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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하 / 유교문화>인물 / 김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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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 유교문화>인물 / 김용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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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도희 / 유교문화>인물 / 류도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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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춘 / 유교문화>인물 / 박장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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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생 / 유교문화>인물 / 박서생야은(冶隱) 길재(吉在)의 문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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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청 / 유교문화>유적 / 미상향청은 지방행정의 보조자적인 것과 향촌의 민풍 순화가 주된 설립 목적이다. 향청의 명칭은 향사당(鄕射堂), 풍헌당(風憲堂) 또는 두 번 째 관아라는 의미에서 이아(貳衙) 등으로 통용되어 왔으며 대체로 여말 선초부터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상주 향청은 155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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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서산서원은 1713년(숙종 39)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을 제사 드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후에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을 추배하여 총 3분을 모시게 되었다. 상주의 상수원인 북천이 바라보이는 연원동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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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 연원동에 소재하는 흥암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건립된 영남지방 최초의 노론계열 서원이다. 이해 11월에 숙종의 친필 사액이 내려지며 예조좌랑 오수경(吳守經)을 보내어 치제하였으며, 1716년 다시 한 번 숙종의 어필 사액이 내려지고 좌부승지 유숭(兪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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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남장재는 상주에서 보은을 가는 25번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상주 자전거 박물관과 상주의 대표적인 사찰인 남장사로 향하는 간판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감나무가 지천으로 서 있는 곶감마을 가운데 위치하며, 재실뜸 마을에 있는 풍양 조씨 족보 판목을 보관하는 보각(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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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동영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 시내를 벗어나 남상주 IC 바로 오른쪽에 '가장동 송창골 입구'라는 자연석 표지석이 있다. 이곳 송창골은 병성천이 마을 앞을 지나고, 나지막한 산이 마을을 싸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예부터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하여 송창골이라 한다. 영모재는 송창골 여산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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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개운동 개운 저수지를 따라 옆길로 한참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무신 김선치(金先致)의 묘비가 서있다. 개운재는 김선치를 모시는 재실로, 소개리 마을 산자골 산기슭에 남향으로 위치해있다. 가는 길 넓은 묘역에 묘비와 석등, 문인석이 있는 곳이 김선치의 묘이다. 재실과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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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 시내를 벗어나 3번 국도를 따라 청리면으로 향하는 길에서 상주남부초등학교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작게 오대동 이정표가 붙어있다. 가운정은 오대저수지를 지나 음지마을 안쪽으로 용절골에 위치하는 정자이다. 산 아래 경사진 대지 위에 토석 담장을 둘러싸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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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산관은 상주 읍성 내에 건립되어 있었던 객사이다. 상주를 방문하거나 지나치는 사신들이 숙소로 사용하거나 공무로 출장 중인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외에도 목사가 부임하면 이 고을에서 별탈 없이 근무하기를 빌고, 매월 1일과 15일, 또는 나라에 경사가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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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만세각은 함창읍 증촌리 전고령가야왕릉(傳古寧伽倻王陵) 앞에 위치한 함창김씨 재실이다. 재사 뒤편 계단을 오르면 넓은 잔디밭위에 조성되어 있는 이 왕릉은 여섯 가야 중의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1971년 함창 도시계획에서 보존 구역으로 결정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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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함창 향교는 주산인 재악산(宰岳山) 남쪽 5리쯤에 부가차산(附加次山) 중앙에 위치한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함창읍지(咸昌邑誌)」에 의하면 옛날 향교동 객관 남쪽에 있던 것을 임란 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되어 있고, 1970년 10월경 성균관대학교 교육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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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 함창읍 윤직리의 머리미산 아래에 있는데 1534년에 신유가 간신을 논핵(論劾)한 후 귀향하여 세운 정자이다. 중간에 폐정되어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만 있었는데 1752년에 중건하였다. 남명 조식이 명명하고, 수암 권상하가 글씨를 썼다. 최종적으로 1984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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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황정은 함창읍 남쪽으로 십리쯤 금곡리 봉황대 마을에 위치한 정자이다. 이안천(利安川)과 문경에서 흘러나오는 영강(潁江)이 합류하고, 알운(戛雲), 비봉(飛鳳), 덕봉(德鳳)의 세 산이 앞에 솟아 있는 절경에 있어 이백(李白)의 이수삼산(二水三山) 시를 연상하여 정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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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충의사는 임진왜란 당시의 명장인 정기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벌면 금혼리에 위치하며, 1698년 충렬사(忠烈祠)라 하다가 1872년 서원훼철령으로 위패를 가묘로 이안하였다. 1972년 가묘를 헐고 동쪽으로 조금 옮겨 다시 충렬사란 편액을 단 후 1974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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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에서 동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곳,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의 낙동강 상류 경천대국민관광지에 도착하여 경천대 주차장을 지나 고개를 넘어 우담(雩潭) 선생의 생가 터와 봉산곡 안내판을 지나면 아담한 정자를 만날 수가 있다. 