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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婦淑夫人草溪卞氏旌閭閣碑銘(幷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1608년(선조 41)에 경상도 관찰사가 康翎縣監 鄭邦俊의 처인 草溪卞氏가 임진왜란 때 순절한 것을 기리는 정려를 내려주실 것을 바라며 올린 啓狀이 윤허되어, 1623年(인조 1)에 정려각을 짓고 板刻하였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훼손이 심한지라 다시 閭閣을 짓고 石碑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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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友堂李公墓碣銘(幷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尙友堂 李瑞翼은 字가 駕雲으로 퇴계의 숙부인 松齋 李堣(1469~1517)의 6세손이다. 曾祖父 沖이 안동의 예안에서 예천으로 이거하였고, 祖父는 揆道, 아버지는 之馥이며, 어머니는 永陽南氏로 1613년(광해군 5)에 태어났다. 일곱 살 때인 1619년 어머니께서 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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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東皐李公墓碣銘(幷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東皐 李德祿(1677~1743)은 본관이 驪江, 자는 重與로 晦齋 李彦迪의 5세손이다. 曾祖는 宜潛, 祖父는 ,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㙾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 崇禎處士 瓢隱 金是榲의 손녀이다. 鄕解에는 여러 번 올랐으나 대과에는 번번이 실패하였다. 1721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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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坡處士趙公墓碣銘(幷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竹坡 趙元胤의 묘갈명이다. 죽파는 본관이 豊壤이며, 자는 善伯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된 黔澗 趙靖(1555~1636)의 증손자이다. 祖父는 樵隱 基遠, 아버지는 秇이고, 어머니는 南陽洪氏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기개가 남달랐으나, 과거 급제에 실패한 뒤로 산림에 은거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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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靜窩趙公墓碣銘(幷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靜窩 趙錫喆(1724~1799)의 묘갈명이다. 그는 豊壤人으로 자는 明仲이고, 黔澗의 6세손이다. 曾祖는 大胤, 조부는 瀣, 부친은 善經, 어머니는 密陽 朴聖任의 딸이다. 네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1742년(영조 18)에는 어머니 상을 당하여 온갖 정성으로 초상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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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烏川鄭公墓碣銘(幷序)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處士 鄭宗弼의 자는 國範이며 본관은 烏川이다. 증조부는 沇, 조부는 相文, 아버지는 式好窩 燁이고, 어머니는 驪州李氏이다. 열세 살 때 어머니 상을 당하여 제반 상례를 집전하는 것이 마치 어른과 같았으며, 장성해서는 과거 공부를 끊고 오직 부친을 봉양함에 온갖 정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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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曦軒處士鄭公墓碣銘(幷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報曦軒 鄭衡弼의 묘갈명이다. 그의 자는 國平이고, 아버지는 式好窩 燁이다. 숙부인 梅軒公에게서 『小學』을 받아 읽어 보고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모두 이 책에 있다”라고 하고는 擧業을 포기하고 나날이 『小學』을 潛心하였다. 그가 자신의 아호를 ‘報曦’라 한 것은 “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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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翁李公墓碣銘(幷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禁翁 李憲國(1703~1776)의 자는 萬甫로 驪江李氏다. 증조부는 垷, 조부는 德純, 아버지는 徵中이며, 어머니는 全州崔氏 斗齡의 딸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장성해서도 擧業을 폐하고 한 마을에 사는 백여 집의 일가친척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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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授李公墓碣銘(幷序)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李侃(1544~1625)의 묘갈명이다. 그의 본관은 永陽, 자는 士行으로 안동의 佳野里 태생이다. 증조부는 銀同, 조부는 仁弼, 아버지는 之華이며, 어머니는 興海裵氏로 處士 峻의 딸이다. 惟一齋 金彦璣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열네 살 때는 栢潭 具鳳齡, 松巖 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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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山處士朴公墓碣銘(幷序)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處士 朴受絅(1732~1762)의 본관은 泰安, 자는 仲尙이며, 증조부는 昌潤, 조부는 泰茂, 아버지는 挺元이며, 어머니는 延安李氏 萬均의 딸이다. 