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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厓先生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北厓 金圻의 문집에 수록된 跋文이다. 김기는 性理 탐구에 정진하여, 遺逸로 천거되어 參奉에 제수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임진왜란에 從弟 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힘썼다. 簞食瓢飮으로 누추한 곳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뜬구름처럼 그의 삶을 이 문집을 읽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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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陶谷權公遺事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陶谷權公遺事는 權起準 조상으로 320여 년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권기준이 나에게 후지를 부탁하였으나, 기록된 것이라고는 성명과 가계, 그리고 아랫부분이 탈락된 24자의 행적을 기술한 것 뿐이고, 저자도 알 수 없으니, 망령되이 여기에 杜撰을 할 수는 없다. 여기에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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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天地六合圖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天地六合圖를 보고 秦이 천하를 통일했던 이래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천하를 하나로 통합했던 왕조를 기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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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山里社贈持平龜巖權公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귀암공이 훌륭한 덕을 가지고 좋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평생 {소학} 공부에 전념하여, 임금께서 특별히 칭찬하시고 持平에 추증하였으나, 국법에 막혀 후학들이 마음대로 사당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근래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사당을 지어 봉안할 때 올린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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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귀암권공의 享祀를 지낼 때 쓰는 축문으로 선행을 실천한 것이 후학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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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溪巖先生延諡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溪巖 金령이 諡號 받은 것을 신주에 고하는 글이다. 김령은 문과에 급제하고, 承政院注書를 제수받았으나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귀향하였으며, 인조반정 후에 直講 持平을 거쳐 義州判官 등을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숙종이 교서를 내려 그 지조를 칭찬하였고, 영조도 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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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芝山祈雨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군수를 대신해 靈芝山에서 祈雨祭를 지낼 때 지은 제문으로 백신들이 돌보아 旱魃을 없애고 百穀이 익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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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頭山祈雨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군수를 대신해 龍頭山에서 祈雨祭를 지낼 때 지은 제문으로 두 달동안 가뭄이 계속되어 백곡들이 시들어가고 두어 번 제사를 올렸으나 효험이 없어 다시 제사를 올리니 구름을 일으켜 비를 뿌려 생령들을 살려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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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樊巖蔡相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樊巖 蔡濟恭의 제사 때 올린 글이다. 하늘이 世道를 염려하는 것이 지극하여 반드시 망할 지경이 되면 영웅을 태어나게 하여 그것을 다스리게 하였다. 지금처럼 의리가 막히고 綱常이 무너진 때에 하늘이 선생을 낳은 것이다. 강대한 기운을 타고나 곧기는 松柏같고, 굳기는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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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艮巖李公(완)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艮巖 李완의 제사 때 올린 글이다. 높은 덕망과 학식은 지금 우리 고을 으뜸이었으며, 형제의 의를 맺어 공의 도움으로 어리석음도 면하고 학문의 길에 나갈 수 있었는데,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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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晩谷趙公(述道)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晩谷 趙述道의 제사 때 올린 글이다. 조술도는 선친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어릴 때 선친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선친의 풍모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조술도의 輓詞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이제 공이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났는데 공의 불행이 바로 우리 집안의 불행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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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龍潭金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우리 고을에서 碩德으로 추앙받는 세 사람 중에서 月谷公과 丹砂公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공이 오직 의지할 곳이 되었는데, 공이 돌아가시자 의지할 곳도 잃어버리고,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 잔술을 올리게 되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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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舅縣監李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외삼촌 현감 이공의 제사 때 올린 글이다. 모친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항상 외삼촌을 대할 때면 모친을 대하는 듯 의지가 되었는데, 벌써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니 애통함이 더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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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외삼촌의 신주를 사당에서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세상사를 생각해보니, 외삼촌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환상같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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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陰城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陰城 李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평소 고인의 학덕을 기리고 고을의 碩德이 사라짐을 애통해 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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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聾巖李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聾巖 李賢輔선생의 묘소를 옮길 때 올린 제문으로 汾江書院 유생을 대신해서 지었다. 선생이돌아가신 지 230여 년이 지났기에 盛德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선생의 묘소에 절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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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休巖鄭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休巖 鄭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정공은 평소에 유학에 뜻을 두어 공자와 맹자 그리고 송나라 유학자의 책이 아니면 보지를 않았다.