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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인년 5월에 해종이 고모 전주유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288]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종손 해종해종(海鍾)이 고모 유인 전주류씨(全州柳氏) 부인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자신의 고적함을 강조하면서, 평소 고모로부터 받은 자애에 대해 감사와 그리운 심정을 토로했다. 자신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모로부터 어버이의 사랑을 받았다고 술회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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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계묘년 5월에 부족질 이종국이 종숙모 전주유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289] / 기록자료>고문서 / 부족질 이종국이종국(李鍾國)이 종고모 유인 전주류씨(全州柳氏) 부인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제문이다. 이종국은 고금에 걸쳐 부인의 어진 덕을 논한 경우가 많지만, 부인처럼 효성과 우애가 뛰어난 분은 많지 않다고 술회했다. 부인은 어진 덕을 바탕으로 하여, 가족과 친척에게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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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진년 5월에 친가질자 재기가 고모 전주유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0]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자 재기조카 재기(載基)가 고모 유인 전주류씨(全州柳氏) 부인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제문이다. 재기는 부인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죽은 것이 원통하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자기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부인에게 의지하여 어려운 문제를 의논하고 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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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계해년 2월에 종숙 문여가 종질 법일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1]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문여계해년 2월에 종숙 문여(文汝)가 종질 법일(法一)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병으로 오래 고생을 하다가,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슬픈 심정을 표현했다. 양가 집안의 교분과 평소 그의 단아한 모습과 덕행 등을 추모하면서, 그에 대한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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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인년 10월에 권준국이 숙부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2]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질 권준국권준국(權準國)이 영천(永川) 이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권준국은 현재 질병을 앓고 있는 중이어서, 직접 망자의 영전에 찾아가지 못한 채, 제문으로 슬픈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망자는 타고난 바탕이 순수하고, 독실한 뜻을 지녔다고 했다. 그의 정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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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신년 12월에 이희린 등이 대종군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3]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희린 등이희린(李羲麟), 이희갑(李羲鉀)이 연서하여 처사 이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는 선대의 유풍을 계승하여 효성과 우애의 정신이 투철하며 의리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러한 행적으로 인해 많은 사림들이 칭송을 하였고, 그의 죽음을 맞아 많은 이들이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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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인년 10월에 이희전이 종질 이경희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4] / 기록자료>고문서 / 오종숙 희전이희전(李羲傳)이 이경희(李敬熙)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작은 글씨로 작성한 장편의 제문이다. 망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경황이 없고, 애통한 심정을 토로한다고 했다. 평소 그의 어질고 착한 성품을 토대로 하여 이룩한 많은 유업을 칭송했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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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내제 이종찬이 노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5] / 기록자료>고문서 / 내제 이종찬이종찬(李鍾燦)이 영천 이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에 대한 회고의 정서가 표현되어 있다. 망자는 근실하게 학문을 하며, 두문불출한 채 학문적인 성취를 하였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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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술년 12월에 유지희가 자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6]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류지희류지희(柳志熙)가 처사 영천 이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묘사한 제문이다. 망자를 잃어버린 슬픔과 애석한 심정을 절실하게 묘사했다. 평소 자기와 오래 오래 교유하며, 아름답게 살자고 약속한 것을 저버리고 세상을 떠난 망자에 대한 비련의 슬픔을 표현했다. 형제지간의 사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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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신유년에 정교가 종종 학초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7]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정교이정교(李禎敎)가 이학초(李學初)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작은 글씨로 세미하게 작성한 장편의 제문이다. 망자가 병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슬픈 마음을 술회하였다. 그의 행적을 추적하여 이 제문을 작성한다고 했다. 그의 성품은 맑고 순수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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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설연이 종군 낙애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8]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설연이설연(李卨淵)이 낙애이공(洛厓李公)의 영전에 슬픈 마음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그의 인품과 성격 형성 과정에서 가문과 유풍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했다. 그의 죽음에 따른 사별의 아픔과 그리운 정서가 문면에 짙게 반영된 장편의 제문이다. 망자의 행적 술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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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무자년 8월에 이휘양이 농암에게 올린 제문(祭文)[13299] / 기록자료>고문서 / 이휘양이휘양(李彙陽)이 농암(聾巖)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그의 덕은 만인이 우러러 보는 것이며, 존경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농암의 세거지를 회고하면서, 그의 풍류와 효성스러운 모습을 추모했다. 이와 함께 그의 문예적 특기와 어진 덕성 및 인격적인 감화를 끼쳤던 면을 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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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진년 4월에 성환 등이 곡강배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0]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형 성환·제 덕환덕환(德煥)이 곡강배씨(曲江裵氏)에게 보낸 제문이다. 