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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7901

    與秀卿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일상적인 가정사에 대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2

    與秀卿從弟景長()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朝廷에 올릴 上疏의 진행 상황과 주위의 분위기 등을 전하고, 동생의 지나친 喪心을 우려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3

    與秀卿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보름사이에 벼슬이 세 번이나 바뀐 내력을 말하고, 현재 근무처인 宣陵으로 편지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4

    答秀卿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팔꿈치와 겨드랑이의 毒瘇을 잘 치료해야 한다는 말과 宣陵에서 벼슬살이하는 근황, 樊巖 蔡濟恭이 장단에 귀양 갔다가 임금의 덕으로 풀려나 돌아왔다는 등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7905

    答景長從姪同春協春(1794)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임금의 기후가 좋지 못하여 걱정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6

    答景長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본인의 최근 일정을 알린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7

    答三從孫相祚(1796)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相祚의 거상 중 조섭을 걱정하고, 문집간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고받은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8

    答三從孫岡祚(1802) 4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中庸』을 공부하러 산으로 들어간 岡祚에게 학업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09

    與岡祚(1804)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岡祚에게 하산 후에도 학업을 한결같이 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10

    答外孫姜處欽(1804)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외손자에게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여 학업에 충실 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11

    寄孫雲祚(1795)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손자의 더위 병이 본인이 집에서 같이 거처하며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하면서 古詩같은 것을 읊조리며 휴식 겸 몸을 조섭하고, 아울러 처가 長老들의 가르침도 잘 새겨 들으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12

    筵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임여재가 司宰監直을 하다가 正祖의 명으로 입시하였다. 정조는 관직, 성명, 거주지를 묻고는 文忠公의 몇 대손인가를 물었다. 6세손이라고 하니, 문충공 이하의 이름과 官銜을 묻기에 답하니, 문충공 자손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다. 勝官者가 近百이라고 답하니 “훌륭하다.
    출처 : 유교넷
  • 267913

    通諭屛院儒生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屛山書院에서 『小學』을 通讀했는데, 이는 朝家에서 학교를 일으키고 風化를 돈독하게 하는 뜻이 담겨 있는 일이다. 그런데 며칠 동안 講討하면서 대충 읽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였다. 마치고 생각해 보니 매우 부끄러웠다. 都訓長은 제생과 함께 강토하고, 長席은
    출처 : 유교넷
  • 267914

    格齋孫公文集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格齋 孫肇瑞의 문집 서문이다. 密城刊本 『格齋文集』이 있었으나 龍蛇之亂에 없어졌다. 공의 고향인 일직현에서 賡韻一冊을 얻고, 이어 시문 몇 편을 얻고, 또 취금헌 점필재 문집에서 창수시 및 書 약간을 얻어 鋟梓하려고 후손인 泰振이 집안 어른인 永錫과 禹錫의 편지를 가
    출처 : 유교넷
  • 267915

    忘軒李公遺集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忘軒 李胄의 문집 서문이다. 시는 性情에서 나오는데 성정은 氣에 구애된다. 기에 호방하고 청고하며 온화한 차이가 있어서 詩도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망헌의 시는 격조와 음운이 빼어나 ‘通州詩’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며 ‘獨鳥暮歸遼’ 구는 선생[점필재]도 칭찬하였
    출처 : 유교넷
  • 267916

    密陽朴氏忠孝錄序(1797)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충신은 효자의 집안에서 구하라는 말이 있다. 선비가 난리를 당하여 창의하여 큰 공을 세워 일세에 빛나면 사람들은 모두 忠義之士라고 하지만 근원이 깊으며 평소에 배양한 공임을 알지 못한다. 『密陽朴氏忠孝錄』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하여 옷깃을 여몄다. 壬癸之亂을 당하여
    출처 : 유교넷
  • 267917

    咸昌金氏族譜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함창김씨 족보는 세대가 아득히 멀어 系牒이 부전하므로 백남공이 뛰어난 학식으로 상고하여 거의 이룰 즈음에 학성에서 돌아가시니 지금까지도 宗中의 한이 되었다. 근자에 백남공 종손인 慶錫이 刊期를 정하고 아들 東煥에게 편지를 주어 내게 감당 못할 일을 부탁하면서 “우리
    출처 : 유교넷
  • 267918

