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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2(선조비정부인장씨유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선조비정부인장씨유묵(先祖妣貞夫人張氏遺墨)』은 재령이씨 존재파 간송문고의 소장품으로,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의 딸이자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어머니인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 1598∼1680)의 글을 모아놓은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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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3(가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가첩(家帖)』은 재령이씨 존재파 간송문고의 소장품으로,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과 주자(朱子: 1130~1200)의 『주자전서(朱子全書)』 권66에 있는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등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재령이씨 가문에서 경계(警戒)로 삼기위해 소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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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만구택 / 유교문화>유물 / 미상본 전주이씨 한산군종택의 소장품인 「추만구택 현판(秋巒舊宅懸板)」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榮基: 1583∼1661)의 고택에 게시되어 있던 것이다. 추만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광선(光先)이고 추만은 그의 호이다. 그는 종실 우산군(牛山君) 종(踵)의 5대손으로 용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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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로당(怡老堂)은 이돈(李燉: 1568~1624)이 1612년(광해군 4) 대북파의 전횡을 못마땅하게 여겨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학문에 전심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산수정(山水亭)과 함께 지은 당이다. 「이로당(怡老堂)」 현판은 말 그대로 편안히 늙어가고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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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북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麻厓里)에 위치한 산수정(山水亭)의 현판이다. 산수정은 이돈(李燉: 1568~1624)이 1610년에 지은 것으로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이돈은 호가 호봉(壺峰)으로 1601년(선조 34)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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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유묵(몽재,동암)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성이씨 상계종택에 전해오는 이안도(李安道: 1541∼1584)와 이영도(李詠道: 1559∼1637)형제의 유묵을 모은 서첩(書帖)이다. 이안도는 자는 봉원(逢原), 호는 몽재(蒙齋)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이황(李滉)의 장손으로, 할아버지에게 직접 학문을 배워 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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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유묵(첨정공,몽재공,현령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성이씨 상계종택에 전해오는 이준(李寯:1523∼1583), 이안도, 이고(李杲:1649∼1708) 3명의 유묵을 모은 서첩(書帖)이다. 이준은 이황의 아들로 자가 정수(廷秀)이다. 1555년 제용감참봉(濟用監參)과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을 거쳐 연은전참봉(筵恩殿參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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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묵(회암주부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주희(朱熹: 1130~1200)의 유묵 3매를 모은 서첩(書帖)이다. 주희는 호가 회암(晦庵)으로 남송 시대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북송 시기 정이(程頤)의 학통을 이어받아 성리학을 크게 부흥시키고 집대성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이단을 배척하고 유학의 정통학문을 높이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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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봉필적(청시헌의,부우추연서) / 유교문화>유물 / 奇大升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유묵을 모아 책자로 만든 서첩(書帖)이다. 기대승은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峰)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어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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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제현유묵 수,토 / 유교문화>유물 / 李靜存齋 等퇴계 제자들의 친필을 모은 유묵 서첩(書帖)이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총 5권 중 수권(水卷)과 목권(木卷)만 보존되어 있다. 우성전(禹性傳: 1542∼1593), 이돈(李燉: 1568-1624), 금보(琴輔, 1521~1584), 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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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제현유묵 토 / 유교문화>유물 / 洪荷衣 等퇴계 제자들의 친필을 모은 유묵 서첩(書帖)이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총 5권 중 수권(水卷)과 목권(木卷)만 보존되어 있다. 우성전(禹性傳: 1542∼1593), 이돈(李燉: 1568-1624), 금보(琴輔, 1521~1584), 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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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생고조고유묵 / 유교문화>유물 / 李彙絅퇴계 종택에 전해오는 선조의 유묵을 모아 배접하여 책자로 만든 서첩(書帖)이다. 