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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2월에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과 울산 수령으로 있던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근황에 대해 알린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권한먼저, 권한은 어제 학가(學可, 양진당(養眞堂) 류영(柳泳)을 가리키는 듯하다.)를 통하여 류성화가 평안하다는 소식을 알고 매우 위로가 되었는데, 지금 또 심부름꾼을 통해서 봄추위에 류성화가 건승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그런대로 지내고는 있으나 금월 20일에출처 : 유교넷 -
294202
1737년(영조 13) 8월에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과거(科擧)일정 등에 관한 여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기복제 권한발급자인 권한은 류성화의 사돈인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과 일가로 보인다. 권한은 상부(孀婦)와 어린 손자가 별 탈이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울산부의 소식[울산수령으로 나가 있던 권상일의 소식]이 근래 막혔다가 추석 제태(祭馱) 편으로 평안하게 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294203
1738년(영조 14) 3월에 지포(芝圃)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아들인 권상룡(權相龍)의 급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권한지포 권한은 류성화의 사돈인 권상일(權相一)의 조카이다. 권상일의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셋째 사위이다. 먼저, 권한은 지난번에 류성화의 건강이 좋지 않다가 금방 회복되었으므로, 걱정하던 끝에 다시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다만 노인의 근력이 회복되기란출처 : 유교넷 -
294204
1739년(영조 15) 4월에 지포(芝圃)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권한발급자 지포 권한은 류성화의 사돈인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조카이다. 권상일의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셋째 사위이다. 먼저, 권한은 마마로 인하여 소식이 막혔고 서신도 보내지 못하였기에 안타까웠는데, 류성화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편지를 읽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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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7월에 지포(芝圃)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권한발급자 권한은 류성화의 사돈인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조카이다. 권상일의 아들인 권욱(權煜)은 류성화의 셋째 사위이다. 먼저, 권한은 해를 넘도록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여름 초엽의 류성화의 편지가 마음을 달래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출처 : 유교넷 -
294206
1742년(영조 18) 1월에 권한(權澣)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권한먼저, 권한은 류성화의 새해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새해를 맞아 얻은 것은 더해가는 나이일 뿐이고, 고로지감(孤露之感)이 노경에 이르러 더 심해진다고 했다. 권한은 마을에 돌림병이 크게 일어나 작년 겨울 말에 이 질(李侄)이 건강을 해쳤다는 소식과 지구(知舊)출처 : 유교넷 -
294207
기해(己亥) 10월에 권중태(權重台)가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질 권중태먼저, 권중태는 찾아뵈었던 것이 이미 오래되어 그리움이 늘 간절했다고 하면서, 상중(喪中)에 있는 상대와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마땅히 제사 때에 나아가 뵈었어야 했으나, 오래도록 일에 골몰되어 인사를 차릴 겨를이 없었기에 일이 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208
1829년(순조 29) 3월에 권중태(權重台)가 노비를 매매하고 추심하는 일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질 권중태수급자는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인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외재(畏齋) 류종춘(柳宗春)의 아들인데, 원래 생부는 류해춘(柳海春)이다. 권중태가 수급자에 대해 자신을 조카라고 하였으므로, 류해춘의 외손자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권중태는 세전(歲前출처 : 유교넷 -
294209
1710년(숙종 36) 1월에 권중태(權重台)가 수급자 미상에게 추노(推奴)와 관련하여 편의를 봐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말 권중태발급자 권중태의 부친인 권양(權懩) 및 서호 류성화는 모두 모암(茅菴) 장진(張瑱)의 사위이다.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의 후예인 장진은 첫째부인인 함양 박씨(咸陽朴氏)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권양은 첫째사위이고 류성화는 셋째사위이다. 발급자 권중태출처 : 유교넷 -
294210
경인(庚寅) 1월에 권중태(權重台)가 권 생원(權生員)에게 그곳으로 추노(推奴)를 하기 위해 떠난 류 생원(柳生員)의 편의를 봐달라고 요청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말 권중태권중태는 먼저, 연전에 일 때문에 권 생원을 찾아 갔는데 그로부터 보살핌을 많이 입고 돌아왔으므로, 지극히 감사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에 소식이 막혀서 항상 서글펐다고 하였다. 이어, 권 생원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자신은 예전처럼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294211
1710년(숙종 36) 1월에 권중태(權重台)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추노(推奴)하는 일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질 권중태발급자 권중태의 부친인 권양(權懩) 및 서호 류성화는 모두 모암(茅菴) 장진(張瑱)의 사위이다.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의 후예인 장진은 첫째부인인 함양 박씨(咸陽朴氏)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권양은 첫째사위이고 류성화는 셋째사위이다. 발급자 권중태출처 : 유교넷 -
294212
