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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의성향교는 의성읍 도동리 동산 위에 오토산과 금성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군청을 지나 왼편으로 돌아서 의성경찰서를 지나면 의성교회가 보이는데, 교회 왼쪽 뒤로 나있는 골목길을 오르면 의성향교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 뒤로 양지바른 곳에 의성향교가 자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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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리충효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리리 충효사(上里里 忠孝祠)는 임진왜란 때의 충신 효사재(孝思齋) 이탁영(李擢英)을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이곳은 의성군청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의성여자중학교를 지나서 500m 거리에 있다. 도로에서 북쪽으로 난 골목길을 오르면 우측에는 방형의 토석담을 두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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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우곡서원(愚谷書院)은 오국화(吳國華)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의성군 단촌면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의성읍으로 중간쯤 가다보면 오른편에 우곡서원이라는 표지석이 서있다. 이 서원은 1918년에 우곡단(愚谷壇)을 축단한데서 비롯되었으며, 1983년 우곡서원으로 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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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자족재(自足齋)는 신봉석(申鳳錫)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의성읍을 지나 5번 국도를 타고 봉양면 쪽으로 가다 28번 국도 분기점에서 5번 국도를 조금 지나가면 신지라는 못이 있고 더 들어가면 용연리가 나온다. 자족재는 용연리 마을회관 뒷산 기슭에 자리 잡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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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의성읍에서 신의성교(新義城橋)를 건너 다시 100여 미터를 가다보면, 의성군상하수도사업소 맞은편에 구봉산산림욕장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에서 5분가량 언덕을 오르면, 봉우리를 깎은 넓은 터에 옛날 의성의 공관이었던 문소루(聞韶樓)가 자태를 드러낸다. 문소루는 태백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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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소원정(溯源亭)은 효자 오천송(吳千松)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의성읍 팔성리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읍내에 있는 의성경찰서에서 남쪽으로 직진하다가 동쪽 도서리 방향으로 꺾어 직진하면 오른편에 구봉공원이 있고, 좀 더 직진하여 남대천이 흐르는 구봉교를 지나 조금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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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병산정(屛山亭)은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도암리에서 28번 국도를 따라 동부리로 가다보면 서편에 우뚝하게 솟은 정자하나가 있다. 정자와 국도사이에 있는 과수원이 국도에서의 소음을 차단해주어, 조선시대 초기에 살았던 율정선생을 조용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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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백학서당(白鶴書堂)은 1752년경 박수교(朴壽喬), 박도전(朴道傳), 김규석(金圭錫) 등 8개 문중이 후학을 길러내기 위해 외곡리 성곡(星谷)마을에 창건한 것이다. 그 후 1878년 비안면 이두마을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28번국도 옆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 옛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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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명곡서원(明谷書院)은 1818년(순조 18년)에 유림들이 금은(琴隱) 박성양(朴成陽)을 추모하고자 지은 서원이다. 가음면 양지마을은 규모가 큰 양지 저수지를 지나 빙계 계곡으로 들어가는 마을[가음면 현리→춘산면 빙계리]로 진입하기 전에 위치해 있다. 명곡서원은 양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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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와 및 표절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해와(蹈海窩)는 도해(蹈海) 구혜(具譓; 1606~1666)가 약 350년 전 효종조에 축조하였는데, 학문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공자(工字)형으로 지어졌다. 가음면소재지에서 3.5km 떨어진 순호 2리에 위치해 있다. 철제 대문과 석회석벽으로 도해와 전체 건물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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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강재(鳳岡齋)는 벽진이씨(碧珍 李氏)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과 이극송의 7세손인 화수헌(花樹軒) 이세남(李世南)을 모신 재사이다. 가산초등학교에서 가산 2리 경로당 직전에서 좌회전 하여 30m 지점에 봉강재가 있다. 봉강재의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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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송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학송재(鶴松齋)는 조선조 선조 때 순호 3리에 입향한 운포(耘浦) 신권(申權)의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학송이라는 순호 3리의 지세가 학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학송재 기문에서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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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체련정(棣聯亭)은 달성서씨(達城徐氏) 서영희(徐永禧)와 서승희(徐承禧) 형제가 함께 지내기 위해 지었던 건물이다. 