편찬자는 이휘경(李彙絅)으로, 그는 종형(從兄) 이휘녕(李彙寧)과 함께 퇴계 가학을 이은 영남학파의 중추적 인물이다. 표지에 ‘고조(高祖)의 유묵’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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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몽재공유묵 / 유교문화>유물 / 李安道이안도의 유묵을 모아 배접하여 만든 서첩이다. 이안도는 자가 봉원(逢原), 호가 몽재(蒙齋)이며, 이황의 장손이자 이준(李寯)의 큰아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직접 성리학을 배워서 퇴계학의 적통을 계승한 인물이다. 이황의 적손이라 하여 음서(蔭敍)로 목청전참봉(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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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일(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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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삼(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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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사(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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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오(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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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육(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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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팔(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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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일,삼,사,오,육,팔,구(가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을 모은 서첩이다. 이황은 자가 경호(景浩), 호가 퇴계(退溪)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독자적으로 수용 발전시킨 조선 최고의 선비이다. 영남의 학풍은 모두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것으로, 이황은 영남 사림의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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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일(세계,족보)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그린 진성이씨 세계도(世系圖) 서첩이다. 시조 이석(李碩)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황의 후손 대까지의 세계(世系)를 그린 것이다. 총 10매의 세계도를 배접하여 만들었다. 앞부분에는 진성이씨 시조부터 자신의 후대까지의 세계도가 있고, 뒷부분에는 중시조 이운후(李云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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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이(유사,갈명)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쓴 진성이씨 선조들의 유사(遺事)와 묘갈명(墓碣銘)을 모은 서첩이다. 송안군(宋安君) 이자수(李子修)의 봉작(封爵)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기록한 유사와 병조판서를 지낸 할아버지 이계양(李繼陽: 1424∼1488)에 대한 묘갈명, 그리고 부친 이식(李埴: 1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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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삼(잠명,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쓴 선현들의 잠(箴)과 명(銘) 25매를 모아놓은 서첩이다. 잠과 명이란 평소 가까운 자리에 게시해두고 늘 읽으면서 명심하는 좋은 글귀를 가리킨다. 이 서첩에는 정이의 「사물잠(四勿箴)」, 장재(張載)의 「서명(西銘)」과 「동명(東銘)」, 여대림(呂大臨)의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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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사(감흥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쓴 주자의 「재거감흥시(齋居感興詩)」 24매를 모아놓은 서첩이다. 주자의 「재거감흥시」는 우주 삼라만상과 천지자연의 조화에 관한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시인의 감흥을 빌려 쓴 작품으로, 주자의 글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태극음양(太極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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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오(대보잠)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장온고(張蘊古)의 「대보잠(大寶箴)」을 친필로 쓴 서첩이다. ‘대보’란 황제를 가리키는 말로, 이황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던 때에 이 「대보잠」을 써서 올렸다고 한다. 이 「대보잠」은 총 22매로 제목 아래와 본문 마지막에는 이황의 손자 이안도의 도장이 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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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육(구공시선)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시와 산문을 쓴 서첩이다. 이 서첩에는 『구양수문집』 제1권에 있는 「안척(顔跖)」, 「맹호(猛虎)」, 「선초(仙草)」, 「상산(上山)」, 「하산(下山)」, 「이천범주(伊川泛舟)」, 「팔절탄(八節灘)」, 「원앙(鴛鴦)」 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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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십칠(연평문답후록)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주자의 「연평문답(延平問答)」 「후록(後錄)」을 친필로 쓴 서첩이다. 