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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9051

    明德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玉溪 盧禛(1518∼1578)이 『대학』의 首章에서 10장까지를 明德으로 풀이한 것에 대한 유성룡의 견해를 듣고 적은 것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유성룡은 “수장에서 이미 明明德을 풀이 하여 남김이 없고, 傳文이 각각 한 가지 일을 풀이하여 治平章에서는 治平을
    출처 : 유교넷
  • 269052

    三十活計圖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四書三經에서부터 『皇明理學錄』에 이르기 까지 30종의 서적을 생활의 방도로 삼는다는 설명이다. 처음에 이 서적의 가운데 들어가보니 당황스럽고 의심만 있었으며, 중간에 경전을 연구하여 日課를 정해 읽었으며, 마지막엔 깊이 그 뜻이 두루 통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거기에
    출처 : 유교넷
  • 269053

    李白詩抄跋(崇禎辛卯)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이 글은 저자가 유일하게 문학에 관심을 표현한 것으로, 제자가 구해온 『李白詩抄』에 발문을 쓴 것이다. 저자는 『이백시초』는 누가 필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획이 반듯하니 抄集 중에서 아낄만한 것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신선의 말 같아서 그 끝을 알 수 없었으나
    출처 : 유교넷
  • 269054

    大本上失辨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이 글은 李滉(1501∼1570)이 「聖學十圖」의 제도인 「心統性情圖」에서 林隱 程氏(원나라 때 사람으로 이름은 復心)의 說을 취하여 맹자가 말한 四端에 「誠實之心」 信之端을 추가하여 五端으로 作圖한 것을 두고, 李珥(1536∼1584)가 「大本上失」이라고 비판한 것
    출처 : 유교넷
  • 269055

    書室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서실의 구조를 「易」의 수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서실의 중간에 텅빈 것은 太極, 창문은 兩儀, 네 기둥은 四象 등으로 표현하였다. 처음부터 여기에 뜻을 두었던 것이고 자연히 이루어진 수이고 모르는 사이에 합치된 것이라고 하였다. 주인옹이 그 가운데 누워서 마음에
    출처 : 유교넷
  • 269056

    蒼石池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蒼石 李埈(1560∼1635)이 조성한 창석지에 대해 저자의 아들 圭의 부탁으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옛날 이준이 풍기에서 돌아와 仁周의 상류에 못을 파고 그 가에 소나무를 심고 노닐며 완상하는 곳으로 삼았다. 이준이 죽고 그의 아들이 이어
    출처 : 유교넷
  • 269057

    曆書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冊曆이 중요성에 대해 적은 글이다. 사람이 날마다 당연히 행해야 할 이치가 책력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다. 군신·부자·붕우·부부의 도리가 모두 위로는 하늘을 본받고 아래로는 水와 土에서 취하였으니, 책력의 쓰임이 크다고 하였다. 아울러 五行에서 四時의 변화에 이
    출처 : 유교넷
  • 269058

    東湖草堂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東湖草堂을 짓게 된 전말을 농부와의 대화 형식을 빌러 기술한 것이다. 몇 년 동안 이곳에 精舍를 지으려고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세월만 보내고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下策을 따라 흙으로 계단을 삼고 띠로 자리를 삼아 지형에 따라 堂으로 삼아 경비를 줄여서 쉽게 지으려
    출처 : 유교넷
  • 269059

    優游堂記(幷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優游堂을 세운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두 편이다. 仁山 아래 訥谷村에 孫君益이 1610년에 자제들을 교육할 장소로 당을 지었고, 저자가 우유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우유당 주위의 산수와 경물에 대해 저자가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공부하고 휴식하며 유람하는 곳으
    출처 : 유교넷
  • 269060

    示子孫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先祖에 관한 일을 기록하여 자손 중에 재주 있고 뜻있는 사람이 경계로 삼고 모범으로 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기록한 것이다. 조부 權偉器는 성품이 총명하고 조용하였으며 李構가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온 문중의 자제들이 조부에게 공부하였으며, 우리 문중이 儒學하는 집안으로
    출처 : 유교넷
  • 269061

    湖陽子自傳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이 글은 저자의 인간적 면모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이 공부하고 독서한 내력과 방법을 밝히고 평상시의 생황 태도를 담담하게 기술하고 스스로 贊을 붙인 것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대대로 映湖의 북쪽에 살았기 때문에 ‘湖
    출처 : 유교넷
  • 269062

    自省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이 글은 저자의 備忘記로서 평소에 독서하고 사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내용을 隨意隨記한 것으로 그의 학문적 성취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글은 저자가 서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때 기록한 것으로, 총 164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서책만 오로지 믿는 것은
    출처 : 유교넷
  • 269063

    天人一理之圖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하늘과 사람의 이치는 똑같다는 견해를 邵邕·易·朱子의 말을 인용하여 도식화하고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64

    太極先天表裏之圖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太極과 先天이 서로 표리를 이룬다는 것을 도식화하고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65

    太極圖本於圖書之圖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太極圖가 河圖와 洛書에서 근본하여 지어졌다는 것을 도식화하고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66