부인은 晉陽姜氏로 旨瑞, 旨昇, 旨德, 旨毅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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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考高麗恩賜及第府君墓壇碑陰記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고려 말에 안동 하회 마을에 입향한 풍산유씨 工曹典書 柳從惠의 증조부인 柳伯의 墓壇이 鶴駕山 남쪽 竹田에 있다. 그의 묘는 실전되었는데, 1603년(선조 36)에 후손 襑이 護軍 昌壽의 碑文을 참조하여 이 언덕에 다달아 아래 위로 두 개의 고분을 발견하였다. 둘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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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龜溪李公墓表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龜溪 李中立(1533~1571)은 본관이 慶州, 字가 剛仲으로 이조판서 興商의 후예인데, 할아버지 副護軍 善童이 서울에서 龍宮의 大竹里로 처음 移居하였고, 아버지 禦侮將軍 竣이 醴泉權氏를 맞이하여 公을 낳았다.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涵齋 徐嶰와 절친하게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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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孝堂金公墓表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忠孝堂 金協(1546~1638)의 墓表이다. 그는 본관이 順天, 자는 吉甫며, 曾祖는 若衡, 祖父는 粹翰, 아버지는 縣監 自順이고, 어머니는 仁川蔡氏 刑曹判書 紹權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는 과거 공부를 접고, 오직 어머님을 봉양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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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祖考贈司憲府掌令行長水道察訪府君墓表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柳袽(1578~1605)의 墓表인데, 그의 자는 吉甫로 領議政 西厓 文忠公 柳成龍의 맏아들이다. 어머니 貞敬夫人은 廣平大君의 후예로서 縣監 坰의 딸이다. 일찍부터 “홀로 행할 때도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고, 홀로 잠들 때에도 이불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해야 한다[獨行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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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護軍府君墓表 4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文忠公 柳成龍의 증손자 萬河(1624~1711)의 墓表다. 조부는 察訪 袽, 아버지는 縣監 拙齋 元之며, 어머니는 淑人 聞韶金氏 崇禎處士 瓢隱 金是榲의 딸이다. 學行으로 鄕士林이 監營에 推薦하는 薦剡을 여러 번 받았지만 끝내 과거와는 인연이 없었다. 大耋이 되어 西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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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皐金公墓誌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金煃(1730~1806)의 묘지명이다. 그의 본관은 光山, 자는 汝鑑, 호는 草皐다. 光山金氏 안동입향조인 金孝盧의 10세손으로 曾祖는 命磯, 조부는 嶨, 아버지는 泰元이고 어머니는 鵝洲申氏 德游의 딸이다. 대여섯 살 때 이미 글을 쓸 줄 알았는데, 지나가던 太守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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匏山處士金公墓誌銘(幷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匏山處士 金龍普(1722~1787)의 묘지명이다. 그는 자가 德中이고, 曾祖는 世鐸, 祖父는 景濂, 아버지는 密菴 李栽(1657~1730)의 門人인 汝楫이다. 어려서는 從曾祖父 伊湖 世鏞께 배웠다. 1747년(영조 23)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이어서 1750년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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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宇鄭公墓誌銘(幷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魯宇 鄭忠弼(1725~1789)의 묘지명이다. 그는 본관이 迎日, 자가 昌敬이며, 魯宇는 아호이다. 曾祖는 郡守 沇이고, 祖父는 通德郞 相文, 아버지는 梅軒 煜이며, 어머니는 處士 永陽李氏 秀春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였지만, 몸이 약하여 부모님께서 몹시 걱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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无憫堂處士李公墓誌銘(幷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處士 李弘績(1730~1787)의 묘지명인데, 본관은 固城, 자는 德吉이다. 曾祖는 後榮, 祖父는 時成, 아버지는 元凱, 어머니는 永川李氏 秀堈의 딸이다. 부인 順天金氏 사이에 네 아들 宗愚, 宗宅, 宗睦, 宗範을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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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舟處士李公墓誌銘(幷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虛舟 李宗岳(1726~1773)은 固城李氏로, 자가 山甫며, 曾祖父는 時成, 祖父는 元鳳, 아버지는 善慶이고, 어머니는 聞韶金氏 夢濂의 딸이다. 