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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김국균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88] / 기록자료>고문서 / 척숙 광산 국균김국균(金國均)이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어질고 순수한 면모를 추모하였다. 이와 함께 망자를 잃은 슬픔을 자연 사물에 빗대어 절실하게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50152
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8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여러 편의 만사를 단일 문건으로 처리했다. 초안으로 보인다. 망자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망자와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심회를 절실하게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50153
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맹우가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90] / 기록자료>고문서 / 종형 맹우종형(從兄) 맹우(孟優)가 올린 만사(輓詞)이다. 망령(亡靈)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헌공(持憲公)일 가능성이 크다.출처 : 유교넷 -
250154
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군석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9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조 군석사종조(四從祖) 군석(君奭)이 지은 만사이다. 일부 낙질의 문건이다. 망자에 대한 인품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망자와의 교분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250155
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권성위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9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만사(挽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애도하는 노래이다. 만시(挽詩)라고도 한다. 권성위(權聖爲)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10운으로 지은 만사이다. 망자의 가문 전통과 유교적 인격 형성의 배경을 정리했다. 이어 그의 어진 선비 형상을 강조하면서출처 : 유교넷 -
250156
고성이씨 팔회당 모년에 권두영이 수급자미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만사(輓詞)[12293] / 기록자료>고문서 / 권두영권두영(權斗泳)이 지은 만사(挽詞)이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애도하는 노래이다. 만시(挽詩)라고도 한다. 서두에서 망자의 빼어난 재주와 이른 나이에 성균관에 유학하며 단아한 선비 형상을 체득했던 점을 추모했다. 그리고 가문 전통과 문예적 특출성을 함께 부각하면서출처 : 유교넷 -
250157
고성이씨 팔회당 갑진년 5월에 홍연이 재종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4]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홍연갑진 오월 십칠일 제문(祭文)이다. 종제(從弟) 홍연(弘淵)이 올린 글이다. 망령(亡靈)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며 처사공(處士公)으로만 되어있다.출처 : 유교넷 -
250158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2월에 원필이 백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5]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원필병신년 2월 원필(元馝)이 백형(伯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출처 : 유교넷 -
250159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원필이 백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6]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원필원필(元馝)이 백씨(伯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60
고성이씨 팔회당 경술년 2월에 승인이 재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7]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참최인 승인승인(承仁)이 재종숙 처사 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250161
고성이씨 팔회당 임술년 8월에 사종제 필이 사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8]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필원필(元馝)이 사종형 처사 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250162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12월에 인질 신종렬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2299]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신종렬신종열(申宗烈)이 통덕랑 고성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출처 : 유교넷 -
250163
고성이씨 팔회당 신축년 3월에 이수익이 외고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0]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이수익이수익(李秀益)이 유인(儒人) 재령이씨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출처 : 유교넷 -
250164
고성이씨 팔회당 임술년 8월에 부이질 유헌호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1] / 기록자료>고문서 / 부이질 류헌호류헌호(柳憲鎬)가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절한 심정을 표현했다. 망자와 대화체 형식으로 과거에 함께 교유했던 경험을 되살려 추억과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가 가정과 친척 및 후인들에게 베푼 은덕을 사모하출처 : 유교넷 -
250165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유수문이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2]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류수문류수문(柳受文)이 통헌대부 사헌부지평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출처 : 유교넷 -
250166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2월에 홍집이 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홍집김홍집(金弘執)이 종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67
고성이씨 팔회당 경인년 12월에 숙부가 장조카 승정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4] / 기록자료>고문서 / 계부장조카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나타내출처 : 유교넷 -
250168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원근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5]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원근원근(元根)이 종형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출처 : 유교넷 -