    順天張氏族譜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고려 삼태사 중의 한 분이 圃陰 張先生이다. 權金 두 집안의 족보는 한우충동한데 포음의 후손은 쓸쓸하다. 금년 5월에 泰殷氏가 찾아와서 “譜役을 선대에 못했는데 시일이 더 가면 더 게을러질 것이므로 活鑄하여 후손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문충공의 후손이 서문을 써 주십
    출처 : 유교넷
  • 267919

    豐山柳氏世譜重刊序(1807)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풍산유씨는 分封이 각기 달라 系牒이 완전하지 않다. 立巖公이 가보를 지어 전하고 謙菴公이 世系錄을, 文忠公이 永慕錄을 지었으며, 拙齋公과 主一公에 이르러 대략 갖추어졌다. 英廟 무인년에 숙부 聖觀과 대종형인 泳이 주관하여 판각했는데, 시조 이하 21세까지 分派가 쉰아
    출처 : 유교넷
  • 267920

    松潭蔡公逸稿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松潭 蔡應麟의 문집 서문이다. 내가 젊을 때에 達城에서 공부했는데 송담공의 도학풍절을 들었지만 歷拜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었는데 하루는 공의 칠대손이 遺事 한 질과 逸詩 서너 수를 받들고 와서 서문을 부탁하였다. 錦繡 같은 문장에 月露 같은 글씨였다. 집에서는 孝友에
    출처 : 유교넷
  • 267921

    陽坡洪公行蹟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陽坡 洪彦博의 행적 서문이다. 공은 뛰어나고 剛明한 자질로 여말에 벼슬길에 나아가 경연에 입시해서는 잘못을 바로잡고, 나가서 鑾輿를 호위함에는 자신을 돌보지 않아 종사에 큰 공을 세웠다. 흥왕사의 난 때 수상으로서 임금을 버리지 않고 견위수명의 길을 택했다. 稼亭·陽
    출처 : 유교넷
  • 267922

    屛山書院敬老會續案序(1804)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병산서원에 옛날에는 會帖이 있었는데 성화홍치 연간 선배의 이름이 첩에 실려 있어 그 때의 유풍과 성대했던 자취는 마을 어른들의 말로도 증명된다. 辛卯年 홍수에 회첩을 잃어버렸는데 몇 년 뒤 석두촌 백성이 모래 속에서 찾아냈다. 원회 때마다 열람하고는 옛 모임을 계승
    출처 : 유교넷
  • 267923

    樂琴軒李公遺集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樂琴軒 李庭栢의 문집 서문이다. 공은 퇴계 선생의 袒免之孫으로 형님인 송간공과 열심히 독서하였고, 친상을 당하여 법도에 따라 3년간 시묘하였다. 자라서는 위기지학에 뜻을 두었으나 퇴계 선생이 이미 돌아가셨으므로 학봉과 종유하면서 도산의 旨訣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대현
    출처 : 유교넷
  • 267924

    竹軒都公遺集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초야의 선비가 주상께 상소하여 16년 동안 무너졌던 나라의 예법을 바로잡는 것은 큰 역량과 기절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仁宣王后가 승하하자 慈懿大妃는 長子婦의 朞年服을 입어야 하는데도 기해년 잔당들이 庶子婦의 大功服을 논의할 때 죽헌공이 상소하여 顯宗大王을 깨우치니 윤
    출처 : 유교넷
  • 267925

    守吾齋安公遺稿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守吾齋 安敏修의 문집 서문이다. 文은 氣에서 나오는데 기의 후박에 문의 고하가 매여 있다. 그러나 文이 氣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理를 귀하게 여긴다. 理에 마땅한 한 글자는 萬言을 대적할 수 있다. 主理의 글은 仁義에 근본하고 性情에서 발하며 翰牘에서 드러나 拙約
    출처 : 유교넷
  • 267926

    鵲山精舍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松安君의 옛 사당이 頹圮하여 이씨 후손들이 정성으로 재물을 모아 새로 지으니 규모가 적합하며 아름다웠다. 13대손 孝錫이 죽고 나서 그 아들인 上舍가 와서 창건 기문을 부탁하기에 先公의 일기가 있는데,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만 나도 外裔之末인지라 위와 같이 쓴다
    출처 : 유교넷
  • 267927

