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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1908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권준희아우뻘인 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 鑽의 長子)가 무신(戊申)년 3월 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안부를 전한지 오래 되었다면서 가족들이 처한 어려움을 묻고 그 외 가족들의 일상생활 형편에 대해서도 두루 물었다. 아울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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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 질병 상태에 관해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노졸 무경무경(武卿)이 12월 1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 안부가 궁금했다고 하면서 질병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한 가족에 대해 염려했다. 특히 자신의 질병 상태가 좋지 않고 차도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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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직이 조상 문집 간행에 대해 언급하며 기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원직아우 이원직(李源直)이 기유(己酉)년 12월 6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 여러 가족 안부와 연로한 문중 어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면서 문중 조상의 문집 간행에 따른 사안에 대해 언급했다. 문집 간행에 따른 보충 사안과 발송 문제, 문중 지원 등에 대해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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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국이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경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승국아우 이승국(李承國)이 경신(庚申)년 3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부친 탈상을 당해 여러 가지로 마음이 슬픈 점을 위로하면서 가족 안부를 묻고 있다. 조상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모시는 사안 등에 대해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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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선이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며 갑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종선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김종선(金鐘善)이 갑인(甲寅)년 4월 2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불행하게도 아내를 사별한 아픔을 당해 자신도 매우 슬프다고 했다. 부부의 의리가 소중하다면서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도 달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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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형이 가족 길흉사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을사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제 권상형친척인 권상형(權相衡)이 을사(乙巳)년 1월 1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평소 자주 소식을 전하지 못해 서운했다고 하면서 가족 안부를 골고루 묻고 있다. 가족의 길흉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함께 의논하여 해결하자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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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만이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경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권동만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권동만(權東萬)이 경신(庚申)년 4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여행 중 어려움이 있는지 묻고 있다. 자신은 염려 덕분에 무사히 지낸다고 하며 가족 안부를 간략하게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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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계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류병희박병희(柳秉熙)가 계유(癸酉)년 12월 28일에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지난번에 친절한 가르침을 받아 매우 다행이며 가족과 친척들이 평안한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독감에 걸려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없어 염려스럽다고 했다. 이후로도 지속적인 가르침을 부탁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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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필이 길흉사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1921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정필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이정필(李廷弼:1849 ~ 1927, 본관 全州, 자 聖百, 호 牛山)이 신유(辛酉)년 11월 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들의 건강 등에 대해 묻고 자신의 가족 안부를 전하였다. 길흉사를 언급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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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경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용기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김용기(金龍基)가 경오(庚午)년 10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돈댁의 근황이 궁금하며 자신은 질병으로 인해 심신이 피곤하고 가족들이 어려움에 처해서 이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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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가 성리학 관련한 질의에 대해 병진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인하생 이우인척(姻戚)이며 가르침을 받은 이우(李㙖)가 병진(丙辰)년 8월 1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를 묻고 여러 가족의 건강 등에 대해 묻고 있다. 성리학 관련 내용 중 이기(理氣)의 동정(動靜)과 운용(運用) 과정 등을 질의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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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경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김정규처사촌 동생인 김정규(金定奎)가 경신(庚申)년 11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의 근황에 대해 묻고 염려했다. 평소 자상한 배려에 대해 감사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방안에 대새 언급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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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이 유학자들의 의식 행사에 대해 언급하며 을사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강빈강빈(姜鑌)이 을사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작별한 지 한 달이 지났으나 변란(變亂)이 많아 양쪽 서로 소식을 듣지 못해 울적하다고 했다. 사문(斯文)의 성의(盛儀)가 하루 밖에 남지 않아 선비들이 모여들 텐데 비용과 접대를 어떻게 주선할지 궁금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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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이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정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강빈강빈(姜鑌)이 정유(丁酉)년 2월 11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부고를 받고 슬픔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하며 슬픔에 처한 상주와 여러 유족을 위로하며 염려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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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이 길흉사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임인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가제 강빈아우 강빈(姜鑌)이 임인(壬寅)년 8월 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초상을 당해 슬픔에 처했던 자신을 위로해 주어 고맙게 생각하며 가족들의 안부와 건강 상태 등을 전했다. 자제들의 학업과 연로한 이들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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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이 며느리의 유산을 걱정하며 병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가제 강빈강빈(姜鑌)이 병오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작별 후 섭섭한 생각은 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하며 자신은 어렵게 법리에 이르렀다가 이튿날 늦게 집에 돌아오니 며느리가 낙태 후 후유증이 심각해 걱정이라고 했다. 