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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8251

    斥沙溪金長生文廟從祀疏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沙溪 金長生을 文廟에 從祀하는 일의 부당함을 논한 상소문이다. 김장생의 자질이 노둔하고 견식은 고루하며 문예에도 짧고 재식도 형편없을 뿐 아니라 행의와 사업 모두 보잘 것 없음을 먼저 지적하였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예서 편찬의 공뿐인데, 그 역시 예학에 뛰어나서가 아
    출처 : 유교넷
  • 268252

    斥宋時烈道峰從享疏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趙光祖를 모신 道峰書院에 尤庵 宋時烈을 함께 從享하는 일의 부당함을 논한 상소문이다. 서두에서 지금처럼 國是가 안정되지 못하고 士習이 바르지 못한 때는 없었음을 강조하고, 송시열의 결함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己亥年 服制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적
    출처 : 유교넷
  • 268253

    高祖考文忠公府君辨誣疏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유후장의 高祖인 柳成龍이 李潑(字 景涵, 號 東菴 北山:1544∼1589)의 老母와 어린 아이를 장살하였다는 誣告에 대해 변론하는 상소문이다. 1681 82년에 柳景瑞 鄭澍 등이 동 사건에 대한 鄭澈의 무고를 주장하며 유성룡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으로 올린 상소
    출처 : 유교넷
  • 268254

    統營禮狀(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道水軍統制營의 관원이 서면으로 임금에게 보고하는 狀啓를 유후장이 代作한 것으로, 의뢰인은 미상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55

    兵營正朝禮狀(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兵營에서 실시한 新年 賀禮를 맞아 서면으로 임금에게 보고하는 狀啓를 유후장이 代作한 것으로, 의뢰인은 미상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56

    與川水諸長老(代, 169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川水의 長老들이 올린 上疏文 내용을 논박하는 서신이다. 특히 그 가운데 具鳳齡(字 景瑞, 號 栢潭:1526∼1586)이 정철과 교유한 사실을 문제 삼은 데 대한 반론이 주를 이룬다. 구봉령이 정철과 교유한 것은 分黨 이전, 즉 정철이 奸狀을 드러내기 전이므로 흠이 될
    출처 : 유교넷
  • 268257

    上鶴溪金公(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鶴溪 金時任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代人作이다. 의뢰인은 미상이지만 아래 편지를 근거로 할 때 유후장의 백부일 가능성이 있다. 의뢰인이 자신을 姪이라고 표현하고 수신자를 一家 父兄으로 칭하고 있는 데서 의뢰인과 수신자 사이는 먼 친인척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서신의 주
    출처 : 유교넷
  • 268258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역시 鶴溪 金時任에게 보내는 서신의 代人作이다. 身病으로 인해 집안 조카를 보내 대신 아뢴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의뢰인은 유후장의 백부일 가능성이 높다. 주된 내용은, 상대의 편지에 先親(의뢰인 기준이므로 유후장에게는 祖父가 되는 拙齋 柳元之)의 유고 가운데 일부 내용
    출처 : 유교넷
  • 268259

    上府伯(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곡식을 차용해달라는 내용으로 安東府伯에게 올리는 서신의 代人作이다. 부모 묘소가 집에서 100여리 거리의 깊은 골짝에 있어 山民들의 火田과 伐木으로부터 지키기가 어려워서, 작년 봄에 몇 칸 齋屋을 지어 승려 몇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는 계책을 추진했는데, 흉년을 맞아
    출처 : 유교넷
  • 268260

    與士林會中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상대가 官衙에 올린 査卞文의 내용에 異義를 제기하는 서신이다. 전후 사정이 생략되어 있어 이 글만으로 정황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대략의 내용은 이러하다. 盧 沈 兩公이 李灘수의 出喪 年月을 모를 리 없으니 墓碣文의 "是冬"은 戊申年 겨울을 말함이 분명하고 舟
    출처 : 유교넷
  • 268261

    與士友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川水 諸長老의 答書에 대한 반론으로 士友들에게 보낸 서신의 代人作이다. 당론이 처음 발생했을 당시에 유성룡 등에 의해 행해졌던 調劑 노력을 지금의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당시의 조제가 바로 정철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宋代 程顥의 조제 노
    출처 : 유교넷
  • 268262

