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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節 未復元 院·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상주청년유도회<FONT SIZE="4"><b>1. 雲溪書院 </b></font> · 位置 : 慶北 尙州市 化西面 達川里 1711기년(肅宗37)辛卯에 聽竹成灠 外 5賢을 配享하고 享祀하여 오다가. 1870년(高宗7)庚午에 書院撤廢令에 의하여 毁撤된 이후 현재까지 복원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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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節 書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상주청년유도회尙州의 書堂은 明宗 6年(서기 1551)尙州牧使로 赴任한 靈川子 申潛先生이 18個所의 書堂을 建立하고 興學에 盡力하였다. 처음 서당이 창설될 당시에는 서원과 서당의 구분이 명확치 않고 또한 이 시기에 세워져 오늘에 전하는 서당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서원에 설치되어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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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 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상주청년유도회<DIV ALIGN=center><FONT SIZE="4"><b>靑年儒道會 憲章</b></font></div> 우리는 黎明의 世界를 본다. 오늘의 時代에 있어서 기필코 우리는 平和와 共榮의 世界를 이룩할 것이다. 人類를 文明의 危機로부터 求 하고 우리들의 世界에 恒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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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後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상주청년유도회<DIV ALIGN=center><FONT SIZE="5"><b>編 輯 後 期</b></font></div> <FONT SIZE="3">儒學의 振興과 倫理의 扶植을 통한 우리의 傳統을 지키고 文化를 繼承하기 爲하여, 靑年儒道會를 結成하여 우리문화를 지키는 작음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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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1(일소서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중국 진나라 때의 명필 왕희지(王羲之: 321~379 혹 303~361)의 서법이 수록된 『일소서법(逸少書法)』이다. 왕희지는 해서와 행서 그리고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서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오늘날 전해오는 그의 필적만 보아도 그의 서풍(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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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2(선조유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개성고씨 월봉종택 선조들의 유필(遺筆)을 한데 모아 전하기 위해 만든 서첩이다. 표지에는 『선조유첩(先祖遺帖)』이라고 쓰여 있다. 이 서첩은 갑진년 3월 보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니다. 형 천상(天祥)이 동생 응상(應祥)에게 보낸 편지와 김지연(金止淵)에게 보낸 편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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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3(신한) / 유교문화>유물 / 미상개성고씨 월봉종택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조(1694∼1776)의 어필(御筆)과 영조가 신하에게 보낸 서찰을 모은 것이다. '신한(宸翰)'은 임금의 친필 편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신한』에는 영조(1694∼1776)의 친필 서한과 이에 대한 답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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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 이제현 영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영정이다. 익재 이제현은 고려시대의 유명한 외교가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로 1301년(충렬왕 27) 성균시에 장원하여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56년 문하시중에 오르고 1362년 계림부원군에 봉해졌다. 원나라의 모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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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재난고 / 유교문화>유물 / 李齊賢 著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시문집 『익재난고(益齋亂藁)』의 책판으로 규모는 10권 4책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서문을 썼고 1363년(공민왕 12)에 아들 창로(彰路)와 손자 보림(寶林)이 간행하였으며 1600년(선조 33)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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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시판_이현보, 김극성 / 유교문화>유물 / 미상귀래정(歸來亭)에 게시되어 있던 현판이다. 이 시판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와 우정(憂亭) 김극성(金克成: 1474~1540)이 지은 칠언절구의 시를 새긴 것이다. 이 시판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전원생활을 즐기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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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설월당(雪月堂)은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의 호이자 그가 지은 정자의 이름이다. 김부륜이 관직에서 물러나 오천에 정사를 짓고 은거하고자 하였는데, 스승인 퇴계선생이 친필로 "설월당"이란 편액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에 김부륜은 이것을 자신의 호로 삼고 이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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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화:보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여러 문사들이 삼청동에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연회를 베풀었던 장면을 그림으로 기록한 첩자이다. 표지에는 『보첩(寶帖)』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때의 모임을 소중하게 기억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 보첩에는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과 그 날 참석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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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서:선현진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설월당 종택과 교유하던 선비들의 친필을 모아놓은 유묵집이다. 