지금은 일어나서 방 안에서 활동을 하지만 심기(心氣)가 퇴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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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직이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언급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권동직친척인 권동직(權東稷)이 병○(丙○)년 12월 11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집안이 불행한 초상을 당했을 때 직접 찾아와 조문해 주고 이어 위로의 서찰까지 보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자신은 최근에 질병이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이들도 감기에 걸려 온 집안 식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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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식이 사돈댁의 평안을 기원하며 계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장식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류장식(柳璋植)이 계유(癸酉)년 12월 1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돈댁 여러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가족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최근에 당한 집안 초상과 잦은 질병으로 인해 심신이 불편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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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만이 가족의 길흉사에 대해 자문을 구하며 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제인 권동만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권동만(權東萬)이 계해(癸亥)년 7월 5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돈댁 여러 가족 건강과 평안 여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자상한 배려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며 가족의 길흉사를 언급하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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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직이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무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 이원직외사촌인 이원직(李源直)이 무신(戊申)년 3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부인과 사별했다는 부고를 받고 매우 슬프다며 슬픔에 처한 여러 유족을 위로했다. 아우뻘인 상대방이 하루 속히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족을 이끌어가도록 해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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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호가 환갑을 축하하며 병자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석호김석호(金奭鎬)가 병자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늘의 수연(壽筵)은 하늘이 내려준 청복(淸福)으로 손자들이 곱고 빛난 옷을 입고 많은 친척과 벗들이 술잔을 올리고 축하하니 멀리서 경하를 드린다고 했다. 자신은 요즈음 드릴 말이 없으며 지난날의 따르던 자들도 이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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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식이 새신부에 대해 언급하며 계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장식류장식(柳璋植)이 계유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일전에 부친 서신은 받아 보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자신은 신부(新婦)를 맞이한 후부터 기운이 솟아나고 정신이 맑아져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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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성리학의 교훈을 언급하며 186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의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임술(壬戌)년 윤(閏) 달 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주 안부를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며 여러 가족의 길흉사를 언급하며 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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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186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의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경신(庚申)년 10월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오래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평소 자상한 가르침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가족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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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공역에 대해 언급하며 기축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기축년에 학·국·필 세 아이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신은 종일 공역(公役)에 시달리다가 밤에 여관에 돌아오니 몸이 무척 피곤하다고 했다. 서원(書院)은 제사를 모신 후에 별 다른 일은 없는지 묻고 아들이 오는 편에 자신이 쓰던 이불을 갖다 주기를 바란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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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괴질의 창궐을 걱정하며 병술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병술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3월 29일에 번남편에 서찰과 전도(剪刀) 2개를 보내고 4월 18일에 또 서찰과 당목(唐木) 한 필을 보내고 5월 13일에 서찰과 반유(班油) 당목(唐木) 옷 2건 버선 한 건을 보냈으나 받았다는 회신이 없어 궁금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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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상계종택 이건 사업 경과를 궁금해 하며 경인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경인년에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위곡 족군(族君)이 가는 편에 편지와 모시, 도포, 당목, 옷, 그리고 관교(官敎) 한 통을 보냈으며 수령 여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상계종택(上溪宗宅) 이건(移建) 사업의 종료 여부를 묻고 자신은 최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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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학문에 열중하라며 경인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경인년에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지난 번 안척형 편에 필의 서신을 받았고 이제 읍편에 또 가서(家書)를 받아보니 객지 회포가 조금 위안이 된다고 했다. 필아의 서신에 의하면 올라 올 뜻이 있지만 오지 말고 공부에 열중하라고 했다. 젊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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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이 흉사에 대해 언급하며 을사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죄제 강빈강빈(姜鑌)이 을사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가운데 여러 가족이 평안한지 궁금하다며 자신은 천식(喘息)으로 앓다가 십여 일 전부터 세 번이나 학질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고 했다. 운곡의 화재는 지나갔으나 그때의 참혹한 형상은 말할 수 없다고 하며 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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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형을 잃은 비통함을 말하며 1856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만각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의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병진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신은 사촌 형을 잃고 비통함을 견딜 수 없고 몸도 건강치 못해 매일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지난 번 행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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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의 생활을 궁금해하며 경인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경인년에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지난 3월 2일 고가(高哥)에게 보낸 서찰과 채소 씨앗을 받았는지 궁금하며 필은 아직도 사금에 머물러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가을 전답(田畓)은 풍년의 희망이 있는지 궁금하며 환절기에 노소(老少)가 병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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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병제 만각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의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자신은 병폐(病廢)한 사람으로 벗들의 버림을 받고 궁벽한 산골 눈 오는 밤에 서글픈 회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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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원임 교체를 희망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원임(院任)은 기회를 봐서 교체를 바라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하향대제(夏享大祭)때문에 행사 이전에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모시, 도포, 당목(唐木), 솜옷, 비단두루마기, 버선 2건, 