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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癸酉) 2월 29일에 작성하여 발급한 입안(立案). / 기록자료>고문서계유년 2월 29일에 작성하여 발급한 입안(立案)이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이가 39세인 김정립(金正立), 29세인 김용운(金龍雲), 50세인 김만필(金萬必) 등 여섯 명에게 다짐을 받은 문서이다. 김정립 등 여섯 명은, 안동에 거주하는 류출처 : 유교넷 -
294052
1729년(영조 5) 9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사돈인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산송(山訟)과 관련하여 주선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청대 권상일이 편지는 권상일이 자신의 아들 권욱(權煜)의 장인인 류성화에게 보낸 것으로, 대필 편지이다. 일전에 직접 와서 위문해 주고, 함께 자면서 얘기 나눴던 일을 회상하며, 매우 감사하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되돌아간 후 건강이 좋은지, 친척 형제들과 정답게 얘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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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영조 7) 4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청대 권상일발급자 권상일과 수급자 류성화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권상일의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셋째사위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류성화는 이해 3월 17일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임명되어, 4월 12일에 하직한 바 있다. 권상일은 류성화가 어제 성북(城北)에 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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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1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두환(痘患)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토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청대 권상일권상일은 사돈 류성화에게 강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번잡한 일로 세의(歲儀)를 보내지 못해서 죄송하며, 신부손(辛婦孫)이 무사히 전아(餞迓)해서 다행이고, 자신이 있는 곳은 두환(痘患)이 날로 번져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평생 산림에서 덕을 기르며 자수(自守)하는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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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년(영조 3) 12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상사를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일권상일이 만경 현령(萬頃縣令)으로 재직할 때 작성한 대필 편지다. 권상일은 상대의 중숙모(仲叔母)의 부고를 받고 놀랍고 슬픈 마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가 애통한 심정을 감내키 어려울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권상일은 상대가 보냈던 편지를 때때로 펼쳐 보면서, 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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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영조 19) 9월에 토헌(土軒) 권치(權緻)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등의 위문편지에 답례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치이 편지에는 조문도 못하고 조장도 제때 보내지 못한 권치의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백숙(伯叔)의 며느리 상과 경주 숙(慶州叔)의 손자며느리 상, 그밖에 류성화 집안의 상사가 거듭된 것이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권치는 질병과 상사로 인하여 조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출처 : 유교넷 -
294057
1750년(영조 26) 1월에 덕계(德溪) 권우(權萭)가 류운(柳澐)에게 상사를 위문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덕계 권우권우는 선친의 대상(大祥)을 맞을 상대방에게, 애통한 심정이 간절할 것인데 어떻게 견디고 지내느냐고 했다.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가 1748년에 하세하였는데, 이를 언급한 것이라면, 수급자는 나옹(懶翁) 류운(柳澐)일 것이다. 돌림병 기운이 치성한 때에, 복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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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영조 9) 12월에 나계(羅溪) 김필동(金必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형제의 위문편지에 답례하고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나계 김필동김필동은 먼저 매서운 겨울철에 류성화 형제의 건강이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그는 11월에 형제가 보내준 편지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는 한편, 곧장 답장을 보내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죄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은 형제분들의 두터운 보살핌 덕분에 그럭저럭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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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5월에 보낸 김간의 편지로 대필 편지이다. 먼저 김간은 근래 자못 격조하여 그리움이 깊던 터에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김간은 5월에 효리(孝履, 상인(喪人)의 기체후)가 잘 버티며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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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원은 막 소상(小祥)을 치르고 애통한 심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다고 했다. 김유원은 자신을 “고자(孤子)”라고 칭하였는데, 간찰의 〈답조장식(答弔狀式)〉에서 발급자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의 자칭이다. 김유원은 류성화가 위장(慰狀)과 더불어 제전물(祭奠物)을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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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영조 9) 7월에 송하처사(松下處士) 김익동(金翼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위문을 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송하처사 김익동김익동은 풍산 김씨(豊山金氏)와 결혼하였는데, 풍산 김 씨는 류성화의 첫째 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의 딸이다. 따라서 김익동은 류성화의 외손서(外孫壻)가 된다. 김익동은 먼저 류성화가 춘간(春間)에 보낸 편지에 대해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였다. 그런데 인편을 찾출처 : 유교넷 -
