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黙溪精舍移安時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李裁가 지은 글로 黙溪書院의 淸德祠로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게 됨을 알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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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李玄紀가 지은 축문으로, 享祀 때는 쓰는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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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저자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張顯光, 曹友仁, 趙靖, 李埈, 柳袗, 張興孝, 李煥, 權寏의 만사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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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墨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용저자의 遺墨 9수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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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석회일봉집(一峯集) 一峯 趙錫晦의 文集. 4권 2책. 序文은 金(1739∼1816)이 썼고, 跋文은 李周禎, 權璉夏, 李晩규 세 사람이 썼다. 이것으로 볼 때, 책의 대체적인 편집과 교정은 저자가 작고한 직후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간행이 이루어진 것은 훨씬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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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일일재집(一一齋集) 一一齋 金是瓚의 문집. 6권 3책. 처음 편집당시에 수 십권이었는데, 간행하지 못하고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다. 김영탁의 고조부가 소실되고 남은 것을 수습하였지만 정돈을 하지 못하였고, 김영탁의 증조부가 여기저기에서 얻는 대로 기록하여 두었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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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春謠(春日三章), 閑居有感(二十韻), 盧江旣望泛舟謹次諸丈韻, 漢江舟中次二白鄭共父(必儉)韻, 雙嶺曉發次共父韻, 舟山道中, 上仙巖僧舍聯句紀行八百字, 乾策過四十歲재得丈夫子識喜, 次赤城眞陰新居韻, 丙辰立春試筆, 狗日夜獨坐有作錄呈鄭季文(必儉)松下幽軒, 次韻示諸君, 元曉聞鷄聲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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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聞蔡樊巖相公伸寃有作(壬午), 人日雪, 午後疊韻, 寒甚張屛于室만吟, 祭未元日, 苦雨, 後日更題, 漫成, 冬日騎往川前江上有吟, 疊漫成韻, 觀碁三百絶, 先壟요奠皆未躬行又疊漫成韻, 夜坐, 七月六日夜偶成, 十五夜偶成, 白露節翌日雨中記事, 八月卄六夜口呼, 憶兒孫, 窓梅, 二日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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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穀日志喜, 고日紀俗二十二絶, 夜坐次后山韻, 孝子中心弱(二首), 伏聞上侯因腫患기復不勝慶幸吟成長句, 寃日且迫過其墓下有作, 次鄭吏部希仁(元善)宣諡後作韻却呈, 夜坐, 二月下弦 梅始綻有作, 晦日沿剡江至嗽石亭馬上口占, 三月十八日漫書, 悶旱, 四月六日夜坐聞雨喜而口占, 漫吟, 十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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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野淳)(18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野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沙翁稿의 교열을 두 번 거쳤는데, 1차 교열 볼 때 너무 소홀하게 본 것 같으니, 먼저 1차 교열을 마치고 보낸 10책을 다시 교열을 볼 수 있도록 보내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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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18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不遷位에 관한 것을 물은 편지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개 功臣이나 廟堂에 배향된 인물 이외의 명현들에 대해 私家에서 不遷位로 모시는 것을 국가에서 알면서도 금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이 典禮가 되었다. 다른 성씨의 경우도 이 예를 따라 쓰는 것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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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신주 改題에 대해 물은 편지이다. 神主의 改題에 대서 선현들의 학설이 있는데, 귀문중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비位를 改題하면 兩位(考位 , 비位)가 차이날 수 밖에 없는데 權度를 해도 괜찮겠는가하고 물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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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답서이다. 복통으로 한달 남짓 고생하고 있다는 것과 "癡軒記"를 읽었던 것에 대한 논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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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답서이다. 마지 못해 관직에 나가게 되었는데, 出處를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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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배 속에 작은 종기가 생겨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요즘의 처지와 雲山에서 헤어질 때는 경황이 없어서 편지를 보내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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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야순이 補遺와 言行錄에서 긴요한 말들을 뽑아 한 編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조목에 따라 자기의 견해를 붙여서 보낸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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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정에 상소하는 일과 門人錄은 얻는 대로 표시를 해 두었으나 몇 가지 本이 있으니 중복되게 기록되는 염려가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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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보낸 편지이다. 장마가 지난 뒤 병이 심해져서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과 寒老가 갑자기 誣告를 당하게 되었으니,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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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답한 편지이다. 