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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6651

    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7]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경 등 5인
    이수경(李秀憼 : 본관 韓山) 등 5명이 을축(乙丑)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조상 산소 근처에 심담응(沈潭應)이 투장(偸葬)한 비행을 조사하여 조치해 달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52

    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8(정서)] / 기록자료>고문서 / 금약수 등 33인
    김약수(金若洙) 등 33명이 을축(乙丑)년 10월에 성주(城主)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묘소 근처에 불한당 심담응(沈潭應)이 투장(偸葬)한 것을 엄단히 조치해 달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53

    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9(정서)]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경
    이수경(李秀憼 : 본관 韓山)이 을축(乙丑)년 10월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묘소 근처에 불한당이 투장(偸葬)한 것을 색출하여 의법 조치해 달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54

    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10(정서)]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조상 산소 근처에 투장(偸葬)한 비리를 색출해 달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55

    한산이씨 대산종가 [소지 11(정서)] / 기록자료>고문서 / 금약수 등 51인
    김약수(金若洙) 등 51명이 억울한 사정을 성주(城主)에게 호소한 소지(所志)로서,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 선생이 강학 활동을 펼치던 고산서원(高山書院)및 묘우(廟宇)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며
    출처 : 유교넷
  • 266656

    김흥락(金興洛)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손자인 면재(俛齋) 이병운(李秉運 : 본관 韓山, 字 際家)의 일대기를 정리한 [면재이공묘갈(俛齋李公墓銘)]이다. 한산(韓山) 이씨의 시조 문효공(文孝公) 가정(稼亭) 이곡(
    출처 : 유교넷
  • 266657

    한산이씨 대산종가 [행장 2(광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가식
    친척인 가식(嘉植)이 정묘(丁卯)년 4월 15일에 이성구(李性求 : 본관 韓山)의 일대기를 사술한 행장(行狀) 형식의 [광지명(壙誌銘)]이다. 가식은 자기보다 망자가 한 살 위였다고 하며 가문의 보배처럼 소중한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망자는 66세까지 살았으며 후손의
    출처 : 유교넷
  • 266658

    한산이씨 대산종가 [행장 3(묘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이중명
    이중명(李重明 : 본관 韓山)이 성명과 자(字)는 드러내지 않고 호(號)만 졸옹(拙翁)이라고 밝힌 인물의 일대기를 정리한 [행장(行狀)]이다. 공(公)은 대대로 훌륭한 벼슬을 역임한 조상을 두었으며 효성과 우애 정신이 뛰어났다. 그리고 학문적 역량도 우수하여 가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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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59

    한산이씨 대산종가 [만사 2] / 기록자료>고문서 / 이희직
    이희직(李羲稙)이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떠난 이후 찬 매화 향기만 남아 슬픔을 더한다고 하며 어진 조상들의 영향을 입은 망자가 한 층 더 슬픔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유학의 도가 실추되는 시점에서 망자는 고고하게 유림의 도
    출처 : 유교넷
  • 266660

    한산이씨 대산종가 [만사 16] / 기록자료>고문서 / 전승지 이돈우
    승지(承旨)를 역임한 이돈우(李敦禹 : 본관 韓山)가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는 명문가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고 훌륭한 선비로 성장했던 점을 강조하고 그가 남긴 영향력을 후학들이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사별
    출처 : 유교넷
  • 266661

    한산이씨 대산종가 [만사 26] / 기록자료>고문서 / 가직
    가식(嘉稙)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남긴 의연한 유학자로서의 기품과 빼어난 학문 정신은 후학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고 했다. 망자가 만년에 질병을 이기지 못
    출처 : 유교넷
  • 266662

    한산이씨 대산종가 [애사 1] / 기록자료>고문서 / 고성 이종태
    이종태(李鍾泰 : 본관 固城)가 신사(辛巳)년에 죽은 이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애사(哀辭)이다. 평소 벗이 지녔던 덕행과 어진 성품을 회상하면서 그리움이 더해 간다고 했다. 망자는 영남 지방 명문가의 전통과 정통 유림의 진수를 이어받은 선비로서 학문과 도덕
    출처 : 유교넷
  • 266663