294062
1736년(영조 12) 11월에 희구재(喜懼齋) 김서운(金瑞雲)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이만유(李萬維)의 죽음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혼사 일정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서운·서한 등발급자인 김서운과 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들이다.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다. 김서운은 그 호(號)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효성이 신실한 인물이었다. 김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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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5월에 김경한(金景漢)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위문을 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경한·경헌·경온김경한(金景漢)・김경헌(金景瀗, 진사)・김경온(金景溫, 참봉)이 위문을 겸하여 류성화의 편지에 대해 보낸 답장이다. 이들은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아들인 수찬(修撰) 김여건(金汝鍵)의 둘째, 셋째, 넷째 아들이다. 이들은 먼저 류성화의 고모 상(喪)에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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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경종 2) 6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소실된 집을 재건하는 일과 관련하여 안동 수령에게 청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제 김정발급자 김정은 영주 지역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사마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과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와 수급자 류성화는 사돈지간이다. 김정은 화재가 사당과 형수의 빈소에까지 번졌는데 다행히 이안(移安)하였으나 영령이 크게 놀랐을 것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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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사제(査弟)라고 자칭하였으므로, 수급자는 류성화(柳聖和)이다. 김정의 아들 김서절(金瑞節)은 그의 첫째 사위이다. 피봉의 대효는 상대 부친이 돌아갔을 때 쓰는 말이고, 애전은 장사를 치른 후에 쓰는 말이다. 1718년에 류후상(柳後常)이 하세하였다. 김정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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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 김정이 사제(査弟)라고 자칭하였으므로, 수급자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의 아들 김서절(金瑞節)은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피봉의 대효(大孝)는 상대 부친이 돌아갔을 때 쓰는 말이고, 애전(哀前)은 장사를 치른 후에 쓰는 말이다. 17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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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하가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에 보내진 편지이다. 남형회는 자신을 민(民, 경내 백성)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남형회는 류의하가 근친(覲親)하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번에 보낸 편지를 받고서 무사히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된 데 이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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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숙종 14) 8월에 탑와(㗳窩) 남형회(南亨會)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위문편지에 답례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남형회피봉의 류 천안(柳天安)은 류의하의 택호인데, 그는 1679년 9월에 천안 현감(天安縣監)에 임명되어 그 다음 달에 사은(謝恩)한 바 있다. 남형회는 장손(章孫, 이름에 장(章)자가 들어간 손자)을 통하여, 복더위에 류의하의 건강이 좋다는 소식을 알고서, 매우 안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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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숙종 3) 8월에 죽헌(竹軒) 도신징(都愼徵)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위문편지에 답례하고 사직(辭職) 계획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도신징도신징은 의외로 류성화의 위문편지를 받고서, 건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류성화가 가까운 곳에 왔다가 자신을 찾지 않은 데 대하여 섭섭한 마음을 표시하였다. 자신은 문내(門內)의 상사가 다하지 않아서, 삼상(三喪, 거듭된 세 사람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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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무는 먼저 동짓달 추위에 류성화의 건강이 철따라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혼례가 순조롭게 치러졌고 새색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니, 피차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다만 며칠 머무르지도 않고 곧장 돌아가서, 매우 섭섭하다고 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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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현종 12) 10월에 고송(孤松) 신홍망(申弘望)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의 위문편지와 부조에 답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인 신홍망류의하는 1671년 3월에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임명되어 부임하였다. 