어릴 적부터 영특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으며, 바깥나들이에서 돌아올 때면 어머니 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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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眞城李公墓誌銘(幷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處士 李晦根(1726~1746)은 자가 春敷로 眞城李氏다. 曾祖는 在遇, 祖父는 萬知, 아버지는 曅이고, 어머니는 完山柳氏다. 불과 열여섯에 夏課와 覆試에 장원을 하였으나, 1742년 어머니 상을 당하자 치상 기간 중 지나치게 슬퍼하여 결국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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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祖考奉大夫世子侍講院諮議主一齋府君墓誌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主一齋 柳後章(1650~1706)의 자는 君晦로 西厓 柳成龍이 고조부다. 증조는 袽, 조부는 元之, 아버지는 萬河이고, 어머니는 密陽朴氏다. 1689년(숙종 15) 健元參奉에 제수되었으나, 謝恩肅拜 후 어머니께서 연로하다는 핑계를 대고 落南하였다. 1691년 翊衛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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堂叔父處士府君墓誌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柳成龍의 6세손 柳聖疇(1688~1767)의 墓誌다. 그의 본관은 豊山, 자는 子範이며, 증조부는 元之, 조부는 萬河, 아버지는 後暹이며, 어머니는 眞城李氏 通德郞 在運의 딸이다. 부인 西原鄭氏 사이에 두 아들 曰, 曰澢과 딸 셋을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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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湖金先生行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金奉祖(1572~1630)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豊山이고, 자가 孝伯이며, 호는 鶴湖이다. 曾祖는 義貞, 조부는 農이고, 悠然堂 金大賢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全州李氏 纘金의 딸이다. 西厓 柳成龍에게 事師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郭再祐 장군을 따라 전장에 나아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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慵齋李先生行狀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李宗準(?~1499)의 行狀이다. 그는 본관이 慶州이고, 자가 仲均이며, 호는 慵齋이다. 曾祖는 蔓實, 조부는 繩直, 아버지는 時敏, 어머니는 安東權氏 啓經의 딸이다. 다섯 살에 글을 짓고 일곱 살에 책을 읽고 뜻을 알았다. 열 살 때 아버지께 “經書가 모두 聖賢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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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塘吳公行狀 4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吳守盈(1521~1606)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高敞이고, 자가 謙仲이며, 호는 春塘이다. 증조부는 榮, 조부는 碩福, 아버지는 退溪와 同門修學한 彦毅, 어머니는 松齋 李堣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擧業에 흥미를 잃고 산수를 벗 삼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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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窓鄭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鄭士信(1558~1619)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淸州이고, 자가 子孚이며, 호는 梅窓이다. 曾祖는 允韶, 조부는 彦輔, 아버지는 枓, 어머니는 安東權氏 軾의 딸이다. 芝軒 鄭士誠의 동생이며, 退溪 李滉의 문인이었던 栢潭 具鳳齡의 문인이기도 하다. 1582년(선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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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逸權公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權縥(1571~1635)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安東이고, 자가 子湥이며, 호는 野逸이다. 曾祖는 哲命, 조부는 綸, 아버지는 應星, 어머니는 英陽南氏 世昌의 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 郭再祐 장군의 진영에 참여하여 함께 火旺山城을 지키기도 했는데, 이 때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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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南金公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金始鑌(1564~1609)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咸昌이고, 자가 休伯이며, 호는 白南이다. 曾祖는 起秋, 조부는 堯弼, 아버지는 鼎輝, 어머니는 月城李氏 尙彦의 딸이다. 집안이 淸寒하여 飢寒을 면하지 못하였으나 “고인들은 종이를 삼켜서 허기를 충족하고, 개를 껴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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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府都事延安宋公行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宋樀(1602~?)