표지에 ‘선현유묵(先賢遺墨)’이라고 쓰여 있고 글쓴이의 이름도 시호(諡號)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이 필첩은 어느 한 시기에 교유한 서한을 모은 것이 아니라 역대 유명한 선비들의 친필을 모아놓은 것으로 추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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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문집인 『노계집』의 목판이다. 도계서원에서 소장한 것은 그중 3건으로, 한문시의 목록부분과 문족부(捫足賦) 등 일부이다. 현재 이 목판은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계집』은 한시문(漢詩文)과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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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93(서:보묵단) / 유교문화>유물 / 미상무안박씨 선조들의 친필 서한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표지에는 『보묵(寶墨)』단권(單卷)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주로 박성보(朴聖輔)가 보내거나 받은 편지를 모았다. 신년의 새봄을 읊고 있는 내용의 칠언절구 한시와 경인년 정월 18일 신년에 보낸 편지, 기사년 10월 1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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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95(서:대당삼장성교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왕희지 필법의 교본으로 잘 알려진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의 비석 글씨를 옮겨 쓴 것이다. 보통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라 불리기도 한다. 당나라 때 현장(玄藏)법사가 서역에서 돌아온 뒤 당태종에게 자신이 번역한 불경에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당태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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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97(서:만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유명한 문학작품 4편을 유려한 필체로 써서 묶은 것이다. 표지에는「만희(晩戱)」라고 쓰여 있다. 만년에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즐길만한 글들을 모았다는 의미이다. 첫 번째 글은 굴원(屈原: BC 343?~BC 278?)의 「어부사(漁父辭)」이다. 전국시대 초(楚)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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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102(서:송재만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의 오언절구 및 칠언절구 시작품을 친필로 쓴 유묵집으로 표지에는 『송재만묵(松齋漫墨)』이라 쓰여 있다. 이우는 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자는 명중(明仲)로, 진사 계양(繼陽)의 아들이자 이황(李滉)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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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소우 강벽원-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우(小愚) 강벽원(姜璧元: 1859~1941)이 서예작품을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강벽원은 조선 말기 이름난 재야 선비이자 서예가이다. 경북 영주군 두서면 출신으로 자는 윤화(允和)이고 호는 소우(小愚), 노정(蘆亭)이다. 강벽원은 중국의 안진경과 미불의 서체를 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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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소우 강벽원-묵란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우 강벽원(姜璧元: 1859~1941)이 석란도(石蘭圖) 10폭을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강벽원은 독특한 서체를 계발한 유명한 서예가일 뿐 아니라 사군자에도 능한 문인화가였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하고 의협심이 강하였으며, 수산 김휘철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퇴계학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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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서:최근명가서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성주이씨 문중에 보낸 친필 편지를 모아놓은 필첩이다.「최근명가서첩(最近名家書帖)」이라고 쓰여 있는데, 명가는 바로 김성근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성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서 명망이 높았다. 자는 중원(仲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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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2(서:박규수상공한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박규수가 성주 이씨 집안에 보낸 편지를 모아놓은 서한집이다. 표지에는 『박규수상공한첩(朴珪壽相公翰帖)』이라고 쓰여 있다. 박규수(朴珪壽: 1807~18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개화사상가로 호는 환재(瓛齋)이다. 할아버지인 연암 박지원의 영향을 받아 실학의 학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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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3(서:간독)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남 선비들이 교류한 서찰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표지에 써 있는 ‘간독(簡牘)’은 편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 필첩에는 이정귀(李廷龜, 1564∼1635), 남상문(南尙文, 1520∼1602), 이홍주(李弘胄, 1562∼1638) 등이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다.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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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4(서:중화인간독) / 유교문화>유물 / 미상중국 청나라 말기 정치가이자 서화가였던 옹동화(翁同龢 : 1830~1904)가 조선의 담재(澹齋) 임응준(任應準 : 1816∼1883)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놓은 서한집이다. 표지에는 『간독(簡牘)』이라고 쓰여 있다. 편지 중에 옹동화는 송연(松烟) 2갑과 궁촉 1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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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5(서:벽하무고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 1854∼1903)이 유명한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사(模寫)한 것을 한데 모아놓은 필첩이다. 