신주를 쓸 때, 先贈後行의 설에 관한 논의와 焚黃의식에서 焚香하고 뢰酒한 다음에 三獻의 예를 행해야 한다는 책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책도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의견을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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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답한 편지이다. 祭文은 너무 길기 때문에 간략하게 하고, 燭자는 明자로 하면 좋겠다는 등 문구에 대한 수정과 虎溪書院의 位次문제를 두고 나도는 通文과 罰目 등에 대해 견해를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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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야순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야순이 보낸 편지에 대해 자신의 근황을 적어 보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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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章仲(德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안덕문에게 보낸 편지이다. 7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안덕문의 이웃사람이 와서 전하기에 소식을 듣고 근황을 적어 보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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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어떤 사람의 편지를 받고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글이다. 문장의 교정을 한 별지가 붙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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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면庵(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이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몇 년 만에 편지를 받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고, 아울러 조정에서 易名의 은전을 내린 영광과 삼촌의 문집을 간행했는지에 대해 물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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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進士(炅)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鄭炅에게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한 편지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도 없고 향당에서 명성도 없고 科擧의 재주도 없고, 신체도 건강하지 못하여 하나의 廢物에 불과한데도 정성으로 돌보아 주셔서 감사하는 내용과 앞으로 나갈 길이 혼미한데 올바른 길을 밝혀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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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어떤 사람의 편지에 답을 한 것으로 자신의 근황과 안부를 묻고, 어떤 기록에 대한 평가와 문장 중에서 미온한 부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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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은 내용이다. 東巖과 南溪의 제자인 이형이 우리 고을을 두루 방문하려고 하니 잘 가르쳐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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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어떤 사람에게 경전의 문구에 대해 답한 글이다. {詩經 二月}에 나는 "丁亥"를 歲의 간지로 볼 것인지, 月의 간지로 볼 것인지, 日의 간지로 볼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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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柳某에게 답한 편지이다. 校勘의 일을 부탁받았는데, 천근한 재주로 감당하기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다행이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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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氏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신씨 문중의 어떤 일을 부탁받았는데, 병도 깊고 정신도 혼미하여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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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氏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樊翁遺集의 교감을 부탁받았는데, 천근한 재주로 손을 대기가 두렵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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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黃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내용과 그 문장 중에서 첨가해야 할 글자, 빼야 할 글자 등에 대해 질의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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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屛巖書院士林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병암서원의 사람이 두 선생 문집의 교정을 부탁하였는데, 魚자와 魯자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고, 승낙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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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屛巖士林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지난 번 두 선생의 문집 교정을 부탁하였을 때 정중히 거절하였는데, 다시 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거듭 부탁을 하니 받아 들이기 어렵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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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卞振元(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남북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편지를 보내 주시니 직접 만나 본 듯이 기쁘고, 귀 문중에서 추진하고 있는 刊行사업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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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參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오는 21일에 成年이 된 아들의 관례를 치르려고 하니, 노년에다가 추위에 힘들겠지만 찾아주셔서 가름침을 주시면 영광이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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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參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헤어진지 20년 동안 마음 속에서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西峴에까지 행차하였다고 듣고, 말을 타고 가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다만 탄식할 뿐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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楸菴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楸菴 金夏九의 문집인 楸菴集의 서문이다. 