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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改葬時○代士林作)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文肅公 樊巖 蔡濟恭을 改葬할 때에 사림을 대신하여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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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寡齋(鎭東)文(代作)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평소 河回를 너무 좋아하여 자주 내왕하며 지냈던 寡齋 李鎭東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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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大父臨汝齋公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經史와 百家에 두루 통하고 비록 낮은 벼슬이나마 사양하지 않고 출사하여 淸廉과 근신으로 자기를 지키고 仁愛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물러와서는 예전처럼 경전연구와 차와 약으로 선조 저술을 교정하고 정리하는 등 학자로서의 길을 간 삼종대부 臨汝齋公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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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父畏齋府君文(緬禮時)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백부 畏齋 부군의 묘소가 좋지 않아 좋은 곳으로 緬禮할 때에 생전의 정의를 서술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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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江皐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河回에서 尙州로 나간 일족인 江皐 선생은 빼어난 자질과 학문으로 출사하여 세자를 잘 보좌하고 경연에서 강의도 하였다. 만년에 물러와 경전을 연구하며 후생을 지도하고 선인의 유고를 간행하며 족보도 편찬하였다. 이 글은 공의 초상에 그간의 회포를 서술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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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葛川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성균관에서부터 함께 공부하였고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함께 활동하며 여러 가지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葛川 金熙周를 조상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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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新野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자신과 인척이며 훌륭한 가문의 후손으로 빼어난 자질과 높은 학문을 지닌 新野 이공이 만년에 출사하여 東宮을 보좌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물러와서는 후학을 지도하는 등 고을의 모범이 되다가 별세하였다. 이 글은 그간의 정의를 서술하여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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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西思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훌륭한 가문의 후손으로 가정을 잘 다스리고 鄕黨을 두루 愛恤하였으며 장수함으로 벼슬을 받아 영광이 三代에나 뻗치었으며 西思亭을 지어 유유자적하다가 별세하였다. 이 글은 그간의 정의를 서술하여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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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俗隱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공은 명문가의 후예로 濂洛關閩과 朱書節要 등을 공부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여 벼슬하고 물러와 자연 속에 은거하며 후생지도를 하려다가 갑자기 서거하였다. 이 글은 그 애석한 정의를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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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嘉山文(爲豊安君松留時作)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이 글은 洪景來의 반란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父子가 함께 죽음을 맞이한 가산군수 鄭蓍의 충절을 기려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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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潭陽(憲儒)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金烏山 아래에서 卜居하며 지내던 潭陽 李憲儒를 조상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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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上舍聖爲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인근에 살면서 先祖 때부터 世誼를 지켜왔고 자기 대에 와서도 친근하게 지내던 진사 金聖爲를 조상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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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修撰(元祥)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文元公의 고가에서 태어나 우아한 氣味와 端潔한 性行으로 벼슬에 올라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갑자기 별세한 修撰 李元祥에 대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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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丈(寅標)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孤山의 명문가 출신으로 가난해도 부귀를 구하지 않고 안빈낙도하며 지내던 李寅標 선배에 대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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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獨山聖文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가정을 孝友로 다스리고 鄕黨에 모범이 되었던 독산 金聖文公이 질병으로 별세함에 그 서운한 심정을 토로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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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致中(汝幹)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젊은 시절 도산에서 뵙고 교류하던 致中 李汝幹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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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君翊(光一)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鄕黨의 모범이 되고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으며 사물을 정성으로 대하고 언제나 畏敬心으로 자신을 지키던 君翊 李光一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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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上舍(文欽)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晉陽世閥의 후예로 고결한 인품과 높은 학문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품은 뜻을 펼치려다가 질병에 걸려 별세한 進士 姜文欽을 