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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락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체락정(棣樂亭)은 월파(月坡) 양윤덕(梁潤德)과 죽촌(竹村) 양윤복(梁潤福) 형제가 학문을 강론하기위해 세운 정자이다. 신평면 청운2리로 접어드는 길목에 청계교가 놓여 있으며, 그 아래로 광산천이 유유히 흐른다. 청계교 가까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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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송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상주 서쪽 도솔산(兜率山) 서쪽 기슭에 있었다. 임란 때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김혜(金寭)가 다시 복원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이 마을 이름을 서당골이라고 한다. 1946년에 상산김씨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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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997번 지방도로를 따라 외서면에 이르기 전 봉강교 사거리에서 오른쪽을 향해 약 200m쯤 가면 조그만 저수지가 나온다. 이천서원은 이곳 서당마을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쪽의 산기슭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동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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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다가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우복종택이 있다. 여기에서 이안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약 1km지점의 도로 오른쪽에 우복 선생의 6대손인 입재 정종로의 아우인 통덕랑공(通德郞公)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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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종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우복종택은 1982년에 경상북도 지방 유형민속자료 제31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지금 주소로는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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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루 - 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한 곳에 있다. 이 가운데 대산루와 계정은 1982년에 경상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56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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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존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도존당은 대산루와 종가의 가운데로 터진 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대산루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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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문경시(聞慶市) 농암면(籠岩面)과 접경한 곳에 위치한 동원정(同源亭)은 은척면(銀尺面) 두릉(杜陵)마을 용산(龍山)아래에 있다. 기념물 제 7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건너편 산허리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곧장 바라다 보인다. 이 정자는 동원정(同源亭) 류광원(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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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은척면 무릉리(武陵里) 신리마을 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주변이 모두 감나무 밭이며,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 있으며, 정문은 철대문이다. 정문 앞에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전망을 흐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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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범리추원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추원재는 이안면 사무소 뒤편 대로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연산군에게 기강을 바로 세우라고 직접 건의 했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강형(姜詗)과 세 아들 영숙(永叔), 무숙(武叔), 여숙(與叔)이 같은 날 참화를 당했다. 후손들이 이 네 분을 제향하고 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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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범리영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32번 지방도로 옆 양범3리 검한(儉汗) 마을에 위치한 재실이다. 자식의 교육으로 유명한 박눌(朴訥)과 그의 아들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재실 못미처 큰 거북 비단위에 박눌 추모비가 있고, 조금만 더 가면 도로 밑 은행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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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32번 지방도로 옆에 홍약창(洪約昌) 유적비 뒤편에 자리 한다. 이름을 보면 일반 정자처럼 생각하였으나, 보기에는 각(閣)의 형태이다. 홍약창의 며느리인 유씨부인(柳氏婦人)이 유복자를 잉태하여 홍씨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마을의 큰 바위 밑에서 기도를 드려 득남하였으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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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방호정(傍湖亭)은 한자의 뜻처럼 호수 옆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호산(湖山) 마을 입구의 호산못 곁에 위치한다. 부사(府使) 이성정(李星井)이 만년에 은퇴하여 마을 서쪽 아늑한 곳에 두어간 집을 짓고 방호정사(傍湖精舍)라는 현판을 걸었다. 1935년에 후손 기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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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3번 국도로 함창읍을 지나 이안천 뚝길을 따라 올라 가면 나지막한 야산에 위치한 쾌재정을 만날 수가 있다.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의 들판과 동네 및 강줄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쾌재정(快哉亭)은 난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말년에 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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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모정은 넓은 평야가 바라보이고 이안천이 옆으로 흐르는 마을 안쪽의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 정자는 박눌(朴訥)이 학문을 연구하고 아들 5형제를 가르쳐 모두 문과에 급제시킨 강학의 장소이다. 처음에는 박눌의 호에 따라 행정(杏亭)으로 불렀으나 후에 모정으로 이름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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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곡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공성면 소곡리에 자리한 효곡서원은 1685년(숙종 11)에 우곡(愚谷) 송량(宋亮)을 배향한 세덕사(世德祠)로 창건되었으나, 1735년(영조 11)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毁撤)되었으며, 1931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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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후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귀후재는 공성면에서 모동면으로 가는 920번 지방도로를 따라 상판(上板) 저수지 조금 못미처 관촌 마을에 자리한 건물로, 장수황씨(長水黃氏) 소윤공파(少尹公波) 묘하 재실이다. 