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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101
又論邑폐九條狀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順天府의 각종 폐해 가운데 특히 民隱과 관련되어 시급하게 조치할 필요가 있는 9가지를 조목별로 나누어 제시한 내용이다. 1. 順天府의 백성들이 천재지변이 아닌 수많은 폐단으로 인해 거의 餓死지경에 이른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2. 순천의 지형조건이 東南으로 바다를출처 : 유교넷 -
269102
論時계諸條狀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順天府使로 재직할 때 올린 것이다. 백성의 軍役을 덜어주기 위한 良役變通을 본격적으로 시행함에 있어 인근의 守令들에게 可否와 得失을 물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향촌의 실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節目을 만들 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출처 : 유교넷 -
269103
與李密菴(17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密菴 李栽에게 보낸 편지이다. 玉峯의 墳菴을 수리하고 이를 기념하여 韓德師 등 士友들과 詩會를 갖고 유람한 일들을 전하면서 {朱子書質疑}의 刪定작업이 마무리되었는지를 묻고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69104
與蔡希菴(17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希菴 蔡彭胤에게 보낸 편지이다. 臺官에서 파직되었다가 왕의 特旨로 복관하기는 했지만 일을 싫어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바쁜 일을 만들지 않고 조용히 소일하며 지내고 있다며 근황을 알린 뒤, 자신이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화를 입게 된 것이 사적 이해관계에 따른 측면이 강하다출처 : 유교넷 -
269105
與李息山(173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息山 李萬敷에게 보낸 편지이다. 석 달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왕의 은덕으로 풀려나 父子가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먼저 執事(이만부)의 소식을 물었더니 자신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역경을 겪었다기에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죽출처 : 유교넷 -
269106
答閔參議(17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參議 閔昌道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와 함께 보내준 [墳菴詩序]는 재삼 읽어봐도 얻어 보기 힘든 진기한 내용으로 山齋가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한 뒤, 家乘을 확인해 본 결과 傍祖 柳村公이 지은 八詠詩와는 달리 6대조 參判출처 : 유교넷 -
269107
答孫綾州(172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孫景錫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에서 세상을 조롱하며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是非에서 벗어나 단풍잎이 만발한 산에서 학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춤추는 모습을 즐기면서 한가로이 지내는 것이 결코 세상을 등진 것과출처 : 유교넷 -
269108
與孫綾州(172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孫景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戊申亂이 일어나 按撫使의 요청과 備邊司의 回啓로 安東에서 左道士林을 대상으로 하여 召募使로 활약하고 있음을 전하면서 居昌 安陰 등지의 적도들의 동향도 심상치가 않으며 조정이 기대하는 바도 적지 않으니 慶尙右道 士林이 忠義로서 倡義하도록 앞장출처 : 유교넷 -
269109
與丁鍾城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함경도 鍾城府使로 가있는 丁思愼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보건대 올해는 極選의 직함에 임명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조정의 소식을 전하면서 山川을 두루 유람하는 것이 소원이라 했던 만큼 지방관으로 근무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방도를 찾을 것을 권유하는 한출처 : 유교넷 -
269110
答安梁山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경상도 梁山郡守 安鍊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절친한 사이라면 慶弔事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받고나서야 자식을 잃은 悲報를 알게 되어 자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고 사과한 뒤, 嶺南에서 올라온 戊申亂과출처 : 유교넷 -
269111
答朴靈城君(173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朴文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戊申亂에 연루되어 龜城으로 귀양가 있는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위로의 편지까지 보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한편, 오로지 왕의 은덕을 입어 석방될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산간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외부의 일과는 인연출처 : 유교넷 -
269112
答朴地主(17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嶺南安撫使 朴師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영남지방의 군사운영의 실태를 보고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개선책을 제시한 내용이다. 1. 兩班으로서 궁술에 조예가 있는 자가 맡도록 되어 있는 首將官과 名家의 庶孼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는 哨官의 선발을 엄격하게 하고 良民이 軍役출처 : 유교넷 -
269113
答鄭伯英(173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鄭儁의 편지에 대한 답장. 먼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書冊의 공부에만 매진하는 자세에 존경을 표시한 뒤 공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자신의 성격이 본래부터 편벽되고 급한 데다 心地가 약해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기질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던출처 : 유교넷 -
269114
與鄭伯英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鄭儁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이 들어 溪齋에서 조리하는 동안 黃沈 등 주위 사람들과 朱子의 글들을 강론하면서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전하면서, 조만간 華齋로 돌아가 머물 것이니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15
答韓士得(17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石湖 韓得師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처음 자신이 건립한 齋室의 主扁額을 산의 이름을 따서 永慕齋로 했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가져온 {古今詩彙}를 보다가 [晉束廣微補笙詩]에서 白華라는 용어가 있기에 그것이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 같아 바꾸게 되었음을 설명하면서출처 : 유교넷 -
269116
答韓士得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韓得師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백화재의 편액 가운데 새로이 보내준 忍德의 편액이 욕심을 줄이고 확고한 분별의 자세를 갖는 의미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멀리한 채 세상일에 뛰어드는 바람에 매사에 경솔하기 이를 데가 없고 사람을 대하면서도 쉽게 화를 내는 자신의 고질병을출처 : 유교넷 -
269117
與韓士得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韓得師에게 보낸 편지이다. 公務가 적체되어 있는 바람에 편지를 쓸 여가를 얻지 못해 소식 전하는 것이 늦어지게 되었다고 변명하면서 보내준 序文의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미로움이 더해질 뿐만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간담에 와 닿아 약이 아출처 : 유교넷 -