조상하여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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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叔(行春)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詩禮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정의 훈계를 받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으며 시골에 거처하면서도 분수에 맞게 살던 삼종숙 行春의 별세에 성균관에서 달려와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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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叔(同春)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이웃에 살며 언제든지 형제나 숙질처럼 지내던 삼종숙 同春이 별세함에 그 비감한 정회를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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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國春)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돈후한 풍모와 淳謹한 행동으로 安貧樂道하며 지내던 재종숙 國春이 별세함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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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鳳祚)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선고와 동갑으로 다정하게 지내며 나를 잘 돌봐주던 종형 鳳祚씨가 별세함에 그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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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日成(岡祚)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宗黨에서 그 어진 것을 칭찬하고 鄕里에서 그 착함에 탄복하며 조정에 추천했으나 끝내 출사하지 못하고 3년 간 병으로 고생하다 별세한 족제 日成 岡祚의 영혼을 위로코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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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弟大圭(奎祚)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나이는 비록 12살이나 차이나지만 삼종제로 학문과 교유, 종당과 가정의 일로 친밀하게 지내던 大圭 奎祚가 별세함에 그 비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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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弟士能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의성의 校村寓舍에서 별세한 동생의 초상에 국상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제문을 지어 동생의 영혼을 위로한 제문이다. 형제로 태어나 36년을 살았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지내지 못하고 실제로 함께 한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모든 면에서 형보다 나은 동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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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姪士賓(宗睦)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한 마을에서 동문수학하고 형제간처럼 친밀하게 지낸 종질인 士賓 宗睦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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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啓商(玄祚)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족제인 啓商 玄祚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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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弟仲玉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명문가의 후예로 빼어난 자질과 넉넉한 학문으로 一命의 郵官에 그친 삼종제 仲玉의 초상에 애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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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姪大諫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한 가문과 한 고을의 輿望을 저버리고 66세를 일기로 별세한 삼종질 大諫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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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守軒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朱書를 읽고 禮說을 공부하며 일상생활에서 효도와 우애를 실천하고 立齋와 江皐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족질 守軒은 拙齋의 9수 한시에 跋文을 쓰기도 한 군자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늘이 수명을 연장해 주지 않아 지하의 修文郞이 됨에 비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제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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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弟參奉而恭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조카인 진명과 쌍벽을 이룰 만큼 가문의 기대를 모았던 종제 參奉 而恭의 초상에 애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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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文叔(憲睦)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才器가 뛰어나 가문과 향당에서 촉망을 받아 출사한다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인재이던 족질 文叔 憲睦의 초상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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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眞城李氏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자신에게 시집와서 평생 고생만 하다가 변변찮은 대접도 한 번 받지 못하고 먼저 간 망실 眞城이씨의 大祥이 임박함에 그간에 지낸 정의를 생각하니 애통한 마음 금할 길 없다는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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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儀瑞(世鳳)哀辭 4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儀表가 端潔하고 性行이 雅飭한 儀瑞 崔世鳳을 성균관에서 만났는데 경전공부와 音律, 功令書札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불행하게도 나이 20여 세에 서거하였는데 이 글은 공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담은 애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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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致玉(玶)哀辭 4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그의 문장을 보고 그 문장의 典重和婉함과 기상으로 미루어 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던 屛谷 선생의 후예인 致玉 權玶이 서거함에 애통한 심경을 금할 길이 없는데 이 글은 그러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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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上舍汝晦(燁春)哀辭 5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조실부모하고 우리 백부이신 畏齋公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여가로 학문에 진력, 크게 성취한 진사 汝晦 燁春이 서거함에 애통한 마음 억누를 길이 없었는데 이 글은 그간에 지낸 사정과 情誼를 담은 애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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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正言叔潤(渤)哀辭 5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근래 東平의 鄭吉士가 셋이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인 正言 叔潤 鄭渤은 孝悌와 純慤의 행실로 江右와 江左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요절함에 슬픈 심정을 주체할 길이 없는데 이 글은 그런 마음을 담은 애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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觚銘(抄啓應製) 5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땅을 본받은 觚와 덕의 문채를 본받은 繩墨으로 마음가짐과 행동제어를 觚로 하네. 