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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영조 2) 2월에 설죽당(雪竹堂) 강재숙(姜再淑)이 그리운 정을 나타내고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재숙강재숙은 잠계(潛溪) 강우(姜鄅)의 아들이자, 도은(陶隱) 강각(姜恪)의 손자이다. 먼저, 강재숙은 봄 강물이 그득한 때에 상대의 건강이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하루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고 꿈을 꾸지 않는 밤이 없다고 하면서 상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나타냈다.출처 : 유교넷 -
294102
1812년(순조 12) 10월에 송서(松西) 강운(姜橒)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역사(役事)에 도움을 준 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강운발급자 강운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가 경하(擎厦)이다. 그는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사헌부 지평과 이조정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피봉에 송영(松營)이라는 말이 있는데, 수급자가 1811년(순조 11)에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임명된 바 있는 류상조임을 알출처 : 유교넷 -
294103
1673년(현종 14) 7월에 강호(姜鄗) 등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위문편지에 답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강호자이 편지는 잠은(潛隱) 강흡(姜恰)의 아들인 강호(姜鄗)와 강자(姜鄑)가 상대의 조장(弔狀)에 대하여 답례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담사(禫祀)를 마친 직후에 작성된 것인데, 강흡이 1671년에 하세하였으므로, 그의 상(喪)과 관련된 편지로 보인다. 기체후 용어에 정체출처 : 유교넷 -
294104
1731년(영조 7) 12월에 강창(姜㫤)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약재를 요청하고 사돈의 상사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강창류성화가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에 보내진 편지이다. 그는1731년 3월에 본직에 임명되어, 그 다음 달에 하직(下直)한 바 있다. 먼저, 강창은 근자에 류 서방(柳書房)이 가는 편에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류성화가 이를 봤는지 물었다. 이어,출처 : 유교넷 -
294105
정사(丁巳) 3월에 여헌동(呂憲東)이 수급자 미상에게 통문(通文)을 보내서 일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여헌동봄은 점점 무르익는데 그리운 마음이 간절한 이때에 상대방은 강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이어 질녀도 별 걱정 없이 잘 있으며 자신은 예전처럼 지낸다고 전하였다. 주변(注變) 이후 일이 재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것 같고 이 일과 관련하여 상대방 계중(契中)에 여러 차례 고자출처 : 유교넷 -
294106
1812년(순조 12) 4월에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인사 청탁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강세륜이 편지에는 피봉이 있는데 우측에는 “송영 절하 집사 입납(松營節下執事入納)”, 좌측에는 “강교리 상후장(姜校理上候狀)”, 하단에는 착명과 함께 “근봉(謹封)”이 적혀 있다. 송영(松營)은 개성 유수영(開城留守營)을 가리키는 바, 수급자인 류상조는 1811년(순조 1출처 : 유교넷 -
294107
먼저, 권상일은 사돈 류성화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며느리는 건강한지를 묻고, 아들을 보냈으니 혈기가 아직 왕성하고 무지몽매하므로 잘 가르쳐주시기를 사돈께 부탁하고, 6일에서 7일 정도 있다가 돌려 보내주출처 : 유교넷 -
294108
1725년(영조 1) 3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영해(寧海)의 소식을 정확히 알려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일피봉의 사장(査丈)이라는 말에 근거할 때, 수급자인 류 원장(柳院長)은 권상일의 사돈인 서호 류성화이다. 그와 여흥 이씨(驪興李氏) 사이에서 난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막내 사위이다. 먼저, 권상일은 류성화의 종이 돌아간 후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고 하면서,출처 : 유교넷 -
294109
1725년(영조 1) 3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수급자 미상에게 옥천 수령건과 관련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상일먼저, 권상일 자신은 여러 날 집을 떠나 있으면서 설사 증세가 그치지 않아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옥천(沃川) 수령이 읍내(邑內)를 지나갔는데 서로 안면이 없어서 인사를 못했으니 답장을 써서 전하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물었다. 귀부(貴府 : 상대방이출처 : 유교넷 -
294110
먼저, 권상일 자신은 병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몸이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아 답답할 뿐이라며 근황을 얘기하고 이어 부모님께서는 별탈이 없이 지내셔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전염병 때문에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며느리 신행(新行)이 귀소(貴所 : 상대방이 있는출처 : 유교넷 -
294111
1746년(영조 22) 8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수급자 미상에게 식구들 안부와 역병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뜻하지 않게 계모(季母)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비통한 마음을 전하고 이어 상대방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다른 질병 없이 근근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계부(季父)께서 여러 개월 병환을 앓아서 기운이 많이 쇠잔해지셨고, 마을의 역병이 나날이 번지는 데출처 : 유교넷 -
294112
