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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구가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공복인 상구친척인 하상구(河相九 : 1881 ~ 1957, 본관 晉州, 자 致鼎)가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살고 죽는 것이 운명이라며 망자가 이러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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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동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참최인 재동친척인 하재동(河在東 : 1910 ~ 1976, 본관 晉州, 자 順卓)이 신묘(辛卯)년 9월에 친척 형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매우 총명했으며 우애가 독실하여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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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가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이재하이재하(李在河)가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 하위지 선생 후손으로 진주 하씨의 우수한 가문 정신과 전통을 이어 의리와 충절의 기상을 지녔다고 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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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학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녀서 이회학사위인 이회학(李會學 : 1911 ~ , 본관 禮安)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어려서 일찍이 어버이를 잃고 슬프게 지내던 자신을 친 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던 망자의 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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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규가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질 종규조카인 하종규(河鍾奎 : 1902 ~ 1962, 본관 晉州, 자 聖五)가 임진(壬辰)년 9월에 숙부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기상이 돋보이고 의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며 가족들과 우애가 독실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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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환이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김철환김철환(金轍煥)이 임진(壬辰)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처사로서 일생을 마쳤지만 고결한 인품과 어진 면모는 후인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고 했다. 늘 독서하고 사색하며 조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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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연이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변진연변진연(邊進淵 : 1892 ~ 1963, 본관 原州, 자 順明, 仁慈)이 신묘(辛卯)년 9월에 처사(處士)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자신의 부친과의 친분 관계가 매우 돈독했다고 하며 자신에게 자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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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도가 하재홍을 위해 196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재도아우인 하재도(河在道 : 1905 ~ , 자 而大)가 임진(壬辰)년 9월에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세월이 쉽게 흘러가고 세상인심의 변천이 심하다며 망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매사가 슬프게 느껴진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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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진이 족숙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질 창진조카인 하창진(河昌鎭 : 1914 ~ 1985, 본관 晉州, 자 周卿)이 임진(壬辰)년 9월에 숙부인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고 나서 온 거리에 불이 꺼진 것 같다며 사람들은 갈 길을 찾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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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진이 삼종숙주 하재홍을 위해 195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기진조카인 하기진(河基鎭 : 1906 ~ 1987, 본관 晉州)이 신묘(辛卯)년 9월에 숙주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를 잃은 슬픔을 결렬하게 표현했다. 자신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슬프게 지낸 것과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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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진이 삼종숙주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기진조카인 하기진(河基鎭)이 임진(壬辰)년 9월에 숙부 하재홍(河在弘: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시야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망자와의 사별에 따른 아픔을 표현하였다. 망자가 하위지 선생의 후손으로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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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환이 사장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하생 신중환신중환(申中煥 : 본관 鵝州)이 임진(壬辰)년 9월에 사장(査丈)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교양과 성리학 관련 서적을 섭렵한 선비로서 어질고 다정한 인물이었다고 했다. 평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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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석인이 처사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변석인변석인(邊錫仁 : 1886 ~ 1967, 본관 晉州, 자 道亨, 호 東雲, 重厚·仁慈)이 임진(壬辰)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다며 망자와 사별해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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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가 처사 하재홍을 위해 195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하생 김흥규김흥규(金興奎 : 1922 ~ , 본관 義城, 鶴峯 金誠一 代孫)가 임진(壬辰)년 9월에 처사(處士) 하재홍(河在弘 : 忠烈公派 24世)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단계 하위지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문의 충절 사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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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호가 유인 선성김씨를 위해 196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종 하대호친척인 하대호(河大湖)가 신축(辛丑)년 5월에 유인(孺人) 선성김씨(宣城金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사별의 슬픔은 잊혀 지지 않고 탈상할 기한은 쉽게 다가온다며 망자와의 사별을 아쉬워했다. 망자가 명문가 후손으로 유교적인 인품과 여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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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규가 송암 권호문을 위해 신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후생 송지규송지규(宋之圭)가 신미(辛未)년 3월에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송지규는 9대 조상이 송암 권선생의 문인임을 밝히고 문집을 통해 송암 권선생의 행적과 사상과 인품을 알았다고 했다. 퇴계 이후 여러 제자들의 학문 연원을 언급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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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연이 송암 권호문을 위해 신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도산서원유생 이진연도산서원(陶山書院) 유생(儒生)인 이진연(李進淵)이 신미(辛未)년 3월에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송암 선생의 학문은 퇴계선생의 학문 전통을 계승했다며 정통 유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 매우 고매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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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형이 부모님을 위해 194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십육대손 재형하재형(河在衡 : 1873 ~ 1947, 본관 晉州, 자 舜齊)이 임오(壬午)년 10월에 망자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정신세계는 산뜻한 자연 경관처럼 아름답고 빛난다고 했다. 