이 정자는 우담 채득기(蔡得沂:1604~1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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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 유교문화>유적 / 미상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하여 천 삼백리를 구비 돌며 흐르는 낙동강 물길에 최고의 절경지는 상주 경천대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노송이 우거져있고, 절벽 한 켠에는 소박한 정자 하나가 올라앉아있으며, 아래로는 푸른 강물에 황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한때는 하늘이 빚어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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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낙암서원은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와 두 아들을 배향한 곳이다. 1796년에 설립되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단소만 남아 내려오다가 1988년 다시 복원되었다. 낙동강이 멀리 바라보이고 야트막한 산이 뒤를 둘러싼 배산임수형에 위치한다. 낙암은 그 마을의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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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수암종택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인 수암(修巖) 류진(柳袗)이 37세에 가사리(佳士里)에 터를 잡은 데서 비롯되며, 풍산류씨(豊山柳氏) 우천파(愚川波) 종중이다. 이 집은 속리산 ,팔공산, 일월산의 지기가 모이고 낙동강과 위강(渭江)이 합류하는 삼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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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북선 철도 옆으로 공갈못이 있는 마을에서 안쪽으로 조금 더 가면 솔안 마을을 지난 곳에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부곡리 못가 마을이 나온다. 남호재는 이 마을 안쪽에 위치하며 남호(南湖) 채방환(蔡邦煥)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정면 2칸 측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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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모재는 상주의 여러 가문들이 힘을 모아 세운 것으로, 율곡리(栗谷里) 산주골 채수(蔡壽) 신도비(神道碑)를 지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영모재와 솟을삼문이 나란히 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 없이 터진 공간이다. 마당 안쪽 왼편에는 근래에 새롭게 지어진 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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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임호서원은 사화로 참사 당한 남계(藍溪) 표연말(表沿末),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동계(桐溪) 권달수(權達手),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설공찬전』을 지은 난재(懶齋) 채수(蔡壽), 휴암(休巖) 채무일(蔡無逸)을 배향한 서원이다. 처음의 위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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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안천이 휘돌아 흐르며, 산과 강이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낸 예주리(曳舟里) 야산에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1752년 도계정사(陶溪精舍)와 아곡리사(雅谷里祠)를 합하여 두 곳의 선현을 합사하고 서원으로 승원하였다. 배향 선현이 열 한분으로 경북의 서원 가운데에 배향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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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예주리는 이안천이 마을 앞을 휘감아 흐르고 있는데, 옛날에는 강물이 많아서 예천군 풍양면까지 소금배가 왕래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안천을 따라 이 마을까지 들어온 배들이 정박할 때 매에 두던 큰 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예주목’이라고 부른다. 신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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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 공검면 공검지에서 이안 방면으로 약 10km 가면 상주시 공검면 장계촌 북쪽 기산(箕山) 아래 관암(冠巖)에 관수정이 자리하고 있다. 관수정이란 이름은 ‘물을 보다’라는 뜻인데, 280여 년 전 취재헌(醉在軒) 우성일(禹成一)과 만취당(晩翠堂) 우성백(禹成栢)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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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청간정은 1655년경 가곡(柯谷) 조예(趙秇)가 지은 정자이다. 운곡리 마을 입구에서 의암고택(依巖古宅)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 가면 보호수로 지정된 5백년 수령의 큰 은행나무 한 그루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앞으로는 가뭄을 모르는 국사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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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운곡(雲谷)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의암고택(依巖古宅)은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건물이다. '의암(依巖)'은 조범구(趙範九)선생의 호로서, 의암고택이라는 당호는 후대인이 의암 조범구 선생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붙인 건물명칭이다. 이 집으로 드나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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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양진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낙동강과 접한 낙동면에 위치한 양진당은 검간 조정 선생이 지은 민가 안채이다. 조정은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때의 학자로 한강 정구, 학봉 김성일의 제자이며, 특히 학봉 선생은 조정 선생의 처삼촌이다. 이 집터도 학봉 선생이 잡아주었다고 한다. 양진당은 조정이 그의 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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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916번 지방도로 옆에 위치한 오작당(悟昨堂)은 일명 구당(舊堂)이라고도 하는데, 검간(黔澗) 조정(趙靖)의 종가로 처음은 선조를 추모할 목적으로 지은 집이다. 1601년(선조 34) 양진당 자리에 지었다. 1661년(현종2년) 조대윤(趙大胤)이 은천(恩泉)의 새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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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용산정사는 일명 '와연당(臥淵堂)'으로 불리는데, 갑장산 구룡의 한 줄기가 동으로 뻗은 곳에 위치한다. 당호를 와연당으로 한 것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3년 지방문화재자료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184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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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곡리추원당(장천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승곡리추원당(升谷里追遠堂)은 1759년(영조35)에 건립되고 1945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다. 사림의 결정에 의해 2007년 12월 8일 추원당을 장천서원(長川書院)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장천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이전의 추원당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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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류정(玉流亭)은 낙동면 승곡리 652번지 승장 폭포 옆에 있다. 