    한산이씨 대산종가 [애사 2] / 기록자료>고문서 / 조부
    조부(祖父)가 장손(長孫) 휘복(彙馥)의 죽음 앞에서 그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애사(哀辭)이다. 조부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못한 채 손자의 죽음을 맞게 되어 비통하기 그지 없다고 하며 혈육을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손자와 자신이 주고
    출처 : 유교넷
  • 266664

    한산이씨 대산종가 [애사 3] / 기록자료>고문서 / 부
    부친(父親)이 죽은 아들 휘복(彙馥)의 죽음 앞에서 그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애사(哀辭)이다. 차마 아들을 먼저 저 세상을 보낼 수 없다고 울부짖으며 아들과 면전에서 대화하듯이 슬픔의 감정을 절실하게 토로했다. 아버지로서 아들과 평소 나누었던 대화와 아들의
    출처 : 유교넷
  • 266665

    한산이씨 대산종가 [애사 4] / 기록자료>고문서 / 숙부
    숙부(叔父)가 융희(隆熙) 3년 5월 13일에 조카 휘복(彙馥)의 죽음 앞에서 그의 행적을 돌아보며 슬픔을 표현한 애사(哀辭)이다. 조카의 영전에서 조부, 부친, 숙부가 나란히 슬픔을 담은 애사를 써서 슬픈 정회를 토로한다고 했다. 망자가 먼 객지에서 객사한 것을 언
    출처 : 유교넷
  • 266666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 / 기록자료>고문서 / 최종응
    최종응(崔鍾應 : 본관 慶州)이 무진(戊辰)년에 고모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부친의 7남매가 운데 숙부 한 분과 고모만 생존해서 의지했는데 고모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의지할 곳이 없다고 했다. 고모는 평생 동안 즐거운 일이 없었
    출처 : 유교넷
  • 266667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2] / 기록자료>고문서 / 최종대
    최종대(崔鍾大 : 본관 慶州)가 무진(戊辰)년 1월 21일에 고모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일찍부터 고모의 어진 행적에 대해 익히 들었다고 하며 남들이 다투어가며 고모의 아들 딸과 서로 사돈을 맺으려고 했던 점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68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6] / 기록자료>고문서 / 최종정
    최종정(崔鍾鼎 : 본관 慶州)이 기사(己巳)년 1월 6일에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인생에서 길흉사는 반복되며 행불행도 순환되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지만 고모는 일 평생 불행만 연속되는 삶이었다고 술회했다. 고모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
    출처 : 유교넷
  • 266669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7] / 기록자료>고문서 / 이도구
    이도구(李道求 : 본관 韓山)가 기사(己巳)년 1월 6일에 경주최씨(慶州崔氏)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한산 이씨 가문에 시집을 온 이래 50년 동안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가문을 번영시키고 자손들을 어질게 훈육하는 여성의 도리를 다
    출처 : 유교넷
  • 266670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8] / 기록자료>고문서 / 문소 금영환
    김영환(金瑛煥 : 본관 聞韶)이 정묘(丁卯)년 4월 15일에 이모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이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슬프고 외롭게 성장할 때 이모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다고 술회했다. 이모의 죽음 앞에
    출처 : 유교넷
  • 266671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9] / 기록자료>고문서 / 속함 박세환
    박세환(朴世煥 : 본관 速咸)이 정묘(丁卯)년 5월 15일에 스승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은 나이가 매우 어린 자로서 조부뻘에 해당하는 망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고 했다. 평소 스승에 대한 예를 제대로 갖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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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2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0] / 기록자료>고문서 / 최두영
    최두영(崔斗永 : 본관 慶州)이 경오(庚午)년 1월 6일에 할머니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70 평생을 살며 자손들을 바르고 어질게 훈육시켜 자손들이 훌륭하게 성장되었다고 했다. 망자는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여의고 고적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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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3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 / 기록자료>고문서 / 고성 이종식
    이종식(李鍾湜 : 본관 固城)이 무진(戊辰)년 1월 21일에 장모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자신이 어머니를 여읜 채 모정을 모르고 살았지만 장모를 통해 모정을 느낄만큼 자상한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망자는 영남의 명문가에서 자라 여
    출처 : 유교넷
  • 26667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4] / 기록자료>고문서 / 성구
    성구(誠求)가 정미(丁未)년에 종질(從姪) 회보(晦甫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가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은 것이 너무 애통하다고 했다. 망자가 23세의 일기로 요절한 것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자신이 귀향하기도 전에 비보를 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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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5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5] / 기록자료>고문서 / 명숙
    명숙(明叔)이 정미(丁未)년 12월 27일에 회보(晦甫)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도덕과 학문상 유림들에게 칭송을 받던 인물임을 강조했다. 벗들과 교유할 때에도 인정이 많고 자상하여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망자가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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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6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6] / 기록자료>고문서 / 영양 남근순
    남근순(南近淳 : 본관 英陽)이 무신(戊申)년 5월 13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영남 유림들이 선망하던 대상으로 학문과 덕행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분이라고 했다.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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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7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7] / 기록자료>고문서 / 필구