세월이 흘러 정자가 퇴락하자 후손들이 197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체련정은 가산2리 동쪽 끝에 산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사주문과 정자는 모두 남향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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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정 및 경재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송암정(松庵亭)은 1922년에 훈도였던 박경지(朴景智)를 위해 함양박씨 문중에서 세운 누정이다. 누정 동남쪽에 박성양(朴成陽)을 배향한 명곡서원이 있는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경재당과 경재선생행적비(儆齋先生行蹟碑) 한 기가 서있다. 경재당은 박채섭(朴埰燮)이 오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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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유허비 및 옹천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옹천재(甕泉齋)는 함양박씨 경와공파 문중의 재실로, 춘산면 금천2리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금천리는 마을 지형이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고, 군데군데 맑은 샘이 솟아 독처럼 생긴 우물이란 뜻에서 옹천(甕泉)이라 부른다. 권상규는「옹천단기」에 “광두산(廣斗山) 위, 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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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천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성천재(惺川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성천(惺川) 구건종(具建宗)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구건종이 옛날 은거했던 자리에 세운 재사(齋舍)이다. 가음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 덕천교를 건너면 덕천못이 보이고 못의 맞은편에 장1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마을의 뒤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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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춘산면 대사리에 위치한 덕양서원(德陽書院)은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순절한 백촌 김문기(金文起)와 맏아들인 김현석(金玄錫)을 배향하는 곳이다. 서원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위치해 있고, 청송․군위 등 다른 군과 접경 지역에 있어 여러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느긋한 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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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계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빙계계곡(氷溪谿谷)은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람이 나와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더운 김이 솟아나는 계곡이다. 이곳은 보현산(普賢山) 지맥 빙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암벽을 돌아 구비 치며 절경을 이룬다. 1993년 10월, 경상북도에서 절승(絶勝)을 선발할 때 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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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빙계서원(氷溪書院)은 김안국․이언적․류성룡․김성일․장현광․이광준 등 6현을 배향한 서원으로, 2006년 유교문화개발사업 일원으로 복원된 곳이다. 건물이 준공되고 빙계서원복향 및 학동 이광준 선생추배고유를 지낸 뒤에 매년 향사를 치르고 있다. 춘산면(春山面) 빙계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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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동강서당(東岡書堂)은 진성이씨 사곡파 입향조인 이희정(李希程)이 세운 강학 장소로, 사곡면 오상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상리(梧上里)는 동쪽은 밝게 트인 들판이 있고, 서쪽은 오토산이 막아섰다. 남쪽으로 금성산과 남대천이 흐르며, 북쪽은 의성읍으로 통하는 길이 트여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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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강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귀천강당은 선조 때 이경문(李慶門)이 세운 구천강당을 1919년 후손들이 재사로 중수한 것이다. 사곡면 오상리에 위치해 있는데 도로 맞은편 산에 오토재, 동남쪽으로는 동강서당이 인접해 있다. 마을 앞의 덤이 거북이 등과 같은데 그 옆을 흐르는 시내가 구천이다. 거북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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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오토재(五土齋)는 고려 태자첨사 김용비(金龍庇)의 묘각을 겸한 사당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 2년여에 걸쳐 건립한 곳으로, 의성군 사곡면 토현동 오토산에 자리하고 있다. 토현(土峴, 흙두린)이라는 지명은 금성면 만천동과 접경하는 고개에 흙이 많이 쌓여 있는데서 비롯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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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화강정(禾岡亭)은 1943년에 안강(安康) 노씨 문중이 세거하는 곳에 노덕래(盧德來)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산수유 마을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사곡면 화전리 입구에 자리한다. 화전3리라고 적힌 빗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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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학산재(鶴山齋)는 처음에 오우재(五友齋) 권전(權琠)이 얽은 것을 2001년에 다시 문중의 합의를 모아 그를 위해 중건한 재실이다. 건물은 옥산면 입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옥산면은 안동․청송 등과 접경하고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그리하여 학산재가 위치한 입암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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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오계서당(梧溪書堂)은 본래 강와(剛窩) 임필대(任必大, 1709~1773)가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건립했던 사당으로, 임필대가 사망한 후에는 그를 제향하기 위해 오계사(梧溪祠)를 세웠다. 