    與權氏門中(陵洞先塋伐木時)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權氏 門中에게 伐木日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하는 서신이다. 산 안에 묘소를 둔 일가들에 아직 통고가 다 이르지 못하였고 柳後徵의 獄事도 어찌 될지 모르고 하니 형편을 감안해서 벌목일을 연기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63

    與申(叔範, 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申叔範이라는 인물에게 보내는 서신의 代人作이다. 의뢰인 미상. 친상을 당해 묘소 구한 지 3∼4개월인데 아직 구하지 못하고 몸까지 상했음을 호소하며, 상대가 이미 정해둔 산에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64

    上伯父(168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백부 柳宜河에게 보낸 서신이다. 유성룡 辨誣와 관련된 내용이다. 유후장은 2년 뒤인 1691년에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한 [高祖考文忠公府君辨誣疏]를 올리는데, 이 서신은 그 구상 단계에서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라도 유생 유경서와 정철의 후손 정주가 이발의 노모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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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65

    與趙義城(沔, 169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趙沔(字 巨源:1622∼1705)에게 보낸 서신이다. 유후장이 전 해에 올린 [高祖考文忠公府君辨誣疏]에 대한 숙종의 비답이 명쾌하고 위서를 작성한 安邦俊을 追削하는 등의 처리 역시 제대로 되어서 다행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66

    答三從叔寓軒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寓軒 柳世鳴에게 보낸 서신이다. 朱子의 赤心說 등에 대한 소견을 피력하고 있다. "不後先" 3자가 논란이 되었는데, 초목이 먼저 피고 나중에 피는 것은 木性과 토양의 문제이지 同仁의 天이 先後를 달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 이황의 시에 부친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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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67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寓軒 柳世鳴에게 보낸 서신이다. 역시 이장의 견해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이 서신에서 주로 문제 삼는 것은 주자의 觀心說을 논하면서 心 앞에 "知"字를 놓을 수 없다고 한 견해이다. 知覺은 心에서 비롯하는 것인데 知가 觀心에 방해될 법이 없다고 하고 있
    출처 : 유교넷
  • 268268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寓軒 柳世鳴에게 보낸 서신이다. 위의 서신에 이어서 "心"에 대한 보다 심화된 논의를 펼치고 있다. "不昧"의 의미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未發 전에는 精一之工을 둘 곳이 없고 旣發 후에는 밝게 살필 수 없어서 精一工夫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
    출처 : 유교넷
  • 26826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寓軒 柳世鳴에게 보낸 서신이다. 유세명이 유후장이 앞서 보낸 편지들의 내용을 인정하고 채택, 添入한 것에 대한 謙辭가 주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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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70

    祭栢潭具先生文(遷葬時, 代士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柏潭 具鳳領(1526∼1586)의 葬地를 옮길 때 士林을 대신하여 지은 제문이다. 백담공의 높은 덕과 독실한 학행을 기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268271

    祭葛庵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葛庵 李玄逸(1627∼1704)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갈암공의 기품과 덕성이 溫厚端重하였고 학문에 있어서는 博聞하면서도 見識이 精密하였으며, 문장은 餘事로 했음에도 典雅明白하여 군자다웠다고 칭송하고 있다. 또 갈암은 숙종의 知遇에 보답하고자 수차의 상소문으로 국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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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72

    祭寓軒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寓軒 柳世鳴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우헌공은 鄕黨의 의귀할 대상이요, 儒林의 宗師이니 공의 죽음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라 일세의 슬픔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공의 성품과 덕행, 문장과 학문 등을 찬미하고, 유후장 자신에게는 一家 尊叔일 뿐 아니라 이웃에 거하면서 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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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73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寓軒 柳世鳴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의뢰인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우헌공과 三從兄弟間이며 이웃에 거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유후장의 부친 柳萬河일 가능성이 높다. 늘 고락을 함께 한 사이임을 강조하며 슬픔을 토로하면서, 고인의 탁월한 재능과 온아한 자질, 언
    출처 : 유교넷
  • 268274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역시 寓軒 柳世鳴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위의 두 제문과 내용상 대동소이하다
    출처 : 유교넷
  • 268275

    祭孤山李公(惟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孤山 李惟樟(1624∼1701)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고산공의 품성과 학행을 기리고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8276

    祭鶴溪金公文(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鶴溪 金時任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학계공의 덕성과 학업을 기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8277