작은 글씨로 쓴 장편 제문으로 서두부터 애통한 심정을 곡진히 묘사했다. 평소 망자가 베푼 덕행과 미담을 술회하면서, 그리운 정을 간절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 제문은 망자가 베푼 은덕과 위업을 칭송하는 가운데 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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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진년 9월에 국호가 고모 진성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1]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 국호이국호(李國鎬)가 고모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보낸 제문이다. 고모의 병세가 짙어지는 즈음에 상면하고, 주고 받았던 언어를 회고하면서 그리운 심정을 표현했다. 평소 고모가 베푼 은덕을 추모하면서, 그립고 슬픈 심정을 문면에 담아 내었다. 이어 평소 고모가 지녔던 후덕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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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무자년 5월에 사종질 희하가 사종숙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2]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질 희하이희하(李羲河)가 종숙 처사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그의 매장지 주변 경관을 정리하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이어 그의 자질이 순수하고 어질었던 배경 소개와 성장 가문 내력을 소개했다. 그의 인격 및 덕성 형성은 가문의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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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유년 11월에 기연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3]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생 기연이기연(李耆淵)이 학생 영양(永陽) 이공의 죽음을 슬퍼하며 보낸 제문이다. 서두에서 그의 출중한 의기와 뛰어난 인품의 형성 배경을 언급했다. 그는 영천 이씨 가문의 유풍을 계승하여, 어진 선비의 형상을 구비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영향을 받은 분강 일대는 주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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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축년 4월에 족종생 운현이 대종처사 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4]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생 운현이운현(李運鉉)이 처사 이공의 영전에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그의 죽음은 가문의 손실이며, 운세가 낙하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가문이 쇠퇴할 때, 가문의 번성과 흥기를 위해 헌신했던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가정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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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사종제 효연이 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5]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제 효연이효연(李孝淵)이 처사 이공의 죽음을 맞아 슬픈 심정을 묘사한 제문이다. 그가 가문의 유풍을 이어 고결한 선비의 형상을 갖춘 것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평소 자기와 교유하면서 즐겼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면서, 그립고 슬픈 정감을 문학적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이와출처 : 유교넷 -
251169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해년 12월에 유학 희조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6]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희조이희조(李羲肇)가 신명에게 지어 올린 제문이다. 인간과 천지신명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부덕함과 불민함을 용납하여 달라고 간청하는 제문 형식의 글이다. 천지신명의 영명함과 인간의 결함 및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인간 세상에 재앙을 보내지 말라고 간청하는 형식의 글이출처 : 유교넷 -
251170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 미상의 제문이다. 앞장의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애도의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추모의 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망자의 평소 어진 덕행담과 미담을 열거하면서, 추모의 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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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신유년 11월에 여서 박이양이 유인 반남박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8]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박이양박이양(朴理陽)이 유인 반남박씨(潘南朴氏) 부인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부인의 어질고 정숙한 자태를 회고하는 가운데,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부인은 명문대가의 자손으로, 가정의 유훈을 체득하여 부덕을 쌓은 가운데, 많은 덕을 베풀었던 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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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희전이 오종형에게 올린 제문(祭文)[13309]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희전이희전(李羲傳)이 오종형의 영전에 애통한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작은 글씨로 작성된 장문의 제문이다. 이희전은 망자의 생전 업적과 덕스러운 행적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특히, 그의 가문 배경과 성장 과정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그의 위업과 어진 덕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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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신년 11월에 호연이 족질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호연이호연(李昊淵)이 망자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망자가 자기와 교유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운 심정을 간절히 묘사했다. 망자가 처와 자식을 버려 두고 홀연히 떠나간 점을 애통하게 여기고 슬퍼했다. 망자는 농암(聾巖)의 후예로서, 선조의 유풍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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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진년 9월에 여서 유연술이 빙모 진성이씨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1]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류연술병진(丙辰) 구월 십구일 류연술(柳淵述)이 빙모(聘母)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그의 청고한 자태와 고결한 인품 등을 부각하면서 행적을 추모했다. 그의 성장 배경과 성품 및 인격 형성의 과정을 술회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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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을유년 2월에 장질 유헌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2] / 기록자료>고문서 / 장질 유헌이유헌(李裕憲)이 작은 글씨로 작성한 장편의 제문이다. 망자에 대한 회고와 애통의 정서가 표현되어 있다. 그의 빼어난 문재와 타고난 성품 등을 강조하면서, 평소 그가 베푼 은덕과 어진 덕행을 표현하였다. 