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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7951

    鶴巖里社梅窓鄭公常享祝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鶴巖書院에서 梅窓 鄭士信을 제향하면서 올린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2

    豐巖里社懶拙齋李公奉安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豐巖書院에서 懶拙齋 李山斗를 제향하면서 올린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3

    常享祝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李山斗 선생의 인품과 학식을 찬양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54

    竹皐鄕社竹湖尹公常享祝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竹皐鄕社에서 竹湖 尹涉을 제향하면서 올린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5

    山泉書院新廟奉安告由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榮州의 山泉書院에 宋訥齋, 張果齋, 吳竹牖, 朴六友堂, 朴三樂堂 등 다섯 분을 봉안한 고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6

    川谷書院東別祠常享祝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川谷書院에 金止止堂, 都杏亭, 持平呂公, 宋倻溪, 金七峯, 洪臺巖을 제향하면서 올린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57

    花川書院懸板告由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창건 당시에 겨를이 없어 못했던 사당과 당의 현판을 걸고 고유하였다. 사당은 景德祠라 하고 당은 崇敎堂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58

    新安南氏別廟奉安文(代本孫作)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新安南氏를 별묘에 봉안한 글인데, 본 손을 대신하여 지었다. 조상의 덕행을 예찬하고, 고향에 사당을 지어 후손들이 영원토록 제사 올리는 정성을 갖추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59

    潭菴金公別廟奉安文(代本孫作)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潭菴 金公을 별묘에 봉안한 글인데 본 손을 대신하여 지었다. 조상이 은거하시던 島村 마을, 松檟山 남쪽에 사당을 세워 예를 올리면서 천추토록 우러르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0

    陽坡洪公行蹟刊役告成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陽坡 洪彦博의 시 일곱 수는 淸高蕭散한데 그 동안 책으로 엮지 못했다. 이제 稼亭·陽村 선생의 글을 엮고 國史에서 채집하여 한 부 책을 이루었다. 이미 고유하고 또 판각하여 이제 완성하여 정성껏 경건히 고한다
    출처 : 유교넷
  • 267961

    西譚洪公文集告成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西潭 洪瑋는 입신양명을 중시하지 않고 충효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배운 것을 복습하고 실천하였다. 주옥같은 글이 대부분 흩어져 약간 편만 수습하니 아름다운 말씀과 행적이 백분의 일도 안 남았지만 그 속에서 이 점을 징험할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267962

    梧溪里社剛窩任公奉安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剛窩 任必大를 梧溪里社에 봉안하는 글이다. 공은 和粹한 자질과 毅弘한 덕성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성리서와 『退溪集』을 숙독하였다. 古禮를 숭상하여, 원근 儒林이 모두 선생은 제사 지낼 만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3

    五大祖考掌令府君墓前立石告由文(1803)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5대조인 掌令府君 柳袽가 하세한 지 200년쯤 되자 뛰어난 행동과 식견이 매몰될 것을 우려하여 돌에 새겨 기록하고 고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4

    曾祖考護軍府君墓前立石告由文(1806)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曾祖考인 護軍府君이 하세한 지 96년 되던 해에 묘 앞에 입석하고 고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5

    祭崔白弗菴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白弗菴 崔興遠의 생전의 학문과 행적을 서술한 후, 임여재가 어릴 적에 백불암이 임여재의 선인을 찾아왔을 때, 道義風範을 듣고서 尊慕해 왔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6

    祭蔡樊嚴文(代屛山士林作,1799)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樊巖 蔡濟恭의 제문이다. 80세까지 살면서 영의정에 봉해졌던 번암의 강개한 성품과 종사의 안위에 헌신했던 업적을 찬양하고 한 잔 술을 올린다고 하였다. 임여재는 영의정 채제공의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된 인연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267967

    祭外舅李公文(1784)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己巳年에 공의 집안에 사위로 가서 만났던 일을 회상하고, 孝友하여 칠순에도 삭망에 拜廟하였던 일 등을 열거한 후 공의 상을 당하여 슬픈 심정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8

    祭姜南壺希祖文(1785)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姜希祖를 조상한 글이다. 진세에 노닐면서 만난 그는 신선과 같아서 말 한 마디도 흉금을 터놓고 말했고, 강개하고 뇌락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69

    祭金菊窓克甫文(1800)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金克甫를 조상한 글이다. 같은 계원이어서 평소부터 그를 알았는데 자질은 剛方하였고 내면은 皎潔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외면을 알았지만 나는 그의 내면을 사랑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0