휴지 3봉을 보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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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1862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의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임술(壬戌)년 9월 2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가족 안부를 전한 것인데 평소 자상하게 지도해 주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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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각이 학문적 가르침을 구하며 1847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만각아우뻘인 이만각(李晩慤:1815 ~ 1874, 본관 眞城, 자 謹休, 호 愼庵, 彙運의 子, 柳致明 문인, 저서 巖后類記, 愼庵集)이 정미(丁未)년 8월 8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들의 안부와 자제들의 독서 형편에 대해 언급하며 학문적인 가르침을 앞으로도 계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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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투장에 대해 언급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정해년에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가족 안부와 산모의 건강에 대해 묻고 필의 출타 근황과 철손의 안부를 묻고 있다. 해주 행차는 무사히 돌아왔으며 투총(偸塚)한 무덤은 파갔느냐고 묻고 있다. 서찰을 부쳐도 전달되지 않는 폐단이 있으니 염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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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빈이 가뭄을 안타까워하며 신축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강빈강빈(姜鑌)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중씨(仲氏)가 화재를 당하셨다는 것을 인편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금년 가뭄은 전에 볼 수 없는 일로 처음 이앙(移秧)한 자는 가망이 없으나, 최근에 내린 비로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했다. 아직 파종하지 못한 이들은 추수(秋收)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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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출타 계획을 언급하며 정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정해년에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여러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며 산부의 완쾌 여부와 필의 귀가 여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다름없이 지내며 친척들도 모두 편안하다고 했다. 공무 때문에 내일 김해로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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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세 아들에게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학·국·필 세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복동이 내려갈 때 서찰과 옷을 보냈는데 받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내의 학질 증세가 회복되어 다행이라고 하며 여러 가지로 어려울 텐데 여러 보약을 보내주어 성의가 고맙다고 했다. 학의 귀가와 국의 안부, 필의 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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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아들에게 예안 성주에 대해 언급하며 정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부부친이 정해년에 아들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비용 마련에 대해 묻고 노송정(老松亭)에서 가입비 40냥과 엽전 20냥을 자식들에게 보냈다는데 받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안진사(安進士)가 내려 갈 때 이 글을 보내면서 자식들에게 전하지 못하면 남흥에게 전하도록 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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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병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계죄인 권준희사돈 사이인 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가 병오(丙午)년 10월 1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주로 슬픔에 처한 자신을 위로해 주어 고맙다며 사돈댁 여러 가족 안부에 대해 묻고 있다. 연로한 이들의 근황과 자제들의 성장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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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직이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병오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권동직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권동직(權東稷)이 병오(丙午)년 10월 12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주로 슬픈 가운데 지내는 자신을 위로해 주어 고맙다고 하며 상대방 측 연로한 이들의 근황이 궁금하다며 평안을 기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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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가족의 길흉사에 대해 언급하며 1908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권준희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가 무신(戊申)년 6월 14일에 사돈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사돈댁 여러 가족과 친척들의 근황이 궁금하고 평소 자상한 배려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가족들의 길흉사에 대해 언급하고 축하와 위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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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진이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계해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권오진사돈 사이며 가르침을 받은 권오진(權五鎭)이 계해(癸亥)년 7월 4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 가족 안부가 궁금하다고 하면서 돌아가신 분의 상기(喪期)를 당해 슬퍼하는 상대방을 위로하며 매사에 신중히 대응하여 어려움에 이르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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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1920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인계 권준희인척(姻戚)인 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가 경신(庚申)년 3월 7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부친 탈상을 당해 슬픔에 처한 것을 위로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가족을 돌보며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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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질병 상태에 대해 1908년에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권준희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가 무신(戊申)년 11월 9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주의 몸으로 있으면서 슬픔에 처한 자신을 위로해 주어 고맙고 질병 치료를 위해 다방면으로 약재를 복용하는 중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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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가 가족의 길흉사를 언급하며 1885년에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권준희아우뻘인 권준희(權準羲:1849 ~ 1936, 본관 安東, 자 啓象, 호 友巖)가 을유(乙酉)년 1월 13일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이 상주인 자신을 위로해 주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러 가족의 길흉사에 대해 언급하며 어려운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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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1830) 10월 봉평동(鳳坪洞)에 사는 엄점암(嚴占岩) 등 13명이 올린 등장(等狀) / 기록자료>고문서 / 현동 봉평동민 엄점암 등 12인경인년(1830) 10월 봉평동(鳳坪洞)에 사는 엄점암(嚴占岩) 등 13명이 올린 등장(等狀)이다. 갑술년(1814)에 안동 하회에 사는 유승지댁에서 자신들의 마을 뒷산으로 입장(入葬)한지가 17년이 되어도 그동안 동민들이 잘 수호한 힘으로 산소를 무사히 보존하였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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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1845) 7월 유기목(柳祈睦) 등이 사대부를 욕하고 재사(齋舍)에 넘어들어와 기물을 파손한 일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순상(巡相)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도민 류기목 등 2인을사년(1845) 7월 안동의 생원(生員) 류기목(柳祈睦 : 1802∼1861) 외 하회류씨 198명이 연명으로 순상(巡相) 합하(閤下)에게 올린 소지이다. 풍산읍 수동리(壽洞里)에 사는 김광섭(金光燮) 부자(父子)가 서애 류성룡 묘소 아래에 살고 있었는데, 한달전에출처 : 유교넷 -
249500
정묘년(1867) 11월 15일 황하일(黃河一) 등 6명이 올린 검안(檢案)이다. 평해황씨 중에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황귀성(黃貴成)이란 분이 임진왜란때의 일을 기록한 보습록(補拾錄)이 있는데, 이것을 소산에 사는 김종락(金宗洛)씨에게 보여주었더니, 김종락이 '임진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