그러다가 대원군 때 훼철된 후 다시 서당 형식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금성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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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은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성면 서쪽에 위치하는 구련리에 있는 이 귀은재(龜隱齋)는 풍천인(豊川人) 임경윤(任景尹, 1602~1666)이 이 구련리(龜蓮里)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전을 닦은 업적을 기리고 제향(祭享)하기 건립된 재사이다. 재사(齋舍) 또는 재실(齋室)이라는 건축물은 한 가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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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0)이 학문을 닦던 정자로, 1924년에 후손이 개축하였다. 산운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수정사 방향으로 3km쯤 가면 왼편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아스팔트 포장길로 조금만 가면 왼쪽에 새로 놓인 다리가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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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곳은 조선중기에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이름난 벼슬로 명성이 높았던 자암(紫巖) 이민환(李民寏, 1573~1649) 선생의 종택이다. 의성군에서 점곡면의 사촌(沙村)마을과 더불어 조선시대 양반가문이 집성촌을 이루어 수백 년이 넘도록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온 마을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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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우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죽파(竹坡) 이장섭(李章燮, 1854~1907)이 1900년 경에 건립한 가옥이다. 금성면 산운마을은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입향(入鄕)한 후 400년을 넘게 영천이씨(永川李氏)가 대를 이어 거주하는 곳으로, 현재는 80여 가구가 산다. 산운마을은 사촌마을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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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49)이 영월부사로 재직하던 1800년대 초기에 건립되었다. 산과 구름이 아름답다는 금성면 산운마을은 조선 중기에 영천이씨(永川李氏)가 터전을 마련하여 대대로 거주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고풍스러운 고가옥들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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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소우당(素宇堂)은 영천이씨(永川李氏)인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 1776~1861)이란 분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고,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지었다고 전하는 건물이다. 안채와 사랑채도 깨끗하게 유지 관리되어 볼 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곁 서쪽에 별도의 담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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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곳은 조선중기에 좌승지를 지냈으며 문명(文名)이 중국까지도 널려 알려졌던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 1570~1629) 선생이 거주하던 곳이다. 의성군에서 점곡면의 사촌(沙村)마을과 더불어 조선시대 양반가문이 집성촌을 이루어 수백 년이 넘도록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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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록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영천이씨(永川李氏)로서 조선 중기에 산운마을로 입향(入鄕)한 강원감사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 1531~1609)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의성군 금성면 소재지에서 68번 지방도를 따라 가음면 쪽으로 가다가 보면 왼쪽으로 넓게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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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오봉종택(梧峰宗宅)은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오봉(梧峰) 신지제(申之悌)의 종택으로 그의 사후(死後)에 건립되었다. 5번 국도를 따라 분토2리를 조금 지나다보면 봉양면 구미리로 접어드는 시점에 ‘오봉종택(梧峰宗宅)’ 푯말이 나타난다. 마을 앞에는 동삼, 백꿩, 백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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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채미헌(採微軒)은 1638년(인조 16) 신적도(申適道)가 옥산면 금학리에 건립한 것인데, 11세손 신계환(申啓煥)이 사림의 공의(公議)를 얻어 1934년에 현 위치인 단구서원 우측으로 이건하였다. 이 건물은 단구서원 거인재(居仁齋) 뒤편 토석담을 경계로 바로 인접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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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산재(鳳山齋)는 박성양(朴成陽)을 모시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재사는 의성에서 대구방면으로 내려가는 28번국도를 따라 10여분 쯤 가다보면 국도의 왼편으로는 넓은 평지가 오른편으로는 산이 드리우고 있는 지형을 만나게 되는데, 도로 오른편의 마을 입구에 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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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정곡사(正谷社)는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함께 급제하고 병자호란 때 출전하여 순국한 김엽(金燁), 김욱(金煜), 김찬(金燦) 3형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의성군 봉양면 분토 2리 마을 입구에서 300m 들어간 지점 산허리에 정곡사가 위치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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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구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단구서원(丹邱書院)은 신적도(申適道), 신달도(申達道), 신열도(申悅道) 형제의 창의정신과 충성을 기리고 신적도 아들인 신채(申埰)의 유학사상을 전승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의성읍에서 봉양면 방향으로 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오른편에 농업기술센터가 보인다. 