    필구(弼求)가 정미(丁未)년 5월 13일에 23세의 일기로 요절한 친척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현한 제문(祭文)이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지금처럼 애통하고 절박한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하며 망자가 요절한 것을 애통해 하였다. 망자는 평소 고운 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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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8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8] / 기록자료>고문서 / 풍산 유인우
    처남인 류인우(柳寅佑 : 본관 豊山)가 기유(己酉)년 5월 13일에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덕망이 출중해서 오래 살 것을 기대했는데 이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안타깝고 슬프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청상 과부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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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79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9] / 기록자료>고문서 / 풍산 유홍우
    처남인 류홍우(柳弘佑 : 본관 豊山)가 무신(戊申)년 5월 13일에 자형인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자형은 남쪽 지방에서 병을 얻어 객사했다고 밝히며 인간의 생사화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유림들도 통탄하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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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0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20] / 기록자료>고문서 / 달성 서병희
    서병희(徐丙禧 : 본관 達城)가 기미(己卯)년 12월 16일에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양쪽 집안은 3대째 서로 교분을 나누며 지내 온 사이라고 하며 망자가 명문가에서 자란 선비였던 점을 강조했다. 망자를 잃은 이후 산천 초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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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1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34] / 기록자료>고문서 / 인복
    인복(仁馥)이 무진(戊辰)년 12월 11일에 처사(處士)로 살다가 별세한 부군(府君)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부군은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익혔으며 가정에서 효성이 뛰어나고 우애 정신이 남달랐다고 했다. 부군은 평소 천식을 앓아 늘 고생스러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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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2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59] / 기록자료>고문서 / 희직
    이희직(李羲稙 : 본관 韓山)이 정묘(丁卯)년 12월 11일에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0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유림의 가문에서 태어나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아 단아한 선비로 자라났다고 하며 용모도 단정하고 행동거지도 방정하여 모범이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266683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60] / 기록자료>고문서 / 세복
    세복(世馥)이 정묘(丁卯)년 12월 11일에 종숙부(從叔父) 창하부군(蒼下府君)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집안의 잇따른 재앙과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난관에 굴하지 않고 노력하며 학문에 열중하여 훌륭한 선비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망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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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64] / 기록자료>고문서 / 가직
    가직(嘉稙)이 정묘(丁卯)년 12월 11일에 친척인 치항(稚恒)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70세의 일기를 누렸으며 유교 경전을 섭렵하여 학식이 풍부하고 예법에 밝았던 인물이라고 했다. 성품이 밝고 재주가 총명하여 학문을 배우러 오는 제자들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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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5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66]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 유연귀
    류연귀(柳淵龜 : 完山)가 정묘(丁卯)년 4월에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문학과 경학에 능통한 학자로서 덕망도 출중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생전에 함께 유람을 하며 강학 활동을 전개하던 시절을 회고하며 애석한 마음을 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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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6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76]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 유동시
    류동시(柳東蓍 : 본관 完山)가 정묘(丁卯)년 4월 15일에 한산(韓山) 이공(李公)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주야로 유교 경전을 섭렵하고 연구에 몰두했던 인물이라고 하며 크게 쓰이길 기원했지만 이처럼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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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7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2] / 기록자료>고문서 / 상락 김종덕
    김종덕(金宗德 : 본관 上洛)이 임인(壬寅)년 3월 24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도덕과 학문적인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로 유림들의 중망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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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8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3]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 유장원
