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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8951

    答族叔子强別紙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廟制 등과 관련해 답변한 내용 가운데 견해상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952

    答族叔子强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집안의 우환과 병으로 수개월간 소식을 전할 겨를이 없었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오랫동안 연마한 정밀한 가르침이 홀로 공부하는 자신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서로 편지로 논의한 내용 가운데
    출처 : 유교넷
  • 268953

    答族叔子强別紙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역시 ‘睹聞’의 해석과 관련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내용이다. 萬事의 가운데에서 조짐을 스스로 깨달아 非道를 막아 道를 보존하려는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外面의 聲色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事物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思慮
    출처 : 유교넷
  • 268954

    答族叔子强(玄冠疑辨)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冠禮에서 사용하는 관의 유래와 그것의 폭 및 높이, 둘레 등에 대한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玄冠은 殷代의 緇(布)冠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周代에 들어와 정비를 보게 되었다. 그것의 폭은 주대에 四寸五辟으로 정해졌으나 「三禮圖」
    출처 : 유교넷
  • 268955

    答族叔子强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冠制에 관한 보충질의에 대해 답변한 내용이다. 周代에 冠禮의 제도가 정비된 이래로 程子冠·東坡冠의 법속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古制를 준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朱子가 그것들을 종합해 만든 법속 역시 古制에 근거하
    출처 : 유교넷
  • 268956

    答族叔子强(深衣輯考辨疑)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유건휴가 저술한 『深衣輯考』를 보고 深衣의 제도와 관련해 시각차가 드러나는 부분을 지적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957

    答族叔子强(再論深衣輯考辨疑)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유건휴의 『深衣輯考』와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보충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8958

    答族叔子强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叔父 柳子强(健休)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冠無攝盛說이 누구의 학설인지, ◦退溪가 渾淪을 말한 점에 비추어 과연 主理·主氣를 分別했는지, ◦四端·七情이 모두 情으로 分別이 없기 때문에 四端도 不中節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朱子가 비록 坤復之間(無極)을
    출처 : 유교넷
  • 268959

    與寒坪族兄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寒坪에 살고 있는 族兄에게 보낸 편지이다.先祖 柳友潛(1575~1635)의 『陶軒集』의 편찬에 있어 수정 또는 보완할 부분을 지적한 내용이다. 먼저 先世의 逸稿를 빠짐없이 모아 치밀하게 정리 편집함으로써 불후의 작품으로 남도록 한 노고에 찬사를 보냈다. 兄 應瑞(柳炳
    출처 : 유교넷
  • 268960

    與寒坪族兄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寒坪에 살고 있는 族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로 찾아낸 先祖 典翰府君의 竹西樓에 관한 詩를 柳義孫의 문집 『檜軒集』의 말미에 첨부하도록 권유한 내용이다. 그 같은 사례는 張興孝의 『敬堂集』 끝에 季氏 張處士의 詩가 붙어있는 것이나 權韠의 『石洲集』 末卷에 그의 아들의
    출처 : 유교넷
  • 268961

    與族弟耳仲(鼎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弟 柳鼎文(1782~1839)에게 關東지방을 유람하면서 보낸 편지이다. 龜院에서 열리는 鄕飮酒禮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면서, 伴鶴亭·武陵島 등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즐기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출처 : 유교넷
  • 268962

    答族姪誠伯(致明,1818)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姪 柳致明(1777~1861)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명승지의 유람을 위한 준비와 講討의 계획 등으로 바쁜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新婦의 親迎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친영하는 것은 古禮가 아니며, 친영을 하지 않고 집으로 왔다면 先
    출처 : 유교넷
  • 268963

    答族姪致正(1831)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族姪 柳致正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後生들 가운데 讀書를 해도 깊이 천착하는 예가 드물고 箚錄의 講論도 드문 상황이지만, 편지에서 논의한 講論의 文義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칭찬을 보냈다. 그러나 箚錄은 기록상의 오류도 없지 않은 데다 논박도 해야 하기 때문에
    출처 : 유교넷
  • 268964

    上從兄(1826)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兄에게 보낸 편지로 先山의 廢祭와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내용이다. 선배들은 모두 曾祖 이하 廢祭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자신의 생각으로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寒岡(鄭逑)이 伯考만 폐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繼葬일 경우 行祭하도록 했던 점에
    출처 : 유교넷
  • 268965

