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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鶴沙(166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여름에 학사 김응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상의 안부와, 일전에 학사가 표은에게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은 山水의 낙을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 대하여 나름대로 논변하는 내용이다. 말미에 생선과 젓갈을 동봉하는 뜻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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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汝廓(弘祚,165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주된 내용은, 둘이서 臨川에서 만나 이야기한 말이 항간에 전파되어 파문을 일으키게 된 연유와 시비, 대처방향 등에 대하여 심경을 밝힌 것이다. 파문의 내용은 위 「與金鶴沙(1643)」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李弘祚(1595∼1660)는 자가 汝廓, 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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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玉景和(之淸)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방문 요청을 받고 服中이라서 들어줄 수 없다는 뜻과 함께, 政事의 득실이나 세간의 시비에서 벗어나 산중에 사는 뜻을 간략하게 언급한 답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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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翼之(朝英,165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짧고 평범한 안부 편지이다. 한겨울에 친구 하나 없이 매화를 바라보며 지내는 고적한 심경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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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翼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짧고 평범한 안부 편지이다. 한 번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은 뜻을 간절하게 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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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性源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표은이 병중에 吳瀷(1591∼1671)으로부터 편지와 함께 시를 받고 감사하는 답서이다. 吳瀷의 자는 性原, 호는 愚齋이며, 본관은 咸陽이다. 黃汝一·李埈에게서 수학하였다. 저자와 교분이 두터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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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性源(166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주기에 저자가 몰하기 수일 전에 쓴 편지라고 하였다. 조만간에 水谷의 人士들이 黃山에서 모임을 갖는데, 그때 참석하여 죽기 전에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말미에 吳瀷이 부탁한 墓道文과 관련하여 몇 가지 변론하는 것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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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仲遵(夢賚)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南夢賚(1620~1681)에게 보낸 짧은 편지이다. 병중에 시를 지어 보내 병마가 멀리 도망가는 듯하고, 그 뜻에 감사하는 시를 지어 보낸다는 뜻을 표하였다. 南夢賚는 字가 仲遵, 號가 伊溪, 本貫은 英陽이다. 文科에 급제하여, 曹正郞·晋州牧使 등을 지냈다. 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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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泰而(時宗)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일상의 안부와, 모종의 물의에 처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金時宗은 鶴湖 金奉祖의 아들로서 표은의 처남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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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泰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일상의 안부와 童女가 상주가 되었을 때 지팡이를 짚는 문제에 대하여 답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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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裴德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裴德彦은 臨淵齋 裵三益의 손자 裵潤全이다. 향약에 대하여 문의하는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서로 道義로 교제하는 사이임을 전제하고, 裵潤全이 고을의 都任으로서 任事員에게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하여 충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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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勉餘(馥)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李馥(1626∼1688)이 임지에서 보낸 편지에 답한 것이다. 일상의 안부와 함께, 말미에 조부 金克一의 遺稿를 보내면서 교정과 함께 발문을 부탁하는 뜻도 덧붙이고 있다. 李馥의 자는 勉餘, 호는 陽溪, 본관은 星山이다. 1654년 明經甲科에 급제하여 司憲府掌令·宗簿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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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勉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임지에 있는 李馥에게 보낸 답서이다. 장마 때의 안부와 함께, 수해를 입은 어려운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영동 金江으로 이사를 해보고 싶다는 뜻을 말하면서 어떨 지에 대하여 가르쳐 달라는 부탁도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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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德心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宗子가 질병이 있을 때 제사를 주관하는 주체의 문제, 성묘나 가묘에서 곡하는 문제 등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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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時伯(克中)正叔(克正)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새로 집을 짓고 巫事를 행하는 일, 사계절의 제사를 지내는 일 등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다. 權克中·權克正은 모두 저자의 사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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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鶴沙兄兼奉從姪受而(㶵,166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학사는 金是榘이다. 