    류장원(柳長源 : 본관 完山)이 임인(壬寅)년 3월 24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영남 지방의 명문가에서 자랐으며 퇴계의 학문 전통을 계승한 인물로서 많은 후학들을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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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89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5] / 기록자료>고문서 / 함창현감 이영운
    함창현감(咸昌縣監) 이영운(李永運)이 임신(壬申)년 7월 13일에 사직신(社稷神)에게 올린 제문(祭文)이다. 가뭄이 계속되어 백성들이 기근에 허덕이고 초목이 고갈되는 점을 불쌍히 여겨 비를 흡족히 내려 달라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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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0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6] / 기록자료>고문서 / 현정
    현정(顯靖)이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재종형(再從兄)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순수한 학문을 지향하며 정통 유학의 진수를 터득하여 퇴계의 정맥을 게승한 인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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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1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7] / 기록자료>고문서 / 완산 류도원
    류도원(柳道源 : 본관 完山)이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퇴계의 정통 유학을 계승한 인물로서 영남의 학맥을 이어간 점을 강조했다. 많은 후학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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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2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8] / 기록자료>고문서 / 아주 신창교·홍교
    신창교(申昌敎 : 본관 鵝州)·홍교(弘敎 : 본관 鵝州)가 신축(辛丑)년 12월 9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학문 영역이 광대하며 논리가 정연하고 정통 유학의 진수를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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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3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19] / 기록자료>고문서 / 한양 조운도
    조운도(趙運道 : 본관 漢陽)가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타고난 재주가 출중하고 어진 성품을 지녔다고 하며 만년에 향리에서 수신과 제자 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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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20] / 기록자료>고문서 / 월성 이구경
    이구경(李龜鏡 : 본관 月城)이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흉금에 티끌이 제거된 천일합일의 경지에 이른 인물로서 유학의 정통성을 이은 인물로서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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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5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21] / 기록자료>고문서 / 재령 이중원
    이중원(李重遠 : 본관 載寧)이 임인(壬寅)년 3월 27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의 행적과 유학적 업적은 역사서에 기록되었으며 도덕과 학문 정신은 이미 저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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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6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22] / 기록자료>고문서 / 평산 신광오 등
    신광오(申光五 : 본관 平山) 등이 임인(壬寅)년 3월 25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신광오는 자신의 증조부 비문과 문집 발문을 망자가 작성해 주어 평소 깊은 은혜를 입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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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6697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29] / 기록자료>고문서 / 경광서원유생 권홍조
    경광서원(鏡光書院) 유생(儒生) 권홍조(權弘祖 : 본관 安東)가 임인(壬寅)년 3월 26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영남 지방 유림의 대들보 같은 존재라고 하며 정통 유학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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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30] / 기록자료>고문서 / 청성유생 배홍택 등
    청성서원(靑城書院) 유생(儒生) 배홍택(裴弘宅) 등이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자질과 성품이 단정한 선비로서 영남의 학맥을 계승한 분으로, 퇴계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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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31] / 기록자료>고문서 / 사빈원임 서원 정중섭
    사빈서원(泗濱書院) 원임(院任) 정중섭(鄭重燮 : 본관 西原)이 3월 27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중국 정통 유학을 이은 인물로 퇴계 학맥을 계승하여 영남 유림의 거장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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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이씨 대산종가 [제문 132] / 기록자료>고문서 / 물계서원유생 금경원
    물계서원(勿溪書院) 유생(儒生) 김경원(金慶源)이 임인(壬寅)년 3월 28일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0-1781, 자 景文, 본관 韓山)의 영전(靈前)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망자는 자질이 순수하고 재주와 학문이 우수하여 기린과 봉황 같은 인물이라고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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