    上伯兄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伯兄 柳炳文에게 보낸 편지이다.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묻고, 자신은 오후만 되면 작은 冊子를 갖고 강 언덕으로 나가 하루 종일 지내다 오거나 아이들과 沙場에서 놀며 더위를 잊고 지낸다며 소식을 전했다. 지난번 閒坪에 있을 때 姻戚 趙汝涵이 八友軒 趙普
    출처 : 유교넷
  • 268966

    上伯兄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伯兄 柳炳文에게 보낸 편지이다.환절기에 건강은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閒坪에서 돌아온 다음 아이의 冠禮를 준비하고 있음을 전했다. 혼인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례를 행하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비웃기는 하지만, 冠禮와 婚禮가 각각 다른 예법이니 만큼
    출처 : 유교넷
  • 268967

    上伯兄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伯兄 柳炳文에게 보낸 편지이다.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은 다음,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자신은 眼疾이 재발해 고생하는 데다 肺病도 있어 讀書를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小祥을 치른 姪婦의 비통한 모습에 안쓰러워하고 있는 것 등에 관한 일들을 알렸다
    출처 : 유교넷
  • 268968

    上伯兄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伯兄 柳炳文에게 보낸 편지이다.1823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壺谷 柳範休의 喪禮를 맞아 掩首·襲殮 등에 있어 程子冠을 준용하는 것이 先賢의 예이기는 하지만, 그 제도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儀禮註疏』에 의거하는 것이 어떨지를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268969

    答從姪而春(致晦,1832)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가을날 古寺에서 수십 일간 함께 지내며 고생했던 것에 위로를 전하면서, 보내준 衡門詩를 평가하며 大旨나 素材는 堅實한 편으로 근본적인 수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고할 부분이 다소 있음을 지적했다
    출처 : 유교넷
  • 268970

    答從姪魯應(致奎)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1832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莊陵參奉에 除授된 것을 축하하는 편지에 대해 出仕하지 않을 뜻을 밝힌 내용이다. 뜻밖에 관직에 제수된 것에 대해 가문에서는 출사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신은 세상을 속이며 명성을 훔칠 생각
    출처 : 유교넷
  • 268971

    答從姪季溫(致直)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直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神主를 사당에 모시는 절차와 시기에 대한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練祭 뒤에 祔祀하는 절차는 사망에서부터 祥禫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周禮를 따르는 것이 타당하며, 大祥·卒哭과 祔祀를 같은 날 행하기보다 그 다음날 행하
    출처 : 유교넷
  • 268972

    與從姪季溫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直에게 보낸 편지이다.大禫 전에 小禫을 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先儒들이 언급한 것이 없으며, 굳이 같은 달에 지내겠다면 좋은 날을 잡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
    출처 : 유교넷
  • 268973

    答從姪致覺再從孫宅鎭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覺과 再從孫 柳宅鎭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禫祭를 지내기 전인데다 다시 喪事까지 겹친 상황에서 조정에 천거되었을 때 先祖의 은덕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행하는 宴樂을 폐지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別廟에서 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조언했다
    출처 : 유교넷
  • 268974

    答從姪致馨(1831)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從姪 柳致馨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承重孫의 처가 남편을 따라 斬衰服을 입도록 되어 있는지와 『朱子家禮』에 시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시부모의 상을 맞아 三年服을 입는 것은 宋 이전부터 정해진 것으로 適子婦에게 適孫
    출처 : 유교넷
  • 268975

    答從子致韺(1828)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조카 柳致韺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子婦가 適婦일 경우 朞年服을 입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適子婦에게 適孫婦가 없을 때 庶婦가 服을 입어야 한다면 適婦로 간주하여 입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시할머니가 있을 때는 適婦로, 시어머니가 있을 경우
    출처 : 유교넷
  • 268976

    與再從孫羲鎭衡鎭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再從孫 柳羲鎭·柳衡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祖父 柳正源(1702~1761)의 遺札을 찾아볼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며칠 전 金溪에서 할아버지 편지 한 통이 宣城의 어느 집안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마 晩湖 李世靖(1730~1767)과 왕래한 편지인 것 같다. 거기
    출처 : 유교넷
  • 268977