    祭安守吾齋訥甫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安敏修를 조상한 글이다. 천성이 溫厚謙恭하였던 공은 재주가 뛰어났으나 과거에 뜻을 끊고 經籍에 마음을 두어, 맑으면서도 남을 받아들이고 어울리면서도 먼지를 묻히지 않고 검산 아래에서 은둔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1

    祭權可齋子淵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權子淵을 조상한 글이다. 淳和한 품성과 후중한 자질을 지녔으며 가훈을 계승하여 孝友했던 사실을 말하고, “뒤에 죽는 나의 슬픔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2

    祭金上舍子晦(敏源)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金敏源을 조상한 글이다. 세류에서 벗어나 빈 배처럼 얽매임이 없었던 고인은 친척에게 敦睦했고 친구에게 信義가 있었다. “한 잔 술로 영결하니 그대는 아시는가!”라고 탄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3

    祭金聖圭文(1806)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나이를 잊고 사귀었던 친구인 金聖圭를 조상한 글이다. 溫雅한 자질과 솟아오르는 뜻을 지녀 마을의 중망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그대 선고의 행장을 내가 손 보고 있었는데 어찌 그리 갑자기 떠났느냐고 하며 슬퍼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4

    祭孫乃益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친구인 孫乃益을 조상한 글이다. 醇良한 취향을 가졌고 安平仲처럼 오래 사귀어도 공경스러움을 잃지 않았으며, 다들 異才라고 일컬었던 벗이었는데 “萱堂을 두고 먼저 가니 누가 모시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5

    祭族兄柳洲公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족형인 柳洲를 조상한 글이다. 집안이 침체하여 책을 가까이 하는 이가 드물어졌는데 고인은 평생 동안 가르침에 힘썼음을 말하고 한 아들이 남다른 재주가 있고 여섯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재주로 보아 앞길이 밝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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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76

    祭大宗姪萬初(復春)文(1781)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대종질인 柳復春을 조상한 글이다. 화수회 때 온화하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우리 집안의 액운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하고 자책하고는 끝으로 후손들을 보우할 것을 기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77

    祭堂叔父處士府君(聖觀)文(1760)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당숙부인 柳聖觀을 조상한 글이다. 임여재는 “십 수 년 동안 가까이서 모시면서 본 빼어나신 풍모와 孝友敦睦하시던 모습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가 있어서, 형님 사후 고아가 된 어린 조카를 지성으로 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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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78

    祭堂叔父處士府君(聖疇)文(1769)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당숙부인 柳聖疇를 조상한 글이다. 천품이 도에 가까웠으며 평생 동안 眞實無僞하게 행동하셨으며, 어버이께 지극히 효성스러웠음을 말하였다. 본디 약주를 즐기셨으나 乙亥年 금주령 이후에는 일절 드시지 않고, 집안 사람이 약으로 쓰고 남은 것을 올려도 엄하게 꾸짖었던 일화를
    출처 : 유교넷
  • 267979

    祭族兄同樞公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족형인 同樞公을 조상한 글이다. 조상의 음덕으로 각 파가 번성하게 된 사실을 먼저 말하고, 고인의 행적을 서술한 후, 병으로 인해 직접 찾아가지 못하지만 고인께서는 저를 사랑하시어 돌아보시기를 기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80

    祭再從兄處士(灝)文(1775)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재종형인 柳灝를 조상한 글이다. 우리 형제 중에 가장 빼어나신 분이 바로 고인이며, 자신이 가장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한 후, 공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칠순의 나이에도 사당에 배알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고인은 효를 다하신 분이라고 예찬하고는 한 잔 술
    출처 : 유교넷
  • 267981

    祭皡如文(1804)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淸明한 자질에 愷悌한 기풍을 지녔던 고인은 고요한 방에서 침잠하여 오로지 연구에 몰두했다고 회상하고는, 내가 가진 병풍의 箴이 바로 그대가 써 준 것이라고 하여 친분을 드러낸 후에 성정은 淸高했고 행동은 謙約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82

    祭再從兄(湖)文(1787)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臨汝齋의 선고께서 하세한 지 이미 7년이 지나 그동안 선고가 그리울 때면 同遊하시던 이를 보면서 風樹之痛을 달래었는데, 바로 고인께서 年紀와 志行이 가장 가까워 당숙질 사이지만 정의가 자별했기에 마음속으로 의지했었다고 밝히고, 고인의 행적이 훌륭했음을 서술한 뒤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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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3

    祭伯從兄(澥)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고인은 淳儉하고 謹黙하여 분명하게 행동하시어, 세상에서 고인을 아는 이가 적고 고인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부귀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직 조용하고 拙約한 모습만을 시종 유지하며 사셨다. 드릴 말씀도 남았고 나눌 情도 남았는데, 떠나가셨다고 애통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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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4