1726년(영조 2) 4월에 권중태(權重台)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천연두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서신을 전달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질 권중태발급자 권중태의 부친인 권양(權懩) 및 서호 류성화는 모두 모암(茅菴) 장진(張瑱)의 사위이다. 안양공(安襄公) 장말손(張末孫)의 후예인 장진은 첫째부인인 함양 박씨(咸陽朴氏)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권양은 첫째사위이고 류성화는 셋째사위이다. 발급자 권중태출처 : 유교넷 -
294213
1724년(경종 4) 5월에 졸암(拙庵) 김여당(金汝鏜)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부채 등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여당발급자 김여당은 본관이 의성(義城)이고 자가 천집(天集)으로,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아들이다. 그는 1702년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안부 교환을 제외한 편지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여당은 류성화의 조카와 상봉한지 얼마 지나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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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영조 9) 11월에 졸암(拙庵) 김여당(金汝鏜)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중첩되는 상사(喪事)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여당발급자 김여당은 본관이 의성(義城)이고 자가 천집(天集)으로,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아들이다. 그는 1702년(숙종 28)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여당은 상대방이 뜻밖에 보내준출처 : 유교넷 -
294215
1725년(영조 1) 10월에 졸암(拙庵) 김여당(金汝鏜)이 김경침(金景沈)의 과거 급제 소식을 전하고 혼인으로 상대 집안에 들어간 종손(從孫)을 잘 봐줄 것을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김여당발급자 김여당은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셋째아들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가 천집(天集)이다. 홍문관 수찬을 역임했던 김여건(金汝鍵)의 동생이다. 그는 1702년(숙종 28)의 식년 진사시에 입격한 바 있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출처 : 유교넷 -
294216
1745년(영조 21) 1월에 낙은(洛隱) 김대(金垈)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작년 겨울 풍산(豐山)으로 갔을 때 만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설명하고 보내준 지팡이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기 김대발급자 김대는 본관이 광산(光山)이고, 자가 사종(士宗)이다. 그는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의 자손이고, 특히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막내사위이기도 하다. 먼저, 김대는 해가 바뀌었는데도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출처 : 유교넷 -
294217
발급자 김대는 본관이 광산(光山)이고, 자가 사종(士宗)이다. 그는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의 자손이고, 특히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막내사위이기도 하다. 먼저, 김대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였기에, 노년의 그리운 마음이 소장(少壯) 때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출처 : 유교넷 -
294218
경오(庚午) 6월에 김치한(金致漢)이 수급자 미상에게 근황을 전하고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하생 김치한먼저, 김치한은 가뭄 끝에 장맛비가 심한데, 이때 영감(令監)의 건강이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간찰이나 고목(告目) 등의 문서에서, 영감은 정3품 혹은 종2품의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자신은 5월 이후로 연이어 신병(身病)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219
임신(壬申) 7월에 김치한(金致漢)이 지방관으로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근황과 방문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하생 김치한수급자는 사또[使道]로 되어 있다. 먼저, 김치한은 모마(募馬)하는 사람이 돌아가는 편에 올린 편지를 사또가 이미 봤을 것이라고 하며, 늦더위에 건강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치한은 덕택에 우환이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근심거리였던 관액(官厄, 관재(官災출처 : 유교넷 -
294220
1816년(순조 16) 11월에 갈천(葛川) 김희주(金熙周)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이산서원(伊山書院)의 모임에 참석해 주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희주발급자 김희주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고제(高弟)이다. 그는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형조 참판과 대사간 등을 지냈다. 풍산 류 씨 집안의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과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이 편지는 주로 병호시비(屛虎是非)와 관련된 것이다. 김희주는출처 : 유교넷 -
294221
1812년(순조 12) 1월에 갈천(葛川) 김희주(金熙周)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근황을 묻고 며느리의 출산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류심춘(柳尋春)에게 전달해주기를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인 김희주발급자 김희주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고제(高弟)이다. 그는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형조 참판과 대사간 등을 지냈다. 그는 죄인(罪人)이라고 자칭하였는데, 1811년에 부친인 김시동(金始東)이 하세하였기 때문이다. 수급자는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있던 류출처 : 유교넷 -
294222
1746년(영조 22) 1월에 김집(金㙫)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답장이 늦어진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사돈 집안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생 김집김집은 본관이 순천(順天)으로,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좌랑(佐郞)과 기사관(記事官), 신창 현감(新昌縣監) 등을 지냈다. 아울러 그는 서호 류성화의 6촌 동생인 류성주(柳聖疇)와 사돈지간이다. 먼저, 김집은 새해가 되고 봄기운이 나는 때에 류성화의 안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294223
