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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1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묘도문 수립에 따른 고유문(告由文) [1333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묘도문 수립에 따른 고유문이다. 부군의 묘도문 수립 이후 작성한 것으로 집안 내력 및 연원이 장구함을 언급하면서, 선대의 유풍과 여열이 기풍을 수립하고 후인을 진작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대의 혼령이 강림하여 후손들에게 복을 내려주고 평안을 끼쳐 주기를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251202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호정(湖亭)부군의 묘 앞에 올린에게 올린 제문(祭文)[1333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처사 호정(湖亭) 부군의 묘 앞에 올린 제문이다. 부군은 타고난 성품이 걸출하며, 굳세고 강한 성품과 시서의 학문 및 효우 정신이 빼어났음을 강조했다. 경술국치를 당해 비분강개했던 점을 술회하고, 평소 부군의 어진 덕성을 회고하면서 부군의 묘 앞에서 후손으로 다짐과출처 : 유교넷 -
25120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용재 이선생의 유허 입석을 알리는 고유문(告由文)[1334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용재이선생유허입석고유문(慵齋李先生遺墟立石告由文)」이다. 망자는 타고난 재질과 바탕이 순수하여, 명성과 절개가 뛰어났다고 술회하였다. 그의 충성과 절의의 정신 지향은 만인들이 우러러 보는 것임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충절과 굳센 기상은 죽은 후에도 더욱 강렬하게 그 빛출처 : 유교넷 -
251204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진년에 이용구가 영천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1] / 기록자료>고문서 / 문손 용구이용구(李龍九)가 영천 이공의 영전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에서 망자가 생전에 자기 선대와 교분을 나누며, 자신에게 베풀었던 아름다운 행적과 미담을 추억했다. 그가 가문의 번성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활동했던 점을 강조하면서 덕행과 미담을 강조하고, 문예가출처 : 유교넷 -
251205
영천이씨 농암종택 계사년 11월에 이용구가 병조참의를 역임한 선조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2]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용구이용구(李龍九)가 선대 조상으로 통정대부병조참의(通政大夫兵曹參議)를 역임한 부군의 묘 앞에 슬픈 심정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의 행적을 추모하면서 그의 아름다운 덕행을 강조했다. 망자는 사림의 기상을 체득하여 자손대대로 효성과 우애심이 강하다고 하고 평소 유림 활동출처 : 유교넷 -
251206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 미상의 문건이다. 특정 부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수정한 문구도 보이며, 1차적인 초고 형태의 문건이다. 평소 부인에 대해 익히 들은 바와 자신이 사십여 년간 왕래하면서, 부인에게 받은 어진 감화 및 덕행을 회고하며 슬픔의 정서를 표현했다. 부인은 평출처 : 유교넷 -
251207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 미상의 문건이다. 특정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수정한 문구가 보이는 초고 형태의 문건이다. 평소 망자의 행적을 회고하는 동시에 그리움의 정서를 묘사했다. 망자가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던 점과 어진 행적을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추모의 정출처 : 유교넷 -
251208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문서 발급자 미상의 문건으로, 특정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수정한 문구가 보이는 초고 형태이다. 서두부터 망자에 대한 슬픔을 묘사하였으며, 망자의 생전 어진 행적을 회고하면서 그리운 정념을 표현했다. 그리고 망자가 평소 강학 활동을 전개했던 점과 유림 활동을 지속출처 : 유교넷 -
251209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후손들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하여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하여 흠향하길 기원하고 있다. 선조들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들에게 강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여타 선조들의 행적출처 : 유교넷 -
251210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재명이 위패를 합향하며 올린 제문(祭文)[13347]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재명후손인 재명(在明)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하여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하여 흠향하길 기원하고 있다. 모두 열 두 분의 위패를 모신 것이다. 선조들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들에게 강복하출처 : 유교넷 -
251211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유헌이 위패를 합향하며 올린 제문(祭文)[13348] / 기록자료>고문서 / 유헌후손인 유헌(裕憲)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하여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기를 기원했다. 모두 열 일곱 분의 위패를 모신 것이다. 선조들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들에게 강복하기출처 : 유교넷 -
251212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미년 12월에 후손 유용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49]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유용후손인 유용(裕容)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하여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길 기원하였다. 유용은 그의 선대 열 두 분의 위패를 모셨다. 선조들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들에게 강출처 : 유교넷 -