표지에는 『벽하무고첩(碧下橅古帖)』이라고 되어 있는데, ‘벽하’는 조주승의 호이며 ‘무고(橅古)’는 옛사람의 글이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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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6(서:시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김선(金銑, 1750∼?)의 회갑연을 축하하며 축하객들이 지은 연작시의 시첩이다. 김선은 조선 후기의 문신은 자는 택지(澤之)이고 호는 휴휴당(休休堂)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1794년(정조 18)에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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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7(서:북유신장) / 유교문화>유물 / 미상홍희석(洪羲錫)이 청나라로 연행(燕行)을 갈 때 지인들이 건승을 축원하며 지은 시를 모은 시첩이다. 표지에 쓰여있는 ‘북유(北遊)’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것을 의미하며 ‘신장(贐章)’은 전송하며 지은 문장을 의미한다. 홍희석은 자가 귀서(龜瑞)로 1829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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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8(서:하정공수연시) / 유교문화>유물 / 미상1889년(고종 26) 하정(荷亭) 김영수(金永壽: 1829∼1899)의 화갑(華甲)을 맞이하여 고종황제(1852~1919)와 친족 지인들이 그의 장수를 바라는 지은 연작 연시(宴詩) 시첩이다. 표지에는 『하정공수연시(荷亭公壽筵詩)』라고 쓰여 있다. 김영수는 조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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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순천김씨 충효당에 게시되어 있던 충효당 현판이다. 충효당은 김협(金協, ?~?)의 당호이며 순천김씨 충효당파의 종택이기도 하다. 김협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학자로 자는 길보(吉甫)이고 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감찰(監察) 김자원(金自願)의 아들로 유성룡(柳成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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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충효당에 게시되어 있던 「충효당기(忠孝堂記)」로, 충효당의 내력과 의의를 기록한 것이다. 이 기판은 김계성(金季誠)이 민영소(閔泳韶: 1852∼1917)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김계성은 선조인 김도정(金塗靖)이 비둘기가 먹고 싶었는데 때마침 비둘기가 날아들고, 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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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이순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순천김씨 충효당에 게시되어 있던 시판(詩板)으로 칠언절구의 시 4작품이 새겨져 있다. 시를 쓴 사람은 통상(統相)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ㆍ우상(右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 1559∼1636)ㆍ형판(刑判) 화양(華陽) 이시발(李時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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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서:선고유시) / 유교문화>유물 / 미상권준희(權準羲, 1849~1936)의 회갑연을 축하하며 축하객들이 지은 연작시의 시첩이다. 권준희는 자가 계상(啓象)이고 호가 우암(友巖)으로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 현 풍천면 가곡리)이다. 그는 퇴계의 정맥을 잇는 영남의 선비였는데, 한일합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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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2(서:선사유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선사유찰(先師遺札)』은 안동권씨 문중의 소장품으로,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며 근세 영남유림에서 이름난 학자인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편지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김흥락은 1845년 4월 유치명의 제자가 되면서 이황(李滉)과 이상정(李象靖)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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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탁본:군신도상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임금과 신하의 초상을 모아놓은 초상화 도록이다. 표지에 『군신도상(君臣圖象)』하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권은 분실한 것 같다. 여기에 실린 초상화는 모두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실려 있는 인물들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다. 초상과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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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보첩1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안동권씨 모헌문중의 소장품인 『가전보첩(家傳寶帖)』은 상ㆍ하 2첩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중 상권이다.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권응수(權應銖: 1546~1608) 장군을 비롯하여 모헌문중의 선비들이 주고받은 서한 필묵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상권에는 채팽윤(蔡彭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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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보첩2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안동권씨 모헌문중의 소장품인 『가전보첩(家傳寶帖)』은 상ㆍ하 2첩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중 하권이다.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권응수(權應銖: 1546~1608) 장군을 비롯하여 모헌문중의 선비들이 주고받은 서한 필묵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하권에는 신후담(愼後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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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1(동파서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동파서첩(東坡書帖)』은 「구양영숙취옹정기(歐陽永叔醉翁亭記)」의 시(詩)를 필사해 놓은 것인데, 안타깝게도 대략 전문(全文)의 반 정도가 유실된 채로 남아있다. 