총 20매로 흘린 해서체의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이황은 평소 주자를 무척 흠모하여, 주자와 스승 연평(延平) 이통(李侗)의 문답기록집 「연평문답」을 애독하였다. 이통은 이정(二程)-양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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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유묵 이십삼(명묘행장초서) / 유교문화>유물 / 李滉이황이 쓴 명종(明宗: 1534~1567) 행장(行狀)의 초고이다. 총 11매로 되어 있으며 초고의 형태이기 때문에 곳곳에 고쳐 쓰거나 삭제한 흔적이 많다. 이황이 글을 짓고 퇴고(推敲)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일 뿐 아니라, 조선 중기 상황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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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황이 서거 전에 남긴 친필 유서이다. 유서의 내용은 주로 장례의 절차에 관한 것이다. 국장(國葬)으로 치르지 말 것이고 조정에서 장례 물품을 조달해주겠다면 거절할 것이며 유과나 과일을 상에 올리지 말라고 적고 있다. 아울러 비석을 만들지 말고 작은 돌에 단지 ‘퇴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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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화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조선 영남의 선비들이 외국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모은 서첩이다. ‘향화’(向化)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귀화한다는 뜻으로, 조선의 문화와 영남의 학술 수준에 탄복하는 내용의 편지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 향화첩에 실린 편지는 일본인 도국흥(陶國興)과 중국인 석헌(石憲)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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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심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창녕조씨(昌寧曺氏) 운심정(雲深亭)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운심정 현판이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갈색 목판에 양각으로 글씨를 파고 그 위에 흰색 물감을 도색하였다. 액자 형태로 사방 테두리를 두르고 상단의 테두리를 좌우로 길게 빼서 구름 장식 조각을 한 모양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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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1(서:해사김성근필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김성근(金聲根: 1835∼1919)의 친필 글씨를 모아둔 필첩(筆帖)이다. 긴 모양의 종이에 4행씩 해서체로 글씨를 썼다. 필획이 뚜렷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필체이다. 이 필체를 이른바 미남궁체(米南宮體)라고 하는데, 북송 시대 뛰어난 서예가 미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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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3(정재선생유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유치명(柳致明: 1777∼1861)의 유묵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유치명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배접하여 만든 서첩으로 총 11점을 모아놓았다. 유치명은 자가 성백(誠伯), 호가 정재(定齋)이다. 이상정(李象靖)의 외증손으로 외가인 안동의 소호(蘇湖)에서 출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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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6(부벽필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를 8장의 목판에 새겨 인출한 것이다. 유려한 초서체로 새겨져 있는데, 글씨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것으로 추정된다. 『적벽부』는 소식의 대표 작품으로, 1082년 소식이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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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7(선현유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덕 평산신씨 주부공종택에 보존되어 있던 유묵 필첩이다. 이 필첩은 평산신씨 주부공종택과 왕래한 영남 선비들의 서신을 모아놓은 것이다. 글씨의 주인공은 권만(權萬: 1688∼1749), 김부륜(金富倫: 1531∼1598), 금난수(琴蘭秀: 1530∼1604), 김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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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류8(선현유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평산신씨 주부공종택과 왕래하던 영남 선비들의 유묵을 모아놓은 필첩이다. 첫장에는 신호(申灝, 호는 鏡湖)의 「지황설(地黃說)」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신호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으로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워 ‘7충신’으로 칭송되었던 인물이다. 이 글에서 신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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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촌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崔象龍최상룡(崔象龍, 1786∼1849)의 시문을 모은 『봉촌선생문집(鳳村先生文集)』의 책판이다. 최상룡은 호가 봉촌(鳳村)으로,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학맥을 이은 인물이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연마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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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구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李種杞 著이종기(李種杞 : 1837~1902)의 시문을 모은 『만구선생문집(晩求先生文集)』 책판이다. 이종기는 자가 여기(器汝), 호가 만구(晩求)로 조선 후기 영남 지역의 유명한 학자이다. 