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林下에서 세상을 마쳤는데, 돌아가실 때 달려가 보지 못하고, 지금도 참석하지 못하고 마음만 전해서 애통하다는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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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上舍敬持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上舍 權敬持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장중한 자질과 정밀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람과 歲寒의 친분을 맺으려 했는데,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조문하려고 하나 병이 들어 갈 수 없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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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益山致和(志淳)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志淳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외삼촌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서로 아끼고 의지하여 틈이 없었는데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자 더욱 애통한 뜻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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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迂軒公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迂軒公의 묘를 이장할 때 지은 제문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일찍 세상을 마쳐 경륜과 포부를 펼치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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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高麗祭酒禹先生墓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고려 때 祭酒를 지낸 易東 禹倬의 잃어버렸던 묘소를 300여 년만에 다시 찾아 제사를 올리는데 易東書院 유생들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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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臥隱令公(翰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臥隱 金翰東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친과 사돈관계에 있던 김공의 죽음에 2년이 지났지만 병이 깊어 한 번도 직접 술잔을 올리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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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棲碧亭金公(重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棲碧亭 金重鉉의 제사에 올린 글로 선친과의 교분과 자신을 보다듬어 주던 옛날을 생각하니 더욱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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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면菴李公(우)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우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이우는 李象靖의 아들이요, 李光靖의 조카로 선대의 가학을 이어받아 心性理氣의 학에 뛰어났으며, 思悼世子의 신원을 청하는 영남만인소에 소수로 추대되어 대궐로 나아가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남해고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기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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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伯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鄭伯恭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일찍이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부모를 모시고 농사지으면서, 스스를 깨끗하게 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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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女서上舍李泰相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上舍 李泰相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사위 이태상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다리에 마비가 와서 장례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딸이 죽고 또 사위마저 죽게 되니 애통함이 그지없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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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寡齋李丈(鎭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寡齋 李鎭東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높은 학덕을 가지고 산림에서 자적한 삶을 회상하고, 선친과의 교분, 숙부와의 교분이 친척같았는데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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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立齋鄭公(宗魯)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立齋 鄭宗魯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오직 心學만을 전공한 학자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진력하여 끊어진 실마리를 다시 이었다고 하고, 세상을 뜬지 1년이 지났건만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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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龜福)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龜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공의 삼형제가 모두 옥같은 자질과 재주를 가지고 비바람을 가리지도 못하는 초가에서 안분자족한 삶을 살다가 두 아우가 세상을 먼저 떠나고 홀로 외롭게 살아간 것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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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吳淸河玄玉(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吳玹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오현과의 평소의 교분을 생각하니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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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箕瑞(龜洪)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龜洪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이귀홍은 저자의 막내딸의 시할아버지가 된다. 혼인관계로 인한 우호를 맺기도 하였지만 양 집안은 대대로 교분을 맺어 온 사이로, 나이는 80에 가깝지만 몸은 건강하여 오래 살 것 같았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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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穉得(鍾淳)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鍾淳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청명한 기상, 단정한 자태, 온화한 성품, 조용한 의범을 지금을 각각 다른 하늘아래 있어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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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서文汝(약)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사위인 鄭약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내가 병들면 간호하고, 죽으면 시신을 수습하고, 장지로 이끄는 사람이 사위일 줄 알았는데, 지금 도리어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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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舅母朴淑人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장모 박씨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충의와 덕망이 있는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부덕을 갖추고, 틈틈히 經史를 가까이 하였던 부인의 죽음을 애통해 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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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洪久而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洪久而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젊은 