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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六章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首句에 느닷없이 故字를 쓰고 있는데 다시 위를 계승하고 아래를 잇는 내역이 없는 이유를 질문했다. -갑자기 故字를 쓴 것은 이 장이 誠의 勇으로 天道를 발명한 것으로 위의 致曲과 自成 두 장구를 이어서 人道가 반드시 용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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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七章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發育峻極은 大德의 敦化인데 다만 洋洋으로 引起하고 禮儀威儀는 小德의 川流인데 문득 優優大哉로 발명한 이유를 질문했다. -發育峻極은 외면의 규모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洋洋하다고 했고 禮儀는 내면의 허다한 物項事目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優優大哉라고 말한 것이지 大德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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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八章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呂藍田은 愚而好用은 有位無德한 사람의 일이고 賤而自專은 有德無位者의 일이며 生今反古는 時措를 알지 못하는 자의 일이니 이 3가지 말을 朱子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아래의 글을 보면 位와 德을 對稱하여 말하고 있으나 時에 대해선 말하지 않기 때문에 呂氏의 학설이 正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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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九章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上焉과 下焉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말하며 만약 程子의 주장을 따른다면 方蛟峯의 학설과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이다. -上下는 周公 이상과 孔子 이하를 말하는 것으로 上을 王天下로 下를 覇天下로 하는 것은 아니다. 『朱子語類』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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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章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祖述堯舜’ 이하 4구절을 장구에서는 ‘兼內外該本末’이라 말하는데 이 4가지를 內外와 本末로 나눈다면 무엇이 本과 內가 되고 무엇이 末과 外가 되는가 물으며 韓古遺의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 견해를 여러 후대 선비들이 공격한 이유를 질문했다. -각 구절을 따라 분배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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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一章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聰明叡知는 生知의 德이요 寬裕溫柔 이하 4가지는 仁義禮智의 德으로 仁義禮智는 聖人과 凡人이 한가지인데 氣質이 순수한 자만이 능히 다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聰明叡知로 먼저 綱領을 세우고 그 아래 四德으로 條目을 나열하니 이것이 朱子의 뜻이고 역대 선유들의 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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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二章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惟天下至誠’과‘經綸天下之大經’과 ‘立天下之大本’과 ‘知天地之化育’은 앞장의 ‘致中和’와 ‘致和之達道’와 ‘致中之大本’과 ‘天地位萬物育’에 대응되는데 達道라 하지 않고 大經이라 하고 贊化育이라 하지 않고 知化育이라 하며 먼저 大本을 말하지 않고 大經이라 한 까닭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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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三章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이 장의 ‘微顯’ 두 글자가 鬼神章의 ‘微顯’과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편에 세 번 나오는 ‘微顯’의 정밀한 의미에 대해 자세히 듣고자 했다. -이 장과 鬼神章의 微顯에 비록 理와 心의 분간이 있으나 理와 心이 또한 둘이 될 수 없는데 구별한다면 오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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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或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明德이 心인가 性인가? 心은 大人赤子의 心이며 性은 本然氣質의 性인가? 만약 本然의 性이라면 어찌 生之謂性이며 氣質이라면 무슨 이유로 天命의 性이라 하는가? 赤子와 大人의 心이 純善하면 마음이 악한 자는 어디에 귀속시킬 것인가? 本心이 明德이 되는 까닭과 明德이 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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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故寔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大學』 서문에 대개 하늘이 生民을 내림에 곧 이미 仁義禮智의 性을 주지 않음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태어남에 한 개의 도리를 稟賦받으니 나에게 있는 仁義禮智의 性이 그것이다. 理는 모두 착하기 때문에 性도 또한 모두 착하다. 그러나 氣에는 淸濁粹駁이 같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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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大全故寔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張彦輔가 대궐로 갈 때 보내는 시에 ‘원컨대 중흥시킨 聖天子가 정사를 닦고 夷狄을 물리침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라 했다. -천지가 있고 義理가 있으니 의리를 강의하지 아니하면 천지의 大本이 설 수가 없으니 朱子書 한 부의 綱領은 다만 의리를 밝히는 것이고 시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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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朝故寔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國朝 龍飛御天歌에 穆祖大王이 처음에는 全州에 거주하다가 關東의 三陟으로 移居할 때 따라가기를 원하는 백성이 170여 가구였고 또 바다를 통해 德源府 湧珠里로 갈 때 70여 가구가 따라갔다는 내용이다. -어진 사람은 하늘이 민심을 주는 자이니 하루 仁을 행하면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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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潭集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에 