이종기는 주로 가학을 통해 대산 이상정과 정재 유치명의 학맥을 이어받아 퇴계학의 정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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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당선생일고 / 유교문화>유물 / 金大有 著김대유(金大有, 1479∼1551)의 시문을 모아놓은 『삼족당선생일고(三足堂先生逸稿)』의 책판이다. 김대유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가 천우(天佑), 호가 삼족당(三足堂)으로 직제학 준손(駿孫)의 아들이며 일손(馹孫)의 조카이다. 조광조(趙光祖)·조식(曺植) 등과 친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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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金馹孫 著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시문을 모아놓은 『탁영선생문집(濯纓先生文集)』의 책판이다. 김일손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계운(季雲)이고 호는 탁영(濯纓)이다. 일찍이 진사과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었으나 학문에 뜻을 두어 사직하고 김종직(金宗直)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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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시문을 모아만든 『한주선생문집(寒州先生文集)』의 책판이다. 이진상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호는 한주(寒洲)이고 자는 여뢰(汝雷)로 주자와 퇴계의 철학을 주리사상(主理思想)으로 최대한 발전시킨 학자로 평가된다. 그래서 주자의 학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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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요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진상이 쓴 『이학종요(理學綜要)』의 책판이다. 성리학의 기본 개념과 사상의 요지를 이진상의 독자적 관점으로 정리한 책으로, 천도(天道)·천명(天命)·성(性)·심(心)·정(情)·학(學)·행(行) 등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먼저 경전과 선유(先儒)의 학설을 제시한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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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정석달(鄭碩達 : 1660~1720)의 시문을 모아 만든 『함계집(涵溪集)』의 책판이다. 정석달은 자가 가행(可行) 호가 함계(涵溪)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현손이며 충무위대호군(忠武衛大護軍) 정시심(鄭時諶)의 맏아들이다. 갈암 이현일(李玄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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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정일찬(鄭一鑽 : 1724~1797)의 시문을 모아 만든 『죽비집(竹扉集)』의 책판이다. 정일찬은 호가 죽비(竹扉)로 정석달의 손자이자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품성이 반듯하여 고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부친상 때에는 3년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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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류장원(柳長源:1724∼1796)의 시문을 모아 만든 『동암집(東巖集)』의 책판이다. 류장원은 자가 숙원(叔源)이고 호가 동암(東巖)으로, 조선 중기 이름난 성리학자이다. 류신적(柳信迪)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유관현(柳觀鉉)을 계부로 섬겼다. 1763년 진사시 합격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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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화산지(花山志)』 필사본이다. 『화산지』란 『영가지(永嘉志)』의 별명으로, 경북 안동 지역의 지리서이다. 이 책에는 안동에 소속된 부현들의 연혁·강역(疆域)·호구(戶口)·산천·토산품·향교·성씨 등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실려 있다. 역사지리서로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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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지1~11 / 유교문화>유물 / 權紀 編총 4책 『영가지』의 필사본이다. 『영가지』는 1602년 권기(權紀)가 스승 류성룡(柳成龍)의 명으로 권행가(權行可)와 함께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류성룡 생전에는 책이 완성되지 못했다가 나중에 정구(鄭逑)가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1608년(선조 41)에 드디어 8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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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 삼공신회맹록판본 / 유교문화>유물 / 미상김승주(金承霔: 1354∼1424)의 회맹록이다. 이 회맹록은 1404(태종 4년) 11월 개국공신(開國功臣), 정사공신(定社功臣), 좌명공신(佐命功臣)의 3공신 66명이 하늘에 맹세한 후 작성한 맹서문을 다시 목판에 새겨 인쇄한 것이다. 김승주는 고려 말 조선 초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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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1(홍패) / 유교문화>유물 / 미상장백손(張伯孫)이 1487년(성종 18) 무과에 합격하고 받은 홍패(紅牌)이다. 홍패란 과거 합격증서로 붉은 종이에 먹으로 합격자의 이름과 등급, 성적 등을 기록하여 증여하는 문서를 말한다. 장백손은 장천말(張天末)의 손자로 1471년(성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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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2(증직교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장희덕(張希德)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면서 받은 교지이다. 교지란 원래 조선시대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를 통칭하는 것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즉 관원에게 관작이나 관직을 내리는 고신(告身), 문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紅牌), 생원진사시 합격자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