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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형 순가(舜可)가 임술(壬戌)년 9월 5일에 막내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별세한 지 이미 3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며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망자와 함께 지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슬픈 심정을 토로했다. 80일 동안 망자와 함께 교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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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재종형(再從兄) 맹목(孟穆)이 갑진(甲辰)년 2월 8일에 종조제(從祖弟) 수사(秀士) 경헌군(敬獻君)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18세의 나이로 화산(花山)에서 객사(客死)한 점을 애통해 하면서 재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쓰이지 못한 채 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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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남훈(南薰 : 본관 英陽)이 병인(丙寅)년 1월 18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선친이 평소 절친하게 교유했던 점을 강조하며 망자를 통해 인격적 감화를 받고 가르침을 얻었던 점도 회고했다. 망자를 잃은 이후 의지할 바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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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권영송(權永松 : 본관 安洞)이 무오(戊午)년 1월 19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평생 벗으로 살면서 다정하게 교유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망자가 우수한 가문 전통을 잇고 빼어난 학문을 완성한 인물이었던 점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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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중내종질(重內從姪) 오진승(吳進承 : 본관 咸陽) 등이 계축(癸丑)년 6월 25일에 을축(乙丑)년 1월 18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사(人事)와 천도(天道)를 예측할 수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며 망자가 별세하여 큰 손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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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통가제(通家弟) 남진도(南鎭燾 : 본관 英陽)가 임술(壬戌)년 10월 16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나 조상 때부터 전해 오는 학문과 가풍을 이어 온 분임을 강조했다. 망자와 일찍부터 교유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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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아우뻘인 김도락(金導洛 : 본관 義城)이 무자(戊子)년 11월 15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함께 교유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망자가 어질고 고결한 덕망을 지녔던 분임을 강조하며 갖춘 덕행에 비해 제대로 쓰이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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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아우뻘인 이중택(李重澤)이 경술(庚戌)년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질병으로 세상을 버린 점이 애석하다고 하며 망자가 지녔던 덕행과 어진 인품을 회고하며 애도했다. 망자가 평소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남기고 좋은 영향력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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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임인(壬寅)년 10월 20일에 고모 유인(孺人) 한양(漢陽) 조씨(趙氏) 부인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생전에 자신을 자식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주고 돌보아 준 분이라고 했다. 망자가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고독하게 자라났지만 어질고 착한 심성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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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삼종제(三從弟) 승중(承重)이 계축(癸丑)년 6월 25일에 종형(從兄) 처사(處士)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시신 곁에서 망자를 부르며 생사의 결별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망자와 함께 한 집안 친척으로 태어나 함께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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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증손(曾孫) 덕린(德隣)이 주상의 은총으로 여러 가지 직분을 연이어 받았지만 몸의 질병으로 인해 이를 받지 못하고 사양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조상의 혼령들이 어여삐 여겨 달라고 한 제문(祭文) 형식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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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계묘(癸卯)년 2월에 올린 소지(所志)로서, 선조 옥천(玉川) 선생의 묘소 근처에 심겨진 소나무를 수 백년 동안 보존하며 관리해 왔는데 최근에 관리 소홀로 인해 남벌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관청의 보호를 요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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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병훈(趙秉薰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서, 6대조 승지(承旨) 덕랑공(德郞公)에 대한 조정의 신원(伸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며 이후 번복을 거듭하는 사례를 지적하며 이에 대해 조속히 완결되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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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상의 신원을 촉구하며 올린 소지(所志)로서, 증조부의 벼슬을 깎고 후손들에게 위해 해위 행위를 가하려는 불한당의 저의를 파악하여 엄단 조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조상에게 지워진 누명을 벗기는 것이 후손 및 유림들이 마땅히 해야 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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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서, 선조에 대한 관직이 깎이고 후손들에게 위해 행위를 가하는 불한당의 소행을 엄단해서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처사는 윤리 강상을 바로 잡고 유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업적임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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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완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에 따라 조병균의 선조 옥천(玉川) 선생의 묘소 근처에 심겨진 소나무를 수 백년 동안 보존하며 관리해 왔음을 인정하고 최근에 소나무가 남벌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관청에서 관장하며 보호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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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시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시문·기록류(詩文·記錄類)이며 시문(詩文)에 속하는 고문서이다. 발급자는 미상이며 수급자는 미상이다. 한양조씨 옥천종택 문중이 출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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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관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경술(庚戌)년 1월 26일에 발급한 관문(關文)으로, 이미 지시를 받았지만 차출해서 보낼 종이 없다고 하기에 다른 도(道)에 통보하여 차출해서 보충하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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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행장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조진도(趙進道 : 본관 漢陽, 字 聖與)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마암조공묘갈명(摩巖趙公墓碣銘)]이다. 공은 유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명문가 후손으로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후학을 양성하고 수신을 일삼던 분이라고 했다. 