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延安이고, 자는 隆吉이다. 조부는 汝沃, 아버지는 尙賓, 어머니는 沃川全氏 洪의 딸이다. 특히,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46세가 되던 丁亥년에는 동생이 여자종을 태장으로 다스려 공교롭게도 쓰러져 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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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將豐隱李公行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李洪仁(1525~1594)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禮安이고, 자가 景會이며, 호는 豊隱이다. 曾祖는 慎, 조부는 弼, 아버지는 荃, 어머니는 南陽洪氏 汝礪의 딸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李鎰이 지휘하던 尙州의 진영이 무너지자 가산을 정리하여 젊은이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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節度使盧公行狀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盧啓禎(1695~1755)의 행장이다. 그는 慶州 安康사람이며, 자는 國休이다. 曾祖는 世孝, 조부는 以元, 아버지는 聖賓, 어머니는 完山李氏 橏의 딸이다. 1725년(영조 1) 부득이하게 하던 공부를 멈추고 무예를 익혀 增廣試에 급제하였으며, 처음에는 守門將이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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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山權公行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權寭(1693~1749)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安東이고, 자가 周甫이며, 호는 慕山이다. 曾祖는 克紹, 조부는 佶, 아버지는 以詮, 어머니는 殷山朴氏 師尹의 딸이다. 權榘의 문인으로 학문이 깊고 行誼가 간결하여 士林의 推重을 받았다. 1747년(영조 23) 객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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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庄處士鄭公行狀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鄭泰履(1706~1767)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淸州이고, 자는 綏伯이다. 아버지는 昌興, 어머니는 豊山柳氏 後常의 딸이다. 평소 부모에 대한 효행과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으며, 분가하여 재산을 나누려고 할 때에도 伯兄은 부모를 모셔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의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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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齋柳公行狀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柳世楨(1617~1686)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豊山이고, 자가 聖擧이며, 호는 靜齋이다. 曾祖는 雲龍, 조부는 襑, 아버지는 宗之, 어머니는 咸昌金氏 起秋의 딸이다. 평소부터 經世의 實學에 유의하여 治民, 治兵, 經界, 征賦, 城池, 機械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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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菴柳公行狀 4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柳遇春(1728~1793)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豊山이고, 자가 東甫이며, 호는 拙菴이다. 曾祖는 後賢, 조부는 聖中, 아버지는 泂, 어머니는 宣城金氏 濟萬의 딸이다. 마을에 있는 全氏와 朴氏 두 집안과 더불어 雲谷書堂을 經營하기도 하였으며, 두 叔父가 일찍 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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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弟景觀行狀 47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柳瀾(1735~1759)의 행장이다. 그는 본관이 豊山이고, 자는 景觀이다. 曾祖는 萬河, 조부는 後沆, 아버지는 聖復, 어머니는 月城崔氏 鼎錫의 딸이다. 어린 시절은 외가인 漆溪에서 보내고, 15세가 되어 河回로 돌아왔으며, 숙부의 명에 의해 함께 공부를 했다.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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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三從孫인 柳台佐가 지은 행장이다. 공(1730∼1808)의 字는 秀夫이고, 初字는 士極이며, 號는 臨汝齋이다. 1730년(영조 6) 4월 20일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柳聖五이고 어머니는 安東權氏 權鼎老의 딸이다. 10여 세에 이르러 이미 性理書와 經史子集 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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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洪命周가 撰한 묘갈명이다. 柳相祚와 행장을 지은 柳台佐가 聯書로 부탁했으며, 손자인 柳進瑀가 행장을 전해주어 銘을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앞에 실린 行狀과 유사하며, 銘은 忠孝를 바탕으로 한 그의 덕성과 학문이 크고도 영원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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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鄭鴻慶이 撰한 묘지이다. 