    五行圖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오행이 바뀌어가는 순서를 도식화 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67

    五行分屬之圖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오행에 元亨利貞, 사람의 五臟, 五常, 仁義中正靜 등을 배속시켜 도식화하고 설명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68

    八卦之上各生八卦之圖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팔괘 이전에 태극이 태극이 되어서 陰陽, 四象, 八卦를 낳고, 팔괘 이후에는 팔괘가 스스로 태극이 되어서 음양, 사상, 팔괘를 낳는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69

    元會運世圖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30년이 1世가 되고, 12世가 1運이 되고, 30運이 1會가 되고, 12會가 1元이 된다는 것을 도식화 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70

    天行日月遲速之圖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해가 운행해서 24절기를 만들고, 달이 운행해서 12달을 만든다는 것을 도식화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71

    二始二中二終圖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하늘의 숫자는 1에서 시작[始]되고 땅의 숫자는 2에서 시작[始]되며, 하늘의 숫자는 5에서 가운데[中]이고 땅의 숫자는 6에서 가운데[中]가 되며, 하늘의 숫자는 9에서 끝[終]이 되고 땅의 숫자는 10에서 끝[終]이 된다는 것을 도식화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72

    同律度量衡圖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長短과 多寡, 輕重의 도량형은 같은 규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도식화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73

    陰陽五行之目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천지 사이 모든 일과 모든 사물의 이치가 음양오행이 아닌 것이 없으니 태극 때문이라고 하였다. 천지만물에 음양오행을 적용시키니, 天文에는 五星이 있고, 地理에는 五方이 있고, 사람에게는 五臟과 五性이 있고, 숫자에 오행이 있고, 팔괘에도 오행이 있고, 四時에 오행이
    출처 : 유교넷
  • 269074

    五行凡例之目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오행의 범례에 대한 조목이다. 오행을 質로 말하자면 그 순서가 水火木金土이고, 氣로 말하자면 木火土金水이다. 합쳐서 말하자면 氣는 陽이고 質은 陰이다. 착종해서 말하자면 動이 陽이고 靜이 陰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75

    圖書縱橫奇偶之目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河圖는 가로세로 60이고, 洛書도 가로세로 60이며, 음양이 상대하는 이치는 河圖에 갖추어져 있고, 양을 부지하고 음을 억누르는 뜻은 洛書 속에 깃들어 있음을 조목별로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76

    圖書凡例之目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河圖는 왼쪽으로 돌아서 相生하기 때문에 待對하여 相剋이 되고, 洛書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相剋이 되기 때문에 待對하여 相生하게 된다는 것을 조목별로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77

    陰陽待對之目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음양이 상대되는 조목이 120가지 있는데, 12律과 12時에 취한 것이다. 천지사이는 음양이 상대하는 것에 불과하니 이것을 잘 관찰하면 그 이치가 반드시 그러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수가 120가지에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만 예를 들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078

    待對爲鄰之目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상대해서 서로 이웃이 되는 것을 조목별로 기술한 것이다. 음과 양이 서로 이웃이 되는 것처럼 상대되는 이치가 이와 같이 서로 가깝지만 세상 사람들은 현격히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능멸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어진 사람은 어리석
    출처 : 유교넷
  • 269079

    性情相反之目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면 선하지 않음이 없고, 성품이 본래 악함이 없기 때문에 반대로 하면 악하게 된다고 하였다. 본연의 성품은 선함만 있고 악함이 없는데 타고난 기질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고 하였다. 七情이 드러나서 절주에 맞으면 온화하고 드러
    출처 : 유교넷
  • 269080

    字訓撮要之目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글자 중에서 중요한 것의 뜻을 풀어 놓은 것이다. 太極의 의미에서부터 幾자의 의미까지 풀어 놓았다
    출처 : 유교넷
  • 269081

    知行先後輕重之目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먼저 실행해야 할 중요한 것부터 차례로 기술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성현의 경전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러나 사람의 기품이 다르기 때문에 上品은 학문에 힘입을 것도 없지만 中人이하는 반드시 배워야 능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저자같은 사람은 성현의 경전을 공부하여
    출처 : 유교넷
  • 269082

    原理之目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하늘과 땅 사이에 한 가지 이치가 있을 뿐이다. 하늘에 있어서는 元亨利貞誠, 사람에 있어서는 仁義禮智信이 있다. 군자는 이치를 잘 따르기 때문에 吉하고, 소인은 이 이치를 어기기 때문에 凶하다고 하였다.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사물에도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니, 크
    출처 : 유교넷
  • 269083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石溪 李時明(1590∼1674)이 쓴 저자의 행장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이름은 益昌, 자는 武卿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고려 태사 權幸의 후손이며, 松巢 權宇의 從姪이다. 조부 偉器는 성균관 생원이고, 부친 宣은 成均館學諭를 지냈다. 모친은
    출처 : 유교넷
  • 269084

