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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칙鶴棲 柳台佐(1763~1837)가 쓴 발문이다. 예전에 畏齋公(柳宗春)께서 근래에 우리 고을에 살았던 사대부의 문장과 언론을 논하면서 愚川 선생을 大家로 손꼽으셨다. 선생은 총명하고 빼어난 자품에 가정에서 전해오는 經史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成均生員이 되어 初試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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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칙愚川의 종6대손 鄭來成이 쓴 발문이다. 公은 훌륭한 선조들의 유업을 물려받아 문예가 일찍 이루어졌으니, 형 晩志公(鄭億)과 더불어 眉山三蘇(해제자 주: 宋의 三父子 문장가인 蘇洵, 蘇軾, 蘇轍)와 같다고 일컬어졌다. 公의 문장은 典雅高建하다. 경학으로부터 우러난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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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명寓軒 柳世鳴의 문집. 8권 4책. 목판본. 서문이 없고 從 6代孫 柳懿睦이 간행 경위를 적은 발문이 부록되어 있다. 간행연대는 이 문집에서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柳懿睦의 발문에 의하면 유세명이 죽은 지 100여 년 후 畏齋 柳宗春(1720~1795)이 亂稿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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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운천집(雲川集) 雲川 金涌의 문집. 7권 4책. 저자의 현손(玄孫) 김창석(金昌錫)이 1694년(숙종 20)에 수집·편차하여 初刊本을 간행하였다. 그 후 1881년(고종 18)에 화재로 판본이 소실되어, 1898년(광무 2)에 중간하였다. 본집 5권과 부록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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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雨中菊, 贈任卓爾(屹), 登隴頭望秦川, 淸凉山城次叔父鶴峯先生韻贈山人海晶, 次博川東軒韻, 端陽日路上口占, 自欺, 宣川公館謝姜君信來訪, 次龍岡水閣韻, 次咸從東軒韻, 題永柔東閣, 登安州百祥樓次明人韻(二首), 樓中夜起看月, 流頭日有感, 次鐵山東軒韻, 次山人性鑑軸中韻, 山人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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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白雲亭敬次叔父鶴峯先生十二詠, 秋月, 春花, 煙江, 雪山, 茂林, 平沙, 雁陣, 魚隊, 眠鷗, 放牛, 牧笛, 漁火, 次表兄柳岐峯(復起)岐陽書齋韻, 岐峯壽席口號(1612), 題柳從善晦(仁健)草堂,送甘文倅李浩然赴任(二首), 送辛公遠(弘立)赴省峴, 挽權和甫妻金氏, 賀端午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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乞遞洪州牧使䟽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洪州牧使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고향에 계신 79세 된 노모의 병환을 돌볼 사람이 저자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면직을 청한 것이다. 노모께서 연로하고 병환이 깊어 약과 침을 써도 효험이 없고 이런 저런 병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안이 불행하여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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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宣惠廳堂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저자가 驪州牧使로 있으면서 宣惠廳 都提調에게 올린 글이다. 여주에 公廨인 淸心樓가 있었는데 전쟁으로 지금 폐허가 된지 24년이 지났다. 전임 목사들이 다시 중건하려고 힘을 썼으나 막대한 공역이 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완성하지 못하였다. 지금 다시 중건하려고 고을 주민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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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裴明瑞(龍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裴龍吉에게 답한 편지이다. 兩賢 陞祀문제에 대해여 배용길이 하나의 의론을 세워서 우리 동방의 도학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한 것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유생들이 경솔하게 승사하기에 불가하다고 청했던 것은 당시에 의론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또한 四賢을 동시에 승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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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裴明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裴龍吉에게 답한 편지이다. 저자가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前賢을 거슬러 논의한 것에 대해 비난한 것이 아니라, 양현을 승사하기에 불가하다는 논의에 미안한 점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러한데도, 형이 심한 말로 나무라고 싸우려 한다고 하였다. 옛날 군자는 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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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混元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黃混元에게 답한 편지이다. 橋門에서 보고 들은 것은 한 때의 성대한 일이기 때문에 제현들이 모두 나와서 축하를 하였다. 그런데 그대만 나오지 않으니, 작은 적을 보고 두려워서 인가 아니면 큰 뜻이 있어서 진퇴에 급급하지 않아서 인가? 이 두 가지에 모두 지키는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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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黌齋諸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향교의 유생들에게 답한 편지이다. 유생들이 보낸 편지에서 향교의 文廟에 향사지낼 일이 있다고 하였는데, 매우 훌륭한 일이라고 하였다. 조정의 定論이 이미 本府에 내려갔을 것이니, 거기에 따라 시행하라고 하였다. 본부의 향교는 五聖十哲의 위패가 과연 왜적의 손에 더럽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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募兵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각처에 보낸 글이다.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도성이 함락되고 임금이 몽진하는 치욕을 당하고, 백성들의 간과 뇌가 땅에 발리는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임금과 부모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니 죽음을 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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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中立約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마을 規約의 서문이다. 呂氏鄕約 중에서 현재에 배울 만하고 본받을 만한 것을 퇴계선생이 시대의 흐름을 짐작하여 鄕規 몇 조목을 만들었다. 현재 사용하는데 편리하고 옛날의 법도에도 어긋나지 않으니, 몇 항목을 기록하여 온 마을을 규범으로 삼았다. 또 마을에서 응당 행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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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湖種松禁護議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開湖에 소나무를 심고 화재나 방목을 금지하여 보호하자는 논의에 대한 서문이다. 개호에 소나무를 심는 일은 선대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들불과 하천이 범람하여 한 치의 푸른 소나무도 보호하지 못한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 마음의 여러 군자들이 온 마을의 하인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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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咸慶道觀察使兼兵馬節度使都巡察使柳公亮書(1615.6.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柳公亮을 咸慶道觀察使 兼兵馬節度使都巡察使로 임명한다는 敎書이다. 외직을 맡은 책임이 내직보다 막중함을 명심하고, 여진과 접해 있는 국경에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조세를 잘 시행하고, 현재 역병과 한발의 재앙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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誕日賀箋(1616.4.