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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당부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연로한 친척 분들의 건강이 궁금하다고 했다. 가족들의 안전과 건강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며 자상하게 배려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동기들 사이에서 우애를 유지하여 집안의 화목을 이루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2
시외조모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외조모시외조모가 보낸 언문 간찰(簡札)이다. 평소 염려해 준 은덕이 고맙다고 하며 상대방이 가족의 화목을 위해 수고하는 점을 위로했다. 효성과 우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임을 알려주며 그동안 베푼 정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3
가족 화목을 위한 노고를 감사하며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누런 국화가 피고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감흥이 짙다고 하면서 가족 및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가족과 친척들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상대방의 노고를 위로하고 상대방의 후의가 고맙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4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를 묻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형편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잘 이겨나가도록 격려했다. 상대방이 가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점을 칭송하며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5
가족들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염려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를 묻고 상대방의 자상한 배려가 고맙다고 했다.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형편을 궁금해 하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돕겠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6
가족의 효성과 우애의 중요함에 대해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시댁에서 아녀자로서 준수해야 할 도리를 강조하고 자주 만나지 못해 그리운 마음이 많다고 했다. 어려움에 처한 가족을 돌보고 시댁 및 친척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과 효성과 우애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7
외삼촌이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외삼촌언문 간찰(簡札)이다. 지면으로 인사를 하게 되어 송구하다며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다. 상대방이 가족과 친척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위로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8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이 하루 속히 어려움을 이겨내길 기원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상대방의 노고를 위로했다.출처 : 유교넷 -
248609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소식이 궁금하다고 하면서 평소 베풀어준 후의도 고맙다고 했다. 임신한 산모 및 가족들의 건강 상태를 묻고 집안에서 아녀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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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갑진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언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와 건강 상태 등을 골고루 묻고 있다. 특히 출타한 이들의 형편과 가족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시동생의 안부와 건강 상태 등을 염려하며 부녀자로서 가정에서 역할이 소중하다고 했다.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출처 : 유교넷 -
248611
혼서물목의 내용을 담은 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갑술(甲戌)년 9월에 작성한 혼서물목(婚書物目)의 내용을 담은 간찰(簡札)이다. 혼서 예물 가운데 의복의 치수를 기록해서 보냈다.출처 : 유교넷 -
248612
박치연이 이호발을 위해 정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문하생 박치연문하생(門下生)인 박치연(朴致延)이 정유(丁酉)년11월에 스승인 안릉(安陵) 이공(李公) 이호발(李鎬發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부친 및 자신의 스승 역할을 했다고 하며 회고했다. 망자의 70 평생을 회고하면서 후학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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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이 백모 영양 남씨를 위해 1831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상각조카인 이상각(李相珏 : 1804 ~ 1837, 본관 載寧, 眠雲齋 周遠의 曾孫子)이 신묘(辛卯)년 6월에 백모(伯母) 영양남씨(英陽南氏: 李光潝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서두에서 부터 망자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돌아가신 백모가 이내 다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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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이 백모 영양 남씨를 위해 183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상민조카인 이상민(李相民)이 경인(庚寅)년 6월 8일에 백모(伯母) 영양남씨(英陽南氏 : 李光潝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세월이 매우 빨리 흘러 망자가 돌아간 1주기를 맞았다며 망자를 잃은 슬픔을 문면에 담았다. 망자 외아들을 단아한 선비로 성장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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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이 이지영을 위해 185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기영친척 아우인 이기영(李岐榮 : 1830 ~ 1895, 본관 載寧, 자 致周)이 기미(己未)년 9월 7일에 종형(從兄) 이지영(李趾榮)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세월이 흘러 망자의 흔적을 잊어버릴까 염려스럽다며 망자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퍼했다. 모자의 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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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이 백모 영양 남씨를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상각친척인 이상각(李相珏 : 1804 ~ 1837, 본관 載寧, 眠雲齋 周遠의 曾孫子)이 백모(伯母) 영양남씨(英陽南氏 : 李光潝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가난한 집안 살림을 잘 꾸려나가며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여성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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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이 사종숙모 한양 조씨를 위해 1773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이준영친척 조카인 이준영(李晙榮 : 1833 ~ 1888, 본관 載寧, 자 聖曄, 存齋 徽逸 先生의 7대손)이 무오(戊午)년 9월에 숙모 한양조씨(漢陽趙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子, 李宇烈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외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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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희가 고숙주 이공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남정희인척인 남정희(南鼎熙)가 무술(戊戌)년 11월 19일에 고모부 재령(載寧)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떠난 이후 서책, 거문고, 뜰의 매화나무가 그대로 남아 망자의 생전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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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이 종질부 연안 이씨를 위해 1770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면운재 주원이주원(李周遠 : 1714 ~ 1796, 본관 載寧, 자 正培, 호 眠雲齋, 存齋 先生의 曾孫, 生員, 僉樞, 有文集)이 경인(庚寅)년 11월에 종질부(從姪婦)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질병 때문에 직접 조문을 하지 못한 채 제문으출처 : 유교넷 -
