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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申河陰文(1639) 16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河陰 申楫(1580~1639)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 공은 나의 知己로 재주가 뛰어났으나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에 술잔을 따르며 애도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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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弟修撰文(1631) 1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修撰을 역임한 동생 申達道(1576~1631)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 우리 형제는 1614년에 부모상을 당한 이후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작년에 季嫂‧누이‧사위가 연달아 죽고 올해 또 네가 죽으니 매우 슬프다. 너는 孝親의 정성과 忠君의 절개가 있었는데, 하늘이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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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1868) 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868년(고종 5) 10월 金岱鎭이 倡義錄에 붙인 서문. 軍旅는 俎豆에 포함되어 있어 儒者가 힘쓸 바가 아닌데, 申適道가 바로 그런 일을 한 사람이다. 공은 어려서 정구와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문이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창의하여 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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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略(1637) 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신적도가 병자호란이 끝난 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관련 문자를 모아 엮은 책에 붙인 글. 나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倡義하였으나 강화가 이루어져 통곡하며 돌아왔다. 전후의 여러 문자와 日記, 조목 등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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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諭一鄕士友文(1627) 4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의성 고을의 士友들을 曉諭하기 위하여 돌린 通文. 오랑캐가 침입하여 조정과 국토가 유린되고 있으니 선비들은 충의를 떨쳐 일어나서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워 공을 세우기를 바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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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諭文(1627) 4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의성 고을의 士友들에게 돌린 두 번째 通文. 평소 독서하고 의리를 강구하던 선비들은 국가의 변란을 만난 지금 목숨을 바쳐 국난에 나가 충의를 떨쳐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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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諭文(1627) 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의성 고을의 사우들에게 돌린 세 번째 通文. 나라가 난리를 만나 임금이 몽진한 지금 충의를 떨쳐 일어나야 한다. 의병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후일 임금께 아뢰어 죄를 줄 것이니 세 번째 통문에 호응하여 참여하기를 바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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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各面募粟有司文(1627) 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의성 各面에서 곡식 모집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하여 돌린 글. 오랑캐가 침입하여 나라가 어지러운 지금 군량 모집이 시급하니 各面에서 곡식 모으는 일을 독려해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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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錄(1627) 6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의성 各面에서 軍糧과 軍器 등의 모집을 독려하기 위하여 11개의 조목을 적어 보낸 後錄. 各面에서 軍糧과 軍器 등을 모집하는 담당자는 여러 상황을 참작하여 거행하되 閑良‧鄕吏‧驛吏‧私砲手 등을 모두 의병으로 데려오고, 軍器는 本邑 관아의 군기를 변통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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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左道號召使(張顯光)文(1627) 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경상좌도 號召使 張顯光에게 올린 글. 오랑캐가 쳐들어와 나라가 어지러운 지금 선생께서 호소사로 와서 병량 모집을 독려하니 신하된 직분으로 충의를 떨쳐 일어날 때이다. 영을 따라 의병을 이끌고 나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이며 차차 상황을 보고하고자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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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右道號召使(鄭經世)文(1627) 8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경상우도 號召使 鄭經世에게 올린 글. 의병을 이끌고 가던 도중 營吏 李廷薰이 전달한 글 속에서 강화를 체결하려 한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날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종묘사직을 보존했는데, 지금 강화를 맺는 것은 부당하며 앞으로 죽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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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所傳令(1627) 10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義所에 보낸 傳令. 號召使의 關文을 보고 士氣가 진작되었다. 의성은 문헌의 고장이자 충효의 고을로 국난을 당한 지금 여러 同志가 충의로 떨쳐 일어나 적과 싸우고자 한다. 이제 군기와 군량을 갖추고 영에 따라 의병을 진격시켜 적과 싸워 공을 세우고자 하니 여러 사람들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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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所榜諭(1627) 1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義所에서 군량 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독려한 글. 