1739년(영조 15) 10월에 김집(金㙫)이 정배에서 풀려난 이후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생 김집김집은 본관이 순천(順天)으로,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좌랑(佐郞)과 기사관(記事官), 신창 현감(新昌縣監) 등을 지냈다. 아울러 그는 서호 류성화의 6촌 동생인 류성주(柳聖疇)와 사돈지간이다. 이 편지의 수급자는 서호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집출처 : 유교넷 -
294224
1721년(경종 1) 10월에 죽봉(竹峯) 김간(金侃)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백실(栢實)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간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이다.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다. 피봉의 개중(介仲)은 류성화의 자(字)이다. 먼저, 김간은 근자에 류성화 등의 편지를 받고서 추운 계절에 류성화가 더욱 건승함을 알게 되어, 매출처 : 유교넷 -
294225
1717년(숙종 43) 6월에 죽봉(竹峯) 김간(金侃)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간이 편지는 죽봉 김간이 병으로 인하여 대필을 시킨 것이다. 김간은 근자에 류생원의 방문을 받고, 매우 감사하고 다행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고로 인하여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으니, 이 점이 개탄스러웠다고 하였다. 이제 류 생원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 일간출처 : 유교넷 -
294226
1732년(영조 8) 2월에 죽봉(竹峯) 김간(金侃)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류성화의 종씨(從氏) 일에 대한 염려스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간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이다.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다. 피봉에 ‘김장령(金掌令)’이라 되어 있는 것은, 김간이 장령을 역임하였기 때문인데, 이 시기 그는 장령에서 물러나 부호군(副護軍)의 직책을 띠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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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8월에 죽봉(竹峯) 김간(金侃)이 병산서원(屛山書院) 원장(院長)에게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김간발급자인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이다.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다. 시기적으로 수급자인 병산서원 원장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듯하다. 먼저, 김간은 어제 원장의 편지를 받고서 서원에서 지내는 원출처 : 유교넷 -
294228
1735년(영조 11) 윤 4월에 죽봉(竹峯) 김간(金侃)이 수급자 미상에게 간역(刊役)의 진행에 대해 기쁜 마음을 표시하고 부탁받은 서책을 주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제 김간발급자인 죽봉 김간은 사위가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이고,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다. 먼저, 김간은 그리움이 간절하던 차에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니,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상대가 건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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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순조 30) 7월에 서소(書巢) 김종휴(金宗烋)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근황을 전하고 원침(園寢)에 무사히 다녀오기를 기원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종휴서소 김종휴는 본관이 풍산(豐山)으로, 피연서(避烟棲) 김상온(金相溫)의 아들이다. 그는 특히 1855년에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을 청하는 영남만인소의 초안자로 알려져 있다. 수급자는 편지 가운데 태후(台候)나 태가(台駕)라는 말을 통해 볼 때, 일우 류상조 임이출처 : 유교넷 -
294230
1835년(헌종 1) 7월에 학남(鶴南) 김중우(金重佑)가 류진익(柳進翼)에게 종질(從姪) 등의 과거 시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중우김중우는 미동(美洞)에 거주하던 풍산 김씨(豊山金氏) 인물로, 낙애(洛厓) 김두흠(金斗欽)의 부친이다.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의 문인이기도 하다. 수급자는 편지의 “대감체리(大監體履)”라는 말을 통해 볼 때,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와 관련된 인물인데, 피봉출처 : 유교넷 -
294231
1837년(헌종 3) 2월에 학남(鶴南) 김중우(金重佑)가 수급자 미상에게 어떤 물건의 출처에 대하여 써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중우발급자 김중우는 미동(美洞)에 거주하던 풍산 김씨(豊山金氏) 인물로, 낙애(洛厓) 김두흠(金斗欽)의 부친이다.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의 문인이기도 하다. 먼저, 김중우는 상대방에게 당상(堂上)의 건강과 침찬(寢饌 : 먹고 자는 생활)은 어떠한지, 형제들은 강녕출처 : 유교넷 -
294232
1837년(헌종 3) 칠석(七夕)에 학남(鶴南) 김중우(金重佑)가 류진익(柳進翼)에게 양동(良洞) 이 교리(李校理)의 장삿날이 언제인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중우김중우는 미동(美洞)에 거주하던 풍산 김씨(豊山金氏) 인물로, 낙애(洛厓) 김두흠(金斗欽)의 부친이다. 수급자는 편지의 대감체력(大監體力)이라는 말을 통해 볼 때,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와 관련된 인물인데, 피봉의 금계댁(金溪宅)이라는 말과 관련지으면 류상조의출처 : 유교넷 -
294233