269118
答權台仲(171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 가득 겸손하고도 정중한 내용이 마치 대면해 진면목을 보는 것처럼 감동을 받았음을 전하는 한편 자신은 이미 功名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조만간 玉峯의 옛집으로 돌아가 몸을 조섭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일찌감치 세상일에 뛰어들출처 : 유교넷 -
269119
與權台仲(17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安東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왕에게 上疏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신중을 기할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상소를 하려면 먼저 疏章의 작성에 있어 과격한 용어를 삼가고 완곡한 언어로 왕의 마음을 바꾸고 인심을 감복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출처 : 유교넷 -
269120
答權台仲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의 형이 지금 상소를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며 체포당할 수도 있다는 동생의 우려를 헤아리지 않고 강행하려고 하여 감당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막을 길이 없으니 대신 포기하도록 권유해줄 것을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21
答權台仲(172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屛山書院에서 權處士와 함께 강론했다는 책이 어떤 것이며 그의 識見은 어떠한지를 묻고, 자신은 成均館典籍에 제수되어 학문에 열중할 기회가 있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한 이래로 나태한 생활을 반복함으로써 조금도 진척이 없지만 退溪의 글들을출처 : 유교넷 -
269122
與權台仲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가을 기운이 완연하고 귀뚜라미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계절을 맞이해 俗離山 등을 유람했음을 전하며, 이곳으로 놀러와 답답한 일상에서 한 번 벗어나 보는 것이 어떨지 권유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23
與權台仲(17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가 자신에게 더없는 위로가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한편, 자신은 戊申亂의 여파로 죄를 입을 뻔 했지만 왕의 배려로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69124
與權台仲(173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뜻하지 않게 자식을 잃은 비운을 위로한 뒤 龜城에서 귀양생활을 하며 생환여부를 잊고 사는 자신의 생활을 전한 내용이다. 병이 들어 고생을 하는 데다 志氣도 꺾였지만 李萬敷와 함께 수시로 약이 되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덕분에 옛 것을 사모하는출처 : 유교넷 -
269125
與權台仲(173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王世子 冊禮를 맞아 왕의 특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났으나 臺諫이 명령을 거두어들일 것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양 근교에서 物議를 기다리며 자신의 난감한 처지를 전한 내용이다. 설령 석방의 傳旨가 있었다 하더라도출처 : 유교넷 -
269126
答權台仲(173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퇴계선생이 黃俊良에게 편지로 "벼슬길에 나아가서 일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본질적인 일을 하도록 매일 점검하라"고 당부했던 말을 환기시키며 임금을 섬기는 가장 큰 일은 牧民뿐임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은 季父의 상을 당해 근신하며출처 : 유교넷 -
269127
與權台仲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權相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金壽仁이 書室을 지어 우거했던 愚山 등지를 유람하며 느낀 감회와 직접 목격한 백성들의 처참한 실상을 전함과 동시에, 주자와 퇴계의 文集을 읽는데 열중하면서 헛된 생각을 버리도록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28
答林參判(17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參判 林象德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이 돌아가 머물기 위해 지은 白華齋에 관한 詩를 형의 친구에게 부탁하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내용 가운데 山川의 빼어난 모습을 반드시 포함해 줄 것을 부탁함과 동시에, 墳庵의 扁額을 白華로 고치게 된 전말을 설명하면서출처 : 유교넷 -
269129
與黃監司聖在(17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全羅監司 黃璿에게 보낸 편지이다. 관직을 버리고 산속에서 세상사를 잊고 지내는데 느닷없이 자신이 靈光郡守로 재직할 당시의 獄事에 대해 언관들이 전라감사로 하여금 다시 조사하도록 왕에게 陳疏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상황이 어떤지를 묻고, 과거 金誠一이 羅州牧使로 있을 때출처 : 유교넷 -
269130
與睦先達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불운한 때를 만나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것을 축하하면서 자신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齋舍에 韓得師가 扁號를 짓고서는 절경을 詩로 읊었고 李栽도 여기에 이어 시를 지었음을 전하면서 건립의 전말을 적어 보내니 시 한 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31
答沈賓于郁乎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沈尙觀 周觀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遷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 내용으로 자칫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현혹되기 쉬우니 될 수 있는 한 남들이 吉凶의 땅으로 거론되지 않는 곳을 물색할 것이며, 자신의 판단으로는 移葬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출처 : 유교넷 -
269132
與黃長水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黃顥源에게 보낸 편지이다. 尙州 中牟縣 白華山 玉峯 아래에 있는 先祖 黃喜의 影堂이 1714년(숙종 40) 영남사림의 상소로 白玉洞書院으로 승격하기는 했으나 賜額을 받지 못한 것은 선조의 勳業德望에 비추어 부끄러운 일로서, 내년 봄 사림들이 公論을 수합하여 다시 請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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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元甫(171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鄭胄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세상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十中八九라 한탄하며 봄 가뭄으로 인해 보리의 작황도 흉작이라 務安의 백성들이 모두 賑政의 대상으로 빠져든 비참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69134
與姜公望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姜碩弼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 增若이 자신의 집에 들렀음을 전해주면서 부모에게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다니는 자식의 교육에 대한 충고를 담은 내용이다. 子弟가 미진하면 부모가 평소에 敎導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법이지만 자식이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家法이 자신을 제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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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公望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姜碩弼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이 지은 藏菴에서 근 십년 만에 知友들과 詩會를 갖고 수작한 사실을 알리면서 함께 모여 세상일에 눈을 돌리지 말고 破寂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269136