옛날부터 군량 모집은 군사의 급무였는데, 지금 조정에서 管餉官을 파견하여 군량을 모집하려 하니 의병에 동참하는 여러 임원들은 힘써 참여해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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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書(附,1627) 1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仁祖가 倡義하여 오랑캐와 싸울 것을 독려한 敎書. 오랑캐가 침입하여 평안도와 황해도가 함락되고 나는 江都로 몽진하였으며, 적들은 安州를 지난 이후부터 여러 차례 글을 보내 강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거절하고 있다. 군대가 패하고 군량이 떨어지는 등 전황이 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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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中外大小臣僚耆老軍民閒良等(1627) 1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仁祖가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료와 耆老‧軍民‧閑良 등에게 내린 諭書. 나의 부덕으로 李适의 난이 있었고, 이제 또 오랑캐가 침입하여 나라와 백성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동안 백성의 신망을 잃었기 때문에 이러한 처지에 있게 된 것이다. 현재 兵糧도 부족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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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諭三道士民(1627) 1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昭顯世子가 충청‧전라‧경상 3도의 士民들에게 내린 宣諭書. 오랑캐가 침입하여 임금은 강도로 播遷하고 나는 分朝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고 있다. 삼남의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때에도 창의하여 국난을 극복하였다. 이제 오랑캐가 침입하여 위태로운 지금 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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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所招諭文(1627) 1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倡義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義所에 보낸 글. 敎旨의 간절한 뜻을 보니 지금은 충신과 의사가 의병에 참여하여 임금의 위급을 구하고 신하된 자의 도리를 해야 할 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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號召使關(附,1627) 18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정묘호란 때 호소사가 경상도 열읍에 내려 보낸 關文. 국가가 불행하여 오랑캐가 침입한 지금 호소사의 명을 받아 병량 모집을 독려하게 되었다. 여러 고을에서는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을 모집하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항교와 서원, 鄕所, 대소의 인원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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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餉使關(丁卯二月初六日到付,1627) 18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관향사 李埈이 경상도 여러 고을에 내려 보낸 關文. 나(李埈)는 어가가 강도로 파천한 지금 영남의 관향사로 임명되었고, 장현광과 정경세는 경상도 호소사가 되어 군량을 독려하고 있다. 군량은 전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바이니 원근에서 재물을 가벼이 하고 의를 중시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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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一鄕大小人員文(1636) 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병자호란 때 의성의 士民들에게 병량 모집에 동참하기를 독려한 諭文. 오랑캐가 침입하여 변방의 성이 함락되고 어가가 파천하여 나라의 형편이 累卵之勢이니 이 글을 보는 이들은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적을 토벌하는 데에 나서 충의를 다해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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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錄(1636) 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병자호란 때 의성의 사민들에게 軍糧과 軍器 등의 모집을 독려하기 위하여 5개의 조목을 적어 보낸 後錄. 各面의 有司는 병량을 모집하되 협박하여 받지 말고, 부유한 집안들이 재물을 내도록 하여 軍需에 보탬이 되게 하고, 군량은 미리 作米로 만들어 운반하고, 군량을 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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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諭道內文(1636) 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병자호란 때 倡義에 동참하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경상도 여러 고을에 보낸 通文. 오랑캐가 10년 만에 다시 침입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다. 나는 초야의 선비이나 화급한 이때를 만나 의병을 일으켜 국난에 나가고자 한다. 경상도 여러 고을의 士民들은 충의를 떨쳐 일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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節目(1636) 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병자호란 때 창의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하여 경상도 여러 고을에 보낸 14개의 節目. 관청에서 미처 징발하지 않은 장정을 모집하고, 정예 선발에 힘쓰고, 의병과 관군이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군량 모집에 동참하도록 적극 깨우치고, 兵糧을 모집하면 반드시 책자에 적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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倡義日錄(1637) 8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636년(인조 14) 12월 20일부터 1637년 2월 9일까지 의병에 참여하였을 때의 주요 일정과 주변의 동정에 대하여 적은 日錄. 1636년 12월 20일 창의의 뜻을 담은 諭文을 의성에 돌림. 22일 나를 의병대장으로 추대. 26일 弓手 150명과 砲手 23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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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識 2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아들 申坫이 倡義錄 뒤에 붙인 後識. 