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9151

    曾祖비貞夫人昌寧成氏墓碣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黃緝의 부인 貞夫人 昌寧 成氏의 묘갈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9152

    曾祖비貞夫人固城南氏墓碣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黃緝의 繼配 貞夫人 固城 南氏의 묘갈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9153

    祖考通德郞府君墓誌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祖父 通德郞 黃載胤의 묘지문이다. 成均館生員 黃緬의 아들로 黃緝의 두 부인 成氏와 南氏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해 立後되었으며 기질이 맑고 두드러진 바가 있었고 성품이 방정하고 강직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54

    先考贈左承旨府君墓碣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父 黃鎭夏의 묘갈문이다. 어렸을 때 부친에게서 수학했으나 부친을 잃은 뒤로는 仲父에게서 배웠으며, 인품이 단아하고 조용했으며 겸손하고 온후한 풍모로 대하기가 편안했다고 회고했다
    출처 : 유교넷
  • 269155

    先비贈淑夫人商山金氏墓碣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어머니 商山 金氏의 묘갈문이다. 품성이 유순했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절도에 어긋남이 없었으나 불행하게도 28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56

    戊申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28년(영조 4) 戊申亂 당시 召募使로 활약하면서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한 일기이다. 무신난은 李麟佐 등이 景宗의 독살혐의를 제기하면서 英祖와 집권 노론세력을 제거하고 密豊君 坦을 추대할 목적으로 三南 및 近畿地方의 反軍을 규합하여 일으킨 政變이다. 저자는 172
    출처 : 유교넷
  • 269157

    庚戌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軍門의 직함을 가지고 鄕村에 머물고 있는 자는 모두 한양에 올라와 대기하라는 왕의 명령에 따르면서 分院에서 先祖의 誌石을 굽을 목적으로 李萬敷와 함께 갔다가 戊申亂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어 親鞫을 받고 龜城으로의 定配가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저자는
    출처 : 유교넷
  • 269158

    編管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龜城 귀양지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감회를 기록한 일기이다. 귀양지 구성을 향해 출발하는 1730년(영조 6) 9월 24일부터 시작하여 1733년(영조 9) 11월 17일까지 3년여 동안의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보다 3년 뒤인 1736년(영조 12
    출처 : 유교넷
  • 269159

    社倉節目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順天府使로 재직할 당시인 1717년(숙종 43) 3월 10여 년간 계속된 흉년으로 백성들이 상습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坊里마다 社倉을 설치하면서 제정한 규정이다. 단순히 궁핍한 백성을 구제하는 눈앞의 급한 상황만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
    출처 : 유교넷
  • 269160

    賑廳節目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18년(숙종 44) 9월 順天府에 賑恤廳을 설치하고 그것의 운영에 관한 제반 규정을 적시한 내용이다. 賑廳穀物 가운데 쌀은 100石 한도에서, 벼는 300石 한도에서 錢布 魚物을 막론하고 흔할 때는 사두었다가 귀할 때 내다 파는 방법으로 수시로 조절하여 상인과 민
    출처 : 유교넷
  • 269161

    鄕約節目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17년(숙종 43) 3월 順天府民이 饑饉의 절박한 상황에서 범죄 등으로 형벌을 당하는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고 恒心을 갖고 올바른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先賢들이 제정한 鄕規와 府의 士子들이 만든 洞約 등을 참조해 만든 규약이다. 부모에게
    출처 : 유교넷
  • 269162

    養士齋節目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守令으로 재직하면서 선비의 양성을 통한 향촌교화를 목적으로 養士齋를 설립한 곳은 順天府와 靈光郡 두 곳에서 였다. 節目의 뒤에 相揖禮笏記가 첨부된 점과 年譜의 기록상 靈光에서 상읍례를 시행한 점으로 미루어 영광군수로 재직할 당시인 1724년(경종 4) 4월 제정한 것
    출처 : 유교넷
  • 269163

    白華齋記事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37세 때인 1718년(숙종 44) 9월 평소 자주 노닐던 尙州 中牟縣 白華山 玉峰 아래에 白華齋를 건립하고 그 배경과 전말을 기록한 記文이다. 선조들의 幽宅이 모여 있는 곳인 데다 근처에 8대조 黃喜의 白玉洞書院이 자리 잡고 있으며, 6대 傍祖 柳村公이 [新德八詠]
    출처 : 유교넷
  • 269164

    通尙州鄕校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28년(영조 4) 戊申亂 당시 召募使로서 尙州士林의 倡義를 촉구하며 보낸 通文이다. 난이 발발한 초기에 畿湖의 적도들이 섬멸됨으로써 급박한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安陰 居昌을 비롯한 영남의 적도들은 진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義兵을 일으켜
    출처 : 유교넷
  • 269165