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탄신일을 맞이하여 건강과 장수를 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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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至賀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동지를 맞이하여 모든 사악한 기운은 물러가고, 덕에 힘쓰고 장수하기를 기원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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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州淸心樓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驪州의 公廳인 淸心樓의 상량문이다. 상량한 후에 地神이 보호하고 水神이 수호하여, 천지의 기운이 맑아 해마다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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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川慶老堂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臨川의 慶老堂 상량문이다. 상량한 후에 천신이 돕고 산천이 빛을 발하여 이곳에서 잔치하여 즐기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모든 근심 사라지고 노인들은 장수하고 번성함은 더욱 창성하여 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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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稷祈雨文(1615.3.28應製)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가뭄으로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모든 곡식을 파종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만방에 비를 적셔 달라고 기원하였다. 國社·后土氏·國稷·后稷氏·東方山川·南方山川·西方山川·北方山川에 대한 각각의 축문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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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川書院奉安鶴峯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臨川書院에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봉안할 때 지은 글이다. 선생의 덕행과 행적을 기술하고, 혼령께서 우리들의 정성을 받아주시고 우리들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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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府君諱日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永柔에 있을 때 지은 글이다. 공직에 있기 때문에 선친의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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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冶隱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冶隱 吉再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순수한 자질을 타고 났으며, 효도하고 충성하며, 스승을 받들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백대의 맑은 風節을 세운 선생의 덕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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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叔父鶴峯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叔父인 鶴峯 金誠一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생은 강건하고 순수한 기질을 타고 났으며, 가업을 잇고 퇴계선생의 학통을 이었다. 임금에 충성하고 백성에 은혜를 베풀었으며, 난리를 당해 병으로 진중에서 세상을 마친 숙부를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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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月川趙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月川 趙穆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생은 퇴계선생의 학문을 이어 학문을 넉넉히 하였고, 陋巷에 가난하게 살면서 덕성을 지극히 하였다. 二品의 고관을 뜬구름처럼 여기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선생이 돌아가시자 후학들이 의문을 물을 곳도 없고, 학통도 끊어지게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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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西厓柳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西厓 柳成龍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생은 河岳의 정령을 타고 났으며, 맑고 깨끗한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 그 재주를 윤택하게 하고, 그 덕을 향기롭게 하였다. 퇴계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의를 강마하였다. 임금의 마음을 이끌어 열고 만방을 교화하였다. 임진왜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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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藥圃鄭相國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藥圃 鄭琢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생은 특이한 재질을 부여받아 순수한 덕과 어진 재주를 타고 났다. 관직에 올라서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거나 조정에서 경영할 때 쉽고 어려운 것을 가리지 않았다. 양조를 보필한 우뚝한 공적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몇 칸의 초막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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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海隱黃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海隱 黃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황공은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과 곧으면서 따뜻한 자질을 타고 났다. 어버이에 효도하고 형제에 우애하며 옛날의 도리를 사모하여 진취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랐다. 특히 저자와 친분이 두터웠는데 세상을 마치게 되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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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勉進齋琴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勉進齋 琴應壎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금공이 집안에서 어진 부형들과 즐거워 한 것은 사람들이 이간질 할 수 없었으니 민자건의 효도라 할 만하고, 스승의 문하에서 말은 어눌했으나 깊은 이치를 터득했으니 증삼의 노둔함이라고 할 만하다. 금공이 세상을 마치자 그의 순수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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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表兄柳岐峰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表兄 柳復起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형은 맑고 정밀한 기운을 타고나고 자질이 순수하였다. 친척의 정분으로 앉으나 서나 함께 행동하고 잠자리까지 함께 하였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마친 것을 애통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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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祖妣鐵城李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외조모 鐵城 李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외조모께서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길러 주셨다.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이 모두 외조모의 은혜이다. 그러나 살아계실 때 제대로 모시지 못했고, 돌아가셨을 때 執喪도 제대로 못했으니 저승에 가서 무슨 면목으로 뵈올까 하고 애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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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舍弟心源文(1616.2.