피봉의 사장(査丈)이라는 말에 근거할 때, 수급자인 류 원장(柳院長)은 권상일의 사돈인 서호 류성화이다. 권상일과 여흥 이씨(驪興李氏) 사이에서 난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막내 사위이다. 권상일은 며칠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류성화의 병세가 어떠출처 : 유교넷 -
294113
1732년(영조 8) 8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흉년에 대한 근심스러운 마음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사돈인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로 강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은 숙질(宿疾)이 서늘한 계절을 맞아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올해 농사가 작년보다는 낫지만 경기도의 흉년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국가 차원에서도출처 : 유교넷 -
294114
1732년(영조 8) 12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이만부의 안부와 전염병 소식 등에 대하여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사돈인 류성화가 보내주신 편지로 류성화가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은 추위 때문에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근근이 지내고 있다. 식산장(息山丈 : 식산 이만부(李萬敷)를 말함.)의 병환이 조금 안정되긴 했지만 노인출처 : 유교넷 -
294115
1733년(영조 9) 8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하회의 부진한 농사 작황에 대한 우려의 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뜻밖에 사돈의 편지를 받고 강녕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요즘 손주 보는 재미로 살고 있고, 미아(迷兒 : 자신의 자녀를 낮춰서 일컫는 말)는 산장(山庄)에 가서 아직 안돌아 왔다고 하였다. 그는 귀처(貴處 : 사돈이 있는출처 : 유교넷 -
294116
1734년(영조 10) 9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사직을 임금에게 간청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사돈인 류성화에게 그 동안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였다고 하면서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지난달 27일에 입성(入城)하여 다음날 새벽에 패(牌)를 받아 입시(入侍)하여 임금께 사직에 대해 간청했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294117
1742년(영조 18) 1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식구들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복인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우선 사돈께서 강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며느리와 손주는 별탈이 없이 지내고 있으나 문손(汶孫)이 전염병에 걸렸고, 아내도 병 때문에 영천(永川)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다. 선대(仙臺)의 만남은 날이 따뜻출처 : 유교넷 -
294118
1738년(영조 14) 5월에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기로 정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상일먼저, 권상일은 사돈인 류성화가 근래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편지를 보내줘서 마음이 놓였으며, 사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관부(寬夫)가 갑자기 죽어서 애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들과 손자가 돌아와서 마음이 놓이고 숙모의출처 : 유교넷 -
294119
고두표(高斗杓)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집을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부탁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두표작성연대는 미상이고, 다만 작성일에 대해서는 ‘즉조(卽朝 : 당일 아침)’라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수급자인 류성화가 1729년(영조 5) 7월에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에 임명되었으므로, 작성 연대는 이 시기 이후부터 산음 현감에 제수되기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볼출처 : 유교넷 -
294120
1806년(순조 6) 11월에 덕암(德巖) 조용완(曺龍玩)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자신의 근황과 관할 사건에 대한 향후 계획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조용완조용완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7세손이다. 그는 1804년 2월에 용궁 현감(龍宮縣監)으로 임명되어, 이 시기에 재직하고 있었다. 피봉의 ‘하회 류 승지’는 당시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임명되었던 일우 류상조를 가리킨다. 조용완은 류상조의 초5일 편지를 지금에야출처 : 유교넷 -
294121
1731년(영조 7) 3월에 양정호(梁廷虎)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수령 임용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양정호좌부승지(左副承旨)로 있던 양정호가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임명된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류성화는 1731년 3월 17일에 산음 현감으로 임명되어 4월 12일에 하직하였으므로, 이때는 류성화가 임명 사실을 알고 서울에 올라와 하직을 준비출처 : 유교넷 -
294122
1745년(영조 21) 8월에 곽정(郭珽)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사위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곽정곽정은 근자에 자신의 노비가 돌아와서, 류성화의 사위인 김 침랑(金寢郞, 침랑은 참봉임)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류성화의 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은 이해 1월에 온릉 참봉(溫陵參奉)으로 임명된 바 있는데, 이 무렵 하세한 것으로 보인다. 곽정은 마땅히출처 : 유교넷 -