이 편지는 류의하가 영천 이씨(永川李氏)를 잃었던 신홍망에게 보낸 조장(弔狀)에 대한 답장이다. 신홍망은 오봉(梧峰) 신지제(申之悌)의 아들이다. 류의하의 동생인 류중하(柳重河)는 신홍망의 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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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영조 7) 3월에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이 김 참봉(金參奉)의 위문 편지에 답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애자 오광운오광운은 1730년 9월에 어머니인 숙부인(淑夫人) 광주 안씨(廣州安氏)의 상을 당하였다. 광주 안씨는 재곡(齋谷) 안후열(安後說)의 딸인데, 68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그녀는 1680년에 오상순(吳尙純)과 혼인하였다. 묘소는 파주(坡州)에 있다. 이 편지는 오광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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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영조 14) 10월에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위문편지에 답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애자 오광운1738년 1월 26일에 오광운은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던 아버지 오상순(吳尙純)의 상을 당하였다. 이 편지는 형식적으로 볼 때 전형적으로 〈답조장식(答弔狀式)〉을 따랐으며, 시기적으로는 오상순의 장례를 마친 후에 작성된 것이다. 오광운은 자신에게 위문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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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1월에 이만용(李萬容)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그외손녀의 혼처에 대해 품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만용·만굉발급자 이만용과 이만굉(李萬宏)은 동애(東厓) 이협(李浹)의 아들로, 류성화의 사돈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종제(從弟)들이다. 먼저, 이들은 일전에 받은 답장을 황망하여 못 펼쳐본 것이 아쉬웠다고 했다. 자신들은 종상(終祥)을 치르고 평복으로 갈아입었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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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11월에 옥봉(玉峯) 이민정(李敏政)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동생의 상사를 위문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민정·민적이 편지는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과 그의 형인 옥봉(玉峯) 이민정(李敏政)이 류성화의 계씨(季氏) 상(喪)에 대하여 보낸 위문편지이다. 풍산 상리에 위치한 체화정(棣華亭)은 이민정과 이민적 형제가 함께 기거하며 우애를 다지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1747년에출처 : 유교넷 -
294076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아버지인 동몽교관(童蒙敎官) 류후상(柳後常)이 1718년에 하세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조장(弔狀)으로 보인다. 이협은 이관징(李觀徵)의 아들로, 형들인 이옥(李沃)・이발(李浡)・이숙(李淑)과 함께 중망(重望)을 받았다. 이협은 부친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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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정조 15) 11월에 후산(后山) 이종수(李宗洙) 등이 청성서원(靑城書院)모임 참석을 간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수·권겸·김홍발급자는 후산 이종수, 학림(鶴林) 권방(權訪)의 형인 권당(權讜), 귀와(龜窩) 김홍(金㙆)으로, 주로 이상정(李象靖)의 문인들이다. 피봉에는 청성회중(靑城會中)이라 되어 있는데, 이들이 청성서원에 있으면서 충효당 인물에게 보낸 것이다. 시기적으로 수급자가 외재(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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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7월에 누실(陋室) 이중연(李重延)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과거에 뜻이 없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중연발급자 이중연은 본관이 진성(眞城), 자가 희원(希元)이다. 그는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의 아들이며, 난은(懶隱) 이동표(李東標)의 손자이다. 서호 류성화의 동생인 류성구(柳聖久)의 첫째사위이기도 하다. 이중연은 류성화에게 지난번 편지에서 오신다는 하교(下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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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1월에 누실(陋室) 이중연(李重延)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등에게 상사를 위문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이중연이중연은 난은(懶隱) 이동표(李東標)의 손자이다. 그의 전배(前配)는 류성화의 동생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이중연은 먼저 새해가 이르고 봄기운이 생겨나는 이때에 상대에 대한 경모의 정이 더욱 간절했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안부 편지를 받았는데, 이중연은 면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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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8월에 누실(陋室) 이중연(李重延)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등의 위문편지에 답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기복인 이중연이중연은 난은(懶隱) 이동표(李東標)의 손자이다. 