증손인 柳進璜이 柳台佐가 지은 행장을 가져와서 銘을 청하여 지었다고 한다. 내용은 行狀에 소개된 내용을 위주로 간략하게 적고 있으며, 銘은 충효는 물론 널리 알려진 그의 학문과 도타운 행실이 뛰어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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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鄭宗魯(4수), 金㙆, 姜世白, 李龜星(4수), 李㙖(2수), 黃龍漢, 李仁行(6수), 李宗儒, 金宗奎 등 9명이 지은 21편의 만사가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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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규屛山書院의 儒生이었던 李汝龜, 南始明, 權玹, 申應岳, 金重佑 등과 良川社儒生 洪文朝, 李鎭東, 李仁行, 李尙璣 등을 비롯하여 門下生 李宜渙, 金道言, 그리고 金宗鐸, 再從姪 長春, 三從孫인 相祚, 台佐, 岡祚와 族曾孫 宗睦, 등이 지은 13편의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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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적암집(適庵集) 適庵 金台重의 문집. 4권 2책. 목판본. 木板本으로 附錄을 포함해 4卷 2冊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집의 序文과 跋文이 없어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으나, 密菴 李栽가 1712년(숙종 38)에 지은 行狀과 1723년(경종 3)에 쓴 陶淵書堂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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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59首)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冬至日次朱文公韻上葛庵先生二首, 錦翁先生輓(1674), 贈族姪天若(世欽, 1676), 仙遊亭留別李幼材(栽)兼示泰玉上人(1678), 次李幼材韻, 入試圍口號, 月城懷古, 遊玉山書院, 客中病臥逢族姪天開(世鍵)喜贈, 謁立巖院廟次天開韻, 又次二首, 歸路奉別再從兄(學時)之月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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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葛菴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葛菴 李玄逸(1627~1704)에게 보낸 편지로 1685년(숙종 11)에 썼다. 서로 자주 왕래하며 진솔함을 나누어야 마음의 티끌을 없애고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데도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타성에 젖어 게을러진 탓으로 여러 윗사람들에게 지은 죄가 적지 않다고 자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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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葛菴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甲戌換局으로 함경도 鐘城에 유배되어 있는 葛菴 李玄逸에게 보낸 편지로 1695년(숙종 21)에 썼다. 천식이 멈추지 않아 고생하고 있는 데다 換局에서 竄逐된 후유증으로 사망한 叔父 芝村 金邦杰(1623~1695)의 喪을 당한 것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전하면서, 두 집출처 : 유교넷 -
268047
上葛菴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함경도 鐘城에 유배되어 있는 葛菴 李玄逸에게 보낸 편지로 1696년(숙종 22)에 썼다. 유배지에서 講道의 바쁜 와중에도 한결 맑은 정신과 건강으로 지내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는 神明을 다해 스스로 扶護하려는 능력 때문으로 外患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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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葛菴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전라도 光陽으로 유배지를 옮긴 葛菴 李玄逸에게 보낸 편지로 1698년(숙종 24)에 썼다. 무리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金學培의 行狀을 작성해 보내준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면서 門下에서 문집을 간행할 의지를 갖는다면 평생토록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출처 : 유교넷 -
268049
上葛菴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조정의 放歸田里의 명령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臨河 錦陽에 기거하고 있던 葛菴 李玄逸에게 보낸 편지로 1700년(숙종 26)에 썼다. 지난번 동생에게서 宣城(禮安)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많은 수고를 끼쳤다는 얘기를 들은 이래로 근황을 듣지 못했는데 건강은 어떠한지를 묻고,출처 : 유교넷 -
268050
答權蒼雪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전라도 光陽에 유배되어 있는 李玄逸을 찾아가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蒼雪齋 權斗經(1654~1725)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孝祥을 통해 폭염의 무더운 날씨에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워했음을 밝히면서, 더욱이 남쪽 해안의 유배지에 풍토병이 돌고 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