망자의 남긴 혼과 정신을 후인들이 길이 계승하게 될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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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기가 하위지를 위해 정미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이재기이재기(李載紀)가 정미(丁未)년 1월에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선생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단종을 위해 충절을 바친 기상과 얼은 역사상 길이 빛날 것이라며 충절 정신을 추모했다. 특히 명예가 회복되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점도 언급하면서 혼령이 평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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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문이 하철민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송암 권호문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이 하철민(河徹岷)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진주 하씨 선대 가계를 강조하며 충절과 의리 정신이 빼어났던 점을 언급했다. 42세 동안 남긴 행적 가운데 후인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었던 덕행과 미담을 소개하였고 슬하에 3남 4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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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화가 기록한 정헌하공묘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김도화김도화(金道和)가 하용국(河龍國)의 행적을 기록한 정헌하공묘지명(井軒河公墓碣銘)이다. 서두에서 진주 하씨 가문의 내력과 단계 하위지 선생 충절 정신을 후손들이 계승했던 점을 강조했다. 망자가 71년 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베풀었던 미담과 덕행을 소개하고 후인들에게 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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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에 계 모임의 내역을 기록한 임계회계안 이라는 계문서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력 41년(1613년) 9월에 작성한 「임계회계안(壬癸會稧案)」 이다. 안동시 서후면 학가산 일대 노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된 계모임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시를 주고받았던 내력을 담고 있다. 한글 시도 있고, 회원 명단과 한시 원문도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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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지은 송야평천방완의 라는 완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축(丁丑)년 3월에 작성한 성책(成冊) 문서로 안동부 서후면 송야리 천방과 관련한 합의 사안을 기록한 「송야평천방완의(松夜坪川防完議)」이다. 송야리 천방은 상당히 먼 지역에 걸쳐 수축되어 있으며 강 유역에 따라 수해 피해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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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를 추모하기위해 기록한 창렬소유안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창렬소 관련 유생들의 명단을 기록한 「창렬소유안(彰烈所儒案」)이다. 문중과 성씨별로 명단, 생년 간지, 자호 및 본관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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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를 추모하기위해 기록한 창렬소유안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창렬소 관련 유생들의 명단을 기록한 「창렬소유안(彰烈所儒案)」이다. 문중 및 성씨별로 명단, 생년 간지, 자 ,호와 본관을 기록했다. 맨 먼저 하위지 선생의 후손들을 기록해서 전체 일을 주관하게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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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대를 가선대부 한성좌윤 겸 오위도총부총관으로 1856년에 임명한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함풍(咸豊) 6년(1856년)에 임흥대(林興大 : 1751 ~ 1829, 본관 醴泉, 자 學賓)를 가선대부 한성좌윤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嘉善大夫漢城左尹兼五衛都捴府副捴管者)로 임명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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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동을 가선대부 행 용양위호군 경복궁 위장으로 1867년에 임명한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함풍(咸豊) 6년(1856년)에 임만동(林萬東 : 1793 ~ 1866)을 가선대부 행 용양위호군 경복궁 위장(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景福宮衛將)으로 임명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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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국을 통정대부 공조참의로 1856년에 임명한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함풍(咸豊) 6년(1856년)에 임중국(林重國 : 1733 ~ 1758, 자 器彦, 林興大 子)을 통정대부 공조참의(通政大夫工曹參議)로 임명한 교지(敎旨)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나 노비 등을 하사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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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등 14인이 사도주에게 제방 보수 시한 연기에 대해 갑인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종국·임장인·이만돌 등 14인김종국(金宗國)·임장인(林長人)·이만돌(李晩乭) 등 14명이 갑인(甲寅)년 9월에 사또에게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여름철에 수해를 만나 제방이 무너졌지만 농사 일이 바빠 즉시 보수할 수 없으니 보수 시한을 조금 연장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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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유 등 7인이 수의사도에게 제방 보수 시한 연기에 대해 1854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시유·임응회·임홍석 등 7인권시유(權時裕)·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임홍석(林弘碩) 등 7명이 갑인(甲寅)년 7월에 수의사도(繡衣使道)에게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여름철에 수해를 만나 제방이 무너졌지만 농사 일이 바빠 즉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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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필수가 성주에게 묘소를 훼손하고, 시신을 유기함에 대한 처벌을 바라며 신축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필수임필수(林必秀)가 신축(辛丑)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주인이 없는 산에 묘를 만들었는데, 산 아래 마을에 사는 권 아무개가 부친 묘소를 맘대로 파헤치고 시신을 내던진 죄를 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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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우가 성주에게 투장에 대해 갑신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병우임병우(林秉佑)가 갑신(甲辰)년 11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임병우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산에 불한당이 자기 조상의 무덤을 투장(偸葬)한 것을 엄단 조치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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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동이 동중에게 대금 납부 증서를 작성해 달라며 1829년에 보낸 소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임만동임만동(林萬東 : 1793 ~ 1866, 본관 醴泉,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이 기축(己丑)년 12월에 동중(洞中)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이미 논을 사고 대금을 납부했다며 대금 납부 증서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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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동이 동중에게 대금 납부 증서를 작성해 달라며 1829년에 보낸 소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임만동임만동(林萬東 : 1793 ~ 1866, 본관 醴泉, 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이 기축(己丑)년 6월에 동중(洞中)에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이미 논을 사고 대금을 납부했다며 대금 납부 증서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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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동이 역중에게 자손들의 역 면제 공식 문서를 작성해 달라며 1840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만동임만동(林萬東 : 1793 ~ 1866, 본관 醴泉,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 경자(庚子)년 12월에 역중(驛中)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조상이 오위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자손들에게 부과된 역(役)을 면제해 준다는 공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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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흥 등 3인이 대도호부로 불한당 때문에 입은 피해를 호소하며 갑인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주응·김종국·임홍석 등임주흥(林周鷹)·김종국(金宗國)·임홍석(林洪錫) 등이 갑인(甲寅)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이웃 고을의 불한당 때문에 피해 입은 사안을 더 이상 지연시키지 말고 해결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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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4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갑진(甲辰)년 2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매입한 토지를 두고 억지를 부리며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불한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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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2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임인(壬寅)년 5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과부 박씨가 남편을 잃은 뒤에 가산을 기울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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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3년에 보낸 소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계묘(癸卯)년 12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과부 박씨가 남편을 잃은 뒤에 가산을 기울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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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3년 보낸 소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계묘(癸卯)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과부 박씨가 남편을 잃은 뒤에 가산을 기울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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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2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임인(壬寅)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과부 박씨가 남편을 잃은 뒤 가산을 팔아 매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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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사가 동중에게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신축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박소사박소사(朴召史)가 동중(洞中)에게 신축(辛丑)년 1월에 억울한 사정을 고을 원이나 해당 관청에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과부 박씨는 남편을 잃은 뒤 어렵게 살면서 가산을 팔아 토지를 매입했는데, 토지 주인이 그녀에게 소유권을 넘겨 주지 않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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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사도주에게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2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임인(壬寅)년 2월에 사또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과부 박씨는 남편을 잃은 뒤 어렵게 살면서 재산을 팔아 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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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사도주에게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3년에 보낸 소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계묘(癸卯)년 8월에 사또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의 과부 박씨는 남편을 잃은 뒤 어렵게 살면서 재산을 팔아 근근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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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가 사도주에게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1843년에 보낸 소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응회(林應晦 :1809 ~ 1894, 본관 醴泉, 자 士文,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慶熙宮衛將)가 계사(癸卯)년 8월에 사또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같은 마을의 과부 박씨는 남편을 잃은 뒤 재산을 처분한 뒤에 토지를 매입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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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득이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을해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조광득조광득(趙光得)이 을해(乙亥)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이미 구입한 토지의 소유권 행사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토지 원주인의 행패를 막아 달라고 했다. 문서에 명백하게 증명이 되어 있다고 하면서 문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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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회 등 7인이 동중에게 제방 보수 시한 연기에 대해 경술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응회·임양춘 등 7인임응회(林應晦)·박양춘(林養春) 등 7명이 경술(庚戌)년 1월에 동중(洞中)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수해를 만나 제방이 무너진 곳을 수축하라는 명령을 농사일과 문중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어김없이 수축하겠으니 말미를 달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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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유 등 3인이 대도호부로 토지 경작권 인정에 대해 갑인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시유·임응용·김종국권시유(權時裕)·임주응(林周鷹)·김종국(金宗國)이 갑인(甲寅)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전답 사이로 물도랑을 낸 것을 트집 잡아 토지 경작 분쟁이 발생된 것이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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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용 등 3인이 대도호부로 토지 소유권 인정에 대해 갑인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주용·김종국·임홍석임주용(林周龍)·김종국(金宗國)·임홍석(林洪錫)이 갑인(甲寅)년 4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개간할 때부터 소유자가 명백한 토지를, 불한당이 자기 소유지라 주장하는 분쟁을 해결하기를 호소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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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득열이 대도호부로 신분 정리를 바라며 정유년에 보낸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류득열류득열(劉得悅)이 정유(丁酉)년 2월에 대도호부(大都護府)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며 해결해 주기를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자란 16세 여인이 부모와 가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혼선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것을 지적하며 명확한 해결을 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