248620
박진익이 이호발을 위해 무술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 박진익사돈 사이며 나이가 어린 자인 박진익(朴鎭益)이 무술(戊戌)년 9월 19일에 안릉(安陵) 이공(李公) 이호발(李鎬發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유림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했다. 망자의 일생은 후손들에게 모범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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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가 이광흡을 위해 1839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상규친척 조카인 이상규(李相奎 : 1776 ~ 1851, 본관 載寧, 자 日成, 호 梧窩)가 기해(己亥)년 11월에 이광흡(李光潝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친척 연로한 분들의 잇 다른 죽음에 이어 망자를 잃게 되어 친척들은 의지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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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이 이익경을 위해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종 박종문인척인 박종문(朴鍾文 본관 : 務安, 武毅公 毅長公의 후손)이 아우뻘인 이익경(李益卿 : 眠雲齋 周遠 先生의 7代孫)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평소 행적과 일대기를 회고하면서 어질고 순진했던 면모를 회상했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온화한 성품을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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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가 매형 무안 박공을 위해 1981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근호처남인 이근호(李根浩 : 1917 ~ 2003, 본관 載寧, 자 達卿, 存齋 徽逸 先生의 10대손)가 신유(辛酉)년 8월 22일에 자형(妹兄)인 무안(務安) 박공(朴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임란을 당했을 때 의기를 발휘하여 항거했던 점을 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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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가 종자씨 재령이씨를 위해 1957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종제 원호사촌 동생인 이원호(李元浩 : 1899 ~ 1957, 본관 載寧, 자 善卿, 眠雲齋 周遠 先生의 6대손)가 정유(丁酉)년 12월에 사촌 누이 재령(載寧) 이씨(李氏)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가문의 유풍을 이어 단정하고 정숙한 여성의 면모를 지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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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가 사종숙부 이호발을 위해 1902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원호친척인 이원호(李元浩 : 1899 ~ 1957, 본관 載寧, 자 善卿, 眠雲齋 周遠 先生의 6대손)가 임인(壬寅)년 11월 27일에 숙부 이호발(李鎬發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선현들의 겸손한 덕을 체득한 선비였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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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이학호가 재종숙모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태호·학호친척 조카인 이태호(二泰浩 : 1918 ~ 2000, 본관 載寧, 자 致昇, 石溪 李時明 先生의 11대손), 이학호(李鶴浩 : 1925 ~ 2005, 본관 載寧, 자 致韶, 石溪 李時明 先生의 11대손)가 무오(戊午)년 7월에 재종숙모(再從叔母)인 대흥(大興) 백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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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이상호가 유인 대흥 백씨를 위해 1978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대호·상호친척 조카인 이대호(李大浩 : 眠雲齋 周遠 先生의 5대손),이상호(李商浩 : 眠雲齋 周遠 先生의 5대손)가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효성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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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목 · 이병락이 유인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병목·병락친척 손자인 이병목(李秉睦 : 본관 載寧, 자 順夫, 存齋 先生의 11대손), 이병락(李秉洛 : 본관 載寧, 자 國瑞, 存齋 先生의 11대손)이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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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가 유인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증손 이봉희친척 증손(曾孫)인 이봉희(李鳳熙 : 1912 ~ 1986, 본관 載寧, 자 輝彦, 雲岳涵 先生의 14대손)가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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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 족조 유인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손 이병철친척 손자인 이병철(李秉喆 : 1916 ~ 2001, 본관 載寧, 자 世吉, 存齋 徽逸 先生의 11대손)이 무오(戊午)년 7월 13일에 친척 할머니인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부인)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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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걸이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병걸친척 손자인 이병걸(李秉杰 : 1922 ~ 1999, 본관 載寧, 자 德休, 眠雲齋 周遠 先生의 7대손)이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문중의 문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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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호·이우호가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이완호·우호친척 조카인 이완호(李完浩 : 1929 ~ 1999, 본관 載寧, 자 惠成, 雲岳涵 先生의 12대손), 이우호(李佑浩 : 1932 ~ 1999, 본관 載寧, 자 治伯, 雲岳涵 先生의 12代孫)가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유인(孺人)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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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후가 재종 고모 이씨를 위해 무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재종손 백재후친척 손자인 백재후(白在厚 : 본관 大興)가 무오(戊午)년 7월에 재령(載寧) 이씨(李氏)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덕행에 비해 오래 살지 못한 것이 흠이라고 하며 슬퍼했다. 