그 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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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서원(금연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산서원(錦山書院)은 원래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이 1776년(영조 52)에 세속의 명예와 탐욕을 멀리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덕을 쌓기 위해 지은 금연정사(錦淵精舍)이다. 봉양면 소재지에서 탑산약수온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금산서원 입구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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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장대서원(藏待書院)은 1610년(광해2) 오봉 신지제가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강당을 건립한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강당은 170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오봉종택에서 약 3km쯤 더 가다보면 장대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 뒤쪽 산허리에 장대서원이 위치하고 있다. 서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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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덕사(景德祠)는 조선시대 현종과 숙종 조에 걸쳐 출사한 삼도수군통어사 장시규(張是奎)와 그의 둘째 아들인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장한상(張漢相)을 함께 모셔 제향 하는 곳이다. 구천면사무소를 우회하여 서낭당 고개를 넘어 용사 2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용사2리 경로당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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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관수루(觀水樓)는 안동의 영호루(映湖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와 함께 낙동강 삼대 누각의 하나이다. 절경이 아름다워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관수루는 낙정(洛井) 나루의 바로 옆 북쪽 층암절벽에 위치한다. 관수루가 위치한 낙정마을은 태백, 일월, 팔공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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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속수서원(涑水書院)은 신우(申祐)·손중돈(孫仲暾)·김우굉(金宇宏)·조정(趙靖)·조익(趙翊)의 다섯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속수서원은 속암 1리의 동쪽 끝 산 중턱에 위치하여 광활한 안계평야와 속암들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위천(渭川)을 굽어보고 있다. 서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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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성서당(鳳城書堂)은 1506년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세운 것에서 출발한다. 1552년에는 영천(靈川) 신잠(申潛)이 상주목사로 부임하며, 이곳에 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는 강학공간으로 활용하였다. 1656년 생사당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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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호정(道湖亭)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신복성(申福誠)이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었던 긍모정(肯慕亭)의 옛 터에,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도호정의 진입문은 무성한 탱자나무에 살짝 가려져서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실수를 범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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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의성에서 대구방향으로 5번 국도를 따라 화전 사거리에서 예천 방향 28번 국도로 접어든 다음, 비안면 경계를 지나 직진하여 안정리․교촌리 표지판이 나오는 곳에 도착하면, 큰 바위에 향교의 입구를 표시하고 있다. 이곳을 좌회전하면 교촌리로 들어가게 된다. 향교는 마을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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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모운정(慕雲亭)은 경주 최씨 관가정(觀稼亭)파 시조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모운정은 양지산 아래 달제마을에 위치한다. 달제마을은 옛날 조선시대 때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쉬어가면 ‘통달한다’는 전설과 양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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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남서당(鳳南書堂)은 김진엽(金振曄)이 은거하기 위해 지었던 봉남당(鳳書堂)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조선말 후손들에 의해 중건된 건물이다. 봉남서당은 비봉산(飛鳳山) 남쪽 기슭인 하광덕의 조갱골[鳥岡谷]에 위치한다. 하광덕 마을 안에는 김진엽의 9대손인 봉고(鳳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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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암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장암(道藏菴)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사국(申思國)과 신사억(申思億)이 어버이를 그리워하여, 묘소 가까이에 지은 재사이다. 도장암 정면에는 영모루(永慕樓)가 있는데, 신사국이 생전에 계획한 것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의 뜻을 이어 손자 신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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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은정(嶺隱亭)은 남원양씨 참의공 영은(嶺隱) 양사우(梁思佑)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신평면 청운마을로 접어드는 시점에 청계교가 나타난다. 그 아래에는 광산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청계교 주변 가까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언덕길을 조금 오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