1812년(순조 12) 8월에 학남(鶴南) 김중우(金重佑)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경과(慶科) 합격 소식에 대하여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중우발급자 김중우는 미동(美洞)에 거주하던 풍산 김씨(豊山金氏) 인물로, 낙애(洛厓) 김두흠(金斗欽)의 부친이다.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의 문인이기도 하다. 수급자는 편지의 대감(大監)이라는 말을 볼 때 류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김중우는 상대방이 세 번이나 편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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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3월에 김호(金㦿)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시리(柴里)의 상사 때 가서 조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감회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척제 김호먼저, 김호는 돌림병으로 몇 달 동안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늘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뜻밖에 안부편지를 받고 감사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류성화가 건승하고 그의 막내 류성흥(柳聖興)의 병이 완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그럭저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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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순조 22) 3월에 독산(獨山) 김종규(金宗奎)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병산서원에서 성균관에 통문을 보내는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 등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종규발급자인 김종규는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현손(玄孫)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정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수급자는 겉봉의 ‘류 참판(柳參判)’과 본문의 ‘태체(台體)’라는 말을 볼 때, 일우 류상조로 보인다. 김종규는 병산서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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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영조 17) 2월에 김인석(金麟錫)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김인석먼저, 김인석은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로 류성화가 강녕하심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 자신은 병환이 조금 나아졌으나 그래도 침석(枕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십 노인으로 죽지도 않고 있다고 노년의 회포를 전하였다. 영감 질녀의 혼사에 대해서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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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영조 17) 3월에 김인석(金麟錫)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중뢰연 때에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심정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병제 김인석먼저, 김인석은 류성화가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보고서 잘 지내시고 계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 자신은 늘 병을 지닌 채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중뢰연(重牢宴) 때에 손자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인근 노인들을 불러서 하루 즐겁게 보내도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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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영조 14) 4월에 송하처사(松下處士) 김익동(金翼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생 김익동김익동은 풍산 김씨(豊山金氏)와 결혼하였는데, 풍산 김 씨는 류성화의 첫째 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의 장녀이다. 따라서 김익동은 류성화의 외손서(外孫壻)가 된다. 먼저, 김익동은 류성화의 서모(庶母)의 상사가 뜻밖에 일어나서 매우 놀랐다고 하였으며, 장례(葬禮)를 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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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1월에 김익동(金翼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손 김익동김익동은 서호 류성화의 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의 첫째 사위이다. 따라서 서호 류성화에게는 외손서(外孫壻)가 된다. 먼저, 김익동은 신년에 안부를 여쭈어야 했으나 인편이 없어서 아직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류성화의 손자인 맹희(孟熙, 류종춘(柳宗春))가 와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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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영조 7) 11월에 희구재(喜懼齋) 김서운(金瑞雲)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들의 근황을 전하고 중뢰연(中牢宴) 준비에 도움을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서운발급자인 희구재 김서운과 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들이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류성화의 6촌 동생이 된다. 수급자인 류성화는 1731년 3월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에 임명된 바 있다. 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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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4월에 희구재(喜懼齋) 김서운(金瑞雲) 등이 보내준 민물고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국청(鞫廳)에 갇혔던 이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김서운희구재 김서운과 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들이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 된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보아 류성화인 듯하다. 