250169
고성이씨 팔회당 갑술년 4월에 정운이 족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6]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정운정운(庭雲)이 종제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출처 : 유교넷 -
250170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이종제 이장규가 이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7]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이장규이장규(李章奎)가 이종 사촌 아우의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출처 : 유교넷 -
250171
고성이씨 팔회당 신해년 8월에 김기재가 내종형 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8]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김기재김기재(金器載)가 권공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이다. 망자의 행적과 어진 모습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하였다. 평소에 베푼 아름다운 덕행을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에 대한 추모의 정서가 절실하게 표현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50172
고성이씨 팔회당 정사년 10월에 이정명이 내종숙 유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09]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질 이정명이정명(李庭蓂)이 내종숙처사 전주류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어진 덕행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제문이다. 특히 망자의 덕행과 고결한 인품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이와 함께 망자의 충효정신을 회고하며 슬픈 심정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50173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원담이 백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0] / 기록자료>고문서 / 오제 원담원담(元香+覃)이 백씨의 탈상을 맞아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 망자가 가정에서 실행한 어짉고 고결한 덕행을 추모했다. 이어 충효 정신에 근거한 망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의 총명하고 어진 성품과 학문적 업적을 사모하면서 그가 가출처 : 유교넷 -
250174
고성이씨 팔회당 기묘년 에 휘경이 사암지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1]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휘경기묘삭 임술일 계미 제문(祭文)이다. 재종숙 휘견(彙慶)이 사암(思菴) 지헌공(持憲公)의 영전에 올린 것이다.출처 : 유교넷 -
250175
고성이씨 팔회당 임술년 8월에 정로가 삼종질 대경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2]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숙 정로임술년 8월에 정로(庭老)가 삼종질(三從侄) 대경(帶卿)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에 대한 지난 회고 정서와 애상감이 집약되어 있다. 장문의 제문을 통해 망자가 베풀었던 은덕을 그리워했다.출처 : 유교넷 -
250176
고성이씨 팔회당 경술년 2월에 권유하 등이 내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3]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권유하ㆍ극하권유하(權有夏)가 외삼촌 처사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출처 : 유교넷 -
250177
고성이씨 팔회당 임자년 정월에 형이 구와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손 형임자 정월 이십삼일 제문(祭文)이다. 구와공(懼窩公) 종상(終祥)에 둘째 손자 형(瀅)이 올린 글이다.출처 : 유교넷 -
250178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2월에 원복이 백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5]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원복원복(元馥)이 백씨(伯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79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삼종질 인수가 삼종숙부 사암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6]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인수삼종질(三從侄) 인수(仁秀)가 삼종숙부(三從叔父) 사암공(思菴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자신의 나이가 이미 60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애통함이 절실하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가 가정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베푼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추모하였다. 그리고 망자출처 : 유교넷 -
250180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12월에 당질 세경이 사당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7] / 기록자료>고문서 / 당질 세경임세경(任世慶)이 당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편소 망자가 베푼 어진 덕행을 추모하며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망자의 순수한 자질과 덕망이 있는 인품을 회고하였다. 이와 함께 그가 남긴 고결한 행적을 추모하며 슬픔을 표현했다.출처 : 유교넷 -
250181
고성이씨 팔회당 경술년 3월에 정찬이 백종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8]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정찬정찬(庭贊)이 통덕랑을 역임한 백종숙부(伯從叔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출처 : 유교넷 -
250182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종질 오수가 종숙부 사암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19]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참최인 오수오수(五秀)가 사헌부 지평을 역임한 종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출처 : 유교넷 -
250183
고성이씨 팔회당 기묘년 4월에 사종손 정지가 사암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0]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손 정지정지(庭芝)가 통훈대부 사헌부지평을 역임한 사암공의 대상을 맞아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문장과 덕행이 고결하고 우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의 학문과 덕행이 유림 사회에 익히 알려져 명성이 자자했던 점을 추모하였다. 그리고 이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평출처 : 유교넷 -
