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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수 김복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 우리 의성은 흔히 “義와 禮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는 지난 날 우리 고장에서 살아온 선조들의 사상과 충절의 역사가 말해주며,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는 임진왜란 시기, 포악무도한 왜적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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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의회의장 남동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 우리민족 5천년사에 가장 처참한 전란인 임진왜란 당시 지역의 여성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정조를 지킴으로서 민족의 자긍심을 지켰던 사례가 있었으나 그 동안 사료로서 편찬되지 못하여 잊혀져 가다가 이번에 다행스럽게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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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순절(殉節)을 기리며-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빛나는 별들이여/김금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b><FONT SIZE="5">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빛나는 별들이여</FONT></b> <b>김금숙</b>(시인, 의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원) <FONT size="3" color="blue">한 때 이 산하 어지러웠던 시절 잔악한 야만의 가슴을 가르며 죽음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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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문정자(文亭子) 남평문씨가문의 시어머니, 며느리, 그리고 손녀의 정열(貞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FONT SIZE="3"><b>개요(槪要)</b></FONT> <HXMLPIC ID="003"></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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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 박연마을 남양홍씨의 정열(貞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FONT size="3"><B>※비 앞면:烈女士人善山金喆南陽洪氏旌閭表</B></FONT> 열녀사인선산김철남양홍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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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경상북도에서는 상주시에서 신청한「수암종택」(민속자료 70호)ㆍ「의암고택」(문화재자료 177호)ㆍ「양진당」(지방유형문화재 85호) 에 대한 문화재보수사업 설계승인(2003년 10월 15일)을 하였다. 다만「양진당」에 대해서는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현지자문회의 결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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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自然地理的 位置와 環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상주는 경상북도의 북서쪽에 위치(북위 36° 14′~36° 39′, 동경 127° 47′~128° 20′)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의성군ㆍ구미시ㆍ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문경시ㆍ예천군,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ㆍ보은군ㆍ옥천군ㆍ영동군과 각기 경계를 접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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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歷史的 環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상주의 역사와 문화는 市名의 변천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이 고장은 성읍국가시 상주시ㆍ사벌면을 중심으로 한 沙伐國과 함창읍을 중심으로 한 古寧伽倻國이 있었다. 사벌국은 신라 沾解尼師今代(248년) 昔于老에게 멸망되었고, 法興王12년(525) 沙伐州라 개칭되었다. 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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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調査內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양진당의 시ㆍ발굴조사를 통해 얻고자 하였던 궁극적인 목적은 대문채와 사당의 정확한 위치와 평면구조의 자료를 획득하는데 있었고, 그 결과에 따라 건립당시의 양진당의 모습 그대로 복원ㆍ정비하는데 일조하는 것이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대문채ㆍ사당ㆍ사랑채ㆍ舊 오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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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문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풍양조씨 문중 관계자들과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대문채는 예전에 9칸이었으며 대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온돌방 2칸과 마루 2칸이 동익사와 연결되어 있었고, 서쪽으로는 마굿간, 방앗간과 온돌방 2칸이 서익사와 연결되어 있는 ‘ㅁ’자 구조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발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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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축 형식(競逐形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가마싸움놀이의 투쟁적인 경축은 음력 8월 14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훈장이 12일에 귀향해 버린 뒤의 서당학동들의 분위기는 임박한 명절과 더불어 한껏 들떠 있고, 오는 추석에는 기어코 적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는 의욕이 술렁거린다. 12일부터 시작된 준비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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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입장 대형(각 군의 배치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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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동리 주행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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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군의 편성 및 대진 대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유다리 한복판에서의 미지기 대진도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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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석전도(콩주머니 사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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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가마 부딪치기 도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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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개문진 도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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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개문진과 통짜기진 도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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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지기진 대형에서 멍석말이진 대형으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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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 미지기 작전 종료 후 행동 요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1) 각 공격군은 2열 횡대를 만들어 상대 가마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돌진하여 수비군과 기수와 부닥친다. (2) 이때 반드시 팔짱을 끼고 수비군을 밀어젖히며, 여의치 않으면 접장의 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3) 멍석말이 작전에 들어간다. (4) 멍석말이를 하다가 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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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의성 가마싸움놀이의 의미와 의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가마싸움놀이에 대해서는 기록된 문헌이 전혀 없다. 