그는 집안 가문의 영향을 받아, 어진 덕을 구비하여 많은 감화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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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유년 2월에 연진이 외구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3]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연진연진(淵進)이 외조부 영양 이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평소 외조부가 베푼 자상한 사랑과 인품을 추모하며,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자상하게 가르쳐 준 점을 회상하면서, 새삼 외조부의 인자한 성품과 베푼 사랑에 감동을 받는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탈상을 맞아 외조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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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계해년 9월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망자에 대한 슬픔이 매우 절실하게 표현된 제문이다. 혈육의 정을 표현한 것으로 혈육을 잃은 슬픔과 아픔이 문면에 절실히 반영되어 있다. 평소 가족 간에 친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회고의 정서 가운데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혈육을 잃은 슬픔을 절실히 반영하면서,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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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오년 10월에 삼종손 진연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5]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손 진연이진연(李進淵)이 삼종대부 처사 부군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그의 관후한 인품과 어진 덕성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하였다. 평소 망자가 가족의 화목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 행위를 회고하면서, 그립고 간절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후반부가 일부 낙질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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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미년 10월에 권오달이 농암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6] / 기록자료>고문서 / 후학 권오달권오달(權五達)이 농암(聾巖)의 영정에 올린 제문이다. 농암의 정신적 위대성과 문예적 재질 및 효우와 충효 정신을 강조하였다. 관료로서 청렴결백하며, 강직한 면모를 과시했던 점을 회고하였다. 그의 의로운 정신과 기백은 많은 신료들의 귀감으로 작용되었으며, 충효 정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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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송곡서원 확장을 고하는 고유문(告由文)[133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고유문(告由文) 형식의 글이다. 서원 건물 수축과 확장을 마치고, 이 건물의 창건 내력 및 이 건물에서 공부하고, 성현을 추모하는 사업이 번창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유학의 전승이 더욱 번창하기를 기원한 문건의 글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유교 성리학 이념이 밑바탕을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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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제종숙 석병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종숙 석병공(石屛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운율에 맞는 한시 형식을 빌려서 슬픔과 회고의 정서를 반영한 제문이다. 망자의 효성과 우애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농암(聾巖)과 퇴계(退溪)의 학문 연원을 계승하여 어진 선비 형상을 체득했다고 강조하고, 그의 생평을 회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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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진년 12월에 이범구가 장인에게 올린 제문(祭文)[13319]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이범구이범구(李範九)가 진성 이공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하며 올린 제문이다. 그가 가정에 노친을 두고 먼저 떠난 점을 애통해 하였다. 유림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역할을 수행했던 점을 회고하고 평소 교유하면서 남긴 문중의 여러 사업이나 문집 간행 사업 등의 역할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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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유건기가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0] / 기록자료>고문서 / 세가하생 류건기류건기(柳健基)가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토로하며 올린 제문이다. 세속의 말기적 현상이 도출되는 가운데, 먕자가 어진 선비의 형상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였다고 칭송했다. 서구 문화가 침범하는 가운데, 삼강 오륜의 덕목이 점차 제 기능을 상실하는 터에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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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발급자미상이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문하생이 망자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세상의 변천이 심화되고, 인심이 날로 어렵게 되는 시점에서 망자는 고결한 인품과 자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와 어진 행적을 끼쳤던 점을 술회했다. 그리고 평소 그의 아담한 선비 형상은 농암(聾巖)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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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김시박이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2]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시박김시박(金時璞)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는 농암(聾巖)의 후손으로, 가문 여열을 체득하여 단아한 선비 형상을 구비했음을 강조했다. 그의 강직하며 청렴결백했던 면모를 강조하면서, 효성과 우애를 실천하였던 점을 회고하고 평소 베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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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이종제 김시일이 이종형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3]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김시일김시일(金時馹)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망자에 대한 슬픈 심정을 표현했다. 망자는 농암(聾巖)의 후손으로, 영천 이씨 가문의 유풍과 여열을 체득해 단아한 선비 형상을 이루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강직하며 고결했던 형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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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배승환이 이종형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4]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배승환배승환(裵昇煥)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망자에 대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는 농암(聾巖)의 후손으로, 가풍을 잇고 선비 정신을 구비한 인물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법도 있는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단아한 선비 형상을 갖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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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을해년 5월에 이용구가 처사 흥해배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5]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배윤장(裵允章)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인생에서 죽음이 없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인생 무상감을 표현하였다. 