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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69301

    翔鳳亭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세철
    현손인 柳一春이 상봉정의 중건 때 저자가 지은 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269302

    효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효암집(曉庵集) 曉庵 李中轍의 문집. 16권 8책, 부록 1책. 석인본. 序文은 없고 跋文은 저자의 손자인 源定이 썼다. 발문에 의하면 효암집은 저자의 장남인 悳鎬에 의해 遺文이 수집되고 몇 차례 교정을 거쳤으나 간행되지 못하다가 손자인 源定의 대에 와서 문중과
    출처 : 유교넷
  • 26930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謹次雲山集爲學詩韻以自歎, 妙枝洞讀約, 朴參奉(海聞)丁進士(義昌)南雅士(學元)來訪民樂堂(伯父莅慶州時), 到荗朱述懷(伯父謫居時), 輓萬樵柳丈(致儼), 輓秋觀族祖(彙澤), 謹次竹南金聘翁靑士趙丈(龍九)滯雨韻, 輓靜村李丈(文稷), 庚辰元朝, 謹次金進仕(魯善)丈奇溪韻, 訪李白下
    출처 : 유교넷
  • 269304

    辭大司諫䟽(代伯父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백부인 晩運(1815~1886)이 대사간에 임명되었을 때 저자가 대신 작성한 사직 상소이다. 백부의 자는 文五이고, 호는 雙翠이다. 상소를 작성한 해는 1880년(고종 17) 경진년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모의 나이도 83세로 연로하고 백부 자신도 64세나
    출처 : 유교넷
  • 269305

    上愼庵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첫 번째 스승이었던 愼庵 李晩慤에게 올린 편지이다. 백부 晩運이 경주 부윤으로 근무할 때 저자가 배행하였는데, 경주에서 보낸 편지이다. 퇴계선생의 간찰을 갖고 와서 읽고 있는데, 한번 다 읽었으나 글 잘 쓰는 사람을 시켜 한 벌 베껴 놓기 위해 갖고 있다고 하
    출처 : 유교넷
  • 269306

    上西山金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西山 金興洛에게 집지 입문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였다. 李晩慤이 죽고 난 후 천하의 고아처럼 마음으로 의탁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과거시험 날짜는 다가왔지만 지도하고 있는 5, 6명의 아동들이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하여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편지와 폐백
    출처 : 유교넷
  • 269307

    上西山先生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西山 金興洛에게 禮說에 관한 질의를 하였다. 7월에 초상을 당하고 9월에 盛服을 했다면 練祀를 언제 지내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질문이다. 이를 논증하면서 여러 사람의 예설을 인용하고 있는데, 주로 愚伏, 南溪, 大山, 退溪, 東巖의 학설로서 이들의 학설이 당시 영남
    출처 : 유교넷
  • 269308

    上西山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禮說에 관해 질의하였다. 緬禮를 행함에 있어서 設椅·行虞의 절차에 관해 石下 아저씨에게 물었으나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백부께서 살아 있을 때 저자에게 조부의 遺事를 초하여 선생에게 행장을 청하라고 했지만, 문장이 졸렬하여 미루어 왔다고 하면서 행장을 청
    출처 : 유교넷
  • 269309

    上西山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定齋 柳선생의 行狀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하니 斯文의 다행이라고 하면서, 저자 집안의 문자도 차제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도산서원 안에 있는 亦樂書齋를 보수하는 재원과 관련하여 말하면서 역락서재가 芝軒 鄭士誠 집안의 전유물일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저자는 계산잡영,
    출처 : 유교넷
  • 269310

    上西山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의 조부 행장을 西山이 지어서 보내준 데 감사하고, 世系 등 몇 군데 잘못된 부분을 別紙에 적어 보낸다고 하면서 검토해 달라고 하였다. 巖師의 刊補箚疑는 원래 별도로 成冊하지 않고 刊補의 여백에 적어둔 것인데 연전에 탈고할 때 이 책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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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1

    與肯庵李公(敦禹)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肯庵 李敦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돈우 집안의 家學 연원을 깊이 흠모하였지만 직접 배우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또 이돈우에게 품계를 뛰어넘어 벼슬이 제수된 것을 축하하면서 우리 당의 경사라고 하였다. 저자에게 한 마디 말로써 인도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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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2

    與拓庵金公(道和)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스승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 의지할 곳 없음을 한탄하고 척암의 문하에서 배우고 싶은 소망을 피력하였다. 벼슬에 제수된 후 오랫동안 마음이 잡히지 않아 도학에 힘쓰지 못했음을 호소하였는데, 아마 1902년에 관찰사의 천거로 惠陵參奉에 제수되었던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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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3

    與奇溪金公(魯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魯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絰·帶에 관련하여 「備要」와 「通攷」를 인용하면서 예설에 관해 질의하였다. 저자는 김노선이 예학에 관해 정밀하고 해박함을 알겠다고 하면서, 다만 四股三重의 제도에 있어서 저자와 의견이 다르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314