府君은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였으며, 광주에 도착하여 강화의 그릇됨을 주장하였다. 난리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 薇谷 아래 집을 짓고 살다가 임종하였다. 부군은 두 차례나 국난에 나가고 학덕이 높았으나 찰방과 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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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敍(1867) 26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姜蘭馨(1813~1881)이 倡義錄 뒤에 붙인 글. 호계 신적도 선생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에 걸쳐 倡義하고 斥和를 주장한 분으로 창의는 金湜‧鄭弘溟, 척화는 洪翼漢‧吳達濟‧尹集과 비슷하니 대의와 높은 절개는 천추에 빛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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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916) 2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張錫英이 倡義錄 뒤에 붙인 跋文. 공은 家學과 心法의 正要를 얻어 학덕이 높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창의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후손 敦植이 공의 사적이 없어질까 걱정하여 공의 시문과 倡義 관련 기록을 간행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글을 부탁하기에 적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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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1667) 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申埰가 아버지 신적도(1574~1663)가 임종한 4년 뒤에 찬한 遺事. 부군은 申仡과 朴倫의 딸 순천박씨 사이에서 1574년(선조 7) 12월 29일 陶巖里에서 출생하였다. 鄭逑와 張顯光에게 수학하여 1605년(선조 38) 향시에 장원하였고, 1606년 悅道와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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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金道和가 후손 相夏 등의 부탁을 받아 찬한 신적도의 행장. 선생은 1574년(선조 38) 12월 29일 義城縣 陶巖里 집에서 출생하여 정구와 장현광에게 수학하였다. 1605년 향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14년 부친과 모친의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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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表 1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洪萬朝(1645∼1725)가 찬한 신적도의 墓表. 신적도는 어려서 鄭逑와 張顯光에게 수학하였으며,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14년 부모상을 만나 삼년상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兵糧을 모집하여 출병하였으나 강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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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表後識(1901) 1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李種杞가 1901년 5월에 후손 相憲의 부탁을 받아 洪萬朝가 찬한 신적도의 墓表 뒤에 붙인 글. 1856년(철종 7)에 士林이 丹邱에 서원을 세워 제향을 올리고 있고, 1867년(고종 4)에 繡衣使 朴瑄壽가 장계를 올려 通政大夫 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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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李中轍이 후손 敦植의 부탁을 받고 金道和가 찬한 행장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신적도의 墓碣銘. 어려서 從兄 鼎峯 선생에게 수학하고, 임진왜란 때에 할아버지가 의병을 일으켰으며 아버지의 명에 따라 入山하고 난이 끝난 뒤에 장구와 장현광에게 수학하였다. 1605년 향시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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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韶邑誌 1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申悅道(1589~1659)가 편찬한 『聞韶志』 중 신적도 부분을 발췌한 글. 신적도는 1606년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정구와 장현광에게 수학하여 淵源之學을 얻었다. 정묘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찰방에 임명되었고, 1632년 제릉참봉에 제수되고,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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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邱書院上梁文(1856) 17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856년 丹邱書院을 지을 때에 柳疇睦이 찬한 단구서원의 상량문. 신적도는 충효가 뛰어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척화를 주장하였다. 신적도‧申悅道‧申埰 세 분을 단구서원에 모셔 景慕의 뜻을 부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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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安文(1856) 20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856년 신적도를 단구서원에 봉안할 때 지은 李敦禹의 奉安文. 신적도는 충효를 겸하였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거의하여 척화를 주장하였고, 병자호란 이후 학산 미곡에 집을 짓고 書史로 自娛하였다. 신적도‧신채와 함께 家學을 계승하고 충효가 뛰어나기에 단구서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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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신적도를 단구서원에 모신 뒤 祭享할 때 올린 祝文. 신적도는 학문이 스승의 비결을 전하고 의리가 나라의 기강을 부축하였으니 제사가 끝이 없으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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繡衣朴瑄壽啓文(1867) 2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경상도 암행어사 朴瑄壽가 1867년(고종 4) 조정에 신적도의 贈職을 주청한 啓文. 신적도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키고 상소를 올려 척화를 주장하였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교육에 힘쓰다 임종하였다. 