귀후(歸厚)'란 증자(曾子)가 “윗사람이 조상을 잘 섬기면 백성들이 후덕하게 된다”고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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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모동면 금천리 산금마을에서 북쪽으로 포도밭 사이에 있는 백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모동초등학교 뒤로 돌아 논길을 따라 가면 어렵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수봉리 신덕마을에 있었으나, 1701년 현재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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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동서원은 1580년(선조 13)에 방촌 황희의 영당인 백화서원이 그 모태이다. 1714년(숙종 40)에 전식을 배향하고 서원으로 승격된 곳이다. 서원이 있는 수봉리는 중모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다가 입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백화산과 만경산 사이로 흐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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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화동면 선교리 서당마을에 위치한 봉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선교리 대하마을을 지나 산골로 접어들다 보면 왼쪽에 가는 길이 보인다. 서당 주변에는 겨우 몇 채의 가옥만이 남아있는 산골마을이 있다. 현재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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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리추원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교리 대하 마을 가운데 위치하며, 낙안군수(樂安郡守)와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한 풍양조씨(豊壤趙氏) 조형원(趙亨遠)을 비롯한 후손들의 문중재사이다.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둘러져 있으며, 대문 칸 또한 현대식으로 되어 있으며, 문은 스테인레스 봉으로 만들어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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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재묘담(祭廟潭),비(碑)를 지나 판곡리 원통산(圓通山) 아래에 위치한 도안서원(道安書院)의 전신은 공성면 도촌(道村)에 있던 도안서당이다. 1783년(정조 7)에 서당을 이건하고 묘호를 도안사(道安祠)라 고치고 김우태(金宇泰)와 김시태(金時泰)두 분을 배향하였다.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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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비,낙화담 / 유교문화>유적 / 미상판곡리(板谷里) 청도 김씨 세거지에 세워진 제단비(祭壇碑)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으로 활동한 김준신(金俊臣)을 추모하기 위하여 1850년(철종 1)에 세워졌다. 이후 비각 앞에 첨모재(瞻慕齋)를 세워 추모하였다. 1995년 12월 1일에 기념물 제 113호로 지정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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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만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화동면에서 옥천방면으로 10km정도 가면, 평산리 산기슭 덧질 마을 입구에 있는 저수지의 맞은편에서 어만각(御挽閣)을 볼 수 있다. 세종이 개국공신 신유정(辛有定)에게 내린 만사를 목판에 조각하여 게시 보존한 곳이다. 신유정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형조, 예조, 공조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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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연사(玉淵祠)는 노수신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아래쪽이 강당이고 그 뒤쪽에 근년에 건축한 관리사가 배치되어 있으며 관리사의 뒤편 약간 높은 위치에 오현영각(五賢影閣)과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 함께 있는 노후(盧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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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산마을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봉산서원은, 뒤에는 봉황의 형상을 한 봉황산이 오른쪽엔 천택산이, 왼쪽에는 원통산이 감싸고, 멀리 팔음산과 백화산을 바라보면서 정남 방향을 향해 있다. 원래는 신잠이 세운 봉산서당이었다. 이곳에서 소재 선생이 이 지역 선비들을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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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상주에서 보은 방향으로 25번 국도를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49번 지방도로와 교차하는 곳에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왼쪽으로 장각폭포(長角瀑布)가 흰 물줄기를 뿌리며 용소(龍沼)로 떨어진다. 금란정은 이 폭포 절벽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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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방학정(放鶴亭)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21대손인 김천손(金天遜)의 정자를 후손들이 1943년에 중건한 정자이다.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말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에 신라 경순왕의 21대손인 의성김씨 김천손이 속세의 번잡함을 피해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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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방계정(芳溪亭)은 진성이씨 문중에서 방계(芳溪) 이세필(李世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경에 세운 정자이다. 정자가 있는 병방리는 단촌면에서 점곡면으로 들어오다 만나는 관덕3리에서 마을길로 약 500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이다. 병방리는 마을이 남쪽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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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여말선초간의 격변하는 시기에 살았던 금산(錦山) 오국화(吳國華)의 정자이다. 세천정은 단촌면 세촌리의 북쪽 단애(丹厓)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자의 뒤편으로는 산이 앞으로는 미천(眉川)이 흐르고 있다. 후손들이 오국화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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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화산서원(禾山書院)은 장흥부원군(長興府院君) 마천목(馬天牧)과 그의 장자 마승(馬勝)을 제사 지내는 서원이다. 서원은 단촌면 소재지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하화(下禾) 1리에 있는데,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서원 앞에는 나지막한 산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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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조선후기 헌종년간 지은 금파(錦坡) 박종량(朴宗良)의 정자이다. 공의 행장을 살펴보면, 「공이 병오년(1846) 봄에 경시(京試)를 보고....아직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이 우연찮게 화재로 전소되어 가산이 탕진되었으나 공이 “이것은 나의 운수에 기인한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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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송고(松皐) 박윤함(朴允諴)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는 월록서당(月麓書堂)이었으나 병신년(1896) 민란 때 소실된 것을 개축하고는 유림의 공의에 의해 송고정(松皐亭)이라 개판(改版)하였다. 송고정은 점곡면의 동쪽에 위치한 동변1리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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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조선시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행정(杏亭) 권식(權軾)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점곡면사무소가 있는 사촌리에서 서변리를 지나면 동변리에 이르게 되는데, 도로의 좌측 산기슭에 정자의 삼면이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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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자계정(紫溪亭)은 점곡면 사촌마을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고 출사하지 않은 자계(紫溪) 류도희(柳道禧)를 추모하고자 후손들이 1923년에 세운 건물이다. 