능통했던 方潭 권선생의 평일 창수한 시문과 여러 글을 모아 선생의 6세손 진사 馨復씨가 책을 펴낼 때 써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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缾山集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정으로 동료들과 밀지를 논하다 흉악배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랐으며 정미년 벽서사건에서 죄를 입어 19년이나 귀양살이를 했고 풀려나 벼슬하다 虛名으로 나라를 그르치는 자를 꾸짖은 缾産 김선생의 문집을 그의 현손인 井星씨가 편찬할 때 써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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懶拙齋集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사림들이 그의 시에 나오는 구절로 호를 지어 부른 懶拙齋 이선생은 井谷 권선생의 문하로 평생의 시문을 문집으로 편찬할 때에 써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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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陽四難倡義錄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圃隱 鄭夢周의 충절을 계승한 永川에 壬辰倭亂이 발발하자 湖叟 정선생과 그 장자인 栢巖公, 贈 參判 정공과 최공 등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힘써 싸우다가 栢巖公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丁卯胡亂 때에는 掌議 손공이 창의하였고 丙子胡亂 때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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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蓉堂逸稿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빼어난 자질과 총명으로 寒岡 정선생의 문하에서 배웠고 임란에 郭再祐와 火旺山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관찰사의 막하에 종사하여 공을 세우니 조정이 嶺南調度使의 벼슬을 내렸고 西厓와 중국 장수들도 칭찬하였다. 관리로 많은 치적을 올리고 光海君 亂政으로 사직하고 물러나 다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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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六臣集序(代豊安君作)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군자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그 예를 端宗이 遜位할 때에 목숨을 바친 死六臣과 同德同心으로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으나 절의를 지킨 生六臣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바로 耕隱 李孟專, 漁溪 趙旅, 觀瀾 元昊, 文斗 成聃壽, 梅月堂 金時習, 秋江 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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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巖集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寒岡 鄭逑의 愛弟子 중의 한 사람인 畏齋의 형이요 復齋의 부친인 德巖 이선생은 임란에 郭再祐와 화왕산 전투에 자제를 거느리고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平亂 후에 冷泉亭 아래에 작은 재실을 짓고 도서를 읽으며 도의로 安貧樂道하였다. 德巖公의 언행과 저서가 매우 많았으나 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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寓庵集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위대한 儀表와 총명한 성품 및 贍博한 문장으로 일찍이 대과와 소과에 급제했으나 출사해서는 微官에 그치었다. 특히 제주도의 通判으로 있을 적에 선정을 베풀어 명성을 날리었으며 벼슬을 그만둔 후 귀향하여 후생을 지도하니 경주의 사림들이 극구 칭찬하였다. 우암 남공의 시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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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塢遺稿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일찍이 鶴峯 金誠一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으며 임란 때에 모친을 업고 피난하다가 왜적을 만나 자기 몸으로 어머니를 감싸 도망가니 왜적이 추격해 왔으나 태연하게 땅에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쓰니 왜적도 감동하여 피난 중에 해를 입지 않게 조처해 주었다. 어머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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釣巖遺稿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빼어난 자질과 효제의 행동으로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어버이 섬기는 일로 급선무를 삼아 주경야독하며 세상의 명리에 초연했던 釣巖 한공의 詩書와 記說과 箴銘 등 若干篇을 문집으로 엮을 때 증손 用羽의 부탁으로 써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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塤齋集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어려서부터 비상한 자질로 뛰어난 면모를 보인 塤齋 윤선생이 임란을 당해 모부인을 모시고 피난하였고 모친 별세 후에 養眞洞에다 작은 집을 짓고 동생인 篪亭公과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 또한 당시의 명사들과도 도의의 사귐으로 교유하였고 金烏書院의 이건에도 주도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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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山尹氏族譜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파평윤씨의 文肅公 현손 蕃이 平山으로 分籍되어 평산윤씨가 되었는데 여러 빛난 선조들의 사적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家乘이 심히 踈略하고 大同譜가 인출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던 중에 진사인 永燮과 宗燮이 온갖 고생을 한 끝에 이 족보를 편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문을 청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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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陽朴氏族譜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醴泉 衡湖에 사는 박씨들 12세 이상의 족보를 詳考할 길이 없어 殷山君의 후예로 殷山박씨라 하더니 지난해 신묘년 가을에 朴在圭씨가 우연히 삼척에 사는 朴周錫씨의 밀양박씨 족보를 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11대조 군수공과 12대조 현감공의 名諱와 官啣, 配位가 