294123
1746년(영조 22) 4월에 곽정(郭珽)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포산 곽씨의 죽음에 대한 감회를 전하고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복인 곽정곽정은 류성화의 동생 류성삼(柳聖三)의 손자인 류희춘(柳熙春)의 장인이다. 류희춘의 아내인 포산 곽씨(苞山郭氏)는 후사를 낳지 못하고 1745년에 죽고 말았다. 먼저, 곽정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도록 여러 차례의 인편에 안부를 전하지 못하였기에, 늘 죄송했다고 하출처 : 유교넷 -
294124
곽정은 먼저 새해에 류성화가 많은 복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삼가 근하신년의 간절한 정성을 표현하였다. 다만, 류성화가 종수(從嫂)의 상사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이 때문에 놀랍고 슬픈 마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새해를 맞아 고로(孤露, 부모가 돌아가출처 : 유교넷 -
294125
1745년(영조 21) 1월에 곽정(郭珽)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새해를 맞은 자신의 감회와 새해 인사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곽정곽정은 먼저 새해에 류성화가 많은 복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삼가 근하신년의 간절한 정성을 표현하였다. 자신은 부모를 여의고 홀로 남은 신세로, 새해를 맞아 그저 고로(孤露,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자식이 생전에 효성을 다하지 못하였던 것에 대한 자책과 슬픔)의 감출처 : 유교넷 -
294126
먼저, 권상일은 사돈인 류성화에게 강녕하신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노인(老人)들도 편안히 계시고 이 숙가(李叔家)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가아(家兒 : 장자 욱(煜)을 지칭함.)가 요즘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열심히 하지는 않는 듯하여출처 : 유교넷 -
294127
1731년(영조 7) 8월에 구익남(具翼南)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묻고 묘비 개수 일 등에 관해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구익남류성화가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에 보내진 편지이다. 그는1731년 3월에 본직에 임명되어, 그 다음 달에 하직(下直)한 바 있다. 구익남은 먼저 류성화가 남쪽으로 떠난 지 4달이나 되니,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깊어가는 섭섭한 마음을 표현할 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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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4월에 권천서(權天瑞)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상사를 위문하고 누이의 출산 소식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천서먼저, 권천서는 전일에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나, 마침 자신의 병이 더욱 심해져서 곧장 답장하지 못하였으므로 죄송하였다고 했다. 이어서, 이때에 류성화의 정후(靜候, 영감하(永感下) 즉 부모를 모두 잃은 상대방에게 쓰는 기체후)가 만안(萬安)할 것으로 생각되니출처 : 유교넷 -
294129
1738년(영조 14) 11월에 권천서(權天瑞)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김상헌 서원 훼손 사건 후 주동자 처리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천서권천서는 여러 달 동안 서로 떨어져 있어서 류성화에 대한 그리움이 깊던 차에 뜻밖에 류성화의 조카를 만났다고 했다. 이를 통해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극한(極寒)에 건강이 좋다는 것을 알고서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 병과 신병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답답하출처 : 유교넷 -
294130
1731년(영조 7) 10월에 권두정(權斗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병제 권두정먼저, 권두정은 류성화에게 여름부터 가을까지 자신의 병이 심해지고 여기에 갑자기 천식까지 와서 항상 골골거리며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류성화에 대한 생각이 나서 한번 만나기를 바랐는데 뜻하지 않게 보내준 편지를 받고서 마음이 위로되었다고 하였다. 권두정은 류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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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영조 7) 3월에 권두정(權斗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현감으로 제수된 것을 축하하고 하회에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음을 아쉬워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권두정권두정은 행정(杏亭) 권수경(權守經)의 증손으로, 일찍이 권수경의 유사(遺事)를 짓기도 하였다. 먼저, 권두정은 류성화가 산음 현감에 제수되었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한 번도 안부를 묻지 못하였으니, 정의를 저버림이 실로 심하다고 했다. 수령에 제수된 영광은 류성화에출처 : 유교넷 -
294132
1744년(영조 20) 3월에 백록(白鹿) 권필(權苾)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종손을 세운 일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복인 권필·빈발급자인 권필(權苾)과 권빈(權薲)은 하당(荷塘) 권두인(權斗寅)의 셋째와 넷째아들이다. 부친 사후에, 이들은 권두인의 시문(詩文)을 수습하여 간행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먼저 지난달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깊은 보살핌에 매우 감사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인편이출처 : 유교넷 -
294133