날, 한 번 보고는 서로 肝膽相照의 친교를 맺었던 친구의 유순하고 어김이 없는 성품, 조상의 덕을 잘 이은 의리, 남들보다 뛰어난 효성, 방정한 지조를 생각하고, 일세의 모범이 되어 옛사람에 부끄럽지 않았던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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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都事公(聲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金聲應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우리 집안의 도의와 유풍을 떨치지 못한 것이 거의 100여 년이 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집안에 이 사람을 태어나게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인데, 뜻을 펼쳐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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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大父生員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三從大父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공은 성품이 담박하여 세상의 더러움을 싫어하고, 몸이 약하여 옷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의리는 쇠처럼 단단하였고, 말을 못하는 듯하면서 말을 하면 돌처럼 단단하였다. 경전을 공부하고 성리서를 공부하여 자기의 말처럼 외웠고, 몸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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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鍾山再鍾叔父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종숙부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조의 유업을 이어 정성을 다하고 칠십 평생을 "淸疏" 두 글자를 실천하여 옛사람에 부끄럽지 않은 행실을 남기고, 지금은 아득히 멀어졌으니 이 마음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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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尙書(益運)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益運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 정승의 반열에까지 올라 충성을 다하고 국가의 예의를 맑게 하여 공사간에 신임을 얻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멀리 사라지게 되었으니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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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戚叔李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모친과 사촌인 戚叔 이공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가정의 유업을 잘 이어받아 근실한 행실과 굳건한 지조로 겉으로 나약한 듯하면서 마음은 조금 흔들림이 없이 자신을 지키다가 세상을 뜬 것에 대해 애석해 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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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父徵士府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仲父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30여 년이 지났는데, 부친이 돌아가시자 의지할 곳이 조부였고, 조부께서 돌아가시자 의지할 곳이 중부였는데, 이제 중부 마저 돌아가시니 의지할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중부가 있어서 집의 의지가 되고, 중부가 있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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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公(龜洛)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李龜洛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친과 내외종형제간으로 정의가 돈독하였고, 온화한 모습과 굳건한 기개를 가지고 83년을 살았으며, 공이 병이 들었을 때 위문도 하지 못했고, 공이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하고 1년이 지난 오늘에야 한 잔 술을 올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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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泗川權公(思浩)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權思浩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공은 세속에서 벗어난 기상과 어질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古家의 典型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어 우러러볼 곳이 없게 되었음을 안타까워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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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君鐸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金鐸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지난날 함께 온 정을 쏟고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지만, 김군이 세상을 뜬지 벌써 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찾아가 조문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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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文貞公緬禮時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文貞公 金령의 묘소를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묘지를 쓴지 190여 년이 되었는데, 묘터가 吉地가 아니라서 옮기게 되었는데, 부군의 서리발 같고 해처럼 빛나는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주위에 조심시키느라 참석시키지 않아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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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本生祖考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本生 祖考의 묘소를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묘소를 쓴 지 지금 38년이 지났는데, 묘소를 쓸 때 10년 내에 혹독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堂弟가 죽고 이어서 장조카가 죽고, 또 나의 아들 하나를 잃었고, 또 올해 조카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후손이라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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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父處士府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계부의 묘소를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묘소를 쓴 지 24년이 지나 다시 壙中에 빛이 들고 骨肉이 드러나게 애통한 마음 그지없지만, 새로운 곳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니 천년만년 길이 편히 계시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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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母淑夫人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仲母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仲父母를 의지할 곳으로 삼았다가, 중부가 30여 년 전에 돌아가시자 仲母를 모친처럼 모시게 되었다. 93년을 병 없이 건강하게 사셨기 때문에 100년은 사시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니 애통함이 그지없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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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宜人鄭氏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부인 鄭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부부가 함께 60이 넘게 함께 살다가 부인이 먼저 세상을 마치자 그간의 정리를 생각하며, 저승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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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弟是璞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식찬從弟 金是璞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종제와 그간의 정의를 생각하여 서술하고, 저승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