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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8051

    答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李玄逸의 아들인 密菴 李栽(1657~1730)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678년(숙종 4)에 썼다. 햇볕이 들어오는 한낮의 양지바른 곳에 앉아 夢想에 잠겨 있을 때 홀연히 도달한 ‘帶瓊章’의 詩가 적힌 情帖을 받아 황급히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마치 수많은 친구를 얻
    출처 : 유교넷
  • 268052

    答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密菴 李栽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만나고 싶어 하던 차에 長文의 편지를 받으니 비록 얼굴을 대면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지 않은 감격과 함께 위로를 얻었다고 반가워함과 동시에, 지난번 金世欽 등과 더불어 등산과 물놀이를 즐길 때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출처 : 유교넷
  • 268053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甲戌換局으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된 아버지 李玄逸을 수행하던 密菴 李栽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694년(숙종 20)에 썼다. 전후 두 차례에 걸쳐 보낸 편지에서 겹겹이 닥치는 위기와 시련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엿볼 수 있었다며, 다행히 왕의 은혜를 입어 죽음을 면하고
    출처 : 유교넷
  • 268054

    答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密菴 李栽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695년(숙종 21)에 썼다. 錦翁 金學培의 文集 편찬과 관련하여 行狀의 집필을 의뢰한 내용이다. 먼저 이현일과 김학배는 서로 평생을 모범으로 삼았던 사이로서 후세에도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일임에도 아직까지 그의 遺文이 간행되지
    출처 : 유교넷
  • 268055

    與李伯脩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李玄逸의 아들들인 李梴·李栽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 1705년(숙종 31)에 썼다. 일전에 자신에게 질문한 내용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질문을 던지니 스스로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토로하면서, 家傳의 책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출처 : 유교넷
  • 268056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로 1707년(숙종 33)에 썼다. 젊은 나이에 사망한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해 애통한 뜻을 전하면서, 그러한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君子로서의 면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勸勉한 것이 아니냐며 빨리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다.
    출처 : 유교넷
  • 268057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로 1708년(숙종 34)에 썼다. 추운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전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門下에 들어가 배우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더구나 아들이 자질이 둔하고 성격이 느슨하여 격려하며 진작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출처 : 유교넷
  • 268058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로 1709년(숙종 35)에 썼다. 폭염의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지난번 南淵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취소되는 등 몇 차례나 會合이 무산된데 대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번 25일 族姪 金昌錫·金世鎬 등과 함께 壺隱亭에서 모일
    출처 : 유교넷
  • 268059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梧臺山에 머물고 있는 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이다. 얼마 전 다녀간 손님으로부터 매일 뽕나무 아래에 앉아 학문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고 전제한 뒤, 자신은 더위에 지친 나머지 병까지 들어 창가에 앉아 詩作을 해보려고 하지만
    출처 : 유교넷
  • 268060

    與李幼材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梧臺山에 머물고 있는 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듣기로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를 묻고, 자신들은 모이기만 하면 해학과 농담으로 일을 삼고 있어 산속에 앉아 책을 벗하며 학문적 진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대해 부러움을 표시했다.
    출처 : 유교넷
  • 268061

    答鄭智彦(惟興)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鄭惟興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뜻하지 않게 편지를 받은 데다 무사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보고 감격과 함께 위로가 되었다는 반가운 마음을 표시하면서, 자신은 수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는 宿患이 전혀 차도가 없어 고생하고 있음을 전했다. 집안에 원래 병에 관한 유용한 醫
    출처 : 유교넷
  • 268062

    與權叔章(斗紀)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전라도 海南에 유배되어 있던 晴沙 權斗紀(1659~1722)에게 보낸 편지로 1708년(숙종 34)에 썼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유배소식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차차 남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용기에 존경심마저 갖게 되었다며, 지금은 먼 낯선 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출처 : 유교넷
  • 268063

    與天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興陽에서의 유배생활을 끝으로 관직에서 은퇴하여 山寺에 들어가 머물고 있는 族姪 七灘 金世欽(1649~1721)에게 보낸 편지다. 몇 달 사이에 가문에서 悲報가 잇달았음을 전하면서 禪房生活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지, 간혹 찾아오는 선비들과 교유는 어떠한 지 등을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268064

    答天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金世欽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머물고 있던 山寺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고, 從兄의 陞秩을 축하하는 京鄕 각지 선비들의 詩를 모아 帖으로 만들 계획이니 반드시 지어서 보낼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
    출처 : 유교넷
  • 268065

    答玉光重(世寶)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玉世寶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龍潭의 會合에 참석하기를 바라는 편지에 고마움을 표시한 다음 실질적으로 자신이 그 모임을 주선하고도 집안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게 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대신 菊花가 시들기 전에 빚은 새 술 한 통을 자신이 내놓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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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66

    與權平仲(后準)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星州에 사는 사위 權后準에게 보낸 편지이다. 성주로 돌아간 이후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病勢는 어떠한 지를 묻고 병을 치료하는 적절한 방법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라 조언했다. 사람의 七情 가운데 가장 제어하기 힘든 것이 忿怒인데, 그것으로 인해 氣血이 제대로 순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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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67

    與鄭子昻(泰嵩)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사위 鄭泰嵩에게 보낸 편지로 喪禮에 대한 질의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奉柩는 『朱子家禮』의 절차를 따르는 것이 좋지만 家廟 안은 협소하니 魂帛·銘旌으로 덮어도 무난할 것 같으며, 祖奠은 儀節이 있어도 집집마다 달리 준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집안의 경우는 葬禮
    출처 : 유교넷
  • 268068

    答權希祥(莆)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사위 權莆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07년(숙종 33)에 썼다. 科擧에 응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자신의 아들들은 草野에서 지내는 것을 낙으로 삼을 뿐 雄飛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 그에 대한 고민 때문에 마시는 술이 적지 않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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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69

