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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52251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형 순가(舜可)가 임술(壬戌)년 9월 5일에 막내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별세한 지 이미 3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며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망자와 함께 지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슬픈 심정을 토로했다. 80일 동안 망자와 함께 교유
    출처 : 유교넷
  • 252252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재종형(再從兄) 맹목(孟穆)이 갑진(甲辰)년 2월 8일에 종조제(從祖弟) 수사(秀士) 경헌군(敬獻君)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18세의 나이로 화산(花山)에서 객사(客死)한 점을 애통해 하면서 재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쓰이지 못한 채 저
    출처 : 유교넷
  • 252253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남훈(南薰 : 본관 英陽)이 병인(丙寅)년 1월 18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선친이 평소 절친하게 교유했던 점을 강조하며 망자를 통해 인격적 감화를 받고 가르침을 얻었던 점도 회고했다. 망자를 잃은 이후 의지할 바를
    출처 : 유교넷
  • 252254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권영송(權永松 : 본관 安洞)이 무오(戊午)년 1월 19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평생 벗으로 살면서 다정하게 교유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망자가 우수한 가문 전통을 잇고 빼어난 학문을 완성한 인물이었던 점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55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중내종질(重內從姪) 오진승(吳進承 : 본관 咸陽) 등이 계축(癸丑)년 6월 25일에 을축(乙丑)년 1월 18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인사(人事)와 천도(天道)를 예측할 수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며 망자가 별세하여 큰 손실이
    출처 : 유교넷
  • 252256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통가제(通家弟) 남진도(南鎭燾 : 본관 英陽)가 임술(壬戌)년 10월 16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우수한 명문가 후손으로 태어나 조상 때부터 전해 오는 학문과 가풍을 이어 온 분임을 강조했다. 망자와 일찍부터 교유하
    출처 : 유교넷
  • 252257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아우뻘인 김도락(金導洛 : 본관 義城)이 무자(戊子)년 11월 15일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와 함께 교유했던 지난 시절을 회고하면서 망자가 어질고 고결한 덕망을 지녔던 분임을 강조하며 갖춘 덕행에 비해 제대로 쓰이지 못
    출처 : 유교넷
  • 252258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아우뻘인 이중택(李重澤)이 경술(庚戌)년에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질병으로 세상을 버린 점이 애석하다고 하며 망자가 지녔던 덕행과 어진 인품을 회고하며 애도했다. 망자가 평소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남기고 좋은 영향력을
    출처 : 유교넷
  • 252259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임인(壬寅)년 10월 20일에 고모 유인(孺人) 한양(漢陽) 조씨(趙氏) 부인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생전에 자신을 자식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주고 돌보아 준 분이라고 했다. 망자가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고독하게 자라났지만 어질고 착한 심성과
    출처 : 유교넷
  • 252260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삼종제(三從弟) 승중(承重)이 계축(癸丑)년 6월 25일에 종형(從兄) 처사(處士) 한양(漢陽) 조공(趙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 시신 곁에서 망자를 부르며 생사의 결별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망자와 함께 한 집안 친척으로 태어나 함께 이
    출처 : 유교넷
  • 252261

    한양조씨 옥천종택 [제문 2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증손(曾孫) 덕린(德隣)이 주상의 은총으로 여러 가지 직분을 연이어 받았지만 몸의 질병으로 인해 이를 받지 못하고 사양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조상의 혼령들이 어여삐 여겨 달라고 한 제문(祭文) 형식의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52262

    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계묘(癸卯)년 2월에 올린 소지(所志)로서, 선조 옥천(玉川) 선생의 묘소 근처에 심겨진 소나무를 수 백년 동안 보존하며 관리해 왔는데 최근에 관리 소홀로 인해 남벌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관청의 보호를 요청
    출처 : 유교넷
  • 252263

    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병훈(趙秉薰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서, 6대조 승지(承旨) 덕랑공(德郞公)에 대한 조정의 신원(伸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하며 이후 번복을 거듭하는 사례를 지적하며 이에 대해 조속히 완결되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64

    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조상의 신원을 촉구하며 올린 소지(所志)로서, 증조부의 벼슬을 깎고 후손들에게 위해 해위 행위를 가하려는 불한당의 저의를 파악하여 엄단 조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조상에게 지워진 누명을 벗기는 것이 후손 및 유림들이 마땅히 해야 할
    출처 : 유교넷
  • 252265

    한양조씨 옥천종택 [소지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로서, 선조에 대한 관직이 깎이고 후손들에게 위해 행위를 가하는 불한당의 소행을 엄단해서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처사는 윤리 강상을 바로 잡고 유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업적임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66

    한양조씨 옥천종택 [완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병균(趙秉均 : 본관 漢陽) 등이 올린 소지(所志)에 따라 조병균의 선조 옥천(玉川) 선생의 묘소 근처에 심겨진 소나무를 수 백년 동안 보존하며 관리해 왔음을 인정하고 최근에 소나무가 남벌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관청에서 관장하며 보호한다고
    출처 : 유교넷
  • 252267

    한양조씨 옥천종택 [시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시문·기록류(詩文·記錄類)이며 시문(詩文)에 속하는 고문서이다. 발급자는 미상이며 수급자는 미상이다. 한양조씨 옥천종택 문중이 출처이다.
    출처 : 유교넷
  • 252268