1709년(숙종 35) 3월에 번천(樊川) 권창운(權昌運)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인 권창운번천 권창운은 고산(孤山) 이유장(李惟樟)의 문인으로, 병곡(屛谷) 권구(權榘) 등과 친밀히 교유하였다. 그는 1693년 한 해에 사마 양시(司馬兩試)에 모두 입격한 바 있다. 권창운은 질병과 우환은 사람이 혹 면하지 못할 수 있으나, “개제신로(愷悌神勞, 화락한출처 : 유교넷 -
294134
1733년(영조 9) 4월에 권진한(權震翰)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만남을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기 권진한권진한은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며칠 동안 함께 묵었던 일을 온서(穩敍, 여유롭게 만나 회포를 풂)했다고 할 만했지만, 그럼에도 남은 회포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청화(淸和)한 계절에 류성화의 건강이 철따라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하여서 달리 말씀 드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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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영조 1) 6월에 권정로(權鼎老)가 류 생원(柳生員)에게 며느리의 사망 등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권정노권정로는 예천 현산(峴山)에 거주하던 안동 권씨 인물로, 1711년(숙종 37)에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는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를 지냈던 삼유정(三悠亭) 권만제(權萬濟)의 아들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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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현종 14) 8월에 권두원(權斗元)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안부를 묻고 물품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권두원류의하가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재직하던 때에 보내진 편지이다. 그는 이 무렵 현감으로 재직하고 있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본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권두원은 먼저 요사이 류의하의 방문을 받았던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리고 서리 내리는 가을철에출처 : 유교넷 -
294137
1739년(영조 15) 8월에 권획(權擭)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초청에 응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하 권화권획은 먼저, 일전에 혼란스럽던 와중에 차분하게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되돌아왔기에, 매우 아쉬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심부름꾼이 전해 준 편지를 받고서 요사이 류성화가 계속 건승함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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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현종 14) 7월에 용곡(龍谷) 권훤(權愃)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의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훤류의하가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때에 보내진 편지이다. 그는 이 무렵 현감으로 재직하고 있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본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권훤은 먼저 심부름꾼을 통해서 현감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류의하의 건강이 좋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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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甲申) 8월에 권영도(權永度)가 찾아가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대하여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권영도권영도는 먼저, 지난번에 절하고 상대와 작별하고 나서, 매우 아쉬웠다고 하였다. 이제 연일 초가을 서늘한 기운이 점점 심해지고 추의(秋意 : 가을다운 멋)가 깊어지고 있는 이때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상대 형제분들의 건강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권영도는 상대를출처 : 유교넷 -
294140
1800년(정조 24) 6월에 유양(酉暘) 권사호(權思浩)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선물과 편지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류이좌(柳台佐)의 부여 현감 임명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사호권사호는 소산(小山) 권정택(權正宅)의 아들로, 생원시에 입격하고 후에 현감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피봉의 “권사천(權泗川)”은 그가 사천 현감(泗川縣監)을 지냈음을 나타낸다. 권사호는 뜻밖에 류상조의 편지와 3종의 좋은 선물을 받고, 자신은 하지 못한 일을 류상조출처 : 유교넷 -
294141
