직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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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도호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서 유도호류도호(柳道顥 : 1906 ~ 1978, 본관 豊山, 자 景頁, 호 愉齋)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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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직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권용직권용직(權用稷)이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후손으로 충절과 의리에 투철했던 인물이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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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회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녀 권중회권중회(權重淮)가 경오(庚午)년 12월에 처숙부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진주 하씨 명문가의 후손으로 효성과 우애 정신이 돈독했다며 가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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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환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중환친척인 하중환(河中煥 : 1875 ~ 1952, 본관 晉州, 자 羲文, 호 砥峯)이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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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갑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안승갑사위인 안승갑(安承甲 : 1881 ~ 1931, 본관 順興, 자 元五, 호 晩山)이 기사(己巳)년 12월에 장인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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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우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대우하대우(河大宇 : 1893 ~ 1947, 본관 晉州, 자 基玉)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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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로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김명로생질인 김명로(金明魯 : 본관 義城)가 기사(己巳)년 12월에 외삼촌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후손으로 어려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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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성로김성로(金聖魯)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었던 점을 회고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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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가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김성로김성로(金聖魯 : 1887 ~ 1941, 자 光彦)가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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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무가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이병무이병무(李竝茂)가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학문과 덕행의 흔적은 오래 남을 것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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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달이 하재홍을 위해 기사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변성달변성달(邊聖達)이 기사(己巳)년 12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기의 선대 조상들과 교유했던 점을 회상하고 독서하고 산수를 유람했던 기억을 문면에 담아내며 애도의 뜻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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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진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세진하세진(河世鎭 : 1882 ~ 1936, 본관 晉州)이 기사(己巳)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진주 하씨의 우수한 가문 정신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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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식이 하문환을 위해 192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회식이회식(李會植 : 1892 ~ 1988, 본관 禮安, 자 景武, 호 翠山)이 기사(己巳)년 1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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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태가 하문환을 위해 19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태하상태(河相泰 : 1874 ~ 1938, 본관 晉州, 자 魯瞻)가 경오(庚午)년 1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죽음은 자신에게 매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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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이 사장 하문환을 위해 정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진철김진철(金鎭轍)이 정유(丁酉)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하위지(河緯地)의 후손으로 훌륭한 가문의 충절과 의리 정신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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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병이 하문환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상병김상병(金尙秉)이 무술(戊戌)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생전에 찾아뵙고 자상한 가르침을 받았던 점을 회상했다. 망자의 어진 인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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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가 척숙 하문환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권석하권석하(權錫夏)가 무술(戊戌)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자신의 부친이 사귄 우정과 교유 관계가 독실했던 점을 회고했다. 망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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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식이 하문환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진식김진식(金鎭軾)이 무술(戊戌)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후손으로 충절 정신과 의리에 투철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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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훈이 사장 하문환을 위해 정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권재훈권재훈(權載勳)이 정유(丁酉)년 2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후손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오는 충절과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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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일우가 백자 풍산류씨를 위해 무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제 류일우아우인 류일우(柳一佑)가 무신(戊申)년 1월에 맏누이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2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점을 언급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4남매와 단란하게 지냈던 시절을 회고했다. 망자의 자상하고 정숙했던 모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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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직이 고모 영가권씨를 위해 병진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권용직권용직(權用稷)이 병진(丙辰)년 11월에 고모 영가권씨(永嘉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다정하고 어진 면모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늘 어려운 점을 들어 주었다고 했다. 다정다감했던 망자를 통해 많은 사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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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극이 고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권오극친척인 권오극(權五極)이 정사(丁巳)년 11월에 고모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베풀어준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깊은 강보다 깊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신들을 어버이 못지않게 사랑하고 가르쳐 주었다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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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목이 장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김형목사위 김형목(金衡穆)이 병진(丙辰)년 11월에 장모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온유하고 다정한 인품을 회고하면서 평소 여러 가족에게 실천했던 미덕을 추모했다. 