申大重과 金聖鍊의 부탁을 받고 문집을 교감하고 서문을 쓴 것으로, 뛰어난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문장을 세상에 드러내 보지도 못했고, 경륜을 세상에 펴 보지도 못했지만 남아 있는 문장을 길이 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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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窩鄭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好窩 鄭公의 문집인 好窩集의 서문이다. 정공은 영남의 바닷가의 벽지에서 태어나 뛰어난 문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의 부탁으로 문집을 교감하고, 서문을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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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川古家世蹟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光山 金氏가 烏川에 이주한 이후로 혹은 學問과 道藝로, 혹은 忠孝와 節義로, 혹은 砥行과 立名으로 세상에 드러났지만, 세대가 오래 지나면서 선조의 업적이 인멸되어 후손들의 귀감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조의 문집과 제가에서 간직하고 있는 훌륭한 말 등을 모아서 "烏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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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山先生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芝山 金八元의 문집인 芝山集의 서문이다. 퇴계선생의 제자로 학문과 도덕이 뛰어났지만 출세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연구에만 뜻을 두었다. 평소에 지은 문장이 매우 많았지만 후손들이 영성하여 근근히 수습하여 50년전에 3책으로 만들었으나 다시 흩어지고 근자에 후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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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求齋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反求齋 權聖제의 문집인 反求齋集의 서문이다. 선비에게 때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과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이 있다. 때를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고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堯舜같은 성군이 멀어진 후로 초야에 남겨진 선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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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津安氏族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족보의 서문이다. 안씨는 본래 중국 용西에서 나왔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로 문묘에 종사되기도 하고, 儒行과 懿範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효행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모두 기록한 족보가 발간되면 안씨 가문의 아름다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라의 표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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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山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安章仲이 성현을 사모하여 德山書院, 玉山書院, 陶山書院, 雪月堂 古宅 등을 두루 돌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옛자취일 뿐이고, 그 사람을 사모한다면 그 사람의 학문과 도가 실려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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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益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三益堂은 처사 申日觀의 당명이다. 신일관은 뜰에 매화, 대나무, 국화 등 세 가지를 심어 놓고 益者三友의 뜻을 붙여 당명으로 삼았다. 후손이 이 집을 잘 지키려면 조상의 歲寒之節을 사모하고 이어받아야 정말 조상을 잘 잇는다고 할 수 있지, 건물을 구경거리로 삼고 세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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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書御筆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왕실의 후손인 李龍錫이 獻陵御筆三字帖에 발문을 부탁하자, 宋나라 楊萬里가 阜陵御筆跋文에서 "하늘이 낳은 재주이고 성인을 배운 재주"라고 극찬하고, 黃庭堅이 昭陵飛白記文에서 "천지의 두터움을 기리고, 일월의 빛을 돕는다"라고 극찬한 말을 인용하여, 비록 文藝의 末技이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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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寧大君遺墨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孝寧大君의 13세 후손인 李龍錫이 효령대군의 遺墨에 발문을 부탁하자 지은 것이다. 비록 어릴 때 연습으로 쓴 것이지만 보통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하고, 세자의 자리를 동생 忠寧大君에게 양보하고 초야에 은둔한 것은 周나라의 선조 泰伯과 虞仲의 덕을 지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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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亭先生文集重刊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春亭集은 조선 전기의 문신 卞季良의 시문집이다. 세종 때 嶺南監營에서 왕명에 따라 초간본이 나왔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세상에 전해지는 것은 겨우 {東文選}과 {靑邱風雅}에 실린 몇 편 뿐이었다. 居昌의 儒生들이 중간하고 後識를 부탁하자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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鄒川先生孫公遺事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鄒川 孫英濟 遺事의 後識이다. 손영제는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특히 禮安縣監으로 부임해서는 鄕校를 重修했으며, 陶山書院을 건립할 때는 金富倫 등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丙子胡亂으로 집이 불타는 바람에 문적도 모두 소실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각지를 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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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彫堂先生墓誌銘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大庵 朴公이 쓴 後彫堂先生墓誌銘에 기술된 것이 매우 상세하지마 중간에 두 단락이 빠져 있었다. 퇴계선생의 유집과 기타 문적을 확인해 본 결과 한가지는 金富弼 조예가 깊었던 것이고 하나는 의리에 처신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기록하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려 한다고 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