25121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후손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대상 선조의 위패를 모신 가운데 조상의 영령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길 기원하였다. 이 문건은 선조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에게 강복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정제된 형식 가운데출처 : 유교넷 -
251214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재명이 위패를 합향하며 올린 제문(祭文)[13351]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재명후손인 재명(在明)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해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재명은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기를 기원했다. 그의 선대 열 두 분의 위패를 기록했다. 선조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하며, 후손들에게 강복출처 : 유교넷 -
251215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미년 12월에 후손 재명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2]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재명후손인 재명(在明)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해 향사를 올리며,바친 제문이다. 재명은 대상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들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기를 기원했다. 재명은 그의 선대 열 두 분 및 이하 여러 분의 위패를 기록했다. 선조의 영령이 편안히출처 : 유교넷 -
251216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묘년 3월에 후손 진연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3] / 기록자료>고문서 / 후손 진연후손인 진연(進淵)이 선대 조상의 위패를 합해 향사를 올리며, 바친 제문이다. 진연은 해당되는 선조의 신위를 차례대로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이 편안히 강림해서 흠향하기를 기원했다. 그의 선대 열 두 분 및 이하 여러 분의 위패를 기록했다. 선조의 영령이 편안히 안식출처 : 유교넷 -
251217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일부 낙질된 문건이다. 후손이 조상의 영전에 바친 제문이다. 해당 선조의 신위를 열거하면서, 선조의 영령이 강림해서 흠향하기를 기원했다. 중간 중간에 조상의 행적도 약간 언급하였다. 전체적으로 조상의 영령이 후손들에게 발복해 주기를 기원하는 후손의 마음이 담긴 문건이출처 : 유교넷 -
251218
영천이씨 농암종택 을묘년 9월에 이용구가 고모 영천이씨 부인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5]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질 용구이용구(李龍九)가 고모 유인 영천 이씨 부인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서두에서부터 부인에 대한 애도의 심정을 표현했다. 특히, 고모는 무남독녀로서 가문의 여열과 유풍을 몸소 체득하여 어질고 정숙한 자태를 구비하였던 점을 회고하였다. 그리고 평소 가정과 친척들출처 : 유교넷 -
251219
영천이씨 농암종택 정해년 7월에 이용구가 수급자미상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6]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자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처사 완산(完山) 이공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를 생전에 연석에서 뵙고, 그 자태와 인품의 고고함에서 풍기는 풍채를 회고했다. 그리고 평소 망자가 효우 정신과 충효 정신이 투철했던 점을 추모하면서, 그리운 정을 묘사했다. 이어 망자로부출처 : 유교넷 -
251220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야순이 영천이공에게 올린 제문(祭文)[13357] / 기록자료>고문서 / 이야순이야순(李野淳)이 영천 이공의 영전에 슬픔을 표현한 제문이다. 망자가 생전에 단아한 선비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어질고 유려한 성품으로,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여 귀감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영천 이씨 가문의 유풍과 연원 등을 언급하면서, 그의 기품이 선대의 유풍출처 : 유교넷 -
251221
영천이씨 농암종택 병자년에 김동진이 낙애처사 이공에게 보낸 행장(行狀)[13358] / 기록자료>고문서 / 김동진김동진(金東鎭)이 지은 「낙애처사이공행장(洛厓處士李公行狀)」이다. 그의 본관은 영천이고 성명은 이유헌(李裕憲)이다. 머리글에서 그의 선대 가계를 정리했다. 이어 유년 시절부터의 행적과 덕행을 중심으로 생평을 정리했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빼어나고 준수했으며, 문예가 조출처 : 유교넷 -
251222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만규가 청암선생에게 보낸 묘갈명(墓碣銘)[13359]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규이만규(李晩煃)가 지은 「청암이선생묘갈명병서(靑巖李先生墓碣幷書)」이다. 그의 이름은 이원승(李元承)이다. 농암(聾巖)의 후손으로 영천 이씨의 가풍을 계승한 자임을 강조했다. 일찍이 퇴계(退溪)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사마시에 합출처 : 유교넷 -
25122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후손이 이유헌에게 보낸 행장(行狀)[1336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사(遺事)」이다. 낙애처사(洛厓處士) 이유헌(李裕憲)의 생평을 후손이 정리한 문건이다. 이 문건 역시 그가 영천 이씨의 후예로서, 가문의 유풍 계승을 통해 선비 정신을 함양하여 아름다운 덕행을 실천했던 인물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유년 시절을 거쳐 청장년에 이르기까출처 : 유교넷 -
251224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유용이 독은부군에게 보낸 행장(行狀)[13361] / 기록자료>고문서 / 유용이유용(李裕容)이 지은「선고독은부군유사(先考獨隱府君遺事)」이다. 그의 성명은 이의조(李義肇)이며, 본관은 영천이다. 서두에서 영천 이씨 선대의 가계와 유풍을 정리했다. 그는 타고난 바탕이 출중하고, 인품이 고결했으며, 어려서부터 성리 관련 서적에 침잠하여 빼어난 경지출처 : 유교넷 -
251225