250184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당질 홍집이 당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1] / 기록자료>고문서 / 당질 홍집이홍집(李弘執)이 통덕랑을 역임한 당숙부의 탈상을 맞아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의 죽음으로 인해 가문이 쇠해졌다고 언급하면서 그리운 정회를 서술하였다. 이와 함께 망자의 은덕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그립고 아쉬운 정념을 표현하였다. 이어 망자의 가문적인 배경출처 : 유교넷 -
250185
고성이씨 팔회당 계해년 8월에 부질강부인 이만일 등이 고서 고성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2]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강부인 진성 이만일ㆍ만기 등이만일(李晩馹) 이만기(李晩驥) 등이 고성 이공의 영전에 연서하여 올린 제문이다. 평소 망자의 어진 인품과 빼어난 자태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정과 이웃에 끼친 영향과 어진 감화력을 회고하면서 추모의 정서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불행하게 죽은 것에 대한 아픔과 슬출처 : 유교넷 -
250186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원신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원신원신(元信)이 망자 재종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87
고성이씨 팔회당 기해년 6월에 정녕이 백모 안릉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4]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정녕이정녕(李庭寧)이 백모 안릉 이씨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평소 부인이 자신과 가족에게 베푼 은덕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이어 부인이 질병을 이기지 못해 불행한 죽음을 맞은 것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부인의 평소 어진 인품과출처 : 유교넷 -
250188
고성이씨 팔회당 임자년 1월에 제사손 경이 통덕랑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5] / 기록자료>고문서 / 제사손 경경(瓊)이 통덕랑을 역임한 대부(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출처 : 유교넷 -
250189
고성이씨 팔회당 계유년 12월에 삼종질 필이 삼종숙부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6]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필필(珌)이 삼종숙부 처사 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출처 : 유교넷 -
250190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12월에 홍명이 재종숙부 통덕랑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7]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홍명재종질 홍명(弘明)이 통덕랑을 역임한 재종부(再從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를 개인적인 교분에 두었다. 망자가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베푼 덕행과 인간적인 감화력을 상세하게 정리하며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자상하게 베푼 은출처 : 유교넷 -
250191
고성이씨 팔회당 신묘년 12월에 삼종조 희가 종군 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8]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조 희조부의 입장에서 손자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출처 : 유교넷 -
250192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승수가 종숙부 지평 사암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29]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승수조카 승수(升秀)가 통훈대부 사헌부 지평을 역임한 종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출처 : 유교넷 -
250193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제이손 정양이 대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0] / 기록자료>고문서 / 제이손 정양정양(庭揚)이 대부(大父)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94
고성이씨 팔회당 경진년 4월에 주성이 선형 지헌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1]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주성주성(周城)이 선형(先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95
고성이씨 팔회당 임자년 1월에 외손이 처사부군 고성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2]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조대임자 정월 이십사일 제문이다. 처사(處士)인 외조부의 종상에 함안(咸安) 조씨(趙氏)가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250196
고성이씨 팔회당 병신년 12월에 홍종해가 백구 철성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3]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홍종해홍종해(洪宗海)가 백구(伯舅)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출처 : 유교넷 -
250197
고성이씨 팔회당 정유년 12월에 원형이 백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4]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원형원형(元馨)이 백씨(伯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원래 축문(祝文)과 함께 신명(神明)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글이었다. 이후 이는 친구나 아는 이를 제사지낼 때 제문을 지어 올리거나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출처 : 유교넷 -
250198
고성이씨 팔회당 경술년 3월에 징이 대부 통덕랑부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5] / 기록자료>고문서 / 손 징손자 징(澂)이 통덕랑을 역임한 대부(大父)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와의 애틋한 정서를 표현하면서 애도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가 가족들에게 베풀었던 어질고 고결한 덕성을 소개하면서 사별에의 아픔을 표현했다. 특히 평소 행적 가운데 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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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 팔회당 임술년 8월에 형이 백형 처사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6] / 기록자료>고문서 / 사중 형형(灐)이 백형(伯兄) 처사 이공의 대상을 맞아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망자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망자가 있는 곳을 천상으로 설정하고 자신이 머무는 곳을 지상으로 설정하여 헤어져 있는 간극의 극대화를 표현하면서 그립고 애틋한 정념을 표현해 내었다.출처 : 유교넷 -
250200
고성이씨 팔회당 임술년 8월에 질생 김구용이 인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2337] / 기록자료>고문서 / 질생 김구용임술 팔월 십사일 제문이다. 처숙(妻叔)의 제사에 질서(姪壻)인 광산(光山) 김구용(金九鎔)이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