소상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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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賜五倫行實圖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五倫行實圖』를 온가족과 집안이 예의를 갖춰 읽기도 하였는데 장녀가 시집갈 때 빌어갔다가 돌려주지 못하고 죽은 지 10여 년 만에 사위집에서 책을 찾으니 4권 중에 제1권이 없어져 불충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김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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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庄節目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나라에 바치는 각종 세금은 기일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예 하회에서는 義庄이란 것을 만들어 기일 안에 賦役을 납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자세한 절차와 조목에 대해 책을 만들어 『義庄節目』이라 하고 그 의미와 그간의 경위에 대해 서술하여 서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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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邊鶴浦社養士契節目序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鶴浦는 경치가 빼어나고 그 빼어난 기운이 사람에게 모여 인재를 이루어 집집마다 시서를 읽고 강론하는 곳이었으나 근 백여 년간 적막한 곳이 되었다. 이에 안변부사로 가서 여러 명사들을 선발하여 『近思錄』을 공부하게 했는데 『近思錄』 공부가 끝나니 鶴浦 사람 李培春 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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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岐邑誌序(代家季作)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예로부터 郡邑에는 반드시 圖誌가 있었는데 그것은 建治의 沿革과 山川謠俗을 기록하여 지나간 자취를 증거하고 미래에 보여주기 위함이니 周나라의 職方과 漢나라의 輿地圖가 그것이고 우리나라의 勝覽도 또한 그 遺制이다. 다른 지역에도 거의 邑誌가 있는데 하물며 문헌의 고을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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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山書堂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敬義齋와 明誠齋 그리고 晩霽樓로 구성된 晦山書堂은 南野 박선생을 위해 지은 것으로 晦山의 의미는 朱子 晦菴과 退溪의 晦와 退의 의미로 본떠서 지은 것이다. 박선생은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질로 일찍이 榮達의 길을 포기하고 후생들을 지도하며 지낸 인물이다. 이 글은 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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潁陽精舍講堂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虎溪山 아래에 柳川公과 謹齋公을 모신 景賢祠가 있고 그 동쪽에 日邁와 서쪽에 月征의 夾室이 있는데 이 모두를 합하여 潁陽精舍라 한다. 두 공의 후손된 자들은 밤낮으로 공경하여 조상에게 累가 되는 일을 하지 말아야 精舍를 지은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는 내용의 기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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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海養士齋移建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김해부에 부임해보니 燕子樓 북쪽에 폐허가 된 작은 누각이 있어 물으니 옛날 沈能弼이 涵虛亭 舊址에 세운 養士齋라 한다. 그런데 김해부의 젊은 인재들은 遊興施設이 가까이에 있어서 공부는 하지 않고 쉽게 뜻을 상실하여 父兄들이 많이 걱정하였다. 이에 南冥과 濯纓 같은 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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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山書院講堂重修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南冥 曺植과 松溪 申季誠을 모신, 駕洛國의 古都 김해에 있는 新山書院이 오래되어 허물어진 강당을 중수하고 옛날 김해에 고을살이한 인연으로 인해 선비 盧以文이 찾아와서 기문을 부탁하기에 朱子 白鹿洞賦와 南冥과 松溪의 훈계를 인용하여 선비가 가야할 길 등을 부연 서술함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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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亭重修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自然亭은 醴泉 琴隱洞에 있는데 처사 박공이 짓고 이름 지은 정자로 박공은 英粹한 자질에 淹博한 經術을 지녀 나라를 지탱할 만한 인물이었다. 일찍이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집안에서 孝友를 돈독히 하고 賙恤을 다하는 등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덕을 닦아 나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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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敬堂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河回의 北潭 위 터에 萬壽堂이 있는데 이것은 先君이 지은 것이다. 오늘날 내가 별다른 탈이 없이 지내고 조정에 벼슬하여 큰 죄과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先君의 덕택이다. 이에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진 萬壽堂을 수리하고 그 편액을 그대로 쓰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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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峯實記跋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세 조정의 柱石같은 신하요 文宗의 顧命을 받은 신하로 幼冲한 임금을 保衛하다가 비명에 쓰러진 芝峯 皇甫仁의 문적이 모두 없어지고 다만 역사에 기록된 몇몇 著述과 唱酬詩文 그리고 편지글 약간을 모아 실기를 만들었는데 이 글은 그 실기의 끝에 붙인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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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貞武公實記續刊跋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家乘에도 전하지 않고 실기에도 실리지 않은 사적을 힘들게 찾아내어 제문과 편지글 그리고 『文獻備考』의 내용을 덧붙여 실기의 속간을 만들 때에 貞武公의 그간의 행적과 경위를 자세히 밝혀 쓴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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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陽集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松巢公의 堂姪로 일찍이 爲己之學을 배우고 만년에는 陶山門下의 여러 賢人들을 私淑한 湖陽 권선생의 유집을 선생의 현손인 相頊씨가 수집하고 訥隱 李光庭 선생이 교정하였는데 이 글은 그 유집의 끝에 붙인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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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川遺稿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백부 畏齋公이 우리 고을에서 文章軌範과 言論風采가 빼어나다고 평가한 愚川 정선생의 유고 4권에 붙인 발문이다. 