    與重甫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金世釴에게 보낸 편지로 1695년(숙종 21)에 썼다. 보내준 『遺事』의 草稿에 수정 또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모든 자료를 꼼꼼히 考閱해 착오나 빠진 부분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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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70

    與鳴于兼寄兒命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世鏞과 아들 命錫에게 보낸 편지로 1689년(숙종 15)에 썼다. 讀書와 製述 외에도 스승에게서 古人의 出處事蹟을 듣고 좋은 작품들을 諷誦하고 있다는 소식에 다행한 마음을 전하면서, 항상 그 같은 자세로 일관하되 初學은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다지는 것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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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71

    答鳴于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世鏞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00년(숙종 26)에 썼다. 지난번 보내준 書字畫는 구태의연한 감이 있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공부하는 틈틈이 古帖을 모사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72

    與鳴于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世鏞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근 인근의 젊은 선비들이 黃寺에 모여 공부할 때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한편, 토론을 통해 학문적 진전을 도모하기보다 전원생활에 젖어 아예 세상일을 잊으려 하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된다며 가끔씩 틈을 내어 회합에
    출처 : 유교넷
  • 268073

    答鳴于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世鏞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科業을 포기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한편 많은 책을 읽으며 암송하는 것보다 科程을 엄격하게 정해 놓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독서를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충고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74

    寄兒命錫兼示鳴于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아들 命錫과 조카 世鏞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일의 講學에 지쳐 공부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의지가 篤實하지 못함을 질책하면서, 올바른 應對와 進退는 체계적인 공부에서 얻어지는 것이라 충고했다. 君子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들이 小人과 다른
    출처 : 유교넷
  • 268075

    寄兒命錫兼示鳴于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아들 命錫과 조카 世鏞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부할 때 건강과 시간을 적절하게 안배할 것과 집안의 일에 대해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 것을 당부함과 동시에, 文字에 집착하지 말고 침잠된 가운데에서 물욕을 버리는 길을 찾도록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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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76

    寄命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아들 命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에게 進拜할 때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묻고, 進講하면서 배운 요지는 뒤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일이 기록할 것을 당부했다
    출처 : 유교넷
  • 268077

    寄慶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절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慶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온 문장이 여전히 서투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상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글을 지어보도록 권유하는 한편, 환경이 적절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공부해도 무방하다며 허락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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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78

    寄慶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절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慶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左傳』은 이미 다 읽었고 范冲菴의 글들을 수시로 읊고 있는지를 묻고, 蘇東坡의 글과 집안에 있는 『東萊博議』의 글들을 精讀할 것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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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79

    示慶錫朱書帖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절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慶錫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이 『朱子大全』을 보다 朱子가 呂子若에게 당부한 글들을 모아 만든 「朱書帖」을 함께 보냈다.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聖賢들이 한 길로 천척하려고 한 것은 心의 本體를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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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080

    送全上人南遊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公山의 雲浮寺로 떠나는 全上人과 작별하면서 쓴 序文으로 1689년(숙종 15)에 썼다. 지난번 從弟 金南重이 보여준 仙庵酬唱詩 五篇 가운데 있던 全上人의 詩 하나를 보고 전혀 세상사에 때가 묻지 않은 사람임을 익히 알았는데, 자신이 병으로 仙庵에 누워 있을 때 그가
    출처 : 유교넷
  • 268081

    松石山水可遊者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1708년(숙종 34) 윤3월 安東府 曲城縣 虎溪의 松石山에 자리 잡은 松石庵을 돌아보고 지은 記文이다. 이곳은 그의 曾祖 成均進士 金澈이 草堂을 지어 머물고 있던 곳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山勢의 빼어남과 溪谷의 절묘함에 감탄했음을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268082

    陶淵書堂學令(附後敍)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그가 집안의 子弟들의 교육을 위해 祖父 瓢隱 金是榲이 머물던 臥龍草堂 자리에 陶淵精舍를 건립하고 정한 學則이다. 모두 13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進講의 절차부터 시작해 討論·賦詠·賞罰 등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後敍는 그가 사망한 뒤인 172
    출처 : 유교넷
  • 268083

    松谷書院常享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1700년(숙종 26)에 건립된 永川의 松谷書院에 泰齋 柳方善(1388~1443)과 警齋 郭珣(1502~1545)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常享祝文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84

    祭錦翁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錦翁 金學培(1628~1673)의 靈前에 올린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85

    祭叔父芝村府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숙부 芝村 金邦杰(1623~1695)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86

    祭葛庵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葛菴 李玄逸(1627~1704)의 영전에 올린 제문으로 1705년(숙종 31)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268087

    祭李孤山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孤山 李惟樟(1625~1701)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88

    祭乖厓柳公(榰)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乖厓 柳榰(1626~1701)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89

    祭無爲堂兄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無爲堂 金泰基(1625~1700)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0

    祭天開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金世鍵(1550~1698)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1

    祭警甫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族姪 金世鐸(? ~1680)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2

    祭從姪若欽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從姪 金若欽의 영전에 올린 제문으로 1702년(숙종 28)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268093

    祖妣端人英陽南氏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南振維의 딸이자 祖父 金是榲의 부인인 英陽 南氏(1601~1660)의 墓誌文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4

    先府君行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아버지 金邦衡(1618~1699)의 行狀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5

    先妣順天金氏行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어머니 順天 金氏(1619~1694)의 行狀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6

    先師錦翁先生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錦翁 金學培(1628~1673)의 생전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8097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1712년(숙종 38) 李栽가 썼다
    출처 : 유교넷
  • 268098

    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權斗經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268099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權斗寅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268100

    言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중
    從姪이자 門人인 金聖鐸이 썼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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