觚는 군자가 숭상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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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線紅帶銘 5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옛날 학성에서 고을살이할 때 先妣께서 정성으로 만들어주신 큰 띠를 先妣가 별세하고 오랜 뒤에 승진하여 직접 띠게 되었다. 이에 옛 상자에서 찾아보니 빼어난 솜씨로 만든 큰 띠가 완연하게 있어 先妣의 정성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이어 명을 지어 가로되, “실의 긴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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議政府左議政贈諡文貞公一松沈先生墓碑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진왜란 때에 檢討侍講의 반열에서 한 해에 正卿으로 발탁되었고 광해군이 왕위를 계승할 때에 李完平과 함께 相府에 들어가 정의를 지키며 奸黨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一松 沈喜壽의 묘비명을 천리길에 廷秀가 지은 家狀을 가지고 冑孫 啓元씨가 영남으로 찾아와 요청하기에 써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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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中樞府事贈諡襄武公博淵金公神道碑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진왜란에 萬戶를 지낸 사람으로 의병을 일으켜 참전해서 특이한 공을 세워 資憲大夫 都摠管에 이르렀으나 나라에서 베푸는 恩典에서 누락되었는데 純宗 병술년에 밀양 유생 金志元의 상소를 禮曹判書兼大提學 趙仁永이 보고하고 이듬해에 그 공적을 감안하여 조정에서 襄武란 시호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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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忠祠廟庭碑銘(幷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인해 大丘縣令 崔誡는 兵曹參判을, 그의 형 崔認은 司憲府持平을, 그리고 그 조카인 崔東輔는 戶曹參判을 각각 제수받았다. 그 후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던 三賢의 사적을 모아 『三忠錄』 한 질 2책을 만들고 특히 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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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基殿參奉樂琴軒李公墓碣銘(幷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임란이 발발함에 의병을 모아 참전하였는데 처음에는 대장이 되었다가 龍宮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서는 金垓에게 대장을 양보하고 부장이 되어 적을 무찌르는데 전심전력하였다. 경주에서 김대장이 전사함에 고향 禮安으로 返葬했고 그간의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났다. 西厓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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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陵參奉臥遊堂朴公墓碣銘(幷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부친 健齋公의 명으로 旅軒 張顯光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고 부친의 순절에 스승의 명으로 빈소를 지키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永崇殿 參奉이 되고 淸兵이 침입했을 때 認齋 崔晛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가 임금의 항복 소식을 듣고 해산했다. 그 뒤에 齊陵參奉이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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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威縣監懷堂柳公墓碣銘(幷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孝宗 때의 服制 문제로 인한 禮訟論爭에 영남사림의 대표로 상소하여 자신의 뜻을 밝혔고 軍威의 현감으로 부임해서는 전임 현감이 관아에서 죽어 폐허가 된 관아를 수리하라 명하고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깨끗이 해결하는 등 치적을 올린 풍산 柳世哲의 묘소에 쓴 묘갈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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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軒鄭公墓碣銘(幷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동생 守菴公과 함께 旅軒 張顯光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배우고 또한 寒岡, 大菴, 芝山 등 여러 선생에게도 배웠다. 그리고 徐樂齋, 朴健齋, 郭省庵, 孫慕堂 등과도 막역하게 교유하였다. 성품이 담박함을 즐겨 愚軒이라 自號하며 은거하였는데 공은 烏川人으로 자는 汝燮이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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軒張公墓碣銘(幷序) 26(贈吏曹判書安襄公行禮曹參判延福君松雪)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世祖 시대에 李澄玉이 吉州에서 반란함에 공이 內贍寺僉正으로 鎭北將軍 康純의 막하에 나아가 智謀를 발휘하여 賊徒를 토벌하고 돌아와 공신에 冊錄되고 벼슬이 嘉善大夫 禮曹參判 世子右副賓客 五衛都摠府 副摠管 延福君에 이르렀다. 원래 묘소에 작은 비석이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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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文館校理寓軒柳先生墓碣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退溪의 학설은 拙齋가 절충했고 拙齋의 道學仁愛의 旨趣는 寓軒이 드러내어 밝혔다고 한다. 寓軒의 휘는 世鳴이요 자는 爾能으로 어려서부터 효성과 학문이 뛰어났고 詞章의 밖에 潛心할 性理說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사를 시작으로 增廣文科를 거쳐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고 마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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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蒙敎官尤園李公墓碣銘(幷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百弗庵 최선생의 姪壻요 大山 이선생의 문하로 성균관에 유학하였으며 童蒙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했다. 병으로 사절하고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계발에 힘썼다. 공은 全義人으로 휘는 謙胤이요 자는 牧之며 호는 尤園인데 이 글은 공의 묘소에 쓴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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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賓寺直長竹菴許公墓碣銘(幷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이좌공의 휘는 景胤, 자는 士述로 김해허씨이다. 어려서 부친 參奉公에게 人道의 급선무와 무엇으로 충효에 이를 수 있는가를 묻는 등 학문에 큰 관심을 보여 참봉공의 기대를 받았다. 임란이 발발함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咸陽 雲峯으로 피난을 갔는데 왜구가 首露王陵을 파헤쳤다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