망자가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오는 가문의 유업을 이어 어진 여성의 미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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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탁·백재경이 고모 대흥 백씨를 위해 무오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종손 재탁·재경친척 손자인 백재탁(白在鐸)·백재경(白在景)이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가문의 유풍을 이어 어진 여성으로 자라나 내조에 전념하며 자녀 교육에 이바지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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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락이 방모주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박문락사위인 박문락(朴文洛 : 1920 ~ , 본관 務安, 朴鉉斗의 子)이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장모인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夫人)의 영전(靈前)에 올린 한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18세에 재령 이씨 가문에 장가를 온 이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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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가 빙대모 대흥 백씨를 위해 1978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손여서 이원재손녀 사위인 이원재(李源榟 : 1951~ , 본관 眞城)가 무오(戊午)년 7월 12일에 처조모인 대흥(大興) 백씨(白氏 : 眠雲齋 周遠 先生의 孫, 鎬發의 부인)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평소 망자로부터 극진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망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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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가 증조를 위해 정사년에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증손 철희증손(曾孫)인 이철희(李喆熙)가 정사(丁巳)년 8월 20일에 증조부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사를 올리면서 신주 앞에 간략히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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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이 조고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박종문가르침을 받은 박종문(朴鍾文)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를 잃은 슬픔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했다. 망자가 여러 문하생들을 친절하게 가르치고 유림 사회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던 점을 회고했다. 망자는 유교 정신에 투철한 인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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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진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남우진친척 아우인 남우진(南禹鎭)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지조와 정신은 해와 달도 거기에 비교될 수 없다며 망자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추모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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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순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남효순아우뻘인 남효순(南孝順)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뛰어난 학문 을 기리며 망자가 유교적 인품과 빼어난 학문으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점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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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찬종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백찬종벗인 백찬종(白燦宗)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와 지난 시절에 함께 지내며 아름답게 교유했던 점을 회고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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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이 죽은 이의 행적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박종원가르침을 받은 박종원(朴鍾遠)이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가문 정신을 훌륭하게 계승한 인물로 어진 행적을 통해 후인들에게 모범을 보였다고 했다. 지난 행적을 회고하며 애도의 뜻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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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이 이주원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 / 기록자료>고문서 / 허훈허훈(許薰 : 1838 ~ 1907, 본관 金海, 호 舫山)이 이주원(李周遠 : 1714 ~ 1796, 본관 載寧, 자 正培, 호 眠雲齋, 存齋 先生의 曾孫, 生員, 僉樞, 有文集)의 행적을 기록한 묘갈명이다. 재령 이씨의 가문 내력과 이주원의 83년 생애를 회고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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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로서 묘 자리와 장례 절차에 따른 시간을 간략히 기록했다. 묘 자리는 유좌묘향(酉坐卯向)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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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항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로서 상단에 유족의 생년 간지, 이어 장례 절차에 따른 시간을 간략히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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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옷감의 품목을 기록한 물목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신묘(辛卯)년 10월 28일에 옷감의 품목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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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제수품과 수량을 기록한 물목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신묘(辛卯)년 10월 28일에 제수품과 수량을 기록한 물목단자(物目單子)이다. 제수품은 곶감, 대추, 소주 등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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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향교이건상량문이라는 제목의 기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진보향교(眞寶鄕校)의 명륜당(明倫堂)옮겨 짓고 난 뒤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진보향교이건상량문(眞寶鄕校明倫堂移建上樑文)」이다. 진보현의 내력을 언급하고 왕성한 유림들의 활동 내력을 강조했다. 이러한 행적을 계승한 유학 진흥 및 유교 문화 창달을 기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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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루암을 다시 짓고 지은 명루암중수기 / 기록자료>고문서 / 구세손 용발이용발(李瑢發 : 1879 ~ 1965, 본관 載寧, 자 國聞, 호 華庵, 存齋 先生의 9대손)이 재령 이씨의 선대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 1619 ~ 1672)과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 1627 ~ 1704)의 학문 정신과 가문의 전통성을 강조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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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에 기록한 일지재사중수시하기 라는 제목의 치부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해(丁亥)년 윤(閏) 2월 16일에 일지재사(日池齋舍)를 중수(重修)하면서 수입, 지출 및 관련 사항을 기록한 「일지재사중수시하기(日池齋舍重修時下記)」이다. 인부 및 식비 등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