그의 전배(前配)는 류성화의 동생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이중연은 자신이 반년 동안 바쁘게 다니고 근심거리와 상사까지 더해져서, 안부 편지를 보낼 생각을 못했기에, 만념(萬念)이 잿더미와 같게 된 상황에서도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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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丙□) 2월에 이지간(李之幹)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딸의 약재로 쓸 진계(陳鷄)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이지간발급자인 이지간은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집안 조카가 된다. 식산 이만부의 아들인 이지빈(李之彬)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사위가 된다. 시기적으로, 수급자는 서호 류성화인 듯하다. 먼저, 이지간은 일전에 서제(庶弟)가 돌아갔으니 상대가 자신의 안부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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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숙종 45) 9월에 이지백(李之柏)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가족들의 근황과 반보기 계획 등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기복인 이지백발급자인 이지백은 이만유(李萬維)의 둘째로, 이만부(李萬敷)의 양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류성화의 둘째 사위이다. 피봉의 효려(孝廬)는 상인(喪人)이 장사를 치르기 전에 쓰는 말이다. 이지백은 8월에 며칠간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기쁨이 간절하였는출처 : 유교넷 -
294083
1725년(영조 1) 1월에 이지백(李之柏)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이지백발급자인 이지백은 이만유(李萬維)의 둘째 아들로서 후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양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또한 류성화의 둘째 사위로, 이 편지는 이지백이 그의 장인에게 보낸 것이다. 그는 후에 이지빈(李之彬)으로 개명한 듯하다. 먼저, 이지백은 일전에 되돌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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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3월에 이지백(李之栢)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소상(小祥)에 참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심죄인 이지백발급자인 이지백은 이만유(李萬維)의 둘째 아들로,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양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또한 류성화의 둘째사위이다. 이지백은 노복이 전해준 편지를 받고서, 그때 연사(練事, 곧 연제(練祭))가 순조롭게 이뤄졌고 류성화가 건승함을 알고 위로되었으나출처 : 유교넷 -
294085
1728년(영조 4) 1월에 이지빈(李之彬)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근황과 부인의 귀근 일정 등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이지빈이지빈은 류성화의 둘째 사위이다. 이지백(李之柏)은 그의 개명 전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이지빈은 며칠 전에 김 주서(金注書)가 가는 편에 신년 안부편지를 작성하여 보냈는데, 심부름꾼이 갑자기 와서 류성화의 친필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류성화의 복중(服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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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5월에 이지복(李之馥)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휼하생기복인 이지복이지복은 봄이 다가고 여름이 오도록 소식을 받을 길이 없어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류성화가 보낸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 편지를 받고서 첫더위에 류성화의 건강이 괜찮다는 소식을 알고,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님의 병환이 여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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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영조 11) 5월에 이만기(李萬奇)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근황을 전하고 자신의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인 이만기발급자 이만기는 연안 이씨(延安李氏) 인물로, 박천(博泉) 이옥(李沃)의 아들이다. 그는 적자(嫡子)가 아닌 서출(庶出)이다. 그의 적형(嫡兄)으로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있는데, 이만부의 아들인 이지빈(李之彬)이 바로 류성화의 둘째사위이다. 이지빈은 수찬(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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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숙종 13) 12월에 난은(懶隱) 이동표(李東標)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의 위문편지에 답례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복인 이동표피봉의 류천안(柳天安)은 류의하의 택호인데, 1679년 9월에 천안 현감(天安縣監)에 임명되어 그 다음 달에 사은(謝恩)한 바 있다. 이 편지는 이동표가 당한 숙부상(叔父喪)에 대하여 류의하가 보냈던 조장(弔狀)에 대한 답장이다. 이동표는 숙부의 죽음으로 애통한 심출처 : 유교넷 -
294089
1699년(숙종 25) 8월에 난은(懶隱) 이동표(李東標)가 류 생원의 위문편지에 답례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애자 이동표이는 어머니 순천 김씨(順天金氏)의 상에 대하여 류 생원이 보냈던 위장에 대한 답장이다. 이동표는 춘양 어로동(漁老洞)으로 이거했던 해인 1698년의 12월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예천(醴泉)에서 김씨를 모시고 예안(禮安) 원당(元塘)에 이르렀을 때, 김씨가 갑자기병에출처 : 유교넷 -
294090