    與石舍柳公(基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練祭와 祥祭의 壓屈에 관해 질의하였다. 練祭와 祥祭는 상례에 있어서 중요한 절차인데, 만약 11달만에 練祭를 지내지 않으면 13달에 小祥을 치르고 25달에 大祥을 치르는 것으로 변동이 없는지를 물었다. 愚伏·南溪의 학설을 거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315

    與洗山柳公(止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止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의 조부 彙廷의 행장에서 누락된 생전의 언행에 관해 글을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269316

    與石下柳姑叔(建鎬)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저자에게 고모부가 되는 柳建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禫祭에 관해 논의하였다. 3년 탈상을 하지 못하여 禫祭에 참례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식으로 하여금 대신 主祭를 하는 것이 예법상 어떠한 지에 관해 주로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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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7

    答石下柳姑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建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聞喪과 變制의 시기에 관련된 예설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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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8

    與孫榮川(相駿)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榮川(영주)에 사는 孫相駿에게 보낸 편지이다. 향리에 묻혀 독서로 낙을 삼고 있는 상대방을 부러워하면서 엄한 스승과 도움을 주는 벗이 없는 저자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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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19

    答泗隱申丈(鍾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申鍾浩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가 관찰사의 천거로 惠陵參奉에 제수된 것에 대해 신종호가 하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사은숙배를 하고자 해도 조정에 누가 될 것 같아서 두문불출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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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0

    答古山申丈(鍾翼)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申鍾翼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愼庵集은 후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그러나 신종익 문중의 문자는 다만 만시 몇 수가 있을 뿐이라 하고, 西山集은 지금 정본을 옮기고 있는 중이라 하면서 신종익과 왕복한 문자는 전부 누락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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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1

    與趙南洲(承基)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趙承基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승기가 보낸 東遊詩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사물을 묘사함에 있어 기이한 규범에 치중하였고 자연스러운 묘미가 부족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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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2

    答柳拙修(廷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廷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정호가 저자 조부인 潢皐公의 묘갈명을 지었는데, 그것을 보고 수정할 곳에 관해 말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황고공이 비록 평생 학문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만년에 禮學을 깊이 탐구하여 萬樵翁 같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황고의 예학은 근래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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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3

    答柳拙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廷鎬에게 보낸 편지로, 스승인 李晩慤의 문집인 愼庵集을 교정하면서 보낸 편지이다. 明汝라는 사람이 갖고 오는 書가 문집에 들어갈 내용인지를 묻고, 들어가야 할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결코 없지만 들어가지 않아야 할 내용이 들어갔다면 교정을 다시 보는 한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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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4

    答柳拙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廷鎬가 당시 李晩慤의 문집인 愼庵集을 교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가 이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지치지 않고 교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대해 위무하고, 유정호가 지은 행장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서 한편 이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표시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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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5

    與許舜歌(薰)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許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承熙(자 啓道)가 언제 강론을 하는지 물었다. 이계도의 이번 행차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친 李震相(1818~1886)의 학설 가운데 말이 있는 부분에 대해 해명하고 나서 의문이 없게 된 후에 간행하고자 함이라고 하였다. 이진상의 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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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6

    答柳景達(必永)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必永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필영의 詩를 받고 그 가운데 ‘木公金毋’라는 말의 출처를 물었다. 저자는 유필영을 두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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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7

    答柳景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必永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필영의 문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팔십 년간 쌓아올린 명성에도 불구하고 조심하고 삼가는 공부가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范文正이 金玉을 강물에 내다버린 淸德이 아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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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8

    答李禹成(鍾夏)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李鍾夏에게 보낸 답장이다. 저자가 惠陵參奉에 제수된 것에 대해 이종하가 하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분수에 맞지 않는 벼슬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부모와 형제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 어찌할지 몰라 참담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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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29

    答金涵齋(壽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涵齋 金壽璜에게 보낸 답장이다. 존덕성·도문학에 관한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중용」에서 말하는 존덕성·도문학의 본래 의미는 知·行 병진에 있으며, 따라서 퇴계도 존덕성·도문학을 지·행에 분속시킨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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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0

    答權擎日(相琦)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權相琦에게 보낸 답장이다. 자연에 은거하여 詩賦에 전념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과거 공부하는 사람은 河東의 곡식만 쫓아다니다가 長安의 꽃을 보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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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1

    答李判書(裕寅)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판서 李裕寅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저자가 惠陵參奉에 제수된 것은 판서 李裕寅의 천거에 힘입은 바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시골의 한미한 서생에게 분수에 넘치는 벼슬이 내리도록 천거한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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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2

    答崔元則(琡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崔琡民에게 보낸 편지이다. 거리도 먼데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신데 감사를 표하였다. 나이가 들수록 덕이 더욱 높아진다는 말은 바로 최숙민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三嘉에 사는 宋씨 성을 가진 사람이 金溪에서 찾아왔음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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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3

    答李聖直(敬弼)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李敬弼에게 보낸 편지이다. 백씨의 병은 더욱 심해져 약을 복용해도 효과가 없다고 하였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이경필의 자제와 저자 그리고 백씨가 함께 문학을 논하면서 간간이 우스개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경필은 감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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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4