    墓碣銘(幷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孤山 李惟樟(1625~1701)이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 행장과 그 내용이 대동소이한데,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이름은 益昌, 자는 武卿, 안동권씨이다. 고려 태사 權幸의 후손이다. 조부 偉器는 성균관 생원이고, 부친 宣은 成均館學諭를 지냈다. 모친
    출처 : 유교넷
  • 269085

    祭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生員 權益鄰, 生員 鄭俛, 進士 申埰, 李曾孝, 門人 權愉, 堂侄 權基 등이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086

    輓詞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正郞 權寏, 生員 鄭伸, 縣監 柳元之, 生員 李廷俊, 生員 金是杠, 南憼, 主簿 趙錫朋, 進士 金近, 直長 李義遵, 正郞 李爾松, 生員 權益隣, 縣監 柳元履, 進士 李敬遵, 權㝘, 進士 權復亨, 參奉 柳義男, 生員 南碩, 裵益謙, 李屹, 生員 鄭俛, 生員 鄭, 參奉
    출처 : 유교넷
  • 269087

    流巖里社奉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저자의 위패를 流巖里社에 봉안할 때 李級이 지은 告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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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88

    鶴巖里社奉安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鶴巖里社에 저자의 위패를 봉안할 때 龜窩 金(1739∼1816)이 쓴 告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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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89

    常享祝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저자의 제사 때마다 사용하는 축문으로 權訪이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90

    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權瑗, 淸臺 權相一(1679∼1759), 鶴棲 柳台佐(1763)∼1837) 등이 문집을 편찬하게 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269091

    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익창
    思軒 鄭來成(1744∼1835)이 쓴 後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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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2

    화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화재집(華齋集) (白)華齋 黃翼再의 문집. 7권 3책. 木版本. 간행연대는 찾을 수 없으나 鄭宗魯(1738~1816)가 序文을 비롯해 墓碣銘과 鳳山書院奉安文 등을 쓴 점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발간된 것으로 판단된다. 권1에는 그가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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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題九千洞, 正月二十八日生朝孫綾州景錫궤以三種 味數盃仙露兼以五言一絶以示眷意孤露餘生益增悲感忘拙판和以謝, 南庵偶吟, 次鄭鳳沙伯英儁韻, 詠松, 霽月, 過龍湫有吟, 和族姪紀夫奭韻, 路上吟, 題金生錫龜舊庄, 題玉溪洞(2), 題龍泉寺, 次贈權淸臺台仲相一(2), 原韻(2), 對諸益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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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4

    辭掌令疏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司憲府掌令으로 재직할 때인 1723년(경종 3)에 올린 것이다. 迎接都監이 왕의 牌旨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업무상 차질에 대해 司諫院에서 전말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비난하고 나선데 대해 항의하여 사직을 청한 상소이다. 성격이 우매한데다 견문이 좁은데도 요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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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5

    再辭掌令疏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正言 趙趾彬이 迎接都監 召牌와 관련하여 왕이 거둥할 때 참석하지 않은 사람을 조사해 찾아내면서 敦寧奉事 李益炯이 개인의 사정을 빙자해 불참한 것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자 원래부터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다고 규정하며 탄핵함과 동시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여 거론하지 않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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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6

    請收召募資給疏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28년(英祖 4) 戊申亂 당시 영남의 召募使로 활약하며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資級을 올려준 것은 과분한 일이니 환수해 줄 것을 청한 내용의 상소이다. 2월 20일 鍾城府使에 임명되어 임지로 향하던 도중 嶺南按撫使 朴師洙의 요청에 따라 영남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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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7

    全羅道報災啓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全羅都事로 재직할 당시인 1709년(숙종 35) 전라도지방 재해 상황을 살펴보고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다. 자신의 소관인 전라도 28邑을 모두 순회해 본 결과 珍島를 비롯한 도서 및 연해 7邑은 海溢로 바닷물이 넘쳐 곡물의 형체를 찾을 수 없는 곳이 많고 高山 錦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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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8

    祇受召募使帖啓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무신난 당시 소모사로 임명되어 활동하게 된 경위를 보고한 내용이다. 都政에서 자신을 종성부사로 결정한 것은 2월 12일이고 왕의 재가를 얻은 것은 24일이며 尙州에 있던 자신에게 전해진 것은 3월 13일이었다. 肅拜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도중 忠州에서 변란의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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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099

    祇受召募使帖再啓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앞선 보고서에 이어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다. 4월 2일 傳旨를 받고 소모사의 업무보고를 한 다음 下道 列邑으로 가서 士民을 招諭해 義兵을 일으키고자 5일 尙州를 출발해 가는 길에 金山에 도착하니 居昌의 적도들이 섬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善山에서는 관군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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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100

    論諸宮家各衛門折受폐狀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順天府使로 재직할 당시 宮家 및 衙門이 조정으로부터 불하받은 토지 및 어장의 폐해를 지적하며 개선의 방안을 제시한 내용이다. 光陽을 포함하는 順天 관내 삼 백리 안의 골짜기 속의 밭들과 해변의 漁場 가운데 궁가와 아문에 불하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인 데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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