그 흔한 붉고푸른 절벽의 아름다움이나 맑은 물이 정자의 주위에 흐르는 경관은 없다. 그러나 인위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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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조선중기 연산군 시대에 낙향하여 은거한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정자이다. 기록에 의하면 김광수의 나이 34세 때인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서 공부하던 중 무오사화 이후의 시대상이 어지로울 것을 미리 예지하고 낙향하여 영귀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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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구체정(九棣亭)은 경주이씨 이우국(李佑國)의 손자인 이규성(李圭成) 등의 9형제의 유덕을 기리는 정자로 1927년에 지어졌다. 점곡에서 한티재로 가기 직전 좌측 다리로 접어들면 윤암1리가 나온다. 다리를 통과하여 200m쯤 마을로 들어가면 산 아래에 구체정이 자리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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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계당(伊溪堂)은 진주목사를 지낸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가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던 서재이다. 이계당은 1653년(효종 4) 건립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후 178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계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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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여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자여당(自餘堂)은 만취당 김사원의 손자인 자여당 김상각(金尙珏)을 추모하여 그 후손이 1978년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점곡면소재지에서 단촌면으로 가는 79번 지방도로로 100m남짓 가면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골목 끝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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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서숙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만동서숙(晩東書塾)은 조선 말기에 안동인(安東人) 김양범(金養範, 1802~1879)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서숙(書塾)이란 우리말로 ‘글방’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향교나 서원이 아니라 개인집에서 후학들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서당(書堂)과 유사한 표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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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및 안동김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만취당(晩翠堂)은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82년(선조 12) 건립한 건물이다. 점곡면 사촌리 한가운데 자리한 조선시대의 대청 건물로, 주변 민가들과 토석담을 경계로 인접하여 서 있다. 건물은 정면 4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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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후산정사(後山精舍)는 만취당 김사원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들이 모여 춘추 제향을 올리던 재실이다. 이 건물은 1747년에 완성하여 사림의 공의로 봉안을 하고 백여 년 동안 제향 기능을 담당해 오다가 1868년에 헐렸었다. 그러다가 1991년에 다시 재건한 건물이다. 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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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양진당은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의 손자인 김상린(金尙璘, 1616~1675)이 별세한 뒤 15년 뒤인 1690년에 후손들이 지은 건물이다. 의성군 단촌면 소재지가 있는 하화리에서 동쪽으로 약 8km를 달리면 도로가 큰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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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병암서당(屛巖書堂)은 조선 선조대에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신 부사직공(副司直公) 파조 휘 김한동(金漢同) 부군의 증손자인 참봉공(參奉公) 삼형제(휘: 金應夏, 金應商, 金應周)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여 학문을 연마하고, 나아가 후손을 교육하기 위하여 건마산 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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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산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민산정(閩山亭)은 바로 민산(閩山) 류도수(柳道洙)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2005년에 세운 정자이다. 본래 민산정은 선생이 지난날 일찍이 귀산(龜山) 아래 터를 잡아 지었는데 후손들이 다시 이곳으로 터를 옮겨 지은 것이다. 자하산(紫霞山)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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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1(백활)] / 기록자료>고문서 / 이병운이병운(李秉運 : 본관 韓山)이 기해(己亥)년 6월 7일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주민들에게 과다하게 책정된 세금 때문에 어려움이 많으니 감면 조치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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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2(상서)]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희이돈희(李敦羲 : 본관 韓山)가 경자(庚子)년 6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자신의 고조부(高祖父)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묘소 근처에 심담응(沈潭應)이 투장(偸葬)한 것을 엄단 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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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4]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우·이문직이돈우(李敦禹 : 본관 韓山)·이문직(李文稷 : 본관 韓山)이 을축(乙丑)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조상의 묘소 근처에 투장(偸葬)한 사건에 대해 이에 앞서 호소를 했지만 불한당 심담응(沈潭應)이 여전히 행패를 부려 사건이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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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5]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우·이문직이돈우(李敦禹 : 본관 韓山)·이문직(李文稷 : 본관 韓山)이 병인(丙寅)년 8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조상의 묘소 근처에 심담응(沈潭應)이 투장(偸葬)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불한당의 행적을 찾을 길이 없으니 색출해서 엄단히 조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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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6]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돈우 등 5인이돈우(李敦禹 : 본관 韓山) 등 5명이 을축(乙丑)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지난 번에 이미 조상 산소 근처에 불한당 심담응(沈潭應)이 투장(偸葬)한 사건을 호소했다고 하며 이번에는 더 크게 봉분을 만들어 투장한 사건이 발생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