    祭井谷權公(징)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井谷 權징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정곡공의 품성과 언행을 기리고, 특히 부인 잃고 딸까지 잃어 상이 겹치고 아들은 병들었는데도 일 처리하는 것이 냉정하여서 모두들 木石이라고 했으나, 일을 치르고 아들의 병이 호전되자 바로 공이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을 특기하여
    출처 : 유교넷
  • 268278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井谷 權징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출처 : 유교넷
  • 268279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井谷 權징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역시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사정의 딱함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8280

    祭李校理南紀(漢命)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校理 李漢命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고인의 행적을 기리고, 유후장 자신이 가까이에서 약을 잘 쓰도록 구완하지 못한 점이 한이 된다고 하여 깊은 슬픔을 표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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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81

    祭金湛仲(夏鏡)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유후자의 벗인 金夏鏡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고인의 품성과 덕행을 기리고, 자신과 고락을 같이 하며 형제처럼 지낸 일을 언급하며 애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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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82

    祭聘翁權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유후장의 장인인 權鈗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鄕邦의 표준삼을 바요 宗黨의 의뢰할 바인 공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을 아끼고 권면하여 주던 일을 추억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83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權鈗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사돈 관계를 맺고 교유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의뢰인은 유후장의 아버지 柳萬河로 보인다. 죽음을 애도하고 생전의 德性과 文詞를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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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84

    祭內舅處士朴公(守天)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유후장의 외삼촌인 處士 朴守天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의 剛毅한 품성과 貞直한 논의, 惡을 미워하고 義를 갈구하는 심성을 기리고 그 죽음을 애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85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處士 朴守天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공을 가리켜 형이라 칭하고 약관의 나이에 형의 집에 들어갔다는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의뢰인은 유후장의 아버지 柳萬河인 것으로 보인다. 선을 쌓으면 하늘이 자손에게 보답한다더니 공은 갔지만 두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으니 이야
    출처 : 유교넷
  • 268286

    祭三從祖松窩公(元定)文(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祖인 松窩 柳元定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陵洞에 초장을 치른 후 지관들이 모두 묘자리가 길하지 않다고 해서 다시 구하기를 10년 만에 竹田洞으로 이장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87

    祭再從祖掌令公(千之)文(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再從祖인 掌令 柳千之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의 덕성과 학문을 기리고 애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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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88

    祭再從祖直長公(百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再從祖인 直長 柳百之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의 온후한 바탕과 올바른 행실을 기리고 2주기를 맞아 애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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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89

    祭伯父翊贊府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伯父 翊贊 柳宜河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공의 剛毅篤實한 품성과 正大光明한 심사를 기리고, 효성을 보여주는 일화와 평생 朱書를 끼고 潛心工夫하다가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행적을 기렸다. 특히 자신을 아껴 주셔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1년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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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0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伯父 翊贊 柳宜河를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의뢰인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공을 가리켜 伯兄이라 칭하는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유후장의 아버지 柳萬河인 것으로 보인다. 집안과 향당에서 백형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강조하고, 평생 주자서를 좋아하여 침식도 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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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1

    祭仲父處士府君文(1699, 遷葬時)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仲父인 處士 柳重河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당시는 공이 죽은 지 36년 되던 해였는데, 본래 매장했던 龍宮 羅浮山을 두고 일세의 地官들이 모두 不吉하다고 해서 情理 상 그대로 둘 수 없어 羽谷 남쪽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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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2

    又(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仲父인 處士 柳重河를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의뢰인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공을 가리켜 仲兄이라 칭하고, 자신의 나이가 76세라고 하는 내용으로 볼 때, 유후장의 아버지 柳萬河인 것으로 보인다. 善을 행하고도 보답을 받지 못하는 자는 그 자손에게 보답이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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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3

    祭察訪金公(啓祥)文(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察訪 金啓祥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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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4

    祭三從叔靜齋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靜齋 柳世禎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95

    祭從叔佐郞公文(代)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從叔인 佐郞 柳世哲을 위해 지은 제문의 代人作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96

    祭三從叔休軒公(世興)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三從叔인 休軒 柳世興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97

    祭再從叔處士公(昌河)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再從叔인 處士 柳昌河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298

    祭再從叔處士公(章河)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再從叔인 處士 柳章河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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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299

    祭族兄處士公(後徵)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族兄인 處士 柳後徵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8300

    祭族兄處士公(後良)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후장
    族兄인 處士 柳後良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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