영천이씨 농암종택 무술년에 희원이 이재명에게 보낸 행장(行狀)[13362] / 기록자료>고문서 / 병종 희원이희원(李羲遠)이 지은 「묘갈명병서(墓碣銘幷書)」이다. 그의 성명은 이재명(李在明)이고 본관은 영천, 농암(聾巖)의 15세 손이다. 서두에서 영천 이씨 선대의 가계와 유풍을 자세하게 정리했다. 그는 영천 이씨 가문의 유풍과 가풍을 계승하여 인품이 빼어나고, 자태가 단출처 : 유교넷 -
251226
영천이씨 농암종택 이하연(李賀淵)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6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하연(李賀淵)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251227
영천이씨 농암종택 배도원(裵桃源)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6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배도원(裵桃源)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251228
영천이씨 농암종택 경술년 4월에 병연이 이하연(李賀淵)의 행적을 기록한 가장(家狀)[13365] / 기록자료>고문서 / 종후손 병연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가장(家狀)이다. 개인의 행적 기술에 초점을 둔 것으로,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하연(李賀淵)의 행적출처 : 유교넷 -
251229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만규가 이하연(李賀淵)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66]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규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만규가 이하연(李賀淵)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251230
영천이씨 농암종택 증조(曾祖) 여암공(犁巖公)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6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농암 이현보의 손자인 여암공(犁巖公) 이광승의 생애를 기록한「증조여암공행록(曾祖犁巖公行錄)」이다. 서두에서 그의 생장 배경과 퇴계(退溪)를 통한 학문 수학의 연원을 언급하였다. 이어 집안 환경이 매우 어려웠지만, 굴하지 않고 독실하게 학문하며 월천(月川) 조목(趙穆:출처 : 유교넷 -
251231
영천이씨 농암종택 청암(靑巖) 이원승(李元承)의 생평을 정리한 유사(遺事)[1336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사(遺事)이다. 청암(靑巖) 이원승(李元承)의 생평을 정리한 문건이다. 그는 향년 55세를 살다간 인물로서, 퇴계(退溪)의 학문을 전수받고, 독서와 근신의 삶을 살아갔음을 강조했다. 사마시에 합격을 했으며, 효행과 덕행이 뛰어나 많은 칭송을 받았던 점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251232
영천이씨 농암종택 신축년 2월에 양연이 기록한 낙애거사의 광기(壙記)[13369]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 양연광기(壙記)이다. 무덤 속에 넣은 망자의 신상 기록이다. 해당 인물은 농암(聾巖)의 14대 손인 낙애거사이다. 해당 묘소는 예안 분천리이다. 이어 망자의 생평을 기록했다. 그는 타고난 성품이 온유하고 순수했다. 그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어렵게 자라출처 : 유교넷 -
25123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지은 동원선생서공묘갈명(東園先生徐公墓碣銘)[13370]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후학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지은 「동원선생서공묘갈명(東園先生徐公墓碣銘)」이다. 서두에서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그의 문집을 통해 인품과 학덕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본명은 서천일(徐千一)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어려서부터 문재가 있었으며, 성장하여서는 유림 및출처 : 유교넷 -
251234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지은 「성균생원감은조공묘갈명병서(成均生員甘隱趙公墓碣銘幷序)」[13371] / 기록자료>고문서 / 계가후학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지은 「성균생원감은조공묘갈명병서(成均生員甘隱趙公墓碣銘幷序)」이다. 그의 성명은 조현좌(趙顯佐)이며,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그에 대한 입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후손인 조동희(趙東熙)가 선조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이 문건의 작성을 의뢰했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251235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용구가 운양(雲陽) 이공(李公)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72]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후손 용구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사간원정언(諫院正言)을 역임한 운양(雲陽) 이공(李公)의출처 : 유교넷 -
251236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손명(孫蓂)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7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봉대부제용감첨정계당손공묘갈명병서(朝奉大夫濟用監僉正溪唐孫公墓碣銘幷序)」이다. 그의 성명은 손명(孫蓂)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선대 조상 순(順)은 효성으로 조정에 알려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언급출처 : 유교넷 -
251237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지은「성균생원두호배공묘갈명병서(成均生員杜湖裵公墓碣銘幷序)」[13374]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지은 「성균생원두호배공묘갈명병서(成均生員杜湖裵公墓碣銘幷序)」이다. 그의 본관은 흥해이며, 자는 성호(性湖)이다. 서두에서 흥해 배씨의 가계에 대해 언급하며, 가문 배경도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생장 배경과 어진 덕행을 실천하며, 고결한 선비 정신으로출처 : 유교넷 -
251238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국오(菊塢) 이공(李公)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75] / 기록자료>고문서 / 표족손 이용구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국오(菊塢) 이공(李公)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251239