갑장산 구룡연(九龍淵)에서 발원한 물이 승장계곡을 지나며 수 십 길의 옥류폭포가 되어 흐른다. 사방으로 토석 답장을 두르고, 전면에 드나드는 문을 내었으며, 남서향으로 정자를 세웠다. 옥류정이 위치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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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수선서당은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상주 남쪽 수선산 아래 유람 왔다가 산수의 풍광이 좋아 지방의 부로들과 상의하여 서당을 짓고 손수 수선서당 네 자를 써서 현판으로 걸었다. 임란 때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1603년 다시 중건하였다. 청리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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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리에 있다. 청리면 소재지를 지나서 김천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마공논공단지에서 오른쪽으로 가서 유천(酉川)을 건너면 서산 아래에 있다. 체화당은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말인데 월간(月澗) 이전(李㙉)과 창석(蒼石) 이준(李埈)두 형제간의 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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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애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 청리면 율리에 위치한 존애원은 조선시대 상주 지역의 사설 의료기관이었다. 이 병원은 정경세(鄭經世)가 임진-정유왜란 직후 경상도관찰사에서 물러나 1599년 가을 고향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성람(成濫), 이준(李埈) 등과 창설하였고, 1602년(선조 35) 상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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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곡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공성면에서 모동으로 가는 68번 지방도로를 가면 상판(上板) 저수지 조금 못미쳐 효곡재사 이정표가 붙은 삼거리가 나온다. 저수지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효곡리에 이르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작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마을 맨 위쪽에 우뚝 솟은 효곡 재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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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정자는 처음 상주 관아의 남쪽에 정곤수(鄭崑壽)가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연꽃이 있던 못의 옆에 세워 이름을 연당(蓮堂)이라 하였으며, 공무에 시달리던 관리가 휴식을 취하던 관정이었다. 그 후에 못에 홍련과 백련이 있어 이름을 이향정(二香亭)이라 하였다. 19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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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태평루는 상주의 임란 전적지인 북천 전적지의 외삼문을 지나면 곧장 언덕위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있다. 원래는 상주 아문의 내삼문 밖에 건립하여 동헌의 문루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상주 향교 동편의 산으로 이건하였다. 1960년대에는 상주 향교안으로 이건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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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천운정사는 상주시 외답동에 자리한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정자이다.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주 IC를 빠져 나와서 시내 쪽으로 약 200미터 가다가 좌회전하여 마을 안으로 올라가면 식산이 나오는데 천운정사는 그 식산 아래에 있다. 식산 이만부는 1697년에 서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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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낙동강 전 구간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곳은 사벌면 퇴강리와 낙동진 나루터 사이의 구간이다. 층암절벽을 이루는 비봉산의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밑으로 넘실거리며 흐르는 강물과 넓은 은백색 모래밭이 바라보이는 곳에 도남서원이 위치한다. 영남출신의 대유학자 다섯 분을 배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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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곡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건립 당시의 건물이 남아있는 서당이다. 후계(后溪) 김범(金範)이 은거하며 학문을 익히며, 후진을 교육하던 장소이다. 서곡동(書谷洞) 서당골 마을 동쪽의 도림원 남쪽에 위치한다. 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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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청에서 남쪽 방향으로 약 300미터 지나서 현대아파트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남산 자락에 상주향교가 있다. 1426년(세종 8)에 판목 조치(曺致)가 남루를 세우고 1485년(성종 15)에는 목사 강구손(姜龜孫)이 성전과 재루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상주향교는 경주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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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강서원은 상주의 대표적인 사족인 진주강씨 집성촌 봉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의 조정에서 여섯 번이나 불러도 나가지 않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강회중(姜淮仲)과 연산군 때에 폭정을 직간하다 갑자사화로 네 부자가 참화를 당한 강형(姜詗)을 배향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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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악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연악서원은 명종 연간에 상주 목사를 지낸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인 지천서당이 승격되면서 이름을 바꾼 곳이다. 서당의 강당을 그대로 사용하고, 강당 앞개울을 건너 묘우인 창덕사(彰德祠)를 북향으로 세웠다. 상주남부초등학교 옆으로 갑장산 계곡을 따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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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성서원은 신잠(申潛)이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세운 18개의 서당 중의 하나인 수양서당(首陽書堂)이 그 모태이며, 1633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48년 수해로 옥성서원이 있던 서산이 무너져 서원이 묻혀버렸다. 1710년 현재의 자리인 외남면 신상리 진등 마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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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리첨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보은으로 가다가 내서면 사무소에 이르기 전에 신촌마을에 자리한 서강(西岡) 성여춘(成汝櫄)의 재실을 만날 수 있다.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들판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하며 동편에는 묘비가 서 있다. 성여춘은 김상헌의 문인으로 송시열과 송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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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추원재(追遠齋)는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단촌면사무소가 있는 단촌면의 중심지인 하화리에서 동쪽으로 약 3km 정도 가다보면 도로 양편으로 낮은 언덕들이 드문드문 솟아있으며, 단촌면 관내에서 그나마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