먼저, 김서운 등은 지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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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영조 11) 윤월(閏月)에 희구재(喜懼齋) 김서운(金瑞雲) 등이 수급자 미상에게 모임의 불참 사유를 설명하고 선물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서운·시생 서한 등발급자인 희구재 김서운과 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들이다. 수급자인 시기적으로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류성화의 6촌 동생이 된다. 먼저, 김서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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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4월에 희구재(喜懼齋) 김서운(金瑞雲)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주 안부를 물어 주는 호의에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김서운희구재 김서운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이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 된다. 먼저, 김서운은 그리워하던 와중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이를 읽으니, 직접 만나서 이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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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년(숙종 39) 1월에 김서한(金瑞翰)이 새해를 맞아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생 김서한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이다. 그는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 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수급자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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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월에 김서한(金瑞翰)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 형제에게 류운(柳澐)의 질병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을 표하고 자신의 방문 일정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서한김서한(金瑞翰)은 죽봉(竹峯) 김간(金侃)의 아들이다. 그는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죽봉 김간의 사위는 류만하(柳萬河)의 손자인 류성래(柳聖來)인데, 류성래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6촌 동생이 된다. 먼저, 김서한은 며칠 사이로 여러 차례 편지를 받고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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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영조 17) 3월에 구물당(九勿堂) 김서필(金瑞必)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정말로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표하고 류종춘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 하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시생 김서필구물당 김서필은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김정은 전실(前室)인 의성 김씨(義城金氏)와의 사이에 김서절(金瑞節)을 두었고, 후실(後室)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와의 사이에 김서필과 김서길(金瑞吉)을 두었다. 여기서 김서필의 형인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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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숙종 5) 5월에 학계(鶴溪) 김시임(金時任)이 사은숙배를 하러 먼 길을 가게 된 것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 직접 전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 김시임김시임은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광록(廣麓) 김연조(金延祖)의 독자(獨子)이다. 김연조는 영주(榮州) 출신으로,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인 것으로 보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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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김시임은 본관이 풍산(豐山)으로, 자가 중경(重卿)이다. 그는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의 손자이자, 광록(廣麓) 김연조(金延祖)의 아들이다. 수급자는 피봉의 류진안(柳鎭安)이라는 말을 볼 때 졸재 류원지임을 알 수 있다. 류원지는 1655년(효종 6)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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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2월에 김목원(金穆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제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김목원은 류성화의 첫째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의 첫째아들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김목원이 자신의 외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서절은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먼저, 김목원은 김 생(金生)이 돌아온 편으로 봄에 류성화의 건강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상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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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영조 11) 4월에 김목원(金穆源)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권욱(權煜)의 죽음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복원발급자 김목원과 김복원(金福源)은 김서절(金瑞節)의 아들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이들은 서신도 오랫동안 보내지 못했고 소식도 막혔기 때문에, 늘 궁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저전(苧田) 조시(祖侍 : 조부가 살아 계셔서 모시는 처지에 있는출처 : 유교넷