1746년(영조 22) 8월에 양한당(養閑堂) 이세항(李世恒)이 수급자 미상에게 귀환일정 및 여러 일상사의 소식과 감회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세항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손자인 류종춘(柳宗春)은 사서(司書)를 지냈던 이세진(李世震)의 사위인데, 이세진은 바로 발급자인 이세항의 큰형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류성화 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세항은 자신이 집으로 돌아온 지 여러 날이 되는데, 소식을 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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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丁□) 7월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만부피봉이 있는데, 우측에는 “장상(狀上)”, 좌측에는 “하상 복좌전(河上服座前)”, 하단에는 “생식 근봉(省式謹封)”이라고 적혀 있다. 이만부가 자신을 ‘사제(査弟)’라고 일컫는 것으로 보아 상대방이 사돈임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아들인 이지빈(李之彬)이 바로 류성화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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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戊□) 1월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만부발급자인 식산 이만부와 수급자 서호 류성화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이만부의 아들인 이지빈(李之彬)이 류성화의 둘째사위인 것이다. 이지빈은 수찬(修撰)을 지냈던 이만유(李萬維)의 아들로 이만부에게 입적되었다. 먼저, 이만부는 복중(服中)에 사돈인 류성화가 강녕하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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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경종 2) 11월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류 생원(柳生員)에게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기복인 이만부이만부의 대필 편지이다. 이만부가 자신을 사제(査弟)라고 지칭하고 있으므로, 류 생원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이다. 이만부의 양자인 이지빈(李之彬)은 류성화의 둘째 사위이다. 이만부는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11월에 그의 건강이 좋음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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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영조 1) 4월에 이술중(李述中)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상사를 위문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이술중이술중은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의 아들이다. 이덕록은 풍산 류씨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류의하(柳宜河)의 동생인 류중하(柳重河)의 손녀이자 생원 류후강(柳後康)의 딸이다. 먼저, 뜻밖의 흉변으로 영천(榮川) 할아버님이 갑자기 하세하니, 부음을 받고 통곡하였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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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4월에 이술중(李述中)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위문편지를 받고 제때 답장하지 못한 것에 양해를 구하고 큰 사촌의 상에 조문한 것을 감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심죄인 이술중·식중 등발급자 이술중과 이식중(李湜中)은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의 아들들이다. 이덕록은 풍산 류씨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류의하(柳宜河, 류성화의 조부)의 동생인 류중하(柳重河)의 손녀이자, 생원 류후강(柳後康)의 딸이다. 먼저, 이술중 등은 어머니를 잃은 애통한 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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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영조 17) 12월에 이술중(李述中)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장사에 불참한 것에 대하여 양해를 구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이술중·식중발급자 이술중과 이식중(李湜中)은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의 아들들이다. 이덕록은 풍산 류씨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류의하(柳宜河)의 동생인 류중하(柳重河)의 손녀이자, 생원 류후강(柳後康)의 딸이다. 작년 가을에 갔을 때, 애통한 감정과 두려운 걱정거리로 인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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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3월에 이술중(李述中) 등이 보내준 위장(慰狀)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아울러 조위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이술중·식중발급자 이술중과 이식중(李湜中)은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의 아들들이다. 이덕록은 풍산 류씨와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류의하(柳宜河)의 동생인 류중하(柳重河)의 손녀이자, 생원 류후강(柳後康)의 딸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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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겸은 먼저 뜻밖에 일어난 상사에 대하여 경악스러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고, 복중(服中)에 있는 수급자들의 봄철 안부를 물었다. 또 근자에 사형(査兄, 사돈의 존칭)이 돌림감기에 걸려 더욱 쇠약해졌을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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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정재(靜齋) 이담명(李聃命)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의 위문편지에 답례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담명이 편지는 류의하의 위장(慰狀)에 대한 이담명의 답장이다. 이담명은 먼저 류의하가 자신을 위문하여 줬던 것은 평소 보살피는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이런 후에 류의하의 근래 안부에 관해 물었다. 이담명 자신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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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4월에 설죽당(雪竹堂) 강재숙(姜再淑)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필적(筆蹟)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재숙강재숙은 잠계(潛溪) 강우(姜鄅)의 아들이자, 도은(陶隱) 강각(姜恪)의 손자이다. 먼저, 강재숙은 오계(梧溪)에서 며칠 동안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이미 작년의 일이 되었다고 하면서, 류성화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다. 자신은 연초부터 근심과 질병에 골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