1724년(경종 4) 7월에 권두제(權斗齊)가 류 원장(柳院長)에게 자신의 요즘 심사를 전하고 방문 계획에 대하여 환영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두제발급자 권두제에 대해서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장곡(藏谷) 권태일(權泰一)의 후사인 권세후(權世後)의 둘째아들이 아닌가 한다. 먼저, 권두제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매우 그리웠는데, 뜻밖에 류 원장의 편지를 받고서 매우 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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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의 류 봉사(柳奉事)는 서호 류성화이다. 그는 1729년 7월에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에 임명된 바 있다. 권경은 눈 내리는 추위에 류성화의 벼슬살이가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객지에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일찍 과부가 된 질부(姪婦)가 지난 그믐날에 죽었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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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순조 26) 5월에 권환(權睆)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번암집(樊巖集)》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생 권환피봉의 태좌(台座)나 편지 말미의 태감(台鑒)이라는 말을 보건대, 수급자는 일우 류상조로 보인다. 또한 이 편지에는 채제공의 《번암집(樊巖集)》간행 정보를 알 수 있는데, 류상조는 이 문집 간행에 정성을 쏟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권환은 단양(端陽)에 류상조의 건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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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7월에 권대규(權大規)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상대방 조카의 상사(喪事)에 대하여 위문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권대규먼저, 권대규는 류성화가 일전에 보내준 편지를 받고 잘 지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자신은 질부(姪婦)의 상을 겪은 이후 여러 가지 병이 찾아와 날마다 신음하면서 가련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직천(直川) 김형(金兄)과 사는 곳이 그리 멀지 않아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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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순조 32) 5월에 권대진(權大鎭) 등이 류성룡 가묘 치제를 축하하고 불참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대진 등발급자는 권대진·권재진(權在鎭)·권대진(權大軫)·권영환(權瑛煥)이다. 1832년 2월에 순조는 류성룡을 비롯한 이항복(李恒福)·윤두수(尹斗壽)·정곤수(鄭崑壽)·권율(權慄)의 가묘(家廟)에 사유(賜侑, 국가에서 제사를 내림)하라고 명한 바 있다. 이 편지는 이와 관련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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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년(헌종 8) 3월에 권옥(權鈺)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아래 고을로 내려갔던 일 등에 대하여 알려주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권옥먼저, 권옥은 오랫동안 뵙지 못하여 늘 그리는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이어, 꽃피는 계절에 류성화의 건강이 철따라 건승할 것이라 하면서, 멀리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 겨울에 과연 아래 고을로 갔는데, 관청의 힘을 동원하지 않고 스스로 마련하려고 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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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윤달에 권초령(權楚齡)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기복인 권초령권초령은 먼저 봄 사이에 류성화와 노상(路上)에서 인사했던 관계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매우 섭섭했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런데 금방 자신의 아들 편으로 류성화가 보내 준 편지를 받고 삼가 감사하였으며, 류성화의 건강이 철따라 좋다는 소식을 알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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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순조 32) 3월에 권택중(權宅中) 등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류성룡 가묘 치제를 축하하고 불참에 대하여 양해를 구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택중·권장도·권영진도계(道溪, 안동 북후 도촌리 도계촌으로, 안동 권 씨 집성촌)의 권택중 등 4명이 보낸 편지이다. 1832년 2월에 순조는 류성룡을 비롯한 이항복(李恒福)・윤두수(尹斗壽)・정곤수(鄭崑壽)・권율(權慄)의 가묘(家廟)에 사유(賜侑, 국가에서 제사를 내려줌)하라 명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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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영조 8) 3월에 배명규(裵命圭)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현감재직 중 대동미(大同米)를 모두 걷지 못한 일에 대한 처리 경과를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배명규·권상의배명규와 권상의(權尙義)는 산음(山陰) 향청(鄕廳)의 임원(任員)이다. 류성화는1731년 3월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임명되고 4월에 하직하여, 그해 12월 무렵까지 현감으로 재직하였다. 먼저, 배명규 등은 현감 직에서 물러나 떠나가는 류성화와 작별한지 벌써 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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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경종 1) 2월에 권휴(權畦)가 수급자 미상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목재 확보 문제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권휴발급자인 권휴는 번천(樊川) 권창운(權昌運)의 아들이다. 그가 기록한 권창운의 초종록(初終錄)에, 병곡(屛谷) 권구(權榘)가 후지(後識)를 지어주기도 하였다. 권구는 졸재 류원지의 외손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듯하다. 권휴는 비록 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