따라서 서지적(書誌的)인 고구(考究)는 할 수가 없고 제보자의 구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가마싸움놀이는 남북 두 마을에 위치한 서당 학동들이 각기 마을단위로 작대(作隊)하여 겨루던 투쟁적인 경축희요, 일종의 편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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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마싸움놀이의 의미와 성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첫째, 사회공동체간의 갈등이 경축으로 표현되었다. 아사천이라는 자연적 지리적 조건이 민족적 취락을 형성하였고, 양분된 마을은 계급적 신분적 차등에 의하여 상호불상남(相互不相納)의 분열을 조장하였다. 그들은 권력, 계급, 출신, 빈부, 학식, 직업 등으로 말미암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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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마싸움놀이의 내용과 의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가.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거행되었던 갖가지 경축희는 대개가 성인들끼리 이루어지고 농어업에 대한 풍흉과 관련된 바 있으나, 본 가마싸움놀이는 서당 학동들끼리 이루어진 것이며 또 승패는 그 해의 과거 등과 관련지은 하나의 경축희였다. 나. 대개의 경축희는 우연히 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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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속 문화재로서의 가치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가. 본 ‘가마싸움놀이’는 130~180년전 당시 의성사회의 구성, 풍속, 향취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나. 어느 지방에서든지 갖가지 민속놀이가 있었겠으나 본 ‘가마싸움놀이’는 오직 서당 학동들끼리 진(陣)을 구성하여 즐겼던 민속놀이이다.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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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성 가마싸움놀이의 민속적 특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우리 조상들은 부족 국가시대부터 풍류의 멋으로 흥겹게 놀 줄 알았다. 부여(扶餘)의 영고(鈴鼓), 예(禮)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삼한의 제사 등을 기록한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의 내용에서 그 일면을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멋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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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놀이 전모는 앞장에서 세밀히 밝혔다. 놀이를 발굴 조사하고 재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이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B>의성 가마싸움놀이는</B> 1. 의성에서만 거행되었던 독특한 놀이이다. 2. 서당 학동들의 놀이이며 아사천(유다리)을 경계로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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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성 가마싸움놀이의 체육적 가치/김영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B><FONT SIZE="4">· 의성 가마싸움놀이의 운동적 가치</FONT></B> 의성 가마싸움놀이는 청소년들의 단순한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체육적 가치가 있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민속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마싸움놀이는 150여명의 청소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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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성 가마싸움놀이에 대한 소고(小考)/장희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어느 민족이든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민족은 그 나름의 놀이문화를 지켜왔다. 우리 전통사회는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기 때문에 우리 민속놀이 역시 종교적 제의(祭儀)나 농경의례에 뿌리를 둔 세시풍속에서 출발한다. 안택초복(安宅招福)을 비는 ‘짚신밟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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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Vehicle Fight Play of Eui-seong/성병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About 100years ago, there was a game which was called a vehicle Fighting Play, in Eui-seong district, Kyung-pook Province in Korea. The villagers w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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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성 가마싸움놀이의 발자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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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동 민속박물관의 의성 가마싸움놀이 조형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안동의 민속박물관 2층 전시실에 안동의 동채싸움놀이와 의성의 가마싸움놀이의 모형물이 똑같은 규모의 크기로 쉽게 볼 수 있도록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의성인이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먼저 가진다. 안동에서 이웃 의성의 민속놀이로 가마싸움놀이를 소개한 것에 대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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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의성현지》 《교남지》 《의성승감》 석주선,《우리나라 옷》, 공문출판사, 1961. 영남대학교,《신라가야문화 4집》, 1972. 서 긍,《고려도경》, 아세아문화사, 1972. 임동권,《한국의 세시풍속》, 대원사, 1975. 