金㶵은 저자의 생가 백부인 雲川 金涌의 차자 金是楗의 아들로서 종질이 된다. 과거공부를 하더라도 실지 공부에 힘쓰라는 뜻과 함께 백부 운천의 시를 인용하여 가문을 일으키라는 격려를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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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安安(泰基)坦坦(履基)(166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金泰基, 金履基는 위 金㶵의 아들이며 저자의 종손자이다. 小祥 때 練服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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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聖述(學堯)天休(學培,16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산방에서 『大學』공부를 통한 참된 학문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하는 내용이다. 金學堯와 金學培는 雲巖 金明日의 현손이며, 저자의 사종손으로서 모두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金學培(1628∼1673)의 자는 天休, 호는 錦翁이다. 12세에 저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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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天休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金學培가 服制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의를 하여 답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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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答天休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金學培가 服制·奠酌禮·서식 등 6개 항목으로 질문한 것에 대하여 답하고, 말미에 착실하게 학문하는 것을 칭찬하는 내용을 덧붙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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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天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金學培의 學力이 상당한 것에 대한 칭찬과, 집안에 喪이 있을 때의 제례에 대하여 답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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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天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金學培가 상중에 있으면서 예설을 질문해오고 자신이 응답하는 과정의 일반적인 내용이다. 말미에 禫祭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權子基의 일설을 인용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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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子邦烈邦衡邦杰(16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邦烈은 장자이고, 邦衡은 차자이고, 邦杰은 4자이다. 엄동설한 속에 세 아들이 다녀가고 난 뒤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으로 볼 때 당시 세 사람은 20살이 넘은 나이에 도산서원에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俗習을 씻고 독실하게 학문에 열중할 것에 대하여 신신당부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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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衡(166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차자 邦衡의 부인 친정의 小祥에서 행할 제례의 일단에 대하여 당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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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烈(165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장자 방열이 時祭와 墓祀에서의 예법과 관련하여 질문하는 편지를 받고 답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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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諸兒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아들들로부터 내용 미상의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주된 내용은 타읍이나 본읍의 부사, 군수와 관련한 평론을 일체 하지 말라는 당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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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子烈(166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장자 邦烈이 黃相中이 올린 상소와 관련하여 臨川書院에서 낸 通文의 주체에 참여한 행위를 질책하는 편지이다. 그 士論이 도의에 합당한 것인가에 대하여 엄중하게 반문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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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4자 邦杰이 외지에 있으면서 黨派에 휩쓸리는 것에 대하여 엄중하게 질책하는 내용이다. 世道와 人情이 천 층의 물결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그 원인이 바로 ‘黨’ 한 글자에 있으니 애당초 발을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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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재임 중에 있는 넷째 아들 邦杰에게 관리로서 ‘청렴·근신·근면’을 근본으로 하고, 지나치게 살피거나 나태하는 일이 없도록 충고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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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1666(현종 7)년에 넷째 아들 邦杰이 沃溝縣監으로 나가자 수령으로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충고하는 내용이다. 풍토가 다른 원지에 자식을 보낸 노경의 아버지로서의 노심초사가 드러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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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관소에서 외지로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편지를 받고 반가워하는 내용의 짧은 답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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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邦贊(165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金邦贊은 저자의 다섯째 아들이다. 편지의 내용은 禫祀를 지낸 후 삭망에 곡을 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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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子邦贊兼示孫呂重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呂重은 저자의 장자 邦烈의 장자이다. 