    祭從兄(澫)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純良한 천품, 完樸한 도량, 事親孝友에 정성스러웠던 고인을 회상하고, 나이도 비슷하고 뜻하는 바도 일치하여 보면 기쁘고 못 보면 생각했으며, 늘 마중하고 바래다주었던 고인을 그리워하면서 영혼이라도 내 정성을 살피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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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5

    祭宗姪孟熙(宗春)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師友와도 같았던 고인과의 삶을 회상하고, 한 잔 술과 몇 마디 말로써 영결하니 나를 가련히 여겨 흠향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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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6

    祭再從姪孟輝(喜春)文(1788)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바탕이 純美하였고 行誼를 구비하여 옛 사람의 風範을 갖추었던 고인을 추모하고 애통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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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7

    祭再從姪統天(大春)文(1804)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臨汝齋가 집안에서 최고연장자였고 망인이 그 다음이었는데, 평소에 “내가 죽거든 날 묻어주고 그 뒤에 오게” 했더니 번번이 빙긋이 웃고 대답하지 않았던 일을 회상하고는 한 잔 술과 곡으로써 영결하니 영혼이나마 나를 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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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88

    祭堂姪弘春文(1794)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함께 공부할 때 뛰어났던 그의 자질을 회상하고, 임여재가 서울에서 관직에 있다가 들은 고향 소식에서 하세 사실을 알고는 제문을 써서 보낸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89

    祭三從孫榮祚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자신에게 글을 배우던 시절, 재주가 탁월하고 성행이 인후했던 일을 회상한 후, 벼슬 없이 가난했던 그의 아버지가 門戶를 다시 일으킬 것을 기대했던 일을 말하였다. 또 망인이 저자의 죽은 아들과 동배이며 동학임을 들어 애정이 남달랐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7990

    祭亡室贈淑夫人李氏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양친과 여러 어린 딸과 나를 남기고 인자한 당신이 어찌 갔는가?”라고 애통해 하고는 부인의 생전의 행실을 서술하였다. 넉넉지 않은 가계에도 애써 노력하여 맛있는 음식을 양친께 올렸고, 머리카락을 팔아서 반찬을 장만하면서도 집안 식구들에게 숨겼으며, 누가 물건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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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1

    祭殤兒雄介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아들이 죽은 후 얼마 안 되어 姜郞도 죽고, 부인마저 죽고, 어린 딸까지 죽었는데, 이 일이 모두 1년 안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평생 한 일이 반드시 하늘에 복 받을 일만은 아니었지만 이런 재앙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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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2

    聽天齋崔魯瞻(柱泰)誄辭(幷小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聽天齋 崔柱泰는 학문이 깊고 명리에 초연한 선비로 서로 잘 알고 자주 만났었지만, 이제 죽었으니 매우 슬프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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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3

    三從孫成均生員奭佐誄辭(1805)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성균관 생원 柳奭佐는 자가 士能으로 자기의 3종손인데,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영민하였다.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지도하여 각별한 정이 있었거늘 이제 그의 죽음을 맞이하니 애달픈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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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4

    金君士準哀辭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金士俊이 불과 열일곱의 나이로 병이 든 지 한 달 만에 죽자 그의 사람됨과 재능을 아끼던 나머지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며 슬퍼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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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5

    族孫柳君善祚哀辭(幷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손자뻘인 일가붙이 柳善祚가 매우 효성스러웠으나,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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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6

    三從孫應祚哀辭(幷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再從兄의 맏손자인 三從孫 應祚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효성스러워 家門의 기대를 받았으나, 급기야 병으로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97

    三從孫女權氏婦哀辭(代作,1784)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권씨 집안을 출가한 三從 손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세 수의 輓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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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7998

    三從孫女李氏婦哀辭(1805)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이씨 집안으로 출가한 從姪 統天의 손녀가 일찍 죽은 것을 슬퍼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267999

    이조참의에 증직된 沙斤道 察訪 金宗武(1548~1592)의 묘갈명이다. 그는 본관이 善山이고, 字는 毅伯이다. 曾祖는 磾, 祖父는 匡佐, 父는 副提學 久菴 就文이고, 어머니는 廣州李氏 判官 仁符의 딸이다. 1591년 獒樹道 察訪에 除授되고 얼마 있다가 沙斤道로 옮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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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00

    獻陵參奉靜隱申公墓碣銘(幷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
    자는 仲綬, 호는 靜隱인 鵝洲申氏 申元福(1509~1584)의 묘갈명이다. 曾祖는 錫命, 祖父는 俊禎, 아버지는 參奉 壽이고, 어머니는 主簿 義興 朴自儉의 딸이다. 1533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데, 1574년 어머니의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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