망자가 가족들이 아프면 손수 약을 지어 갖다 주며 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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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린이 척숙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참최인 하경린조카인 하경린(河景麟 : 1879 ~ 1938, 본관 晉州, 자 趾顯)이 정사(丁巳)년 11월에 척 숙모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70 평생을 회고하면서 어질고 순수했던 면모를 강조했다. 망자가 후덕한 인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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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태가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인 하상태친척인 하상태(河相泰)가 병진(丙辰)년 11월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안동권씨 가문의 명문가에서 자라나 어질고 정숙한 여성의 자태를 구비했다고 했다. 2남 2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평소 가정에서 효성스럽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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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신이 하문환을 위해 병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김제신김제신(金濟信)이 병신(丙申)년 3월에 하문환(河文煥 : 1850 ~ 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 忠烈公派 23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김제신은 질병으로 몸져 누워있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 조문하지 못해 죄송했다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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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소가 표종숙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내종질 이재소인척인 이재소(李在韶)가 병진(丙辰)년 11월에 외사촌 숙모 안동권씨(安東權氏 : 忠烈公派 23世 河文煥 婦人) 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오래 살고 부부가 해로했던 점을 들어 만년의 생애가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평소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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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갑이 장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안승갑안승갑(安承甲 : 1881 ~ 1931, 본관 順興, 자 元五, 호 晩山)이 정사(丁巳)년 11월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질병 때문에 직접 찾아가 조문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자신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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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화가 종숙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질 하재화친척인 하재화(河在華 : 1853 ~ 1933, 본관 晉州, 자 聖宇)가 정사(丁巳)년 11월에 종숙모(從叔母) 안동권씨(安東權氏 : 河文煥 婦人)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자신처럼 외롭게 지낸 이가 없었다며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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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욱이 백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아 재욱조카 하재욱(河在旭 : 1879 ~ 1935, 본관 晉州, 자 聖初)이 정사(丁巳)년 11월에 백모(伯母) 안동권씨(安東權氏 :忠烈公派 23世 河文煥 婦人)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안동 권씨의 우수한 가문 전통을 이었으며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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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종이 처종조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서 권중종종손서(從孫壻)인 권중종(權重鍾)이 병진(丙辰)년 11월에 처종조모(妻從祖母)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어진 덕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자신을 친 손자 이상으로 사랑하고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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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로가 외숙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생질 김명로김명로(金明魯)가 병진(丙辰)년 11월에 외숙모(外叔母) 안동권씨(安東權氏 : 忠烈公派 23世 河文煥 婦人) 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신의 부모에게 자상히 대했던 면모를 회고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베푼 은혜는 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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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중이 종숙모 안동권씨를 위해 1916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종질 재중종질(從姪)인 하재중(河在中 : 1908 ~ 1990, 본관 晉州)이 병진(丙辰)년 11월에 종숙모(從叔母) 안동권씨(安東權氏 : 忠烈公派 23世 河文煥 婦人)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안동 권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유교적인 교양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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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운, 하문환이 계은 이선생을 위해 191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하대운∙하문환하대운(河大運 : 1841 ~ 1917, 본관 晉州, 자 叔亨)·하문환(河文煥 : 1850~1928, 본관 晉州, 자 明叔, 호 平菴)이 신해(辛亥)년 9월에 계은(桂隱) 이선생(李先生)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나라의 안위와 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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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환이 족종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시환친척인 하시환(河時煥 : 1889 ~ 1960, 본관 晉州, 자 聲彦)이 신묘(辛卯)년 9월에 친척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면전에서 이야기하듯이 슬픈 심정을 토로했다. 망자가 평소 베풀었던 사랑과 가르침을 회고하면서 영원한 사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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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학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준학이준학(李準學)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고 난 이후 구슬이 연못에 빠져버리고 난초가 골짜기에서 시든 형상이 되었다고 했다. 망자가 생전에 유교적인 학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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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식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이회식이회식(李會植 : 1892 ~ 1988, 본관 禮安, 자 景武, 호 翠山, 仁慈·重厚)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명에 달린 것이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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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동민김동민(金東敏)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명문가의 고유한 전통과 유교적 교양을 익혀 어진 선비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했다. 망자가 효성과 우애 정신이 투철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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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정환김정환(金玎煥)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 하위지 선생 후손으로 충절과 의리 정신이 투철했으며 어려서부터 유교적 교양을 익히고 가문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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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가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성모김성모(金性模)가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진주 하씨의 명문가 후손으로 대대로 가문의 우수한 전통 정신을 계승했다고 했다. 망자가 어질고 자상한 성품으로 많은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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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환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시생 일환친척인 하일환(河壹煥 : 1911 ~ 1976 , 본관 晉州, 자 官五)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순수했다며 이는 진주 하씨 가문의 전통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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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팔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팔친척인 하상팔(河相八 : 1895 ~ 1983, 본관 晉州, 자 洛龜)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모든 행동은 유림들의 모범이 되었다며 만년에 질병으로 고생하던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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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수가 족제 형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재수아우인 하재수(河在守 : 1888 ~ 1962, 본관 晉州, 자 聖三)가 신묘(辛卯)년 9월에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가까운 곳에 살며 매우 친밀하게 지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망자가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