편지를 받고 근황을 알게 되어 반갑다는 뜻과, 鄕中에서 고을 원에 관하여 일체 언급하지 말 것을 엄중하게 충고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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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子邦顯(166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邦顯은 표은의 일곱째 아들이다. 일상의 안부와 서원에서 일과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그렇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와 자식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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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呂重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일상 안부와 墓祀 기일을 알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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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先祖新寧縣監府君文(165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저자의 7대조 金永命(1398~1463)에 대한 제문이다. 壽川에 새로이 사당을 건립하고 신주를 移安할 때의 제문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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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代祖修撰府君五代祖通禮府君神主移安時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표은의 6대조 金漢啓와 5대조 左通禮 萬謹의 사당을 새로 건립하고 이안할 때의 고유문이다. 『표은집』의 「行狀」에 의하면, “수찬공(金漢啓)의 대가 다하여 신주를 땅에 묻게 되자, 종족들에게 고하기를, ‘신녕공(金永命)의 신주가 아직 있는데 어찌 차마 이분의 신주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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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宗會祠堂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어떤 의미의 행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종족들이 봄가을 모임을 시작하면서 사당에 고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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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謙可文(16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謙可는 雲川 金涌의 3자인 金是楨의 장자 金烋(1597~1628)로서 호가 敬窩이다. 『海東文獻錄』의 저자이다. 젊어서 문명이 높았고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康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못하고 42세로 몰하였다. 표은이 항렬은 叔行이고 나이는 1살 적었다. 이 글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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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長婦琴氏文(165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장자 邦烈의 부인 琴氏에 대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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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二愚(寏)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내용을 보면, 저자가 10세 때부터 문하에 출입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만년에 이웃에서 살아 조석으로 만나 질문하고 토론한 사이라고 한다. 나이가 18년 위였으므로 거의 父師와 같이 존경하였고, 특히 權寏이 정묘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고 의병활동을 한 것으로 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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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壺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호은 趙佺에 대한 제문이다. 권1 시에 함께 日月山을 유람한 기록이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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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獻卿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趙廷瓛에 대한 제문이다. 위의 호은 趙佺의 일족으로서 친교가 매우 두터웠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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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祖姑端人金氏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端人 金氏(1545~1631)는 저자의 조부 金克一의 누이로서 大姑母가 된다. 일찍 모친을 여의고 숙부 金珽에게서 성장하여 직장 柳瀾에게 출가하였고, 아들로 柳仁榮·柳仁健·竹谷 柳仁茂·猿溪 柳仁培를 두었다. 특히 원계 유인배는 그의 「家狀」에 의하면 저자와 내외종간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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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생가 백부 雲川 金涌과 부인 진성이씨의 합장 묘지명이다. 사후 48년이 지난 때인 1668년(현종 9)에 운천의 4자 金時棱의 자 金燾의 요청으로 지었다. 운천의 묘소는 애당초 臨河縣 동쪽 申谷에 있었고, 부인은 林塘에 있었는데, 운천이 현몽하여 물이 찼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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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雲巖 金明一의 현손인 저자의 제자 金學培(1628~1673)가 지은 3,500여 자의 장문 행장이다. 초간본의 제목은 「瓢隱先生金公行狀」이고, 金學培의 문집인 『錦翁集』권5에는 「崇禎處士瓢隱金先生言行錄」으로 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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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1671년(현종 12)에 眉叟 許穆(1595~1682)이 지었다. 저자의 제자 金學培의 「行狀」에 보면, 김학배가 허목에게 요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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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權瑎(1639∼1704)가 지었다. 權瑎의 자는 皆玉, 호는 南谷, 본관은 안동이다. 호조판서 大載의 아들이다. 1665년(현종 6)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정자·정언·경상도 암행어사·문경현감·대사간·대사성·강화유수·대사헌·부제학·승지·경기도관찰사·평안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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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墟碑陰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표은이 歿한 후 50여 년이 지난 시기쯤에 隸書에 능한 吳始復이 표은의 유풍을 듣고서 흠모하여 ‘崇禎處士遺墟’ 여섯 자를 써주고 돌에 새겨 마을을 표하라고 하여 지방 인사들이 입석을 도모하게 되었고, 李栽(1657~1730)가 그 일을 도우면서 음기를 짓게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268500
挽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시온문인 金學培·金啓光(1621∼1675)·金喜長의 만사 3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