與李星湖子新問疑禮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李瀷에게 喪禮에 관한 것들을 질문한 내용의 편지이다. 7세 宗孫이 後嗣없이 사망함으로써 立後하여 제사를 받들도록 해야 하지만 가까운 친척이 없어 먼 인척을 후사로 삼음에 따라 적용되는 喪禮를 알지 못해 發喪에서부터 服喪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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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全士孝(172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全繼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의 國喪을 맞아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어떤 공부를 하면서 이치를 궁구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지를 묻고, 자신은 바쁜 가운데에도 절박하고 괴로움을 이길 도리가 없어 玉峯의 山莊으로 와서 泉石의 절경을 감상하다보니 이것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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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川與(171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李增祿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靈巖에 있을 때 한번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는데 바쁜 일 때문에 오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자신은 拱海堂의 동편에 집을 지어서는 연못을 파고 梅竹松栢을 심어 소요하고 거위들과 함께 지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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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壻聖 (173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族壻 洪重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공부의 방법과 함께 자식을 교육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心性에 대한 공부는 문자로서는 篤實함을 얻을 수 없고 句讀를 통해 섭렵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 科業을 世傳해왔던 가정의 기대에 부응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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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晦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族姪 黃沈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친상을 당한 데다 族兄까지 잃은 애통한 심정을 전하면서 추운 북쪽지방에서의 생활이 무척 어렵겠다며 위로를 전함과 동시에 자신은 정신과 근력이 날로 쇠미해져 죽는 것이 편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지가 오래되었다며 지친 심사를 숨기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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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季父(170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仲父와 季父에게 보낸 편지이다. 仲父의 병이 쾌차하고 季父도 먼 길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 坡州에 있는 先祖 黃喜의 묘소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던 곳인 伴鷗亭 등을 둘러보고 새삼스럽게 永慕의 감회를 느끼고 절경에 감탄하였으나 오랜 세월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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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宗한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아들 宗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志氣가 크고 處心行事가 남다른 아들에게 기대를 표시하면서도 父兄과 떨어져 있는 데다 마땅한 스승도 없어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더라도 스스로 채찍질하며 학문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아들이 갖고 있는 여러 작은 병통들 가운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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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承旨沈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承旨 沈季良을 위한 제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요절한 것을 아쉬워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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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盧伯春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盧伯春을 위한 제문이다. 剛柔를 겸비한 가운데 進退가 분명한 처신을 했다고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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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善哉改葬文(174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충청도 鎭岑縣에 있던 故察訪 鄭善哉의 묘를 先塋으로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젊었을 당시 절친했던 모습을 돌이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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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舅金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外叔 金是浹을 위한 제문이다.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하며 우애로서 돈독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던 모습을 그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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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道源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族姪 黃浚을 위한 제문이다. 어릴 적 자신을 따라 苦樂을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좋은 술과 경치가 있어도 함께 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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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宗한文(174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사망한 아들 宗한을 위한 제문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게 된 비통한 심정을 표현하면서 살았을 당시의 모든 일들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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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土地神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順天府使로 재직할 당시 賑恤廳을 설치하면서 土地神에게 고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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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節度使府君墓碣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曾祖父 黃緝의 묘갈문이다. 宣祖代 29세의 나이로 武科別試에 甲科로 합격하여 藍浦縣監 平海郡守를 역임하고 仁祖代에는 義州府尹 黃州牧使를 비롯해 慶尙左 右道, 海西, 湖南, 咸鏡南 北道의 節度使를 두루 거쳤으며, 姜錫期 金堉 韓會一 尹兼善 등과 同庚修계人의 관계에 있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