    答金卓汝(福淵)聖穆(敬淵)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福淵·敬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두 사람에게 편지 한 장으로 보내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건강이 좋지 못하던 것이 어떤지를 물었다. 또 저자에게 내린 벼슬 때문에 고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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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5

    與金伯陽(復林)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復林에게 보낸 편지이다. 「주서절요」를 이미 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요즘은 어떤 책으로 도학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지난번 崔極三이 글을 지어 와서 보여 주었는데, 비록 의리가 정밀하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안목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다고 하면서, 근자 도학이 쓸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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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6

    答崔肅仲(正基)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崔正基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즘은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물었다. 저자가 약관부터 金溪선생의 문하에 출입하였는데, 선생이 제자를 칭찬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다만 최정기의 얘기에 이르면 학문이 넉넉하고 정밀하다고 하며 주변에 이 사람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했다고 하였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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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7

    答曺學夫(秉韶)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曺秉韶에게 보낸 편지이다. 「陶山及門諸賢錄」이 모두 4개 본이 있는데 보자기에 쌓여 있은 지가 2백년이 되었다고 하고, 근자에 비로소 간행을 하려고 비교해 보니 상세한 곳도 있고 간략한 곳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원근의 諸家에 이러한 취지를 통지하려고 해도 모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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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8

    答曺學夫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曺秉韶에게 보낸 편지이다. 「喪禮抄集」은 전부를 보지 못했지만 서문을 보니 정밀하고 핵심적이어서 공력이 많이 든 것으로 보이고 또 후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다. 다만 그 가운데 몇 글자는 고쳤으면 좋겠으니 취사선택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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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39

    答申達亨(鏞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申鏞浩에게 보낸 편지이다. 둘째 아이가 科榜에 든 것으로 사람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고 하지만, 작자는 헛된 장려를 받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다. 외부의 적이 仁里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어진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결국 禮樂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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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0

    答河海朝(啓涍)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河啓涍에게 보낸 편지이다. 하계효가 退溪實紀를 간행하면서 저자에게 글을 부탁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揭先闡後의 정성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이 글을 보태면 남들이 佛穢라고 기롱할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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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1

    與柳景深(淵博)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淵博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 李晩慤의 문집인 「愼庵集」간행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물었다. 이 책은 간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귀문의 역량을 의미하고 세상이 혼란하니 선현의 글을 어찌 간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다만 언제 또 추간할지 모르는 판에 간행 부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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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2

    答柳齡叟(道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柳道龜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님의 초상에 조문하여 주신데 감사하고, 초상으로 오랫동안 인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 하였다. 저자는 나이 80이 되어서 형님 초상을 치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3대에 걸쳐 병 같지 않은 병으로 세상을 뜬 것도 이상하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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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3

    與安順可(昌烈)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安昌烈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유람에는 몇 곳을 보았는지, 鹿里에는 정자가 많고 海村에는 詞壇이 많으니 부평초 같은 인생에 위로처가 될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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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4

    答姜季明(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姜鎔에게 보낸 편지이다. 온 가족이 몸이 아파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탄하였다. 지난번에 부탁하였던 글은 굳이 사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뜻에 부응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자신을 겸손히 하고 남을 미는 것도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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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5

    答鄭聖活(來源)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鄭來源에게 보낸 편지이다. 「陶山及門諸賢錄」은 올겨울 안으로 간행할 것 같다고 하면서, 백 년 동안 미루어 왔던 일을 이번에 간행하려고 하니 두렵다고 하였다. 아마 1913-1914년 겨울에 보낸 편지로 보인다. 魯村 퇴계선생의 주석은 비록 소략하지만 四家舊本에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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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6

    與崔叔度(桓)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동문인 崔桓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의 문하에 뛰어난 제자가 많지만 학문에 있어서 최환만한 제자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서 최환에 대한 스승 이만각의 기대가 「신암집」에서 확인된다고 하였다. 「신암집」은 처음에는 기한을 정해 각처에 반질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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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7

    答金重日(悳永)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金悳永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덕영이 보낸 八景에 관련된 여러 수의 시는 각기 언외의 묘미가 있어서 漢唐의 그것에 비해 못하지 않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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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8

    答朴元汝(煃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朴煃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달 편지를 받으니 받을 때마다 새로운 각성이 된다고 하였다. 봄이 와서 꽃이 피어도 함께 술잔을 기울일 이 없으나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선비는 이것도 淸福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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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49

    答申敬甫(相翼)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申相翼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하늘이 자신의 집안을 위하여 신상익의 집에 福星 하나를 키운 지가 17년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신상익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너무 사랑하기만 하고 제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충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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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9350

    答河應洛(慶淮)聖淸(啓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중철
    河慶淮·啓弘에게 보낸 편지이다. 月湖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서 그의 아름다운 자질과 깊은 학문이 억울하다고 하였다. 저자는 위로는 팔순 백형을 모시고 아래로는 환갑이 지난 동생이 있어 비록 늘그막의 一樂이라고는 하나 호구지책은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 「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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