그의 忠義를 襃獎해야 하니 該曹에서 품신해주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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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院草啓(1867) 2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승정원에서 1867년에 신적도에게 증직해주기를 청한 草啓. 도승지 趙性夏는 경상도 암행어사 박선수의 別單에 의거하여 초계를 올려 道學忠節이 있는 故 察訪 신적도에게 贈職의 은전을 내려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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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曹回啓(1867) 2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이조에서 1867년에 신적도의 증직과 관련하여 임금께 올린 啓文. 이조판서 曺錫雨는 경상도 암행어사 박선수와 의정부 초계에 의거하여 신적도에게 특별히 贈職의 은전을 내려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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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1867) 2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철종이 1867년에 찰방 신적도에게 通政大夫 吏曹參議에 추증한다는 敎旨. 신적도는 道學이 高明하고 忠節이 뛰어나기에 이조참의에 증직하는 전교를 내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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焚黃告由文(1867) 2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867년에 신적도를 이조참의에 추증하는 교지가 내리자 무덤에 고하고 副本을 태울 때에 이조판서 韓啓源이 찬한 告由文. 신적도는 정구와 장현광의 학문을 이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孝友가 뛰어났다. 200여 년 동안 덕행이 드러나지 않다가 나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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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贈時告墓文(1867) 2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1867년에 신적도가 이조참의에 추증되자 후손 申相夏가 무덤에 고할 때에 찬한 글. 공은 충절과 학행이 뛰어나 나라에서 증직의 은전을 내리니 후손들이 감격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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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儒生請加贈上言 2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경상도 유생들이 신적도에게 贈職을 더해주기를 청한 上言. 충신 신적도는 어려서 정구‧장현광에게 수학한 사림의 宗匠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척화를 주장하였고, 학산 미곡에 채미헌을 세우고 은거하며 강학하였다. 200년이 지나도 나라의 은전이 없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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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林通文(丹邱書院妥靈時) 25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단구서원에 신적도 등의 位牌를 모실 때에 지은 金奭裕의 通文. 신적도와 신열도, 신적도의 아들 신채는 德學으로 사림이 경모하고 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 충의를 떨쳤고 평소 孝友가 뛰어나 兩世三賢이 배출된 명문이다. 서원에 위패를 모시면서 사림에 통문을 돌리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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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友遺札 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師友인 張顯光‧鄭蘊‧李峻‧金應祖‧鄭惟熟‧崔晛‧李景奭‧李敏求‧李景容‧李堂揆 등 10인이 신적도에게 보낸 10편의 편지. 장현광은 편지를 받고 날마다 성현의 서적에 침잠하는 것을 좋게 여겼고, 정온‧이준 등은 오래 헤어진 채 만나지 못하는 아픔과 知己에 대한 그리움을 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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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鄭惟熟‧李廷薜‧金尙瑗 등 3인이 신적도의 덕행을 기리고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3편의 제문. 정유숙은 지난날 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할 때의 뛰어남과 林泉에서 自樂하던 풍모를 그리워하였고, 이정벽은 영남의 도학자로 盛德과 大業을 이루었다고 하였고, 김상원은 정묘호란과 병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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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6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金應祖 등 21인이 신적도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고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22수의 만시. 金應祖(七言律詩)‧李景奭(五言律詩)‧張應一(칠언율시)‧洪汝河(오언율시)‧申弘望(칠언율시)‧南海準(칠언율시)‧金尙瑗(오언율시)‧金尙瑜(칠언고시)‧南夢賚(칠언율시)‧金宗一(칠언절구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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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恩賀章 11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姜蘭馨 등 32인이 1867년 신적도를 이조참의에 추증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39수의 祝詩. 姜蘭馨(칠언율시와 칠언절구 각 1수)‧李明迪(상동)‧李彙承(상동)‧張錫駿(칠언율시)‧張龍逵(칠언율시)‧柳進徽(칠언율시, 幷序)‧柳芝榮(칠언율시)‧李用基(칠언율시, 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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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敍(1901) 22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후손 申相憲이 1901년 3월에 찬한 문집의 後敍. 선생은 학문이 깊고 충효의 행실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저술이 많이 유실되었기에 시문을 찾아 편집하고, 만사와 墓道文, 奉安文 등을 뒤에 붙여 간행하고자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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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916) 23 / 기록자료>고도서 / 신적도郭鋾가 1916년 추석에 후손 申敦植의 부탁을 받아 찬한 문집의 跋文. 후손들이 신적도의 시문 약간을 수습하여 간행하려 한다. 선생은 文武를 겸비하였고, 遺篇 중 心性에 대해 논한 여러 說과 庸學二圖, 倡義錄에서 학문적 성취와 평생의 지향을 엿볼 수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