    答再從孫箕鎭別紙(1830)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再從孫 柳箕鎭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庶婦가 복을 입을 때 承重의 예에 따라 삼년복을 입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의 논의에서 기년복으로도 충분하다고 한 것은 앞으로의 상황에 비추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承重의 대우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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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78

    答再從孫宅鎭(1832)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再從孫 柳宅鎭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이 저술한 『小學章句』 4책과 『小學童子問』 1책의 인쇄를 위한 필사본을 검토하고 보내면서, 註釋을 別行에 大書한 것 등이 『朱門章句集註』와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들 저술의 寫出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註
    출처 : 유교넷
  • 268979

    寄伯兒致喬(1806)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맏아들 柳致喬에게 보낸 편지이다.科擧에 응시하는 아들에게 意志와 精神을 집중하도록 당부함과 동시에 科場에서 지켜야 할 각종 요령을 알려준 내용이다. 行步와 出入을 점잖게 하고, 근신하는 자세를 지키며 떠들지 말고, 서책을 들고 입장하지 말고, 입장한 다음 좋은 자리를
    출처 : 유교넷
  • 268980

    寄伯兒致喬(1807)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맏아들 柳致喬에게 보낸 편지이다.아들이 공부한 내용을 점검하고 독서할 책들을 소개한 내용이다. 『尙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春秋傳』은 빌리지 못했지만 『胡氏傳』은 빌렸으니 春秋筆法에 대해 한번 살펴
    출처 : 유교넷
  • 268981

    寄孫兒鼎欽(1827)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손자 柳鼎欽에게 보낸 편지이다.객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자에게 안부를 묻고 올바른 처신을 당부한 내용이다. 객지의 생활에서 세월을 허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진실한 마음과 공경한 자세로 도리에 맞게 하고, 언동을 바르게 하여 농담을 삼가며
    출처 : 유교넷
  • 268982

    讀書瑣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大學』·『中庸』·『論語』·『孟子』를 읽고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요점과 함께 자신의 所懷를 메모형식으로 기록한 學記類의 저술이다. 경전의 해석에 있어 오류가 있거나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적시하고 자신의 견해를 부연했다. 『대학』에 관한 것은 53개 항목, 『중용』은
    출처 : 유교넷
  • 268983

    讀書瑣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易經』·『詩傳』·『書傳』·『儀禮通解』·『周禮』·『春秋』를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한 저술이다. 『역경』에 관한 것은 31개 항목, 『시전』은 7개 항목, 『서전』은 8개 항목, 『의례통해』는 40개 항목, 『주례』는 4개 항목,
    출처 : 유교넷
  • 268984

    巖齋記聞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東巖亭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族祖 東巖 柳長源(1724~1796)을 찾아가 배울 때 『大學』·『大學或問』·『聖學十圖』·『論語』를 강론하면서 질의 응답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메모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年譜에 의하면 저자는 22세 때인 1794년(정조 18) 형인 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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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85

    杜陵日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1808년(순조 8) 杜陵에 머물고 있던 損齋 南漢朝(1744~1809)를 찾아가 배울 때 수학의 과정들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일기이다. 그는 평소 남한조의 학문을 흠모해왔으며, 몇 차례에 걸쳐 편지로 질의하다 이 때 직접 찾아가 배우게 되었다. 남한조는 그를 畏友로
    출처 : 유교넷
  • 268986

    泉齋講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立齋 鄭宗魯(1738~1816)를 찾아가 배울 때 선생과 질의 응답한 내용 및 南漢皜(1760~1821) 등과 함께 강론한 내용들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가 43세 때인 순조 15년(1815) 정종로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에는 講席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과 先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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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87

    自警錄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바를 단편적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道學者로서의 경직된 자세를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일상에서의 겸허한 태도를 견지하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주요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지나친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국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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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88

    管窺僭言 5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자신의 저술에 대한 배경과 경위를 설명한 내용이다. 經傳을 비롯한 先賢들의 저술을 읽고 설명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한 부분 또는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저술한 것이다. 참람하고 망령된 행위로 스스로를 치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함께 논리성
    출처 : 유교넷
  • 268989