    龍門書堂重修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龍門書堂은 功城縣 熊山 아래, 伊水의 가에 있는데, 靈川 申潛이 목사로 있을 때 유학을 장려하기 위하여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빗물에 재해를 입어 세 번이나 자리를 옮겨 지금 상장평에 자리하였다. 갑진년에 이건을 계획했는데 黃國熙가 일을 주관했고 姜栻·金光
    출처 : 유교넷
  • 267928

    花山逸稿附東槎燕行兩錄後識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花山 權柱의 문집에 부록으로 「東槎錄」과 「燕行錄」을 실은 이유를 말하였다. 대마도에 사행 갈 때 받은 이별의 시문이 「東槎錄」이며 명나라에 사행 갈 때 받은 시문이 「燕行錄」이다. 올 봄에 옥연서당에서 『花山逸稿』를 간행하고 이어 양록을 권말에 덧붙였다. 시문을 지
    출처 : 유교넷
  • 267929

    龍巒權公遺集跋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龍巒 權紀의 문집 발문이다. 용만 선생은 당신이 말씀하신 “선비가 배움에서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부끄럽지 않음에 있을 뿐,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 있으랴?” 하신 말씀처럼 오로지 내면의 공부에만 힘을 썼다. ‘譜
    출처 : 유교넷
  • 267930

    光山卓氏世稿跋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景濂亭 卓光茂와 竹亭 卓愼의 유고를 모은 책에 붙인 발문이다. 『東文選』『靑邱名翰』『冶隱集』『國史勝覽』 등에서 찾아낸 두 분의 글을 모아 한 책으로 엮었다. 聞孫 象濂이 내게 발문을 부탁하였다. 두 분의 문장이 『文選』에 실렸으니 대가로서 세상에 이름 날렸고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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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1

    龜巖金公行蹟後敍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龜巖 金謹信의 행적 후서이다. 김공은 君子之孝를 한 분이다. 예닐곱 살에 벌써 사람됨의 길을 이해하고 ‘인륜을 모르면 짐승에 가깝다[不知人倫近於禽獸]’라는 여덟 자를 벽에 써 두었다. 부모 섬김에 있어, 정성껏 봉양하고 슬픔을 다해 치상했으며 예에 따라 제사했으니 조
    출처 : 유교넷
  • 267932

    西溪朴公行錄後敍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西溪 朴公의 도덕과 風節이 뛰어나다는 말을 어릴 때 들었는데, 하루는 증손인 朴旨瑞가 서계공의 행록을 들고 와서 덕을 기리는 글을 부탁하였다. 문집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행록에 수록된 수십 편의 시만 봐도 그분의 志節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267933

    서계의 증손인 朴旨瑞가 家藏 속에서 나의 중부인 花溪 柳聖曾의 시를 베껴 와 보여주었는데, 平淡和易한 기상이 참으로 중부님의 시였다. 그 本草가 불에 타서 나에게 고쳐 써서 보내고 또 그 곡절을 기록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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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4

    書杏堂金童子遺帖後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金童子는 일곱 살에 죽었는데 그 유첩에 그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가 엮은 『杏堂集』 두 권은 서투른 글씨지만 운격이 자연스럽고 이치가 넓어 천고를 농락하였다. 들으니 동자는 다섯 살에 어머님의 종기를 빨아냈고 누나와 놀 적에는 함께 廟廷을 수리했으며 益母草를 제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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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5

    敬題趙述謙裒集先贒筆蹟帖後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글씨로 마음을 얻고 마음으로 도를 얻게 되니 고인의 문장과 학업이 뛰어난 것도 글씨로 써서 얻지 않은 게 없다. 趙述謙이 수집한 ‘先賢筆蹟’ 두 첩은 西厓·晦齋·退溪·蘇齋·愚伏·黔澗·可畦의필적을 모은 것이다. 述謙은 여러 선배의 도덕과 문장에 뜻을 두었고, 바탕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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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6

    書靑門子內外事蹟後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靑門子內外事蹟』 한 책을 그의 아버지가 가지고 와서 한 말씀 적어달라고 했다. 孝烈은 선의 으뜸이다. 고금에 효열한 이는 거의가 노력하여 하고 강개하여 한 것인데 이들 내외는 애초에 노력하여 한 흔적이 없고 본성의 자연을 따랐다. 듣자니 부인은 漁溪公의 후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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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7