在驪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아우 金澈의 제사에 여주에서 지은 글이다. 난향 같은 아름다운 자질과 옥 같은 맑은 기상을 타고 났으며, 가정에서 시와 예를 배우고 효도하고 우애하였다. 향교에서 공부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성균관에 들어가서는 명성이 있었다. 종가에 후사가 없어 아우가 후사를 잇게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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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舍弟心源小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아우 金澈의 소상 때 지은 글이다. 아우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어 소상이 되었는데 관직에 몸이 매어 참석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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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佐郞是柱文(16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長子 金是柱의 제사에 지은 글이다. 지난해 6월 고향으로 내려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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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是楗小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둘째 아들 金是楗의 소상 때 지은 글이다. 지난해 아들이 죽었을 때 관직에 매어 永訣하지 못하였고, 금년에는 병이 들어 소상에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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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是相大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막대 아들 金是相의 大祥 때 지은 글이다. 죽은 아들의 대상이 되었는데도 상례에 참석하지 못한 애통함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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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仕郞禮安訓導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琴梓의 묘갈명이다. 공의 자는 叔材이고, 본관은 鳳城이다. 예안의 오천에 거주하였다. 그의 上祖 儀는 고려 집현전태학사를 지냈다. 성균관 생원 嵆는 그의 증조부이고, 성주판관 衎은 조부이고, 사도시첨정 致湛은 부친이다. 文節公 金淡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1498년(연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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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權審行의 묘갈명이다. 공의 자는 可立, 본관은 안동이다. 고려 태사 幸이 그 비조이다. 공훈을 전하고 덕을 세습하여 대대로 高官이 있었다. 회성현감을 지낸 啓經은 고조부가 된다. 증조부 琨은 부호군을 지냈고, 조부 士彬은 성균관 생원이고, 부친 檥는 성균관 진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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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宣務郞自如道察訪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선친 金守一의 묘지문이다. 부군의 자는 景純이다. 鼻祖 龍庇는 고려 태자 첨사로 처음 의성에 거주하였으며, 백성들에게 공덕이 있었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이 지금까지 제사를 지낸다. 그의 아들 宜는 尙書左僕射를 지냈고, 그의 아들 瑞之는 內盈少尹을 지냈고, 그의 아들 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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叔父成均生員雲巖先生墓誌(16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숙부 金明一의 묘지문이다. 공의 자는 彦純, 본관은 義城이다. 고려조에 태자첨사를 지낸 龍庇는 공의 上祖이다. 그의 아들 宜는 尙書左僕射를 지냈고, 그의 아들 瑞之는 內盈少尹을 지냈고, 그의 아들 台權은 文睿府左司尹을 지냈고, 그의 아들 居斗는 工曹典書를 지냈다.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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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是相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아들 金是相의 묘지문이다. 김시상의 자는 以章, 본관은 의성이다. 고려 태자 첨사 龍庇의 12세손이다. 洪州牧使 涌의 다섯째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영민하였고, 장성하여서는 두각을 드러냈다. 독서할 때는 글을 보지도 않고 읽었으며, 부형의 권면을 기다리지 않고 열심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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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인 金誠一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선생의 자는 士純, 집은 鶴駕山 아래에 있으며, 鶴峯은 호이다. 성은 김씨로 신라 敬順王 金傅의 후손이다. 경순왕의 아들 錫이 義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고려 태자첨사 龍庇에 이르러 크게 드러났다. 백성들에게 공덕이 있어서 고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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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系圖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시조 金錫에서부터 20세손까지의 家系를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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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譜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1557년(명종 12) 安東府 一直縣 龜尾里에서 출생했다. 34세(1590년) 2월, 文科에 급제하였다. 35세(1591년) 여름, 承文院權知副正字에 보임되었다. 겨울, 藝文館檢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돌아왔다. 36세(1592년) 4월, 임진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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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趙德隣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선생의 휘는 涌, 자는 道源이다.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錫이다. 고려를 섬겨 義城을 식읍으로 받고 본관으로 삼았다. 후손 龍庇는 太子詹事를 지냈는데, 백성들에게 공덕이 있어서 의성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다. 그의 아들 宜는 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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誌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金是榲이 지은 저자의 묘지문이다. 앞 부분에는 저자의 손자 燾의 부탁으로 묘지문을 찬술하게 된 경위를 적었다. 공은 1557년(명종 12)에 태어나서 1620년(광해군 12)에 세상을 마쳤다. 효종 조에 선조임금 때의 宣武功勳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공은 어려서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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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許穆이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공의 본관은 聞韶(義城)이고, 고려 때 太子詹事를 지낸 龍庇는 신라 경순왕의 12세손이다. 1557년(명종 12)에 安東府 一直縣 龜尾里에서 태어났다. 공의 휘는 涌, 자는 道源이다. 증조부는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된 禮範이고, 조부는 이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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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權暐, 崔晛, 金奉祖, 洪鎬, 柳友潛의 제문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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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林書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魯林書院에 저자의 위패를 봉안할 때 李玄紀가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