    謾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性理學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제기된 각종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退溪學派의 理發氣隨·氣發理乘說에 근거해 四端七情說에 대한 각종 주장들의 모순을 제기한 것, 宋代 義理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거나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음을 강변
    출처 : 유교넷
  • 268990

    釋宮補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宮廟 내부의 구조에 관한 것을 수록한 朱子의 『儀禮釋宮』을 보완한 내용이다. 중국의 옛 宮室에 관한 제도는 李如圭가 처음으로 모아 편집한 적이 있으나, 朱子가 이를 교감하여 그것의 位置와 名物 등에 관해 정연하게 정리했다. 그동안 그 법도가 모범이 되어 크게 부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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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1

    琴律說攷解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朱子大全』에 수록된 琴律說을 初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것으로, 가야금의 음률에 관해 설명한 내용이다. 주자의 琴律說은 蔡西山과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訂正된 것으로 스스로도 정밀하여 추호의 오차도 없다고 자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상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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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2

    聲律辨攷解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朱子大全』에 수록된 聲律辨을 初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내용으로, 가야금의 음률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 내용이다. 주자의 聲律辨은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을 바로잡아 정리한 것으로 내용을 깊이 파악하고 있어 더 보완할 것이 없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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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3

    西遊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순조 17년(1817) 볼일 때문에 漢陽에 갔다가, 그곳과 함께 松京과 江都를 유람하며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한양에서는 釋菜酌獻禮에 참석하여 그것이 儀禮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눈여겨 살펴보았고, 李周禎이 留守로 있는 松京으로 가는 길에 조상들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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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4

    北遊錄(上)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關東地方과 金剛山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일기이다. 저자는 평소 『方輿志』를 즐겨 읽으면서 각 지방의 역사와 山水의 근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항상 마음에만 두고 있었을 뿐 古人들이 배움을 찾아 四方을 다니던 방식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 것을 한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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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5

    北遊錄(下)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10월 9일 侍中臺에서 關東六湖(平湖·花津湖·永郞湖·靑草湖·月松湖·洛山湖)가운데 가장 경관이 뛰어난 平湖의 경치를 구경했다. ◦10일 劒峰湖 주위의 경관을 구경하고 參奉 全庸彦의 집에 숙박하면서 그 지방에 文名이 있는 全尙彦과 詩藁를 교환했다. ◦12일 文川高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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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8996

    南遊錄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50세 되던 해인 1822년(순조 22) 良佐洞과 慶州 일대를 비롯해, 淸河 內延山, 盈德 八角山, 靑松 周王山을 두루 유람하면서 旅程과 感懷를 기록한 일기이다. 일기의 말미에서 저자는 비록 東南의 한 구석을 구경한 것에 불과하지만 慶尙左道의 山脈과 水源이 나누어지는
    출처 : 유교넷
  • 268997

    東遊錄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57세 때인 1829년(순조 29) 存齋 李徽逸의 書院 위패 봉안과 葛菴 李玄逸의 묘소 移葬을 계기로 寧海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저자는 箕城(平海)에서 咸興에 이르는 북으로의 여행과 月城에서 野城(盈德)에 이르는 남으로의 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丹丘(寧
    출처 : 유교넷
  • 268998

    家禮攷訂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자신이 古今의 家禮 가운데 핵심이 되는 부분이나 訂正해야 할 부분을 모아 저술한 『家禮攷訂』의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 저자가 40세 때인 1812년(순조 12)에 저술한 것이다. 과거 蔡謝上이 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공손하고 절도 있는 행동으로 외면상 威儀를 갖추는
    출처 : 유교넷
  • 268999

    冠服考證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각종 經傳과 註疏를 토대로 士大夫의 冠服에 관한 역사적 전말을 검토한 자신의 저술인 『冠服考證』의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저자의 나이 55세 때인 1827년(순조 27) 저술한 것이다. 옛날의 聖人들이 天地를 형상화하여 冠服을 제정한 이래 周代에는 그것이 정비되었으나
    출처 : 유교넷
  • 269000

    小學章句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휘문
    朱子의 『小學』을 토대로 그것의 本源과 함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 목적에서 자신이 저술한 『小學章句』의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저자의 나이 58세 때인 1830년(순조 30) 저술했다. 聖人들이 학교를 세운 목적은 人倫·禮樂에 있었으며, 어릴 때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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