    書錦春堂姜上舍事蹟後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錦春堂 姜翰은 일찍 퇴계 선생을 따라 鳳停寺에서 수업했는데, 鳴玉臺에도 모시고 놀러갔다. 강한이 죽은 지 거의 십 년, 선생은 사직의 글을 올리고는 봉정사에서 명을 기다리면서 대 위에 올라가 시를 읊었다. “이 길 다니며 노닐기를 오십 년인데 봄꽃에 취해서 얼굴도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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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38

    寢屛八箴(幷小敍)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거문고와 학을 그린, 침소에 있는 팔 폭 병풍에 매 폭마다 箴을 하나씩 써 두고는 때때로 펼쳐 두고 읽으니 거울을 들고 스스로 비추어보는 것과 같았다. 讀書, 應事, 敦睦, 交遊, 休官, 處貧, 訓蒙, 調病에 대해 한 수씩 썼다
    출처 : 유교넷
  • 267939

    立春箴(1805)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새해를 맞아 독서에 정진하려는 자세를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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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0

    忠孝贊(幷小敍)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權沃川 祖孫의 忠孝大節이 역사서에 별로 오르지 않아서 온 고을 사림들이 문서를 올려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유사가 매번 놀라고 외쳐서 장려하였으나 일이 어그러져 아직 登聞되지 않아 旌表되지 않았다. 顯晦에도 때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개탄스럽기 그지없어서 찬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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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1

    花樹堂上樑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典書公 유종혜가 풍산현에 살다가 하회촌에 터를 잡은 이후로, 立巖公·司正公·宣略公·判書公·贊成公·龜村公·巴山公으로 이어지는 후대의 업적과 덕행을 칭송하고, 修巖·拙齋·寓軒·主一齋·悔堂·西湖公의 노력이 근원 깊은 물처럼 이어져 왔음을 밝혔다. 한 조상의 후손이라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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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2

    忠孝堂重建上樑文(1771)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화재로 인해 100년 된 건물이 재가 되었으나 중흥의 때를 맞아 장대한 건물이 서게 되니 후손들의 孝思가 이뤄낸, 조상의 음덕이 깃든 곳이다. 文忠公은 퇴계에게 배우고 立巖公을 이었으니 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며, 정주학을 하여 세상에서 참선비로 일컬어진다고 예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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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3

    雲溪廟宇上樑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方潭 權杠 선생은 인품이 높고 청빈한 생활을 하셨으며, 독서와 潛修, 그리고 力行에 힘썼다. 그리하여 고을에서 높였을 뿐만 아니라 徵賢으로 뽑혔으며, 조정에서는 정려문을 내려주었다. 후손들이 私廟에서 제사 드렸는데, 우리들이 의논하여 함께 선생을 높여 대략 祠院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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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4

    雙節祠上樑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白巖 金濟 선생과 籠巖 金澍 선생은 형제간으로, 고려가 망하자 형인 백암 선생은 평해 군수로 재직 중에 忠節詩 두 수를 지어놓고 바다로 갔는데 종적을 알 수 없으며, 아우인 농암 선생은 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고려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朝服 및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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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5

    花川講堂上樑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謙菴 柳雲龍 선생의 성품과 업적을 열거하고, 拙齋 柳元之 선생이 修巖 柳袗과 愚伏 鄭經世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워 이기론을 부연한 일 등을 열거한 뒤에 이어서 「花川講堂上樑文」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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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46

    孤竹書院延諡後改題告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여말의 충신인 白巖 金濟 선생과 籠巖 金澍 선생의 延諡 후 제사를 올리며, 고한 말씀을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267947

    常享祝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忠介公 白巖 金濟 선생과 忠貞公 籠巖 金澍 선생을 찬양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48

    白巖先生海壇歲祀常享祝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白巖 金濟 선생의 해단에 제사드리며,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49

    明溪書院忘軒李公追享告由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甲子士禍 때 죽은 忘軒 李胄 선생을 경북 청도군의 明溪書院에 從享하며 올린 고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0

    常享祝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李胄 선생의 문장과 절개를 찬양하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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