    한양조씨 옥천종택 [관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경술(庚戌)년 1월 26일에 발급한 관문(關文)으로, 이미 지시를 받았지만 차출해서 보낼 종이 없다고 하기에 다른 도(道)에 통보하여 차출해서 보충하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69

    한양조씨 옥천종택 [행장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조진도(趙進道 : 본관 漢陽, 字 聖與)의 평생 행적을 기록한 [마암조공묘갈명(摩巖趙公墓碣銘)]이다. 공은 유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명문가 후손으로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후학을 양성하고 수신을 일삼던 분이라고 했다. 공이 영남 유림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며 후손들에
    출처 : 유교넷
  • 252270

    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옥산서원(玉山書院) 원장(院長) 류진익(柳進益) 등이 을유(乙酉)년 11월 18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결백을 믿는 후손 및 유림들이 공의 신원(伸寃)을 촉구하기
    출처 : 유교넷
  • 252271

    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임천서원(臨川書院) 도유사(都有司) 유학(幼學) 이돈원(李敦元) 등이 신미(辛未)년 10월 21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이 정통 주자학을 계승한 분임을 천명하며 유학자로서 명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11월 16일에 예안향교(禮安鄕校)에
    출처 : 유교넷
  • 252272

    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호계서원(虎溪書院) 도유사(都有司) 진사(進士) 김헌준(金憲遵) 등이 무신(戊申)년 11월 15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결백을 믿는 후손 및 유림들이 공의 신원(
    출처 : 유교넷
  • 252273

    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서간·통고류(書簡·通告類)이며 통문(通文)에 속하는 고문서이다. 발급자는 미상이며 수급자는 미상이다. 한양조씨 옥천종택 문중이 출처이다.
    출처 : 유교넷
  • 252274

    한양조씨 옥천종택 [통문 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예천향교(醴泉鄕校) 유학(幼學) 박주용(朴周鏞)이 기유(己酉)년 12월 3일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옥산(玉山) 조선생(趙先生)의 신원(伸寃)을 위한 후손 및 유림들이의 발의에 동조해 달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75

    한양조씨 옥천종택 [시권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卷)으로, 유교 성리학 논변을 담은 문건으로 이해득실(利害得失)과 만물의 변화 및 운용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공자(孔子)가 두 번 정도 심사숙고하면 된다는 논리를 합리화시켰다.
    출처 : 유교넷
  • 252276

    한양조씨 옥천종택 [시권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卷)으로, 유교 성리학 논변을 담은 문건으로 이해득실(利害得失)과 만물의 변화 및 운용에 대한 선유(先儒)들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공자(孔子)가 두 번 정도 심사숙고하면 된다는 논리를 합리화시켰다. 그 이상 고려하는 것은 또 다른 폐단을 불
    출처 : 유교넷
  • 252277

    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지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국왕(國王)이 강희(康熙) 35년 3월 26일에 발급한 과거 시험 합격증 형식의 교지(敎旨)로서, 진사(進士)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이 문과(文科) 병과(丙科) 제(第) 31인(人)으로 급제(及第)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78

    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지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국왕(國王)이 강희(康熙) 16년 2월 18일에 발급한 과거 시험 합격증 형식의 교지(敎旨)로서, 유학(幼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이 진사(進士) 3등(等) 제(第) 7인(人)으로 급제(及第)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52279

    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서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강희(康熙) 6년 3월 19일에 내린 교서(敎書)로서, 도적의 무리가 기승을 부려 호서(湖西)의 군대 수장을 참살시키는 등의 작태를 일삼는 현실을 감안하여 영남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을 영남상하도호소사(嶺南上下道呼召使)로 임명하니 이반된
    출처 : 유교넷
  • 252280

    한양조씨 옥천종택 [교서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강희(康熙) 6년 3월 19일에 내린 교서(敎書)로서, 도적의 무리가 기승을 부려 호서(湖西)의 군대 수장을 참살시키는 등의 작태를 일삼는 현실을 감안하여 영남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인 조덕린(趙德隣 : 본관 漢陽)을 영남상하도호소사(嶺南上下道呼召使)로 임명하니 이반된
    출처 : 유교넷
  • 252281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계묘(癸卯)년 1월에 유학(幼學) 조언강(趙彦綱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언강이 4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시복), 조부(거양), 증조부(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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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2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정유(丁酉)년 1월에 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61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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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3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계묘(癸卯)년 1월에 유학(幼學) 조언강(趙彦綱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언강 41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시복), 조부(거양), 증조부(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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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4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정유(丁酉)년 1월에 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5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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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5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시복(趙始復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시복이 5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거양), 조부(진도), 증조부(희당), 외조부(신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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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6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0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출처 : 유교넷
  • 252287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6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출처 : 유교넷
  • 252288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0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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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89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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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0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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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1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1]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7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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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2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2]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9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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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3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3]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48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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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4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4]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6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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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5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5]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75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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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6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6]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72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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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7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7]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9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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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298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8]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1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출처 : 유교넷
  • 252299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19]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36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출처 : 유교넷
  • 252300

    한양조씨 옥천종택 [호적 20]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유학(幼學) 조거양(趙居讓 : 본관 漢陽)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호구단자는 3년에 한 번씩 기록했는데 이 문건은 조거양이 54세 때에 기록된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부친(진도), 조부(희당), 증조부(덕희), 외조부(신도만 :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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