愚川 선생은 총명한 자질로 가정에서 經史의 학문을 배웠으나 昏朝의 정치가 윤리를 무너뜨림에 문을 닫고 자연에 은거하며 벼슬을 포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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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山先生遺稿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淳靜하고 雅潔한 자질로 학문에 열중하였던 從先祖 巴山 선생이 불행하게도 요절하여 큰 뜻을 펴지 못했다. 아울러 저술한 것도 散逸되어 전하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백부 畏齋公이 禮安의 古家 등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유고를 만들었는데 이 글은 거기에 붙인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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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谷集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丙子胡亂 당시에 대신들이 主和를 주장할 때 재야의 선비로서 상소를 올려 이들을 처단하라고 하였으나 臺諫의 저지를 받아 임금께 올리지 못하게 되니 상소문을 안고 울며 桐溪 鄭蘊의 丙子箚奏를 읽고 시를 지어 뜻을 나타내니 桐溪가 지극히 칭찬하였다. 그 뒤 三學士의 被禍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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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晩隱感慕錄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이 感慕錄은 丹溪處士 柳宜三이 그 先大人인 晩隱公의 遺事와 遺訓을 찬술한 책이다. 이 책에는 자손을 義方으로 훈계하고 종족을 敦睦으로 처신하며 바깥을 연모하지 않고 오로지 내면에만 마음을 쓰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獨室히 행하는 군자의 면모를 담고 있는데 이 글은 그 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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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三塘集戊午疏啓後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戊午士禍가 일어났을 때 아무도 두려워 말을 못하는 상황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여러 현인들의 억울함을 씻어 달라는 三塘 김선생의 戊午上疏가 三塘集에 실려 있는데 이 글은 그 상소문의 뒤에 써 붙인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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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題毅宗烈皇帝御筆寶帖後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金重佑의 從先祖 忘窩 선생이 중국을 갔다가 올 때에 가져와서 후손 重璉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明나라 毅宗皇帝의 글씨가 간간이 화재로 지면에 불탄 흔적이 있으나 글자는 완전하였는데 이것을 褙接하여 筆帖을 만들었다. 이 글은 그 필첩에 쓴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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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孝子樂育齋金公殉父事蹟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蘭翁處士의 아들인 효자 樂育齋 金始器가 그 부친을 위해 殉孝한 사적에 쓴 발문이다. 효자는 내앞마을 의성김씨로 부친의 초상에 香徒꾼들이 주위 사람들이 주의를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홍수로 불어난 강물을 건너 묘소로 運柩하던 중 일어난 사고에서 부친의 靈柩를 구하고 목숨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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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延安宋公事蹟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忠孝烈보다는 못하지만 법정에서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위해 서로 죽기를 자처한 宋樀과 宋構 형제의 사적을 여러 선배들과 士林의 기록에 쓴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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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題族姪彛好所糚先祖拙齋先生九首詩小(屛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謙菴과 西厓 두 선조의 心學과 충효의 旨訣을 이어받은 6세조 拙齋 선조가 자손들을 위해 지은 8수의 시를 悔堂公이 손수 쓰고 그 동생인 寓軒公에게 後識를 쓰게 하고 이것을 병풍으로 만들었다. 근래에 족질인 彛好가 좀 더 보완하여 다시 병풍을 만들어 자리의 좌우에 두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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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權判官原從錄券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공신으로 策錄하는 盛典에 判官 權慶星도 그 일원이 되었는데 후손들이 그 錄券을 가지고 와서 보이기에 그 끝에다 쓴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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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玉溪姜孝子遺稿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고 江浦의 長德에게 배워 鄕解를 거쳐 會試에 나아갔으나 강관의 태도를 보고는 과거에 대한 생각을 접고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는 일에 전념한다. 한번은 겨울에 뱀을 구해오기도 하고 이웃집 개가 젖을 먹이지 못하니 자기 집의 개가 가서 먹여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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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東寶帖後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젊은 시절 仲君 士能과 함께 서울에 과거보러 갔을 때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오래된 書帖을 팔려고 나왔는데 살펴보니 楊士彦, 宋寅, 李山海, 韓濩, 李玉山의 筆帖이었다. 내가 사서 仲君에게 보이니 仲君은 서예를 너무 좋아하여 애지중지하였는데 仲君이 죽고 그 아들도 죽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