심우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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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마산(단촌면 병방리)전투에서- 의성 김문 여인들의 죽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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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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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 장대에서 순절한 어머니와 두딸 그리고 개의 죽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종우<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HXMLPIC ID="00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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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 오작당지(도면 1·3·6, 사진 15·1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양진당이 들어서기 전 이 위치에는 오작당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오작당과 관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사당과 사랑채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사당의 축과는 서쪽으로 10°정도 틀어진 상태로 일련의 석열이 사당의 전면 기단에서 2~4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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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대 우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양진당 사당과 추정 오작당 기단사이에는 우물이 위치하고 있는데, 우물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볼 때, 오작당이나 양진당과는 거리가 먼 근대의 우물로 판단된다. 우물내부에서는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22점의 토기, 자기, 와편이 출토되었다. 특히 참고사진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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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悟昨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오작당은 선산에서 상주방향 903번 지방도로변의 사천마을에 위치한다. 원래는 지금의 양진당 자리에 宣祖34년(1601) 세웠던 것을 肅宗2년(1661) 趙靖이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현재 도로에서 골목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이 있고, 사랑마당 뒤편으로 'T'자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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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龍山精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용산정사(臥龍堂)는 양진당 서편의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위제 조상덕이 선업을 잇고 독서와 은거자적하려는 뜻에서 건립하였다. 배치는 나지막한 야산이 삼면을 포근하게 감싸는 곳에 토석담장을 둘러쌓고 문간채와 精舍를 남서향으로 나란히 앉혔다. 건물은 경사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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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追遠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추원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여한 黔澗趙靖을 배향하는 불천위사당과 재실이다. 양진당마을 북편 산록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배치는 토석담장을 돌린 장방형 일곽 전면에 외삼문과 강당이 있고, 그 뒤 지대높은 별도곽에 내삼문과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사당은 黔澗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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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玉流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옥류정은 승곡리 참나무진에서 아랫승장마을로 가다 일명 옥류폭포라고 불리 우는 수십 길의 폭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검간 조정(1552~1636)이 어려서 이곳에서 독서하였기에 이를 기념하여 후손들이 폭포 위에 세운 정자이다. 배치는 토석담장을 돌린 방형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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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豊壤趙氏齋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이 재실은 운평리 금천마을 맞은편 야산 산록에 자리 잡은 풍양조씨의 墓下 齋室이다. 재실은 전방의 승곡들을 바라보며 담장없이 동향하고 있는데,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칸반이다. 평면은 전형적인 4칸 중당협실형이고, 상부가구는 납도리에 5량가이다. 온돌방 2칸 뒷벽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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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이보고서는 지방유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있는『양진당』의 보수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양진당 대문채와 사당부분의 발굴조사에 대한 내용이다. 양진당 주변 정비공사의 내용은 안채보수, 대문채 복원, 사당 복원, 화장실 및 장독대 설치 등인데, 대문채와 사당의 경우 시ㆍ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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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養眞堂正寢重修上樑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B>人事莫重於承家 懼遺緖之或墜</B> 사람의 일은 家業을 繼承하는 것 보다 重한 것이 없으니, 선대의 유업을 떨어뜨릴까 두렵고, <B>天道無往而不復述先業而重新</B> 자연의 道는 갔다가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으니, 앞일을 계승하여 다시 새로워지네. <B>仍舊貫如之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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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사진 1. 양진당 원경(항공사진)<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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抄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HXMLPIC ID="001"></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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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안채의 북동모서리에 위치하는 사당채는 1957년 무렵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전하는데,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적심ㆍ기단 등 사당의 기반시설은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사당의 전면에는 기단석열이 잘 남아 있으며 사당본채와 기단석열사이에는 문지가 있는데, 전후 기단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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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채(도면 1·3·5, 사진 11·1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사랑채는 사당의 전면 기단에서 남쪽으로 15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얼핏 보기에 대문채와 나란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안채, 대문채와는 좌향이 다르며 오히려 사당과 동일한 좌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당과 동일한 좌향을 가지고 있고 사랑채와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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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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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질 및 기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미상상주 지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육괴 가운데 하나인 소맥산맥지괴로 약 6억년 전의 캄브리아기 이전에 형성되었다. 구성암은 대체로 동부 일대가 화강암질 편마암이, 서부일대는 편마암류가 퇴적암층에 덮여 있다, 북부는 알카리 화강암과 석영반암에 의하여 관입되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