안동권씨 집안에서 학습용과 감상용으로 전해진 것이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북송 길주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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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6(단제법차입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소장품은 횡서(橫書)ㆍ수서법(竪書法)ㆍ직구(直鉤)ㆍ포구(包鉤)ㆍ평구(平鉤) 등의 해서를 쓰는 바른 법[楷字正法]을 익힐 수 있도록 한 서첩이다. 안동김씨 집안에서 글씨교재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총5면으로 앞의 3면은 필획의 방법을 기록하고 있고 뒤의 2면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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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9(왕희지필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왕희지의 글씨를 탁본하여 책으로 만든『왕희지필첩(王羲之筆帖)』이다. 왕희지 서체로 기록된 대용은 『효경(孝經)』 중 제6장 「서인장(庶人章)」ㆍ제8장 「삼재장(三才章)ㆍ제9장 「효치장(孝治章)」의 3장이다. 이 필첩은 안동김씨 집안 자제들이 왕희지의 서체를 익히는 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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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만취당에 게시되었던 현판이다. 만취당은 현판의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가 썼다. 점곡면 사촌리 한가운데 자리한 조선시대의 대청 건물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金士元: 1539~1602)이 학문을 닦고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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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삼봉서원(三峰書院)에 게시되었던 현판으로 연안김씨 만취당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삼봉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었던 서원으로, 1654년(효종 5)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이음(金爾音)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다. 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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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답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田主 司正 朴世信본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전주(田主) 사정(司正) 박세신(朴世信)이 조카인 남희록(南羲祿)과 더불어 전답 매매에 관한 것을 기록한 문서이다. 1574년(선조 7) 9월 10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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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답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田主 申乭伊본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전주(田主) 신돌이(申乭伊)가 남희록(南羲祿)과 더불어 전답 매매에 관한 것을 기록한 문서이다. 손상된 부분으로 인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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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답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전답매매문기(田畓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수급인은 남희록(南羲祿)이다. 토지매매문서를 명문(明文)이라 하는데, 보통 양반의 경우 자신의 가노(家奴)를 시켜 매매행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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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노비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婢主 文振宗본 「노비매매문기(奴婢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노비를 사들인 새 주인이 이를 판 옛 주인으로부터 거래 확인을 위해 받은 매매문서이다. 주인은 문진종(文振宗)이다. 토지매매문서나 노비매매문서를 명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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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답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幼學 吳以鼎본 「전답매매문기(奴婢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1667년(현종 8) 10월 18일에 유학(幼學) 오이정(吳以鼎)이 외사촌 동생 남상주(南尙周) 사이에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관에 알린다는 내용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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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전답매매문기) / 유교문화>유물 / 南信祿妻본 「전답매매문기(奴婢賣買文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만력(萬曆) 모년 3월 1일에 남신록(南信祿)의 처와 남희록(南羲祿) 사이에 매매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문(明文)이다. 매매문서는 '문서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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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기(분급문기) / 유교문화>유물 / 故南佶妻 申氏본 「분재기(分財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1666년(현종 7) 10월 27일에 조부(祖父)가 장손(長孫)과 차손(次孫)인 노명(老明)과 두명(斗明) 등의 형제들에게 분재하는 글이다. 장손인 노명에게는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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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기(분급문기) / 유교문화>유물 / 財主 父본 「분재기(分財記)」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1684년(숙종 10) 4월 29일에 재주(財主)인 아버지가 장자인 노명(老明)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내용이다. 분재기는 재산 상속의 시기와 방법에 따라 주로 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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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소지(所志)」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영해난고종가문서(寧海蘭皐宗家文書)』 중 일부로, 1582년(선조 15) 2월에 남광(南廣)이 도망친 노비와 관련하여 관찰사(觀察使)에게 올린 입안(立案: 관청의 인증서) 문서이다. 소지(所志)는 고려ㆍ조선시대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