평소 그와 교유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의 단아한 모습과 어진 성품 등을 회고하였다. 평소 가정과 이웃에게 어진 덕을 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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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을해년 5월에 이용구가 처사 흥해배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6]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이용구을해(乙亥) 오월 이십삼일 이용구(李龍九)가 아들 이성원(李性源)을 통해 배윤장(裵允章)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누구든 인생에서 죽음이 있지만, 막상 망자의 죽음을 맞아 슬픈 심정을 가눌 길 없다고 표현했다. 평소 그의 단아한 면모와 어진 행적을 추모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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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신년 8월에 육대손 동희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7] / 기록자료>고문서 / 육대손 동희동희(東熙)가 6대조 성균진사부군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두부터 선대 조상의 위업과 학덕을 강조하면서, 망자가 그런 전통을 이어 훌륭한 인품과 학덕을 구비했다고 강조했다. 망자는 평소 어질고 고결한 성품을 지녀, 가정과 이웃 사람들에게 많은 감화력이 있는 덕행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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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진년 5월에 조원식이 영양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8] / 기록자료>고문서 / 조원식조원식(趙源植)이 영양 이공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도가 추락하고 말세적 풍조가 만연하는 현실에 대한 개탄과 함께 망자의 고결한 인품과 덕행을 추모하였다. 그의 죽음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면서, 문학적 심상으로 표현하였다. 이어 그가 가정과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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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진년 5월에 배재진이 용헌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3329]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배재진배재진(裵在溱)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에서 망자의 순수하고 단정했던 면모와 장수하며, 어진 덕행을 실현했던 점을 회고했다. 그리고 망자의 생전 여러 업적을 회고하면서, 그에 대한 슬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는 농암(聾巖)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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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이유민이 이시백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0]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유민이유민(李裕民)이 이시백(李施伯)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의 생전에 대한 여러 일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했다. 망자는 장수하면서 어진 덕행을 베풀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는 행동을 했다고 표현하였다. 이어 정갈한 글씨로 망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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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유해종이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1]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질 류해종류해종(柳海鍾)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의 단아했던 면모를 추억하였다. 망자가 장수하며, 어진 덕행을 실천했던 점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의 가문 내력과 생장 배경을 강조했는데, 농암(聾巖)의 종손으로 농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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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김일대가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2]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김일대김일대(金日大)가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예로부터 어진 인재와 빼어난 인물이 많았지만 망자와 같이 단아한 선비는 많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을 토로했다. 그의 단아했던 면모를 추억하면서 망자가 영천 이씨 농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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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충원이 종백부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3]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충원충원(忠源)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그의 인품과 학문 자질이 타고난 것임을 강조했다. 머리말부터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심정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의 지조와 덕행이 고결하여 가문과 유림 사회에서 널리 존경을 받았던 점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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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붕구가 백형 용헌선생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4]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붕구붕구(鵬九)가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그의 죽음과 사별의 아픔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망자는 어려서 고적한 신세가 되어, 영천 이씨 가문의 유풍을 이어 고결한 인품과 투철한 학문 정신을 계승했음을 강조했다. 평생 동안 수신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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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묘년 5월에 이수창이 용헌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5]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수창이수창(李秀昌)이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는 농암(聾巖)의 종손으로, 농암의 학통과 학문 정신 및 의리 지향을 답습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영민한 재주와 빼어난 문재를 지녀 고결하고 단아한 선비의 전형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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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기묘년 5월에 소자질 호가 백부 용헌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6] / 기록자료>고문서 / 소자질 호이호(李澔)가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는 구십년 장수한 인물이며, 농암(聾巖)의 종손으로, 농암의 학문 정신과 의리 지향을 계승했음을 강조했다. 빼어난 문재와 고결한 성품을 바탕으로 하여, 어질고 단아한 선비 형상을 확보했다고 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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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진년 5월에 붕구가 백부 용헌처사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7]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붕구붕구(鵬九)가 영천 이공 용헌(庸軒)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부터 망자에 대한 슬픈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는 구십년 장수한 인물이며, 농암(聾巖)의 학문 정신 및 의리를 계승했다고 했다. 빼어난 자태와 뛰어난 문재를 지녀 사림들의 중망을 받았음을 회고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