    通道內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28년(영조 4) 戊申亂 당시 召募使로서 嶺南士林의 倡義를 촉구하며 보낸 通文이다. 건국된 지 3백 년 동안 名敎에 뿌리를 두고 忠孝를 배양한 덕분에 李施愛와 李夢鶴의 난 정도밖에 없었다가 이 같은 변란을 당한 것은 국가의 불행이자 鄒魯之邦이요 忠義之鄕의 칭송을
    출처 : 유교넷
  • 269166

    年譜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682년(숙종 8):정월 28일 尙州 中牟縣 川下里第에서 출생(8대조 翼成公 黃喜 이래 世居) 乳名 用錫 1683년(2세):母 金氏 사망 1688년(7세):父 承旨公 사망 1689년(8세):仲父가 사는 安陰 楸川里에 거주 1692년(11세):仲父를 따라 沃川
    출처 : 유교넷
  • 269167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85년(정조 9) 前行世子翊衛司左翊贊 安鼎福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269168

    壙誌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48년(영조 24) 族姪 黃沈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269169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 鄭宗魯가 썼다
    출처 : 유교넷
  • 269170

    傳敎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88년(정조 12) 11월 11일 戊申亂 1周甲을 맞아 嶺南儒生들이 올린 伸寃疏에 대한 왕의 批答이다. 그와 趙德린의 죄를 蕩滌할 것을 지시했다
    출처 : 유교넷
  • 269171

    改題主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88년(정조 12) 왕의 명령으로 누명을 벗음과 동시에 復官되었음을 고한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9172

    鳳山書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황익재
    1793년(정조 17) 盧守愼이 제향된 尙州 鳳山書院에 追享하면서 올린 제문으로 鄭宗魯가 썼다
    출처 : 유교넷
  • 269173

    회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회당집(悔堂集)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悔堂 柳世哲의 문집. 4권 2책. 석인본. 8대손 柳東濬 등이 간행한 것으로, 권1에는 자연경관을 노래한 시, 스승이나 벗들과 차운한 시, 죽은 이를 애도한 만시 등 모두 66제 79수의 漢詩가 수록되어 있다. 권2
    출처 : 유교넷
  • 26917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謹次翔臺韻(壬寅年始搆精舍遂次西厓先生集中韻), 安分, 謹次再從叔父拙齋先生賜詩韻, 栗亭韻(次金上舍堯錫), 贈人韻, 贈秋潭子金會一(如萬), 擬贈金仲輝璁, 暫寓北村期善寶不至渭翁適到打話更僕, 謹次睡隱亭鶴沙韻, 宣城道中作, 謹次拙齋先生賜詩韻 (1666), 次金會一韻, 又吟近軆
    출처 : 유교넷
  • 269175

    與金會一(如萬)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鶴沙 金應祖(1587∼1667)의 죽음에 애통한 마음을 전한 글이다. 그는 김응조의 죽음을 斯文의 불행이자, 士林의 불행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176

    答金會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대비의 服喪이 기년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南二星은 좌천되고 趙根之는 섬으로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77

    與金會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걱정이라는 내용과 柏洞·巖臺를 함께 유람할 생각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또한 저자가 지어 보낸 詩에 대한 화답시를 요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78

    答金會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원의 規例에 운영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적은 것이다. 김응조의 뜻과 고을 유생들의 뜻을 모아 원장을 정했다는 내용과 김응조의 제안에 따라 포와 곡식을 斂散하는 법을 세우지 않았지만, 곡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斂散하는 법 밖에
    출처 : 유교넷
  • 269179

    答金會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답한 편지이다.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온 것에 대한 근심어린 마음, 관직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조정 인사들의 근황을 적은 것이다. 또한 임금이 문운을 진작시키기 위해 경연을 시행하고, 신료들에게 課題를 내어 등급에
    출처 : 유교넷
  • 269180

    與金會一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보낸 별지이다. 아들 後昌이 일찍이 기미년 상소문을 지었는데, 열읍에 보낸 통문에 아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지난해에는 族姪 柳後章이 상소문을 지은 연유로 관직에 나갈 수 없는 금고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과거에 응시하려고 하는데, 이
    출처 : 유교넷
  • 269181

    與金會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金會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가 대궐로 가서 상소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지만, 감당할 수 없으니 책임을 면하게 해 주기를 청한 글이다. 어리석고 비천한 재주로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90세 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는데 형제가 없어서 잠
    출처 : 유교넷
  • 269182