영천이씨 농암종택 신미년에 이용구가 약무재(若無齋) 이공(李公)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76] / 기록자료>고문서 / 종후인 이용구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약무재(若無齋) 이공(李公)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출처 : 유교넷 -
251240
영천이씨 농암종택 갑인년 12월에 용구가 지은 「운서이공묘갈명병서(雲棲李公墓碣銘幷序)」[13377] / 기록자료>고문서 / 문손 용구이용구(李龍九)가 지은 「운서이공묘갈명병서(雲棲李公墓碣銘幷序)」이다. 그의 성명은 이시문(李時文)이며, 본관은 영천이다. 그가 죽은 지 105년이 지난 시점에서 후손이 그의 업적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이처럼 묘갈명 작성을 의뢰한 것이다. 서두에서 그의 선대의 행적과출처 : 유교넷 -
251241
영천이씨 농암종택 임신년 4월에 이용구가 소고(小皐) 조공(趙公)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78]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처사(處士) 소고(小皐) 조공(趙公)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251242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용구가 남유휘(南有彙)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13379]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묘지명(墓誌銘)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남유휘(南有彙)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251243
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한치응이 지은「농암이선생묘갈음기명(聾巖李先生墓碣陰記銘)」[13380] / 기록자료>고문서 / 한치응한치응(韓致應)이 지은 「농암이선생묘갈음기명(聾巖李先生墓碣陰記銘)」이다. 효절공 농암의 위업을 계승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농암의 묘소를 이장한 배경을 설명하고 농암 선대의 유업과 가계를 정리했다. 농암의 관력을 정리하면서 내외직을출처 : 유교넷 -
251244
영천이씨 농암종택 운양(雲陽) 이공(李公)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8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운양(雲陽) 이공(李公)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251245
영천이씨 농암종택 이공(李公)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1338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행장(行狀)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공(李公)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행장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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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발급자미상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행장(行狀)[1338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죽은이의 행적과 학문을 일대기식으로 서술한 연보(年譜)이다. 체제는 선대 가계 언급, 주인공의 평생 행적, 일화 및 미담 언급, 학문과 덕행, 후대에 끼친 영향, 후손의 가계 등이다. 이 문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인물의 23세 때부터 행적을 기록한 엿보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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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박원규(朴元規)의 묘지명(墓誌銘)[1338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한평박공묘갈명(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閑坪朴公墓碣銘)」이다. 박원규(朴元規)의 묘지명으로 일반 묘지명의 형태와 유사한 형식이다. 서두에서 반남 박씨의 선대 조상 내력과 박원규 직계 조상의 내력과 현황을 상세히 기록했다. 박원규는 유봉시(柳奉時)의 문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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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이구범(李龜範)의 묘지명(墓誌銘)[1338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덕랑진성이공묘갈명(通德郞眞城李公墓碣銘)」이다. 이구범(李龜範)의 묘지명으로 일반 묘지명 형태와 유사하다. 서두에서 그가 진성 이씨의 가문 영향을 받아 성장했으며, 퇴계(退溪)의 8대 손임을 강조했다. 평소 가정에서 효도와 충의 정신을 체득하여, 가정과 이웃 사람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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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여규태(呂圭台)의 묘지명(墓誌銘)[13386] / 기록자료>고문서 / 이용구이용구(李龍九)가 지은 「처사농은여공묘갈명(處士農隱呂公墓碣銘)」이다. 여규태(呂圭台)의 묘지명이다. 그는 82세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서두에서부터 그의 어질고 정직한 면모를 강조했다. 이어 그의 선대 가계 및 관련 등에 대해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의 직계 조상들의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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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이수오(李壽五)의 묘지명(墓誌銘)[1338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눌와이공묘갈명(訥窩李公墓碣銘)」이다. 그의 성명은 이수오(李壽五)이다. 그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그를 천양하는 일에 대해서는 소홀한 점을 언급했다. 후손들이 이런 점을 애석히 여겨 그의 생평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묘지명을 작성했다고 밝혔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