공이 영남 유림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며 후손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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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옥산서원(玉山書院) 원장(院長) 류진익(柳進益) 등이 을유(乙酉)년 11월 18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결백을 믿는 후손 및 유림들이 공의 신원(伸寃)을 촉구하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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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임천서원(臨川書院) 도유사(都有司) 유학(幼學) 이돈원(李敦元) 등이 신미(辛未)년 10월 21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이 정통 주자학을 계승한 분임을 천명하며 유학자로서 명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11월 16일에 예안향교(禮安鄕校)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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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호계서원(虎溪書院) 도유사(都有司) 진사(進士) 김헌준(金憲遵) 등이 무신(戊申)년 11월 15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결백을 믿는 후손 및 유림들이 공의 신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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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서간·통고류(書簡·通告類)이며 통문(通文)에 속하는 고문서이다. 발급자는 미상이며 수급자는 미상이다. 한양조씨 옥천종택 문중이 출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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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예천향교(醴泉鄕校) 유학(幼學) 박주용(朴周鏞)이 기유(己酉)년 12월 3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의 신원(伸寃)을 위한 후손 및 유림들이의 발의에 동조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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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시권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卷)으로, 유교 성리학 논변을 담은 문건으로 이해득실(利害得失)과 만물의 변화 및 운용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공자(孔子)가 두 번 정도 심사숙고하면 된다는 논리를 합리화시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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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시권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卷)으로, 유교 성리학 논변을 담은 문건으로 이해득실(利害得失)과 만물의 변화 및 운용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공자(孔子)가 두 번 정도 심사숙고하면 된다는 논리를 합리화시켰다. 그 이상 고려하는 것은 또 다른 폐단을 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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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국왕(國王)이 강희(康熙) 35년 3월 26일에 발급한 과거 시험 합격증 형식의 교지(敎旨)로서, 진사(進士)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이 문과(文科) 병과(丙科) 제(第) 31인(人)으로 급제(及第)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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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국왕(國王)이 강희(康熙) 16년 2월 18일에 발급한 과거 시험 합격증 형식의 교지(敎旨)로서, 유학(幼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이 진사(進士) 3등(等) 제(第) 7인(人)으로 급제(及第)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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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서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강희(康熙) 6년 3월 19일에 내린 교서(敎書)로서, 도적의 무리가 기승을 부려 호서(湖西)의 군대 수장을 참살시키는 등의 작태를 일삼는 현실을 감안하여 영남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을 영남상하도호소사(嶺南上下道呼召使)로 임명하니 이반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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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서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강희(康熙) 6년 3월 19일에 내린 교서(敎書)로서, 도적의 무리가 기승을 부려 호서(湖西)의 군대 수장을 참살시키는 등의 작태를 일삼는 현실을 감안하여 영남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을 영남상하도호소사(嶺南上下道呼召使)로 임명하니 이반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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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계묘(癸卯)년 1월에 유학(幼學) 조언강(趙彦綱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언강이 4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시복), 조부(거양), 증조부(진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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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유(丁酉)년 1월에 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61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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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계묘(癸卯)년 1월에 유학(幼學) 조언강(趙彦綱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언강 41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시복), 조부(거양), 증조부(진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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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정유(丁酉)년 1월에 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5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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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5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 외조부(신우성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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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0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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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6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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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0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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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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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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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7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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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9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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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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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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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7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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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7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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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9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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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1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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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6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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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4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