    上拙齋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拙齋 柳元之(1598∼1674)에게 보낸 편지이다. 노모께서 오래도록 병석에 계시면서 차도가 없어서 매우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軍威 松峴山의 변고는 典籍의 편지를 통해 자세하게 보고하였으나, 그 화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 매우 염려된다고 하였다. 문중에서
    출처 : 유교넷
  • 269183

    答鄭氏門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鄭氏 門中에 보낸 편지로서, 유씨 문중과 정씨 문중의 산송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에 의하면 정씨 선조가 유씨 문중의 사위가 되었기에 유씨 문중 선산에 그의 무덤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어 유씨 문중과 정씨 문중 사
    출처 : 유교넷
  • 269184

    與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저자가 지은 시 중에 ‘山含江帶’라는 詩句에 대한 체격을 묻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9185

    與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충효와 절의가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관청에 보고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 보인다. 그런 사람을 선발할 때 널리 찾아다니고 물어서 경솔하게 관청에 보고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저자 집안에 이러한
    출처 : 유교넷
  • 269186

    與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윤판서가 사사되고 그 다섯 아들이 각도로 송치되었는데, 그 하나가 어제 이 고을을 지나 영해로 갔다고 하였다. 오재상과 홍판서는 이미 추문에 들어가서 다음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오직 믿는 것은 임금
    출처 : 유교넷
  • 269187

    與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寧陵을 天仗하는 일이 정해지자 왕이 전후로 능자리를 봉심한 관원과 文狀을 기록해 올리라고 특명을 내렸는데, 이때에 趙威鳳이 산릉의 전말과 옹벽이 무너진 일들에 대해 極言을 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현 상
    출처 : 유교넷
  • 269188

    上伯兄別祗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가 맏형에게 보낸 편지의 별지이다. 죽은 아내의 신주를 지난 날 祔祭를 지내지 못해 사당에 들이지 못하였는데, 지금 신주를 들이려 하지만 안치할 자리가 없으니 임시로 사당의 서쪽에 둘 수 있는지를 물은 내용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상례에서는 4월이 되어야
    출처 : 유교넷
  • 269189

    上伯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맏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군위군수로 있으면서 직무를 떠나 집안의 喪事에 참여하지 못하는 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190

    上仲兄悔窩公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중형에게 보낸 편지로, 조정의 근황을 적어 보낸 것이다. 윤판서는 放送되었고, 告變으로 인해 정국이 반전되어 여러 사람들이 화를 당한 정황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191

    上仲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중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의 병세가 심하지 않으니 약을 복용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작은 며느리를 맞이하는데 있어서 예물을 갖추어 보내는 일과 혼례일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 등에 대해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92

    上仲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중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永慕錄」에 실릴 행적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 책에 실릴 내용을 조금씩 잘라 낸다면 선배들의 실제 사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것이고, 우리 집안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원과 진사로 작고한 사람들
    출처 : 유교넷
  • 269193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祭物을 종가에서 마련하기 어려우면 집안에서 마련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오늘 처음 손자를 보았는데 기골이 특이하니 교육을 잘 시키라는 당부도 함께 적고 있다. 그리고 晩浦댁에 소장하고 있는 조부의 「日課曆書」중에 「與唐將
    출처 : 유교넷
  • 269194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 주어서 위로가 되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니 매우 기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269195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현풍댁이 어진 사위를 맞아하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오늘 암행어사가 이 곳(군위)에 와서 해당 아전에게 곤장을 쳤는데 매우 참혹하였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암행어사가 와서 많은 장부 중에서 물어보지도 않고 이 한 문건
    출처 : 유교넷
  • 269196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로 주로 근황을 묻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초서를 쓰지 말라, 병산서원에 간다고 들었는데 누구와 가고 무슨 책을 읽으려 하느냐, 또한 「논어」를 다 익혔다고 들었는데 다 외웠느냐 등의 내용이 담겨
    출처 : 유교넷
  • 269197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제사를 마쳤으니 이제 크게 마음 쓸 일이 없으니 공부에 전념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198

    寄昌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원손이 태어난 지 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골상이 빼어나고 神彩가 사람을 움직일 만하며 엄숙함이 어른과 같으니 이것은 종묘사직이 중흥할 조짐이라고 하였다. 백지 한 권을 보내니 네 형제가 나누어 쓰라고 하였다. 근일
    출처 : 유교넷
  • 269199

    寄光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둘째 아들인 後光에게 보낸 편지이다. 과거장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 지를 물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용모를 온화하면서도 씩씩하게 하여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269200

    寄增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이 글은 저자의 아들인 後增에게 보낸 편지로,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적은 것이다. 떠날 때 경계시킨 말을 잊지 말고, 행동거지에 유념할 것을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